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의 해상법 교수인 김인현씨가 안식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싱가폴 국립대학의 펠로우 및 방문교수로 싱가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폴 현지에서 그곳의 해상법과 해운산업을 체험하고 있는 김인현 교수에게서 ‘싱가폴 해상법 교실’이라는 주제로 싱가폴 현지의 생생한 관련 이야기들을 기고받아 연재한다. 김 교수는 이전(2003-04년)에도 미국텍사스대학(오스틴)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시절 ‘미국해상법 교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편집자 주-


 
 
해운의 국제적 규제
해사공법적인 성격을 갖는 해운의 국제적 규제(international regulation of shipping)라는 강의가 2012년 봄 학기에 개설되어 있다. 알렌 탄(Alan Tan)  교수가 화, 목요일 오후에 3시간씩 집중강의로 1개월간 강의하였다. 주로 IMO에서 작성한 국제조약을 중심을 강의했는데 마침 PSC와 해상운송관련 경쟁법 관련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PSC와 개념과 통계자료를 분석하여주었고 이러한 PSC 검사결과가 용선계약에서 대상선박의 선정이나 체선료 등 부담주체 결정에 영향을 미침을 설명하여주었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운동맹의 폐지문제와 관련하여서 그는 싱가폴은 특별법으로서 해운동맹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이고 해운동맹은 유익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알렌 탄 교수는 싱가폴국립대학을 졸업한 다음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사공법 뿐만아니라 항공공법에 대하여도 조예가 깊다. IMO관련 국제조약을 체계적으로 가르키는 법과대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사공법은 해상법과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탄 교수는 선주의 손해배상책임과 비용절감의 관점에서 해사공법이 해사사법에도 영향을 미침을 강의하는 것이었다. 한국 학생 한명이 이번에 그의 지도하에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해상법
해상법(Maritime Law)강좌도 개설되었다. 이 강좌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해상법의 범주에서 운송계약법을 분리하고 남은 부분을 가르친다. 선박의 등록, 선박매매, 충돌, 구조, 난파물 등 주로 웨트(wet)부분에 대한 강좌로 거빈 교수와 폴 마부르 교수가 공동으로 강의하였다. 월요일 밤에 개설되었다.
마부르(Mybrugh) 교수가 강의하는 도선사 강좌에 들어갔다. 법과대학에서 도선사의 책임에 대하여 2시간을 할애하여 강의한다는 것부터가 드문 것이다. 싱가폴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제정법으로 도선사의 책임이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다. 강제도선의 경우에는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1993년 캐빈대시(The Cavendish) 판례가 수업자료중의 하나이다. 나는 도선사책임에 대한 한국입장(책임제한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약관으로 처리되는 점)을 소개하였다.

거빈 교수가 강의하는 선박건조 및 선박매매 수업에 들어갔다. 많은 자료들이 제시되었다. 3시간에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였다. 선박건조에 대하여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한다는 설명에 나도 우쭐하여졌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일본선주협회(Shipowners Association of Japan)가 만든 SJA 표준계약서가 많이 사용되는 바 한국도 그러한가”하고 질문한다. SJA를 활용하지만 모든 준거법이 영국법이 된다고 답하면서도 나는 한국준거법이 되지 못하는 점에 대하여 자괴감이 들었다. 선박건조 계약이나 매매계약이나 모두 계약법 일반이론을 따르는 것임을 그는 강조하였다.

그리고 계약서에 규정하지 않은 손해배상 등 관련된 내용은 보통법(법원이 만든 판례)이 적용된다고 하였다. 영국법이 준거법인 이상 선박건조는 영국의 물건매매계약법(Sales of Good Act)이 적용된다고 한다. 선박을 동산으로 보는 것이다. 건조된 선박의 매매이기 때문에 조선소가 가지던 소유권이 인도시에 발주자인 선박소유자에게 넘어가므로 이론 구성이 우리 법에 비하여 한결 간단하다. 선박의 매매에서 중간에 브로커들이 개입하지만 이 브로커들이 매도인 매수인의 agent의 지위에 있다고 한다. 선박매매에서는 노르웨이 서식이 압도적으로 사용되고 일본서식도 있지만, 최근 싱가폴에서도 선박매매의 중심지가 되기 위하여 싱가폴국립대학의 해운연구소에서 선박매매표준서식을 만들었다.  

공동해손을 Ince&Co의 이언 앤더슨(Iian Anderson) 변호사가 강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동해손에 대하여는 자세히 가르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주에 걸친 강의가 계속되었다. 운송계약, 용선계약 그리고 해상보험에서 공동해손이 되면 당사자들에게 어떤 법적 영향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례를 가지고 요크안티워프 규칙의 몇조에 해당하는 사항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실무적인 강좌였다. 수업을 듣고 보니 공동해손이라는 것이 적지않이 선포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나 강의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오크랜드 대학 마부르 교수도 우연하게 남아공출신으로 거빈 교수와 동향이다. 남아공에서 공부를 하였다. Kluwer에서 만든 국제법률백과사전(IEL)에서 뉴질랜드의 운송법(transport law)을 출간한 점에서 그와 나는 공통점을 갖는다. 청바지를 즐겨입고 귀걸이를 한 그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가 가늘고 나직하다. 싱가폴, 한국, 뉴질랜드의 해상법 교수들이 같이 뭉치자고 하여 보타 닉 가든(Botanic Garden) 의 멋진 식당에서 그가 점심 턱을 냈다. 마부르 교수는 현재 MPA(싱가폴항만공사) 초빙교수이다. 옥스퍼드의 레이놀드, 튜레인의 마틴 데이비스 이런 분들이 MPA 초빙교수로 강의를 개설한 바있다. (이외에도 마부르 교수가 강의하는 해사국제사법<maritime conflict of laws>이 개설되었지만,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1월 초에 개설되어 2월 중순까지 집중강좌로 처리되었다)

위와 같이 해상법강좌가 5과목이나 개설되었다. 강좌는 학부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생, 연구과정생에게 모두 개방된다. 강좌마다 2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석한다. 나로서는 참으로 놀랄 일이다. 강좌가 학부학생들에게는 어려운 편이지만 해상법 석사과정생이 참여하는 공통강좌라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해상법 튜토링
4월 첫 주에 모든 수업이 종료되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들은 지난 해의 시험문제 혹은 가문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튜토링이란 이름으로 수업을 한다. 그 범위는 학기 중에 배운 모든 수업내용을 망라할 수 있도록 폭넓게 문제를 낸다. 문제지만 4페이지에 이른다.
거빈 교수의 해상법 튜토링 시간에는 선박건조계약, 선박의 등록, 선박충돌, 공동해손등 많은 부분을 다루었다. 그중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선박의 충돌에서 과실비율을 산정함에 있어서 판사가 장로선장에게 어떤 사항을 질의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영국 해사법원에서는 장로선장에게 판사들이 항법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이 그대로 주의의무 위반이 되고 이것이 쌓여서 과실비율이 되는 것인 바, 이러한 판사의 임무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선박의 등록, 선박충돌, 공동해손 등은 제정법인 싱가폴 상선법(Merchant Shipping Act)에 담겨있고 여기에 없는 부분은 보통법이 적용되므로 근거규정과 판례를 답안에 잘 기재하라고 거빈 교수는 강조하했다.   

용선계약법 튜토링
그렉슨 교수의 용선계약 튜토링 시간에는 항해용선계약과 정기용선계약에서 발생하는 선주와 용선자 사이의 분쟁에 대한 문제가 5개 나왔다.
항해용선계약에서는 정박기간에 대한 내용이 port charter(항구의 영역에 도착하면 선박이 대기하여도 정박기간이 계산됨)이면 선주에게 유리한 것이고, berth charter(선석에 접안하여야 정박기간이 계산됨)는 용선자에게 유리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서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잘 파악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정기용선계약에서는 항로선정은 상사(employment)사항이므로 선주는 정기용선자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2001년 영국 귀족원의 힐 하모니(Hill Harmony)사례를 응용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복습하였다. 용선되었던 선박이 기관고장, 선원의 불승선, 그리고 이전 항차의 화물잔류물 때문에 항만당국이 하역작업을 거부한 경우가 모두 용선료지급중단사유(off-hire)가 되는지 물었다. 반선이 늦어졌고 선주는 더 높은 가격에 제2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가 이것이 해지된 경우에 선주가 정기용선자로부터 수령할 수 있는 손해가 얼마인가를 물었다. 2008년 영국 귀족원의 유명한 아칠레우스(Achilleas) 사례의 응용이다.

기존의 입장은 반선이 늦어진 경우(overlap)  정기용선자가 선주에게 배상하여야 하는 손해액은 현재의 시장가격에 기존의 용선료를 제한 액수를 늦어진 일수만큼 곱한 액수이었다. 제2용선계약의 체결 등이 있음을 알았어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정기용선자는 특별손해를 배상한다(Hadley v. Bexandale). 아칠레우스 판결에서는 항소법원은 특별손해까지를 인정하여 취소된 항차의 모든 일수동안의 용선료를 모두 지급하라고 판시되어 시장에 큰 파장을 주었다. 그러나 귀족원은 용선자는 계약당시에 이러한 책임을 스스로 인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기존의 입장과 같은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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