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바다의 날’ 해사문제연구소 단동 선상세미나 ③주제발표/ “민족문화·타문화 ‘융합지점’ 모색해야 문화영토 넓힌다”

 
 
5월 바다의 날을 맞아 매회 선상세미나 및 항만시찰문화탐방 행사를 진행해온 월간 해양한국의 발행처 (재)한국해사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2012년도 제 17차 바다의 날을 기념해 올해는 중국 동북3성의 하나인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단동, 환인, 통화, 백두산, 집안시 일대에서 5월 11일부터 5일 동안 세미나 및 단동항만 견학과 옛 고구려 문화유적 탐방시간을 가졌다.

동 행사에는 연구소 측 직원을 비롯해 한국해양연구원, KMTC, 신화로지스 등 해양 및 항만물류 관련업체 및 단체 임직원 가족 약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선상세미나는 소재영 연변과학기술대학 한국학연구소장(숭실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 명예교수 겸직)이 한중 관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론’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중국 동북부 지역의 게이트웨이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단동항을 비롯해 한반도 최고의 산이자 분단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백두산까지의 5박 6일에 걸친 일정 가운데 첫 순서로 마련된 연구소 주최의 제17차 선상세미나는 단동항으로 향하는 ‘동방명주6’호 선내 식당에서 이뤄졌다.

 

 

 

 

 
 
소재영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는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중관계에 있어서의 동아시아권 국가의 문화 교류에 대해 개관했다. 그는 “‘문화’는 인간 사회내에서 각 구성원에 의해 습득되고 공유되면서 축적된 무형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밝히며, 문화의 생산과정은 인간 개인의 산물이 아닌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의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화에는 상·하의 구분이 있어 문화계층을 형성하는데, 역사적으로 인류는 상급문화를 지향해 왔으며, 상급문화를 생산하는 주체집단은 그렇지 못한 계층의 집단에 속한 부류를 지배해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속성을 띄고 있어 문화적 계층 역시 상·하급 문화를 영위하는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 사이의 인간 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 간 상호교류를 통해 이뤄진다. 이 때문에 문화는 오랜 민족 간 역사 속에서 민족과 국가별로 문화적 특징을 나타낸다. 이 과정에서 한 민족의 문화 혹은 한 국가가 형성해 놓은 문화 속에 외래문화가 유입되면 새로운 문화의 영향은 얼마만큼 ‘질’적으로 우수하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이 결정된다.

 

소 교수는 ‘문화 영토’라는 용어를 언급하며 현 시대는 전 근대 사회에서 통용됐던 유혈 전쟁 등을 통한 민족지배가 아닌 ‘문화’를 통한 민족통일이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타국의 영토라도 한 국가의 문화가 타지역에 자리잡아 깁숙히 세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영토확장에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문화는 한 민족의 사고패턴과 생활양식 전반에 밀접히 관계돼 있다.

 


 

 
 

 

현재 한반도 땅에 뿌리내려 살아가고 있는 전체 인구 수는 약 7,000만명 정도로 집계되는데 이 가운데 약 10%가 한반도 영토 밖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 10%에 해당하는 700명 한반도 민족은 미국과 중국에 각각 200만명, 일본에 약 50~60만 명이 살고 있어, 한반도의 물리적 영토와 문화적 영토의 크기는 상대적인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남·북을 다 합쳐도 중국 전체 면적의 약 100분의 1 크기에 불과한 한반도의 물리적 영토는 현재 K-POP 과 드라마를 통한 한류바람을 통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물리적 영토확장에 얽힌 중국, 일본 등 각 이해국들의 치열한 전쟁이 현재도 분단 등의 아픔으로 남아 있어 지난 역사에 견주어 볼 때 한류 등을 통한 한반도 문화의 확산은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중국 대륙과 직접 연결돼 있는 한반도는 양국 관계는 물론 동아시아권 국가 간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중요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한·중 문화 교류의 접점에 있어 한반도 역사의 시발점인 옛 ‘고구려’ 문화는 양국 간에 외교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을 만큼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송 교수에 따르면, 과거 중국 문화의 기원은 BC 4세기 황화강 유역의 앙소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하나 최근 동향은 요하 지역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를 추가해 황하와 양자강, 요하 세 지역의 문화를 3대 중국 기원 문화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요하를 기점으로 하는 중국의 요동과 요서 지역은 중국의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요지인데 동 지역은 한반도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의 역사가 관련된 지역이기도 해 양국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병자호란 당시 효종대왕을 따라 중국 심양까지 수행했던 조선 중기의 문신인 홍서봉은 ‘이별하던 날에 피눈물이 난지 만지/ 압록강 나린 물이 푸른 빛이 전혀 없네/ 배 우희 허여 센 사공이 처음 본다 하더라’는 시조를 통해 나라 잃은 서러움을 전했으며, 같은 시기 중국 청 태종의 인질로 잡힌 조선 제 17대 왕인 봉림대군 역시 나라 잃은 슬픔을 시조를 읊조리며 달랬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요동지역 영토를 관활했던 고구려 역사는 오늘날 잘 알려진 주몽의 고구려 건국신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당 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무너지고 고구려가 멸망하기까지 700여년에 이르는 고구려의 역사는 압록강 요하 유역의 광활한 대지를 상실하고 이후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에 의해 ‘발해’로 거듭난다. 발해는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하기 까지 229년 동안 존속했으며 이후 훈춘시 팔련성까지 도읍을 옮길 때까지 건재했다고 한다. 소 교수는 “발해의 상경 용천부와 훈춘의 팔련성을 이은 발해 강역은 오늘날 길림성 흑룡강성 전 지역을 아우른다”며, “고구려에 이은 발해의 영토 확장을 통해 한반도 역사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반도와 중국 영토는 서해의 압록강과 동해의 두만강을 사이로 경계가 구분돼 있다. 조선조 국경의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주로 청나라로 가는 사신들이었는데, 청나라 입관 당시 평균적으로 중국 땅을 밟는 사절단 수는 4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기록에서 내려오고 있는 당시 사신들의 압록강 내왕 과정의 기행기에 따르면, 압록강을 건너 요동 땅을 지날 때까지 토질과 풍광이 조선 땅과 같아 고구려 땅의 향수를 느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백 종의 연행기록 중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주요 연행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있다. 한편 압록강이 갈라져 흐르는 중강지역은 조선인과 당시 중국인들이 모여 물물 교환을 하는 국경 시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재영 교수는 “중국에서 황사가 일어나면 며칠 후에는 한반도가 그 영향을 받는다”며, 양국 간 문화이동 방향도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의 속성상 끊임 없이 새로운 외래문화와 충돌하고, 진화·발전, 퇴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문화는 신 문화를 수용해 한 차원 높아지기도 하고 저급한 문화는 여과과정을 거쳐 새롭게 변화되기도 한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광활한 대지면적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문화의 중요한 발신자 역할을 해왔지만 오늘의 한반도의 한류문화가 거꾸로 중국으로 흡수되고 있는 현상을 통해 한반도 문화의 현재를 재해석 할 수 있다. 韓민족은 반도 국가로서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 있다. 소 교수는 21세기의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올바른 방향은 “각기 다른 서로의 민족 문화를 살려 나가면서도 한 데 어울릴 수 있는 공통된 지점을 찾아나가는 문화 ‘융합’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동아시아권 국가간 활발한 문화 교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對 동아시아권 문화에 대한 고유 민족 문화의 조화와 수용 능력이 요구된다. 그는 “자국 문화의 체질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 문화, 더 나아가서는 세계 문화와의 조화를 통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체계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땅의 백두산을 보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장장 48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온 끝에 마침내 도달한 백두산의 첫 자태는 산행 길 내내 비를 동반한 안개와 먹구름이 가득한 소위 ‘바람직하지 못한’날씨 속에 만년설로 뒤덮인 채 드러났다.

  

꽁꽁 얼어 있는 눈과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한겨울 추위에서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도달한 백두산 정상에는 그러나 ‘장백산(Chang Bai Mt.)’이란 문구가 세워져 있었다. ‘중국’과 ‘조선’을 각 양면에 세긴 비석 사이로 경계선이 가리키고 있는 북한 땅을 등지고 백두산의 나머지 반쪽을 모두 품고 싶어하는 웅장한 천지가 마침 구름 사이로 비춰진 햇살에 반짝여 장관을 연출했다.

 

세미나 참가 일행들이 대부분 하산할 즈음 날이 반짝 개기 시작하면서 백두산의 쾌청하고 청명한 하늘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소 교수의 세미나 발표에서 언급된 것처럼 민족 고유 문화의 우수성을 발전·유지시키기 위해 타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를 통해 문화발전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현재 한류문화는 앞으로 잃어버린 나머지 반쪽 문화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노력을 통해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 문화영토 확장의 열쇠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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