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엘레지 여왕’ 이미자의 3대 히트곡
김정일 전 위원장 애창곡…북한서도 인기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인 ‘섬마을 선생님’은 언제 들어도 애잔한 느낌이 든다. ‘엘레지의 왕’ 이미자의 비단결 같은 미성(美聲)이 감칠맛을 더해 준다. 낭랑하고 애틋한 음색에다 총각선생님에 대한 젊은 섬마을 처녀의 순정이 듬뿍 묻어나는 노랫말은 들을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대중가요 ‘동백아가씨’만큼이나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

 
 
이미자씨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노래로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함께 이 곡을 꼽는다. 공교롭게도 이들 곡은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방송금지곡으로 묶인 아픔이 있다.
‘섬마을 선생님’은 왜색이란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씨는 가끔 사정이야 어떠했든 그 때로선 참 많이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힘들긴 했지만 몸이 워낙 바쁘고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히트곡들이 계속 나와 정신없이 지냈다. 그런 가운데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이 묶이고 ‘기러기아빠’가 3년 뒤 나왔는데 또 금지돼 좌절했다. ‘트로트의 여왕’, ‘국민가수’ 등 어떤 찬사도 지나침이 없는 이씨는 화려한 연륜만큼이나 대중이 모르는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특히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씨(1930년 5월 8일~2010년 3월 14일)는 ‘가수 이미자를 키워낸 작곡가’로 불릴 만큼 이씨가 부른 수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2,700여 곡을 발표했다. 그는 10여년 넘게 병마와 싸우다 별세했다.

신세대 가수 장윤정, 요즘 버전으로 불러 눈길
‘섬마을 선생님’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가요다. 이씨는 2002년 평양공연을 갔을 때 북한주민들이 자신의 노래를 많이 알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남한가요를 좋아하는 그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함께 ‘섬마을 선생님’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는 2003년 남한서 출간된 ‘김정일 리포트’ 저자 손광주씨가 전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측근들과 여배우들이 참석하는 비밀파티 때 남한노래를 자주 불렀다. ‘섬마을 선생님’ ‘찔레꽃’, 패티김의 ‘이별’ 등이 단골곡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몇 년 전 신세대 트로트가수 장윤정씨가 요즘 버전으로 불러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1967년 같은 제목의 영화도 제작
‘섬마을 선생님’이 크게 인기를 얻자 1967년 김기덕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 외딴 섬으로 계몽 온 총각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의 수채화 같은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신지식인과 구세대 사이의 갈등도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온다. 영화엔 그 때 최고인기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오영일, 문희, 안은숙, 김희갑 등이 그들이다.

영화 줄거리는 월남전 참전경험이 있는 한 교사가 남해의 섬 학교에 자원해 부임한다. 섬의 유일한 학교인 아주 작은 분교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그는 섬마을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에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굽히지 않고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간다. 섬마을엔 점점 희망이 싹터간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과 섬 처녀가 가까워지면서 뜨겁게 사랑한다. 주인공으로 나온 선생님(오영일)과 섬 처녀(문희) 연기가 돋보인다.
흑백영화였음에도 촬영지인 인천시 부근 대이작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느껴졌던 영화로 관객들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의 대이작도 마을입구엔 전교생이 몇 명뿐인 ‘이작분교’가 있다. 그러나 대이작도엔 유명한 분교가 하나 더 있었다. 이름은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 폐교가 됐으나 ‘섬마을 선생님’ 영화제작 때 주요 촬영지로 활용된 곳이다. 그래서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는 늘 ‘섬 마을 선생’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45년이 지난 지금 대이작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화를 찍을 때만해도 300여 주민이 살았으나 지금은 100여 명만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이한 건 부두에 내리면 ‘문희 소나무’가 길손을 맞는다. 부두에서 마을 쪽으로 300여m 떨어진 이 나무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문희가 이 소나무에 기대서서 선생님이 타고 떠나는 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인천시 옹진군은 서해 앞바다 외딴 섬 이작도의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를 되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키로 했다. 2013년 6월까지 3억 2,000여만원을 들여 자월면 이작리 계남분교 일대를 사들여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옛날 영화 상영 공간, 족구장, 그늘막 등을 설치한다. 계남분교는 영화촬영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1992년 폐교된 후 방치돼왔다. 영화촬영지가 복원되면 이작도 앞바다 모래섬인 ‘풀등’ 등과 연계하는 스토리텔링사업이 펼쳐진다. 그러나 사유지인 계남분교 터(9,897㎡)와 건물(94㎡) 매입추진과정에서 대상 터의 감정가와 소유자가 제시한 금액이 서로 달라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과 스텝들 면면도 그 때로선 보통이 아니었다. 남자주인공 오영일은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여주인공 문희(1947년 7월 출생)는 인기 절정의 배우였다. 서울 동구여상을 나와 연예계에 몸담은 그녀는 1965년 영화 ‘흑맥’을 통해 데뷔했다. 영화계를 떠나선 한국일보 경영진 집안으로 시집가 한국종합미디어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이색이력도 갖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희극배우로 유명했던 김희갑씨(1922년 7월 출생, 일본 메이지대학교 출신)의 ‘양념 같은 연기력’도 뛰어났다. 그는 쇼 무대공연 때 ‘불효자는 웁니다’ 등 가요를 불러 앵콜을 받았을 만큼 노래에도 일가견 있었다. 만능엔터테이너로서 한동안 여배우 황정순씨와 콤비를 이뤄 ‘팔도강산’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연기력을 선보였다. 안은숙씨(1953년 6월 출생)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나와 1963년 영화 ‘부부조약’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섬마을 선생님’에서 총각선생 약혼녀로 출연, 어린 나이에도 깜직한 연기를 펼쳤다는 평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SBS가 같은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 2004년 6월 2일부터 2004년 7월 22일까지 매주 수·목요일 밤 9시 55분에 방영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외딴섬 하태도를 무대로 젊은 남녀의 운명과 사랑을 ‘증인보호프로그램’이란 새 소재를 바탕으로 신선하게 풀어내 눈길을 끌었다. 천방지축 여주인공이 우연히 범죄현장을 보면서 경찰과 조폭을 피해 섬으로 들어가고 우연한 기회에 섬마을 선생님이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다.   

해당화, 여름 해변서 이슬 머금고 바다 향해 피는 꽃
노래가사에 나오는 해당화는 여름 해변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고 바다를 향해 피는 꽃이다. 사랑하는 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꽃으로 시나 노래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북한 원산 남동쪽 명사십리에도 해당화가 유명하다. 유난히 흰 모래밭과 긴 초록빛의 곰솔 숲 뒤로 보이는 옥빛 바다, 거기에 피어있는 주홍빛 해당화는 명사십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명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 고전소설 ‘장끼전’에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마라. 너야 내년 봄이면 다시 피겠지만 우리 님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는 내용이 나온다.

 
 
왕성상 wss4044@hanmail.net
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아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