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맹활약하며 바다사랑 표현

故 조수호 회장은 1954년 인천에서 태어나 79년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경영수업을 시작하였다.


85년 상무직으로 한진해운과 인연을 맺은 고인은 94년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2003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여, 국내외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며, 한진해운이 세계적인 선사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93년부터 세계 컨테이너선사 최고경영자 모임인 BOX CLUB 멤버로 활동해왔고, 95년부터 97년까지 태평양 노선 안정화 협의체(TSA)의 제4대 의장으로 세계 해운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으며, 2000년부터 2005년까지 WSC(World Shipping Council) 이사회 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세계 최대의 민간해사기구인 발틱국제해사기구협의회(BIMCO)의 부회장으로서 국제해운업계에서 한국 해운의 위상제고와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IMO이사국 선임에 역할 커
폭 넓은 대인관계로 국제 해운업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컸다. 1991년 한국이 처음 국제해사기구(IMO)에 가입할 때, 당시 외무부와 해운항만청 등 관계기관에서 IMO 가입을 위해 나설 인물로 조 회장이 뽑혔다. 당시 일년의 반 이상을 해외로 뛰며 세계 곳곳에 지인들을 심어 놓은 조 회장이 적격자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말타 공화국 명예총영사로 활동하고 있던 조 회장은 각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협력을 요청한 결과, 한국의 이사국 선임이 성사됐다. 이후 94년 IMO 이사국 연임에도 공헌한 바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97년부터 2000년초까지 한국선주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해운의 국제적 위상제고를 위해 노력했으며, 94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를 역임하여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대국민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한 바 크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96년에 한국 해운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으며, 2004년에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로부터 최고 공로 훈장인 오너러리 메달 오브 골드(The Honorary Medal of Gold)를 수상하였다.


 

고인은 또한 한진해운이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해운 기업이자 자산 5조 1,000억원, 매출액 50억불(6조원) 규모의 세계 7위권 규모의 선사로 성장하는데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하였다. 또한 지난 92년 국내 최초로 4,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도입하고 작년 하반기에 미주 노선에 국내 최대의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는 등 컨테이너선 대형화를 선도해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노력해왔다.

 

해양소년단연맹 총재로 해양입국 지원
조 회장의 바다와 해운에 대한 사랑은 비단 회사경영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994년 제9대 한국해양소년단 연맹 총재에 선임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해양입국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1997년 2월부터 2000년 초까지 한국선주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운관련 금융 및 세제, 국제선박등록제도 등의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대형선사와 중소선사의 공존 공영의 기틀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등 세계 해운시장에서 한국 선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국해운산업의 국제적 위상과 대국민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힘썼다.

조 회장은 한국해양소년단 총재 취임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든 행사를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밝혔을 정도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다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1994년 9대 총재에 선임된 이후, 10대 총재로 재 추대되어 2001년까지 8년간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조 회장은 청소년들에게 해양사상 고취를 통한 진취적인 국가관과 올바른 민족관 정립이라는 연맹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독도사랑 어린이 수호대 발족, 국제 청소년해양축제 개최, 동해안순례대행진 등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한편, 1993년 10만 명이던 단원 수를 1996년 18만 명으로 끌어올리고, 미국, 일본 등 선진 17개국과 함께 한국이 세계 해양소년단연맹 정 회원국으로 선임되도록 하는 등 연맹의 조직과 위상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바다와 해운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조 회장은 1996년 ‘한국 해운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으며, 현재 한진해운이 연간 1억 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세계적인 선사로 성장함은 물론, 한국 해운산업이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프로의식 근거로 한 신뢰경영
조 회장은 ‘변화와 혁신’, 프로의식을 바탕으로 한 ‘신뢰경영’과 ‘고객 감동 서비스’ 정신을 유달리 강조하였다. 그는 급변하는 영업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밑에서 업무를 추진할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결정을 빨리 해주는 것을 최고 경영자의 역할로 보았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운송사업은 변화에 얼마나 발 빠르게 적응하고 정보의 수립과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저의 아버님은 사업을 99%의 노력과 1%의 운으로 풀이하시는데, 좋은 기회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대강이 통하지 않는 국제 비즈니스의 냉엄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항상 프로의식과 책임을 얘기했다. 이와 함께 열린 경영과 투명 경영을 강조 실천하여, 한진해운이 주주 및 회사 전 구성원과 고객으로부터 가장 신뢰 받는 회사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겸손하고 소탈한 포용의 경영자
조 회장을 두고 사람들은 인간적이며 합리적이었다고 말한다. 소탈하게 아래 사람을 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러한 평가에 대해 본인 스스로는 “아마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전세계 200여 개에 달하는 해외 지점소에 과감한 권한 위임을 항상 강조하였고, 밑에서 소신 있게 기획안을 제출하면 포용력 있게 가능한 한 존중해 주었다. 그는 기업경영에서도 조직이나 부서간에 ‘휴먼 릴레이션’을 강조하였으며, 사장 재직 시 회의를 진행할 때도 격식을 없애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도록 했다.

조 회장은 직원들과의 대화를 즐겼다. 지난 2003년에는 부문별로 과장급 이하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회사발전과 복리후생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였으며, 직원들과 열린 대화의 시간을 갖고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만의 리더가 아니라, 우리 해운업계, 나아가서는 세계 해운업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지만, 한국 해운사에 남을 만한 명실상부한 세계 해운업계의 별이었으며, 해운인으로서 그가 꿈꾸고 일구었던 비전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해운산업의 앞날을 인도할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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