嗚呼라!
故 玄永源 회장님의 訃音을 갑자기 듣고 보니 새삼 인생의 無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장님께서 오래 전부터 病魔에 시달려 오신 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언제인가는 병석에서 다시 일어서시어 우리 해운계를 더욱 굳건히 이끌어주실 것으로 믿어왔습니다. 옛날이라면 天壽를 누렸다 할만한 연세이시기는 하옵니다만, 지금은 高齡化 시대가 아니옵니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 바쁘시었습니까?


 

회장님께서는 1957년 최연소로 남서울로타리클럽에 입회하셔서 50여년 동안 超我의 정신으로 남을 섬기고 봉사하셨습니다. 로타리 모임때마다 만면에 웃음띤 밝은 얼굴을 늘 뵈었는데, 그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 언제 다시 또 뵈올 수 있을까요?


 

故 錦石 玄永源 회장님께서는 湖南의 甲富로 광주농공은행과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회사로 알려진 조선생명을 설립하신 玄基奉 선생의 장손자로, 또 호남은행을 설립한 玄俊鎬 선생의 아드님으로 1927년 1월 10일에 태어나셨으니, 아직 우리 나이로 여든을 다 채우시지 못하시었습니다. 이처럼 회장님의 年齒는 저와 비슷하시지만, 저에게는 우리 해운계의 선배요, 인생의 선배이십니다. 그렇기는 하오나 도대체 무엇이 바쁘시기에 그처럼 서둘러 이 세상을 하직하신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마음 속 깊이 깃드는 虛無함을 어찌 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하시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학형께서 생전에 남기신 업적과 인자한 인품을 회고함으로써 아쉬움을 달래고자 할 뿐입니다. 회장님께서는 서울대학교 文理大 영문과를 졸업하시고, 光復된 祖國을 위해 보다 보람이 있는 역할을 맡고자 뜻을 바꾸어 商大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하시었습니다. 그 뒤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5년간 일본지점에 근무하시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시게 되었는데, 장인이 되시는 분이 우리나라 현대해운의 재건에 앞장을 서신 金龍周 선생이었는바, 이로써 회장님의 인생항로가 다시 한번 바뀌게 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광복직후 일제시대의 朝鮮郵船을 인수하시고, 정부의 방침에 따라 1950년 1월 1일 설립된 大韓海運公社 초대 사장을 역임한 김용주 선생의 感化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용주 선생도 그 스스로 세우셨던 海運立國의 꿈에 邁進하시지는 못하였습니다. 대한해운공사의 사장을 맡으신 채, 나라의 부름으로 초대 駐日公使를 겸하시었고, 그나마 조국의 危機가 가시고, 대한해운공사의 경영도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오를 즈음에 정치세력에 밀려 대한해운공사 사장직을 물러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장인어른의 권유로 한국은행을 물러나신 회장님께서도 곧바로 해운계에 몸담지 못하시고, 장인께서 경영하신 신한제분의 전무를 거쳐 近海商船의 전무가 되시었고, 그 뒤 대한제철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하시었습니다. 장인어른으로부터 물려받은 해운입국의 꿈과 근해상선 전무이사로서 터득한 經綸을 살려, 마침내 회장님께서는 1964년에 독자적으로 新韓海運을 창업하시어 경영하시었습니다.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매우 알찬 회사였는데, 1980년대 초에 휘말린 제2차 石油波動에 따른 국제적인 海運危機를 타개하고자, 정부가 이른바 海運産業合理化 정책을 수립하자 이에 기꺼이 동참하시어, 1984년에 사위가 경영을 맡고 있던 現代商船에 신한해운의 선대를 맡기시고, 현대상선의 회장이 되시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2월에 한국선주협회 회장이 되시어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을 마치고, 2001년 1월에 한국선주협회 회장으로 다시 추대되시었지만, 병환을 얻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시고 2003년에 퇴임하시었으니 아쉬운 마음 어찌 다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께서는 제가 책임을 맡고 있는 韓國海事問題硏究所의 이사로서도 적극 참여하시어, 한국해운의 미래와 더불어 연구소의 장래를 늘 걱정하시다가 한국선주협회 회장직과 함께 물러나시었으니 그 안타까움은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회장님께서는 스스로 우리 해운업계의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우리나라 전체 해운계를 이끌어 가시는 큰 어른으로서 참으로 많은 업적으로 남기시었습니다. 그러한 업적으로 회장님께서는 1995년에 원광대학교, 그리고 1996년에 한국해양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영득하시었습니다.  그나마 조금은 회장님의 업적을 높이 기리는 뜻이 되기는 하였겠습니다만, 그것이 모두일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하오나 부디 이를 위안과 보람으로 삼으시고 평안히 永眠하시옵기를 삼가 비옵니다.

                            
2006년 11월 27일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  박 현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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