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법과 실무적 관점에서의 검토-

이 글은 4월 26일 개최된 한국해법학회의 춘계정기학술대회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권도중 변호사가 발표한 내용을 필자의 허락하에 일부 수정변경해 실은 것이다.                                -편집자 주-

좌로부터 강정구 사장, 장상규 사장과 필자
좌로부터 강정구 사장, 장상규 사장과 필자
해적행위는 오래 전부터 인류의 해상교역의 시작과 더불어 존재해 왔다. 해적은 전세계 곳곳에서 활동해 왔으나 최근 소말리아 해역을 중심으로 해적활동이 더욱 빈발하면서 전세계 교역량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해상운송이 위협받고 있다. 전세계 해상교역량은 최근 40년 동안 약 4배로 증가하면서 세계화의 중심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바, 대한민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산업국가에서는 해적에 의한 위협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아래에서는 영국법과 국제해운업계의 실무적인 시각에서 소말리아 등 해적의 위협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법률적인 쟁점들에 대하여 살펴본다.

해적문제와 관련하여 수 많은 논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해적의 정의와 본질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으며, 특히 이러한 해적의 개념은 해상보험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해적의 공격에 대비한 해운업계의 물리적인 대책, 국제적인 해상운송 규범상 규정되어 있는 해적의 영향 및 체포된 해적의 인권문제 등에 대한 논의도 중요 쟁점이 된다. 해적행위에 대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노력도 역시 고찰의 대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다양한 논점을 모두 다룰 수는 없는 관계로 그에 관한 소개와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이하에서는 주로 정기용선계약 및 해상보험과 관련하여 해적의 위협이 이들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법률관계와 이에 관련한 국제적, 실무적 흐름을 살펴 보기로 한다. 

Ⅱ. 해상법상 주요 쟁점
1.  안전항 (safe port)
대부분의 용선계약은 특정항구의 향후의 안전성을 용선주에게 부담 지운다는 안전항 보장규정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안전항의 보편적인 정의는 The Eastern City사례에서 Sellers 판사의 판단에서 유래되었으나, 영국법상 안전항 의무의 본질에 대하여 규정한 것은 The Evia (No.2)사건에 대한 영국 대법원의 판결이다. 위 사례에서 “Safe Port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항구는 선박이 주의 깊게 잘 운항되는 한 어떠한 피해를 입지 않고 선박이 입항하고 정박하고 출항하는데 있어서 합리적인 수준에서 안전해야 한다. 즉 항구는 선박의 이동에 유용한 조력이나 장비, 나아가 수로나 해안의 지리적인 형상에 있어서 합리적인 수준에서 안전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최근 학계에서는 위 개념을 좀더 발전시키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즉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안전항인지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에 관하여 정기용선자가 당해 항구를 지명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되 정기 용선자는 지명 시점뿐만 아니라 지명 시점의 판단으로 향후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고 나아가 선박이 당해 항구에 있는 동안에 안전하지 않게 된다면 가능한 한 당해 항구를 벗어나야 하는 2차적인 의무가 정기 용선자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통상 정기 용선자는 안전항으로만 선박을 운행하도록 지시할 권한이 있다. 선주는 운항 지시를 받을 당시에 당해 항구가 안전하지 않다면 그 지시를 거부하거나 나아가 적법한 지시를 요구할 권한을 가진다. 반면에, 대법관 Goff는 The Kanchenjunga에서 “선주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항구로 운항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선주가 당해 선박에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용선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한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명백한 포기의사가 없거나 당해 항구가 명백하게 위험하지 않다면, 선주가 그 지시를 받아들임으로써 상실되는 유일한 권리는 당해 불안전한 항구로 운항하라는 계약에 부합하지 않는 지시를 거부할 권리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NYPE93의 제8조(Performance of voyages)는 용선자의 고용관계에 따른 지시에 선주가 응한 결과 발생한 손실에 대하여 용선자의 선주에 대한 묵시적인 배상책임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정기용선계약에서 선장은 용선자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일반적으로는 안전항에만 선박을 운항하라는 용선자의 적법한 명령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선장은 항상 선박, 선원들 및 화물의 안전과 안전한 항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운행해야 할 항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딜레마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만약, 소말리아 인근의 한 항구로 운항하라는 지시를 용선자가 하였으나 선장이 선박, 선원 및 화물에 대하여 해적들로부터 피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장의 지시에 따라 운항한 결과 해적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위 정기용선계약에서 규정한 묵시적 배상책임이 용선자에게 인정되느냐의 문제는 그 당시 그 항구에서의 위험의 정도, 선주와 용선자에게 알려진 정보 및 선장이 취한 항해에 관한 결정의 근거 등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수(數)와 실제 해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선박의 수(數)를 비교함으로써 그 지역 인근의 항구가 안전항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 그러한 주장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긴 어려워 보인다.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The Saga Cob”사건에서 3달 전에 발생한 한번의 해적피습사건 이래로 해적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홍해 연안의 Massawa항에 해적의 공격이나 그 위험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하급심 법원의 “당해 항구에 운항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당시에 향후 안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 이상 그 위험은 당해 항구의 특징”이라고 판시한 결정을 파기하였다. 따라서 아직까지 영국 법원은 해적으로부터의 위험과 관련하여 특정 항구가 안전항인지 여부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해적으로부터의 공격과 납치가 빈발하고 있는 바, 조속히 명확한 판단기준이 제시될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2. 항로 변경(Re-routing)
일반적으로 선주의 관심은 해적에 피랍되어 몸값을 지불하거나 피랍 기간 동안에 기회비용을 손실하는 일이 없이 화물을 목적지에 운송함과 동시에 해당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다. 따라서,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의 공격이 빈번한 상황에서 용선자가 시간과 연료비 등을 절감하기 위해 홍해의 통과를 희망하는 반면에, 선주는 해적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우회항로인 희망봉을 경유하는 것으로 경로를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상호간 이해가 상충될 수 있다.

한편 특히 화물운송료가 확정된 항해용선계약에서는 선주가 위와 같은 항로 변경으로 인하여 재정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VOYWAR 20041를 운송계약서에 삽입한다면, 선주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고 통상의 항로를 변경할 권리와 연장된 항로로 인해 추가된 화물운송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항해 운송계약서들이 The Hague Rule 또는 Hague/ Visby Rules의 전부 혹은 일부를 준용하고 있는데, 그 중 위와 관련되는 Art. IV(4)은 해상에서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항로 변경이나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항로변경은 위 Rule들 및 운송계약의 위반행위로서 간주되지 아니하고 운송인은 항로변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기용선계약의 경우에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선자는 예정된 화물운송일정을 준수하고 상선은 수에즈를 통과하여 운항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해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에즈를 통과하려고 할 것이다. 특히, 장기 정기용선계약에서는 당해 선박의 항해를 지시하는 것은 선주가 아니라 용선자이므로 이러한 경우에 선주는 항로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CONWARTIME 2004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편 직접적으로 항로변경과 관련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해적의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상당기간이 소요되어 운송지연이 발생한 경우, 그에 따라 시장에서의 기회비용손실이나 지연으로 인한 비용손실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손실은 York-Antwerp Rules 2004 Rule C에서 정한 공동해손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공동해손약관(General Average Clause)에 의하여 전보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송계약이 뒤에서 살펴볼 BIMCO war clause를 포함하고 있다면 낭비된 시간은 용선자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On -Hire로 취급될 것이다.
 
3. 몸값지불이 公序良俗(Public Policy)에 반하는가
현재까지 소말리아 인근 해적에게 피랍된 상황에서 석방의 대가로 몸값을 지불한 경우에 인질이 석방되지 않은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해적으로부터의 인질 석방을 담보하기 위한 다른 현실적인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선주들이 인질의 석방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경우에 그 비용은 앞서 살펴본 방법들에 의하여 이해관계자들간에 배분되거나 환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인질에 대한 석방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과연 공서양속에 위반되는 것이므로 이를 지불하지 말고 이로 인한 비용도 이해관계자들간에 배분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한편 선박 또는 선원의 석방을 위한 협상과 몸값 지불의 일련의 과정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공서양속과 관련하여 다음의 두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나는 몸값의 지불행위가 적법한 것이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궁박(窮迫) 상태에서의 몸값지불 합의계약이 집행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우선 영국법상 인질몸값에 대해서는 두 개의 관련 법규정이 있다. 하나는 대테러법 2000이고 다른 하나는 돈세탁방지법이다. 대테러법 제 15조 제3항에 따르면, 그것이 테러를 위하여 사용될 것이거나 사용될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거나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돈이나 다른 재물을 제공하면 이에 의하여 처벌된다. 만약에 몸값의 지불행위가 대테러법에 위반된다면 보험계약자는 공동해손이나 해상보험증권상의 손해방지비용약관에 의해서는 보상받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당사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추정을 번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기망행위이나 불법행위에 의지할 수 없다는 일반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말리아 해적들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알 카이다(Al-Qaeda)의 연계조직으로서 알려진 알 샤밥(Al Shebbab)이라는 지역조직이 몸값을 요구하는 해적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 관하여 아무런 증거가 없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는 몸값을 해적에게 지불하는 것이 대테러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일단 몸값이 해적들의 손에 들어가면 이것은 범죄 수익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돈 세탁방지법의 입법취지는 범죄행위로 얻은 수익금을 환수하기 위한 것이지 몸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몸값의 지불행위는 이 법의 위반행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영국법에서는 해적에게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금하는 법령이 없다고 보여지므로 결국 위법이 아닌 것이다. 과거의 인질석방법이 폐지되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최근 이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The Bunga Melati Dua에서 David Steel 판사는 석방협상의 진행경과와 석방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선박의 실제 전손이나 해석상 전손이 없었다고 판시하였고 나아가 ‘몸값지불은 영국법상 불법이 아니고 납치 및 석방약관은 보험시장에서는 오래된 중요한 특징이므로 몸값지불행위를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설사 몸값의 지불행위가 위법이 아니더라도 이는 공서양속에 위반된다는 보험계약자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생각하건대 해적에게 피랍된 선원과 재산을 석방하기 위하여 몸값을 지불하는 것 이외에 다른 현실적인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목적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것 자체를 공서양속에 위반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둘째, 몸값의 지불행위가 위와 같이 적법하고 공서양속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면 석방을 위한 합의계약이 해적이나 관계된 다른 당사자들에 의하여 집행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하여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위협은 보편적인 인류의 도덕성에 반하는 것이므로 설사 몸값에 관한 합의 자체가 유효하게 해석되더라도 해적은 그 합의를 집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공격한 자가 아닌 해적위협의 희생양들에 의한 인질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물을 구조하기 위한 몸값 지불행위에 대하여 반대하는 보편적인 도덕관념은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은 최근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대한 영국 대법원의 보고서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 안에는 해적들에 대한 몸값의 지불에 관한 입장이 있었는데, Mr Simmonds는 ‘이로써 우리의 사람들과 선박들을 다시 돌려받는 깨어질 듯한 현재의 상황(fragile statusquo)이 달성되었고 그들의 안전한 귀환은 최고로 중요한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보고서 말미에는 인질과 몸값(hostage taking and ransoms)이라는 제하에서 집행위원회가 ‘우리는 해적들에게 몸값을 지불하는 것이 영국법 제도 아래에서 형사범죄가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여 현 상태(statusquo)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생각하건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소말리아 인근 해적에게 몸값을 지불한 경우에 인질이 풀려나지 않은 사례가 아직 없었고 몸값을 지불하지 않은 경우에 해적에게 인질이 처형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사람의 목숨은 지구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우월한 것이라는 보편적인 진리에 비추어, 이러한 상황에서 인질몸값의 지불은 인질의 생명과 자유의 보호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해적 또는 관계 당사자가 몸값에 관한 합의를 집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영국법상궁박(窮迫)의 상태를 이용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라고 봄으로써 위법한 상황에서 형성된 법률관계에 기반하여 새로운 법률관계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방지하여야 할 것이다.

4. 인질 몸값(Ransom)의 회복
통상은 선주가 해적에 의한 피랍 상황에서 인해 선박, 선원 및 화물에 대한 안전 및 석방을 위하여 몸값을 해적에게 지불할 것이다. 선주가 해적에게 지불한 몸값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동해손(General Average)이고 둘째는 손해방지비용 약관(Sue and Labour clause)에 근거하는 방법이다. 한편 해난구조(Salvage)에 따른 보상의 형태도 또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나, 통상적인 피랍상황하에서는 선주나 선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해난구조를 하는 것이어서, 고용계약의 내용을 넘어서는 특별한 서비스를 수행하지 않는 한, 해난구조로 인정받기 위한 자발성 요건이 흠결되므로 해난구조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인질 몸값의 처리에 관한 두 가지 방식 즉 공동해손에 따른 방식과 손해방지비용 약관에 따른 방식은 서로 근거를 달리하지만, 통상 몸값이 손해방지비용 약관에 의하여 회복될 수 있다면 공동해손에 의한 방법에서도 다르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이다.

통상 손해방지비용 약관은 보험계약상 보험회사가 책임져야 할 손실 즉, 보험에 가입된 재산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시키기 위하여 보험계약자가 지출한 합리적인 규모의 이례적인(Unusual or extraordinary expense) 비용은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해상보험에 있어서의 표준화된 조항이다. 따라서 이에 반대되는 취지의 강행법규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러한 내용의 보험약관에 따라손해방지비용의 적용범위가 결정된다. 참고로, 영국의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s 78(2)는 ‘공동해손 및 해난구조비용은 손해방지비용약관에 의하여 전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화물선의 경우에는 위 지출된 비용은 공동해손에 의하여 처리될 것이므로 위 규정에 근거하여 손해방지비용 약관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선박이 화물선이 아니거나 공선(空船)인 경우에는 공동해손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선주와 선체 보험회사 간 체결된 보험약관의 문구에 따라서 부담주체가 결정될 것이다.

몸값과 손해방지비용에 관한 주요사례가 Royal Boskalis Westminster NV v Mountain이다. 이 사건에서 항소법원은 보험에 가입된 선박의 석방을 위하여 지출된 비용은 몸값의 지불이 위법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손해방지비용 약관에 의하여 전보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시 내용으로 볼 때, 향후 인질(선박, 선원 및 화물)의 석방을 위해 지불된 몸값은 반대취지의 강행법규가 존재하는 등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위 손해방지비용 약관에 의하여 전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질에 대한 몸값이 공동해손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 오래된 사례도 있다. 영국의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 제66조 제2항과 York-Antwerp Rules 2004의 Rule A에 따르면, 항해 중에 위험에 처한 재물을 보존할 목적으로 위험할 때 자발적이고 합리적으로 지출되거나 행하여진 특별한 희생이나 지출은 공동해손행위에 해당한다. 한편, 위 규정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해석상 사람의 신체와 생명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된 희생이나 비용지출에 대해서도 공동해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해적들이 현실적으로 선박에 선적된 화물과 선박 자체를 석방하면서 선원들에 대해서만 몸값을 요구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York-Antwerp Rules이 계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면, 몸값의 지불은 당연히 공동해손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간주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만약 몸값의 지불이 손해방지비용으로서 회복될 수 있다면, 역시 공동해손의 비용지출로서도 전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손해방지비용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결과가 성공하여야 한다는 요건이 없는 반면에 공동해손에 해당되려면 반드시 행위의 결과가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다른 비용이 지출되었으나 인질협상이 실패한 결과 선박과 화물이 해적들에 의해서 파괴된 경우에는 그 지출비용과 파괴로 인한 손실은 공동해손에 의해서 전보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위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지출이 합리적일 것을 요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건이 인질에 대한 몸값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즉 대개 구조된 재산적 가치를 초과하는 몸값은 합리적인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해적들이 재산의 파괴와 더불어 선원 및 승객들의 생명을 위협한다거나 또는 탱커선의 경우에 폭파로 인한 환경오염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몸값이 구조된 재산적 가치를 초과하더라도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위에서 앞서 살펴본 Royal Boskalis Westminster NV v Mountain 사례에서도 ‘당해 비용이 얻은 이익만큼만 지불한다는 원칙(Quantum Meruit principle)에 따라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손해방지비용 약관에 의한 전보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라고 판시하였다. 결국 각 사례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지만, 때로는 구조된 재산의 가치를 초과하여 지불한 몸값도 합리적인 것으로서 해석될 것이다.
 
5. Off-hire clause
On-hire는 용선계약서에 명시적으로 다르게 규정하지 않는 한, 선주가 용선계약을 위반하더라도 계속 지속된다는 것이 일반원칙이다. 따라서 선박이 해적의 공격에 의하여 off-hire인지 여부는 용선계약서의 off-hire clause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by any other similar cause preventing the full working of the vessel’ 과 같은 포괄적인 문구가 일반적인 용선계약에서는 해적행위는 통상 off-hire의 사유로서 규정되지 않는다. 위 ‘any other cause’의 의미와 관련하여 The Laconian Confidence에서 동종의 사건만이 본 문구에 의해서 적용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부연하자면, 휴항 사유는 약관에 제한적으로 열거된 사유들과 이에 동종유사하고 선박에 내재된 사유만 인정된다고 법원은 판시해 왔다. 따라서 이런 류의 약관에서는 해적은 일응 off-hire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상사법원은 최근에 Saldanha사례에서 NYPE 46의 표준양식에 따른 용선계약에서 아덴만 인근 해적들에 의해 나포된 선박이 억류기간 동안에도 여전히 on-hire에 있는지에 관하여 처음으로 판단하였다. 상술하자면, 벌크선 Saldanha는 아덴만 소재 영국 교통부가 지정한 통행항로를 거쳐 짐을 실은 채 운행하던 중 2009년 2월 22일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피랍되었다. 이 사안에서 용선계약서는 표준 휴항약관 이외에도 피랍 및 억류조항(Seizure and Detention) 등 맞춤형 약관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는 바, 법원은 해적에 의한 피랍은 off-hire clause에 열거된 사유들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억류기간 내내 on-hire로 남아 있고 나아가 피랍 및 억류조항(Seizure and Detention)은 명시적으로 해적을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표준 휴항약관 중 any other cause 다음에 ‘whatsoever’라는 단어를 추가하면 동종의 사건일 것이라는 요건을 피할 수 있고 그 사유가 제한되지 않으므로 해적에 의한 피랍사건은 off-hire로 될 수 있다. 이것은 해당 선박의 완전한 활동이 해적의 공격으로 방해 받고 시간의 손실이 발생한 순간부터 해당 선박은 off-hire라는 것을 의미한다. 위 Saldanha 사안에서 Gross 판사는 해적에 의한 억류는 포괄적 조항인 ‘any other cause’에 포섭된다는 용선자의 주장을 기각하면서 ‘용선자가 주장하는 효과를 생기게 하려면 발생한 사유에 관하여 언급한 명시적인 규정이 있거나 최소한 해당 조항에 whatsoever라는 단어를 덧붙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한 상황들에 대비하여 선주와 정기용선자간 적절한 타협점으로서 평가받는 것이 BIMCO’s Piracy Clause for Time Charter Parties 2009(이하 ‘BIMCO 해적약관’)이다. 이 약관의 가장 큰 특징은 Paragraph (f)에서 해적에게 억류된 상황하에서 용선료를 받을 수 있는 기간(90일)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상세하게 BIMCO 해적약관을 검토하는 대신에 해적의 위협 및 억류행위와 관련하여 CONWARTIME 2004 및 기타 일반 War clause와 어떻게 다른지를 간략히 살펴본다. 근래까지 일반적인 ‘War clause’는 ‘Act of piracy’를 war risk에 포함시키지 않아 왔으나, BIMCO는 최근 아덴만 인근에서의 해적 행위 증가로 인하여 Act of piracy를 규율하는 CONWARTIME 2004 및 BIMCO 해적약관을 마련하였다.

특히 BIMCO 해적 약관은 해적에 관련되어 발생하는 법률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계약조항들에 대한 해운업계의 바램을 충족하고자 CONWARTIME 2004의 틀을 따라 작성되었다. 그러나 후자는 해적공격의 위험이 용선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발생하여 당사자들이 전혀 그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임에 반해, 전자인 BIMCO 해적 약관은 해적의 공격 위험이 알려진 시기가 계약체결 이전인지 이후인지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된다. 위 약관의 paragraph (a)는 선주들에게 선장 또는 선주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 해적의 위험이 있을 것 같은 지역으로의 운항을 거부할 권한을 부여하고 후에 그 장소가 위험해진다면 해당 선박은 그 지역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편 Off-hire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CONWARTIME 2004에는 해적에 의한 선박억류에 관하여 명시적 규정이 없으므로 석방하여 운영될 때까지 계속 on-hire로 인정되지만 BIMCO 해적 약관에서는 앞서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해적에 의하여 선박이 억류된 이후 90일이 지난 시점부터는 석방 시까지 용선료의 지급의무가 중단된다.
참고로 정기용선계약의 당사자들이 BIMCO 해적 약관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BIMCO의 SUPPLYTIME 2005 제32조에 의하면, ICC Force Majeure Clause 2003과 마찬가지로, 불가항력 사유로서 해적의 행위(발생일로부터 2일 이내에 서면으로 통지할 것이 요구된다)를 포함한다. 따라서 정기용선계약서에 BIMCO 해적 약관과 SUPPLYTIME 2005를 함께 삽입하는 경우, 선박이 해적에 의해 피랍되었다면 선주들과 용선자는 피랍 후 90일 동안에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면책과 임대료 지급 여부에 관한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6. 계약의 목적달성 불능 (Contract  frustration)
영국 계약법상 용선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발생한 상황의 변화가 큰 경우에는 당사자 상호간 계약이행의무를 면제시킬 수도 있다. 그러한 변화는 단순히 계약당사자의 어느 일방이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였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계약의 전체적인 토대를 변경시킬 만큼 상당해야 한다.
해적들에 의한 선박의 피랍은 전체 계약기간 중 상당한 기간 동안 해적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면 용선계약이나 선하증권에 의한 계약의 목적달성을 불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기용선기간이 12개월인 사안에서 3개월 동안 당해 선박이 징발된 경우에는 용선계약을 불능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의 목적달성불능은 VOYWAR 2004와 같이 어느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을 불능으로 만든다는 명시적인 계약규정이 있다면 적용되지 않는다.

National Carriers Ltd v Panalpina (Northern) Ltd 사건에서 Simon 판사는 계약의 목적달성불능에 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계약 당사자가 계약 당시에 합리적으로 고려할 수 있었던 것들과는 다르게 앞으로 이행되어야 할 계약상 권리 및 의무를 상당히 변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새로이 변화된 환경하에서 양 당사자에게 계약서의 문구대로 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계약의 목적달성불능이 인정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법상의 사정변경의 원칙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기용선계약에서 선박이 파괴되거나 실종된다면 용선료 지급의무가 소멸한다는 명시적인 조항을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NYPE 93의 제20조는 ‘선박을 잃게 되면 이미 지불 받은 돈은 즉시 용선자에게 반환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 계약서 제 21조는 이례적으로 해상에서의 위험과 사고(dangers and accidents of the seas)를 상호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바, 해적의 공격행위도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용선자 입장에서는 선박이 해적에 의하여 억류된 경우에는 해상에서의 위험과 사고에 해당함을 주장하여 운송료의 지급의무를 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선주 입장에서는 위 조항은 어느 일방이 열거된 면책사유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경우에 다른 상대방에게 그 보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해석되므로 용선료의 지급의무를 면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생각하건대, 결국 이러한 문제는 위험부담의 所在에 관한 것으로 보이고, 제 21조의 다른 면책사유들이 당사자들의 통제범위 밖에 있거나 양 당사자들의 공통의 영향력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양 당사자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선주와 용선자가 문언 그대로 상호 면책되기 위해서는 선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용선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새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7. 보험 (Risk Insurance)
전세계적으로 빈발하는 해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선박 및 선원을 방어하기 위하여 최근에는 선박의 거주구(Deck House) 외벽이 아닌 내부에만 계단을 만들거나 Citadel을 설치하거나 해적이 승선하지 못하도록 소방호수 또는 철조망을 설치하는 등의 물리적인 조치들 이외에도 해적의 공격 즉시 바로 위성항법장치를 통하여 인근의 군함 등에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탑재하거나 심지어 사설 무장요원을 선박에 탑승시키는 등의 다양한 방안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의 공격수단이 고도로 중무장화되고 있고 활동반경도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해운업계가 그 해적의 위협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험제도를 통한 손실감소방안이 소극적이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볼 것이다. 

오늘날 해적의 위협으로 인한 리스크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해적의 공격에 따른 선박, 선원 및 화물에 대한 파손, 멸실, 사상 그리고 이로 인한 항로변경 및 억류 등에 따른 비용손실의 가능성과 억류된 선원 등의 석방에 대한 대가(Ransom)이다. 이러한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손해방지비용이나 공동해손에 의하여 전보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대부분의 P&I club들은 위 ransom을 담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해상보험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해적위험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상보험의 일반적인 원칙은 부보된 위험에 의하여 초래된 손실에 대해서만 보험증권상의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보되지 않은 위험으로 인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상이 없다. 문제는 위에 언급된 해적위험이 해상위험과 전쟁위험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 이다.
먼저 선체 보험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로이즈 보험증권(SG form)은 해적위험을 담보해오다가 중간에 바뀌어서 1982년 사라질 때까지 전쟁부담보약관(FC&S clause)을 붙여서 해적위험을 담보해 왔다. 그러나 Institute Time Clause(Hulls) 1983, 1995와 Institute Hull Clauses 2003에서 해적위험은 명시적으로 해상위험으로서 부보되어 있다. 그러나 발생빈도가 증가하고 있고 소말리아 해상과 같이 뚜렷하게 매우 위험한 지역이 특정되는 상황을 볼 때, 해상위험으로서의 해적위험은 조만간 다시 퇴색될지도 모른다.

 모든 부보된 위험들은 일반조항과 전쟁 및 동맹파업조항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해적의 개념을 유일하게 정의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UNCLOS 1982 제101조(A)에 따르면, 해적행위란 사선(私船)의 선원이나 탑승객에 의하여 공해상에서 다른 선박 혹은 그 선박에 있는 사람이나 재물에 대하여 사적인 목적으로 자행된 폭력, 감금 또는 약탈의 불법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런 정의를 전제로 할 때, 위와 같은 국제적인 선체보험체제에서는 부보된 위험들에 대한 포괄적인 조항이 없기 때문에 만약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행한 납치행위가 공해상에서 다른 선박 또는 그에 탑승한 사람에 대하여 발생하였다면, 이는 위에서 정의한 해적행위가 아닌 것이 되고 그 결과 위와 같은 행위는 해상위험약관이나 전쟁위험약관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위험의 보장에 있어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다음으로 화물 적하 보험에 대하여 살펴본다. 해상에서 해적의 공격으로 화물이 멸실되거나 손상된다면 직접적인 피해자는 그 사고 당시의 화물 소유자가 될 것이고 이런 경우를 위해서 화물 적하 보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적위험은 전손(全損)보험 즉 ICC (A)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상 담보되지 않는다. 만약 ICC(A)가 사용되었다면, 해적위험이 명백하게는 부보된 위험이 아닐지라도, 그 보험증권은 명시적으로 면책되지 않는 한 모든 위험을 담보하고 있다. 상술하면, ICC(A) 제6조는 전쟁위험면책약관을 규정하고 있는데, 동조 제2항은 ‘해적위험은 전쟁위험에서 제외된다’라고 기재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담보된다. 그러나 ICC(B)와 (C)는 위 문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해적위험이 담보되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선체보험에서 정치적 동기로 인한 선박에 대한 납치행위가 해상보험과 전쟁보험 중 어느 것에 의해서도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음에 반하여, 적어도 ICC(A)는 전 위험 담보 약관이기 때문에 제외약관이 없다면 위와 같은 납치행위도 담보될 것이다.

한편 화물을 선적한 선박이 해적들에게 피랍되고 석방을 위한 협상이 가까운 미래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사안에서 보험계약자는 전손(全損)을 주장하며 보험자에게 보상을 청구할지도 모른다. 영국 해상보험법 제 57조 제1항은 보험계약자가 부보된 재물을 회복할 수 없게 빼앗긴 경우를 전부 멸실되었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60조 제1항과 동조 제2항 제 i항 제b 목에서는 해석상 전부 멸실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들을 열거한다. 해석상의 전부멸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재물이 전부 멸실될 필요는 없지만 보험계약자가 합리적인 판단에 의하여 부보된 재물을 포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의 사례가 있다. The Bunga Melati Dua사건에서는 화물보험의 계약자가 소말리아 인근의 해적들에게 선박과 화물이 강탈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화물이 전부 멸실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화물적하보험의 계약자인 화물 소유자는 실제로 화물이 회복될 수 없게 멸실되었다거나 해석상 전부 멸실되었다고 입증할 수 없었다. 이 사건에서 항소법원은 해적에 의한 강탈이 즉각적으로 실제 전부 멸실인지 아닌지는 결국 사실판단의 문제라고 하면서 하급법원이 계약자가 법적 또는 물리적으로 다시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 한 재물을 회복할 수 없게 빼앗긴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내용을 지지하였다.

마지막으로 선원 또는 승객의 안전에 관하여 살펴본다. 대부분의 해적 사건에서는 선박과 화물뿐만 아니라 선원도 함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몸값의 지불에 의하여 함께 석방된다. 선주들은 그들이 고용한 선원들의 부상이나 사망과 관련하여 몸값 협상 단계에서 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P&I 클럽들에 의하여 대개 선원들의 부상이나 사망이 담보된다. 이런 상황에서 몸값의 지불로 인해 클럽들의 책임이 줄어들게 되는 이상, 이것은 클럽의 손해방지비용약관에 해당되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Royal Boskalis Westminster NV v Mountain에서 항소법원의 Phillips 판사는 ‘이런 상황에서 선박 자체와 선원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로서는 보험계약자들이 충분하게 위험에 처한 생명을 우려했다면 그들의 재산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들을 구하려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건전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판시하면서 하급심의 Rix 판사가 “보험계약자의 손실은 부보된 선박뿐만 아니라 선원의 석방을 위해서 발생한 것이고 선원의 석방은 보험약관에 의하여 담보되지 않는 손실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므로 보상액은 절반으로 감액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기각하였다.

생각하건대, 어떤 시각이 더 설득력이 있느냐의 문제는 각 사례의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비록 몸값을 지불한 주요 동기가 부보된 재물을 구조하는 것이었더라도 손해는 분담되어야 한다. 즉, 유람선에 탑승한 선원이나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동기가 단순히 부보된 재물을 구조하기 위한 동기에 부수적인 것 이상이었다면, 지출된 비용총액을 선체보험회사가 모두 부담하거나, 공동해손사례에서 선체 및 화물보험회사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위와 달리, 선원들이 완전하게 대상 선박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몸값이 선원들만을 위하여 지불된 경우에는 그러한 지불은 공동해손의 지출이라고 볼 수 없고 통상의 해상보험에서의 손해방지비용약관에 해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Ⅲ. 결론
근래 전세계적으로 테러리스트와 해적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운업계는 그 리스크를 회피하거나 줄이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유럽으로 가는 관문에 위치한 소말리아 인근 해역은 향상된 기동력을 바탕으로 좀더 넓은 지역이 중무장한 해적에 의하여 점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도 일반 상선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어 해적행위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적의 근본적인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주로 아덴만 주변국의 가난, 정치불안에 따른 치안부재 및 국제적인 군사적 제재의 곤란 등이 언급된다. 보다 적극적인 국가간 및 국제기구간의 공조를 통한 대책마련으로 해적행위의 근절이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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