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이시스터즈 1966년 울릉도 소재로 발표해 히트

 

코믹한 가사, 경쾌한 멜로디, 꾸밈없는 내용 눈길

 

필자 왕성상
필자 왕성상
황우루 작사, 황우루(임성환) 작곡, 이시스터즈 노래의 ‘울릉도 트위스트’는 울릉도 풍물을 배경으로 한 가요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1966년에 발표된 곡으로 울릉도의 환경, 생태, 특산물과 불편한 교통편까지 그 무렵 울릉도의 모습들을 코믹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꾸임 없이 엮어냈다. 4분의 4박자, 트로트풍으로 흐름이 빠르다. 가사내용에 과장이 없고 재미나는 섬의 분위기와 리듬감을 잘 살려냈다. 특히 1절에선 울릉도와 포항을 오갔던 정기배편(청룡호)의 탑승경험을 실감나게 담았다. 그 때만해도 밤에 떠나면 아침에 닿던 옛 정황들이 눈으로 보는 듯하다. 노래가 나오기 3년 전인 1963년부터 울릉도종합개발이 이뤄지면서 육지와 교통왕래가 본격화됐다. 대한공사가 만든 350톤급 철선인 청룡호가 동양해운 소속으로 1963년 5월부터 월 5차례 운항하기 시작했다. 노래엔 그런 시대적 배경들이 녹아있다.

 

‘울릉도’와 뱃멀미 느낌인 ‘울렁’ 표현 감칠맛

 
 
특히 ‘울릉도’와 뱃멀미의 느낌인 ‘울렁’이란 단어를 잘 대비시켜 언어적 재미를 줬다. 배를 타고 10시간쯤 가야했던 동해의 외딴 섬이라 배 멀미가 엄청났을 것이다. ‘울렁울렁’을 ‘울릉도’와 연결시킨 게 돋보인다. 2절에선 ‘어지러워 비틀비틀’을 ‘트위스트’로 연결시켰다. 동백꽃, 호박엿, 오징어 등 지역특산물들을 나열해 울릉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작사가 의도가 엿보인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가수 이금희가 부른 ‘키다리 미스트 김’과 쌍벽을 이뤄 1960년대 대표 히트곡들 중 하나다. 하지만 일부 노랫말이 현실에 맞지 않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지적이 많다. 1절 가사 끝 대목의 ‘육지사람 어서 와요 트위스트 나를 데려 가세요’가 그것이다. 울릉도 여성들이 육지로 팔려가는 듯한 느낌이란 견해에서다. ‘평생 다 가도록 기차구경 한번 못해보고 살아도’는 시집도 못가고 울릉도에 갇혀 있는 섬 아가씨를 빗댄다는 시각이다. 울릉군민들은 이 부분을 고쳐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광태 씨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이 행정구역 명칭변경과 일본의 독도망언에 따라 가사가 바뀐 점을 들고 있다.


김명자(지금은 김희선으로 이름을 바꿨음)씨는 최근 ‘울릉도 트위스트’를 녹음할 때의 추억담을 신문에 소개해 흥미롭다. 그는 “작곡가 황우루 선생이 곡을 들고 왔는데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하는 가사가 너무 유치해 안 부른다고 했다가 별 생각 없이 녹음한 게 ‘대박’이었다”고 전했다. 노래를 부를 때 트위스트안무도 누가 짜준 게 아니었다. 이시스터즈 멤버들(3명)끼리 “이렇게 흔들면 음악이랑 잘 어울리겠다”며 연습했다. 요즘 걸 그룹 옷이 야하다고 하지만 그땐 더했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한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나가면 늘씬한 다리를 보고 군인들은 소리를 지르고, 나이든 어른들은 혀를 찼고 여자들은 질투를 했다며 그 때를 떠올렸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DJ DOC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불려 싱싱한 맛을 준다.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로 작곡자를 둘러싸고 법정시비가 붙었다는 점이다. 2007년 9월 충남에 사는 임성환(76)씨가 ‘울릉도 트위스트’ 작곡자로 알려진 고 황우루 씨 형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임 씨는 1960년대 황 씨와 같이 신세계레코드사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황 씨가 쓴 가사에 곡을 붙이기도 했는데 ‘울릉도 트위스트’ 작곡자가 자신임에도 황 씨로 표시돼 음반제작이 됐다는 것. 임씨는 “허락 없이 ‘울릉도 트위스트’ 작곡자가 황 씨로 나갔다. 농장 일을 위해 낙향한 사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음반이 나왔을 때 작곡자 등재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근거서류가 없어 이의를 걸지 못했다. 그러나 5년 전 서류정리 중 처음 방송사에 발표했던 악보를 찾아내 소송을 내게 됐다”고 주장했다.


노래 배경지 울릉도는 3무(無)5다(多)도(島)로 불린다.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은 청정섬이다. 512년(지증왕 13년) 신라의 이사부가 독립국인 우산국을 점령, 우릉도·무릉도 등으로 불리다 1915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고 경북도에 편입됐다.

 

이시스터즈는 친자매 김천숙·김명자씨가 주축
 노래를 부른 이시스터즈(큰 언니 김천숙, 동생 김명자(김희선), 김상미)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이들은 여성그룹으로 1960년대 아름다운 화음과 율동으로 신나는 노래를 불러 인기였다. 세계적 인기그룹인 미국의 ‘맥과이어시스터즈’ ‘앤드루시스터즈’ 영향을 받아 출발했다. 3살 터울의 친자매 김천숙·김명자씨와 이정자 씨로 구성됐다가 나중에 바뀌었다.


이들은 언론인터뷰에서 그룹이름에 얽힌 비화를 들려줬다. “우리가 데뷔하기 전 국내엔 대단한 인기의 김시스터즈가 있었어요. 김해송-이난영 부부, 이난영 씨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 선생 딸들로 이뤄진 김시스터즈는 김 씨 둘, 이 씨 한 명으로 구성됐죠. 그래서 우리 팀은 김씨 성이 둘이었지만 이들과 피하기 위해 이시스터즈란 이름으로 출발했어요.”


 
 
이들의 결성은 미8군 쇼 연예인공급업체 ‘화양’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친자매 중 동생(김명자)이 수도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미8군 가수오디션에 참가한 게 계기가 돼 서울대 출신의 작곡가 겸 연주인 박선길 씨로부터 여성보컬그룹 제의를 받았다. 그 때 동참한 멤버가 철도청에 다니던 언니 김천숙, 그의 직장후배 이정자 씨다. 충북 영동출신의 두 자매는 학창시절부터 콩쿠르를 휩쓸던 재주꾼이었다. 함흥태생의 ‘함경도 또순이’ 이정자 씨도 6·25전쟁 중 경찰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한 재원이었다.


이들의 첫 음반취입은 1963년 두 자매만으로 뭉친 ‘허니-김스’란 이름으로 LKL음반사를 통해 먼저 했다. 이어 1964년 번안곡 ‘워싱톤 광장’으로 데뷔한 이들은 ‘레몬트리’를 비롯해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서울의 아가씨’ ‘목석같은 사내’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날씬한 아가씨 끼리’ ‘별들에게 물어봐’ ‘모래 위에 적어본 이름’ 등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렸다. 아울러 1966년 동갑내기 김명자·이정자 씨가 결혼, 9개월 만삭의 몸이 돼 무대 활동을 그만 둘 때까지 2년간 22장이 넘는 음반을 냈다.


출산과 함께 6개월의 휴식기를 갖는 동안 이정자 씨가 솔로로 돌아서면서 그룹을 나왔다. 그 자리에 1965년 KBS 톱싱어대회 때 대상을 받으며 등장한 김상미(본명 김군자)씨가 1년간의 방송국 전속가수활동을 끝내고 1967년 2월 멤버로 합류했다. 이시스터즈는 김천숙·김명자·김상미 씨로 짜인 말하자면 이 씨가 한 명도 없는 김 씨들로만 ‘제2의 이시스터즈’가 탄생됐다.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음반 끝으로 활동 접어

 
 
1971년 마지막 곡 ‘병아리 데이트’ 취입 때 각자 1남 1녀를 둔 이들은 19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음반을 끝으로 활동을 접었다. 이 무렵 멤버 김명자씨의 3살 난 딸(정유선·42)이 뇌성마비판정을 받아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맏언니 김천숙씨는 새 멤버 정숙자씨와 워커힐무대 등을 통해 이시스터즈 명맥을 이어오다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무대를 떠났던 김명자씨(71)는 ‘뇌성마비 딸을 박사로 키워낸 어머니’란 감동드라마주인공으로 화제가 됐다.


이시스터즈멤버들은 연예인가를 이룬다. 인기그룹 ‘히화이브(He 5)’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용호(65)씨가 김천숙-명자 자매의 남동생, 김상미 씨 올케가 가수 현미다. 외국공연 위주로 뛰며 ‘안젤라 현’이라고도 불리던 가수 현란(본명 이명자)이 이정자 씨 친동생이기도 하다. 김상미 씨 딸도 가수(아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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