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교육 내내 식은 땀이 흐르곤했다. 필자가 심사후 관리하고 있는 선박금융액이 외부 펀딩액까지 합하면 총 2,500억원에 달하고, 해당 딜에 대해 매월 보고서를 받아보면서 선박금융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을 제시해 왔는데,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사실들을 과목 교수님들마다 지속적으로 말씀하는 게 아닌가! 일반적인 상식에 의거해 전문적인 영역을 심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증권회사에 근무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지라, 기업문화부(직원연수 담당)에서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의무교육 미달 메시지에 대해서 별다른 신경을 안쓰고 있었는데, 급기야 상당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상반기 교육점수 0(zero)인 분~~”에 속하고야 말았다. 공부 안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직원군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한 이상, 서둘러 공부하는 직원군으로 옮겨타야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국금융연수원 교육과정을 조회하게 되었다.


증권사에서는 대개 여의도 내에 있는 금융투자협회 교육과정을 이용한다. 업무 연관성은 물론 교육 이후에도 동업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전에 금융연수원의 ‘법률전문가과정’ 수강 경험이 매우 만족스러워, 금융연수원 교육과정을 먼저 찾아보게 되었다. 수강신청 개시기간이 약간 지나기는 했지만, 필자가 폐사의 딜을 심사할 때, 관련 지식이 부족해 많이 고생한 ‘선박금융과정’을 신청하게 되었고, 담당자(한국금융연수원 손태훈 계장)가 잘 배려해 주어 다행히 교육생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교육과정
처음에는 선박금융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금융연수원의 일반과정인 줄 알았는데, 막상 입과해 보니, 국토해양부,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양대학교, 한국해사문제연구소, 한국금융연수원 등이 공동 주관하는 비중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교육생이 금융기관 이외에 해운사와 에너지기업에서도 많이들 참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후 약 한달 보름간 진행된 교육과정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교육기간 내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곤 하였다. 폐사에서 필자가 심사후 관리하고 있는 선박금융액이 외부 펀딩액까지 합하면 총 2,500억원에 달하고, 해당 딜에 대해 매월 보고서를 받아보면서 선박금융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의견을 제시하여 왔었는데,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사실들을 과목 교수님들마다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런 경우 느껴지는 불안감과 비교할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길이 아닌가봐~~”라고 말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에 의거하여 전문적인 영역을 심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폐사의 딜은 필자가 ‘잘 모름’을 전제로 하여 해운사가 모조리 알아서 하는 구조로 변경(^^)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잘 운용되고 있으나, 나름대로 분석했다고 하는 부분이 거의 한심한 수준이었음은 깊이 반성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금융업계를 돌아다 보면, 선박금융상품들이 그동안 많이 유통되었고, 현재도 해운/ 조선관련 딜들이 꾸준히 심사되어 투자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그런데 본 교육과정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들이 투자자와 판매자, 심사자와 RM, PM들 사이에서는 딴 나라 얘기처럼 전혀 고민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번에 수 천억원씩 투자자금이 이동되는데, 투자 및 판매 관계자들은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선박계약과 관련하여 일반적인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고지되지 않은 독소조항을 발견한 듯 조달주체인 해운/조선사들에게 불만을 드러내고 추가 투자를 거부하는 의사결정이 맞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이 교육기간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보의 비대칭, 관련자들의 해운관련 지식부족에서 촉발되었다고 해야 할 여러가지 선박금융상품들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관련자들이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투자자들이 투자 내용을 잘 모르고, 손실 경험이 생겼을 때 추가 투자를 꺼려함은 결국 해운기업들의 조달을 힘들게 한다. 투자자와 조달자 즉, 금융기관과 해운기업 상호간에는 활발한 정보교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교육과정은 매우 적합한 수단이며, 이는 대련(Dalian) 방문시, 강사로 수고하신 중국해운전문가 장준(Zhuang Ling) 박사에게 본 교육과정과 의도를 설명했을 때 그가 ‘심하게’ 부러워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교과에 투입된 강사님들은 환상 그 자체였다. 선박/해운의 업계 Standard를 소개하고 향후 전개방향들을 명쾌하게 제시해 주었다. 금융조달, 건조, 운항 및 용선, 물류, 선박매각 등 해운사이클에 맞추어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지금 선박을 운행하여 현금을 생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월등한 전문성이 오랜 실무경험과 결합되어 강의의 무게가 있었던 점은 아마도 대학에서도 갖추기 힘든 경쟁력이라고 평가된다.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자원공학과 교수들은 실무경험이 거의 20년 가까이 된 분들로 구성되어 자원개발 현장에서의 발언이 거의 법과 같다는 얘기를 어린 시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본 커리큘럼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하였으리라.


강의에 수고해 주신 강사님들은 오래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나 같이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 강한 사명감들을 가지고 계셨고, 정부와 협의 중인 제도개선, 신상품 도입 등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해 주셨다. 강사님들은 각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추진하면서 소개한 것이지만, 본 과정에서는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으므로 해운산업과 선박금융의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강사님들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현업에 적용된다면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상당히 발전할 것이다. 강사님들이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강사님들의 열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돈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어 보였다. 유능한 모 변호사님은 귀한 강의료로 수업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면서 더운데 먹으면서 들으라고 하시지를 않나~, 외국에서 오신 어떤 강사분은 숙박비를 안받고 가버린다고 하지를 않나~, 도대체 여의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달포 남짓 삼청동 금융연수원 수업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 STX대련으로 출발하였다.

 

대련, 大連, Dalian
중국의 중심도시 중 대련은 처음이라,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니 예사롭지 않은 대련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역시 21세기는 인터넷의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련은 19세기 후반 화려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보내면서 슬픈 기억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는 희망과 자부심이 지배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1894년 청/일 전쟁시절 대련 앞바다에서 일본의 연합함대는 아시아 최강 북양해군을 전멸시키고 뤼순(현재 대련 뤼순구)을 점령한 후 무려 20,000명을 학살하였고 당시 36명의 시체처리반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에 대한 대련사람들의 분노가 상당할텐데 현재는 외국기업 중에서 일본 기업이 가장 많다고 하니 중국사람들의 경제적인 계산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에도 러시아지배 7년, 일본지배 40년, 소련 극동함대 기항지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1955년 북한에서 철수한 중국의용군 3군단이 소련해군으로부터 지배권을 이양받고서야 외국군대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으니 그동안 대련사람들의 고달픔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14시간의 선박승선 전지훈련(?)겸 인천에서 배편으로 대련에 도착하여 바로 대련해사대학으로 직행하였다. 상하이 푸동 경영컨설팅협회장이자 국제선박금융센터 이사인 장준(Zhuang Ling)박사로부터 중국의 선박금융 현황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반갑게도 본 연수단장인 이기환 교수님의 애제자인 대련해사대학 법학과 김만홍(조선족, 한국해양대학 박사 취득) 교수가 유창한 통역을 해주어서, 디테일하게 강의를 이해했고 즐겁게 질의 응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매 번 느끼는 것이지만, 현지 언어능력이 부족하면 무엇을 해도 한계가 있다. 토론은 물론 기본적인 생필품 주문도 어려워 적당히 타협하여 필요없는 물건을 사고 마는 경우가 많은데 김만홍 교수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 준 박사는 강의 도중 끊임없이 한국의 조선/해운에 대해 칭찬만 하였는데, 상호간의 문제점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가 되지 못했음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해운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자가 지적하는 한국해운의 문제점은 무엇인지가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접대용어’만 구사하시는 바람에 분위기만 좋았다. 간간히 장 박사가 소개하는 내용으로 이해되는 중국 조선/해운업은 규모가 이미 크고, 고급선종을 지향하고 있으나 현재는 문제가 많다는 정도였다.


이튿날 STX대련을 방문하였다. 중국에 조선소를 건설한 한국기업을 방문하면서 기대감이 없을 수야 없었겠지만, 최근의 조선시황과 STX그룹의 유동성 문제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마음이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STX 본사에서 파견된 경영지원실장님(이선재 실장)의 인간미 넘치는 브리핑과 깔끔한 구내식당, 2시간 이상의 파격적인 조선소 tour 등 과분한 대접은 잠시 STX직원이 되고 싶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STX대련은 역시 거대했다. Chang xing island의 요지에 자리잡고 28,000명의 중국인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브라질, 인도, 덴마크 등에서 발주한 초대형 선박들이 건조 중에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데, 중국에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고 많은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한국조선소에 대한 요녕성 정부의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고 했다. “자국 선박의 자국 조선소 건조, 자국 화물의 자국선 활용”으로 알려진 중국의 조선·해운 지원정책은 경제적 계산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자국조선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STX대련에 대해서는 초기 땅 제공외에는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STX대련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인력고용, 하청업체 수입, 소비진작 등을 감안하면 마땅히 정부 지원에 STX대련을 포함시켜야 할텐데 여기에서도 중국정부는 경제적인 계산은 안하기로 했나 보다.


결국 경제는 지역에 귀속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해외에 생산설비를 투자하는 것을 가능하면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해당 지역정부에서는 이익이전을 걱정하지만,. 순이익대비 매출액 비율이 10%인 기업이라면 지역에 90%를 떨구고 10%만 주인(투자자)이 가져갈 수 있다는 계산이 산업연관 측면에서 과히 틀리지 않음을 감안하면, 해외 인프라투자에 대한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이 많으리라 사료된다. STX대련은 90% ‘이상’을 대련지역에 뿌리고 있었다.


돌아오기 전날은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신 뤼순감옥 견학과 고구려 요새 비사성 구경을 하며 쉬는 시간이었다. 중국인들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은 경제적인 이해와 맞물려 각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안중근기념관만 입장료 10위안을 추가로 받고 있었고, 뤼순감옥의 기념품 대부분이 안중근 의사 붓글씨, 영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돌아가셨어도 중국인들의 생업을 책임지고 계시니 존경받아 마땅하고, 돈을 벌어 주셔서인지 안의사의 기념관은 잘 정비되어 있어 안심이었다. 


비사성은 당나라 성으로 둔갑하여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 학습장이 되었는데,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면서도 비사성을 왜 당나라 성으로 바꾸었는지 궁금하였다. 아마도 동북공정을 여러 사람이 추진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안타깝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경치가 아름답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됨을 느끼며 하산하였다.


이번 연수과정을 통해 사귀게 된 해운회사분들 대부분은 글로벌화되어 있고 전문지식이 우수하여 이정도 스펙이라면 금융회사에서 많은 각광을 받으실 분들이다. 금융회사에서만 근무한 필자 같은 심사역한테는 소중한 네트워크가 될 것이고 향후 이 분들과 협력한다면 필자도 선박금융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신 이기환 교수님(단장님), 금융연수원 김정훈 부장님, 교육을 주관해주신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원경주 부장님, 대련학습을 잘 지도해 주신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님, 김해두 부장님, 해운기업 현황을 친절히 소개해 주신 해양한국 이인애 국장님, 반창회 조직해주신 조디악 조인성 이사님, 교육기간 내내 든든한 형님이셨던 씨와이즈라인 이동영 대표님, 반창회 총무로 연수기간내내 궂은 일을 해주신 한진해운 김준오 과장님, 그외 27명의 원우들에게 감사드리고, 이러한 지면을 제공해주신 해양한국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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