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가득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강당과 강당 사이에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세찬 바람 소리,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 여러 악기의 튜닝 소리…. 문화회관 안팎은 온통 소리의 세상이다. 강당 출입문을 통과하면 금세 또다른 소리의 공간이 펼쳐진다.

 

가야금 연주회가 펼쳐질 대극장은 벌써 만원이다. 초대공연의 성격이기는 하지만 청중에 대한 나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공연장 안은 국악 축제이거나 잔치 마당 같다. 우리 음악에 대한 나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던가. 국악은 이제 특정인의 기호 영역이 아니라 뭇시민들의 가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빈 자리를 찾는 내 속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무의식 중에 흘러갔다.

 

마침내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울대 국악과 1기생이라는 노신사가 나와 오늘 연주회의 의미와 내용을 장황하게 해설하고 들어갔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는 가야금 연주회가 자기의 고향, 부산에서 펼쳐지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서울이나 대구 대전 전주 광주 같은 내륙의 도시가 아닌, 부산에서 갖는 이 연주회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 않느냐는 일반인의 통념을 깨려는 듯한 의중이었다.

 

오프닝 연주가 시작됐다. 전통음악이 프로그램 대로 연주되면서 서서히 청중을 사로잡았다. 민요 모음곡이 먼저 선을 보였다. 대중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는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리랑, 노들강변, 강원도 아리랑, 한오백년, 창부타령 등이 현대리듬으로 재구성되어 메들리로 울려 퍼졌다. 가야금을 앞세워 피리와 해금이 어우러져 이른바 가야금 합주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히 민속음악의 진수를 보고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는 사실 정규 교과서 이후 국악의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먼 이국의 악기에 다름 아니었다. 눈에도 가슴에도 쉬 와닿지 않는. 근래 뒤늦게 국악을 만날 때마다 난 먼 옛날 원시의 모습에 빨려 들곤 한다. 우륵의 가얏고를 상상하며, 신라의 융성과 가야의 위기를 그려 본다. 혼자서 즐기는, 참 재미있는 시간 여행이다.

 

연주회는 어느새 소리로 박수로 무드가 고조되었다. 개량 가야금 단(團)이 등장하여 창작음악을 연주하면서부터 장내가 뜨거워졌고 나도 많이 달아올랐다.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수녀들의 정적인 관람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악’ 하면 금방 한복이나 비녀, 대님 같은 말과 조화롭지 않은가. 깔끔한 수녀복이 나의 오랜 고정관념을 흔들고 있다. 나에게 수녀는, 아침이슬 머금은 나팔꽃처럼, 소년기적 女선생님의 모습처럼 그렇게 깊숙이 남아 있다. 수백의 객석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전통 가야금 12현을 배로 늘린 25현금으로 들려주는 그 소리. 오묘한 연주음은 소리에 머물지 않고 청음(廳音)에 무딘 나에게 지음(知音)의 길을 어렴풋이 일깨워 주었다. 열 명씩 두 개 조로 나눠 협연하는 곡목은 바로 창작곡, ‘바다에 피는 꽃’이었다. 이날 처음 소개하는 초연곡이란다. 가야금과 바다, 가야금과 부산, 부산과 국악…. 어색한 듯 하면서도 여운이 감도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다. 전통음악 창작음악 가요 산조 등 레퍼토리를 바꿔 가며 이해하기 어려운, 가야금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계속되었다. 음악은 인간에게 무엇이며, 가야금은 나에게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 본다.

 

바다에 피는 꽃이라. 나는 이 가야금 연주회의 테마가 왜 하필 ‘바다에 피는 꽃’이라 붙였을까 의아했다. 한편으론 매력적인 테마의 유혹(?)에 이끌려 자발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만. 이 날 국악기의 별, 가야금은 뱃노래 선율로 부산의 밤을 그윽하게 수놓았다. 시간 반 연주회가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 만큼 나 역시 긴장하고 무대에 집중했다. 물결처럼 춤을 추는 농현(弄絃)의 재주와 연주음의 깊이에 취해.

 

국악의 꽃이 피어난 곳. 무대 속의 부산은, 이미 고향 부산을 떠난 사람들, 부산을 동경하는 타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듯 했다. 사족 같지만, 부산 하면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도시요, 세계적인 상항(商港)이 아닌가. 서울 사람들이 느끼기엔 부산은 ‘바다의 도시’같은 선입견을 주고도 남을 터. 바다를 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인간의 삶이 낭만적이고 풍요로운가. 항도 부산은 어쨌든 천혜의 도시이자 축복받은 땅이 아닐 수 없다. 바다는, 누가 뭐래도 부산의 자랑이요, 경쟁력이요, 매력이다.

 

“바다에 피는 꽃은 무엇인가! 심청을 담고 세속으로 환생한 임당수의 강선화(降仙花)이련가! 네온에 물들인 듯 펼쳐진 바다의 야경이련가? 바위에 부딪힌 너울의 소리는 가야금에 담고, 메아리쳐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는 장구에 담고…. 화려하지만 어둡고, 어두워도 답답하지 않는, 아마도 바다에 피는 꽃은 ‘소리’일까?”

 

그렇고 말고. 음악에서 ‘소리’보다 더 중요한 인자가 또 있을까. 짧은 시간 나는 가야금에 젖어 소리에 취해 연주회가 끝나서야 바다의 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팸플릿에 얌전하게 감춰 놓고 있는 꽃의 비밀을 알았을 땐 이미 객석이 텅 비어 있었다. 우뢰의 박수가 휩쓸고 간 자리엔 낙수(落穗)같은 환청만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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