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조미미 취입 대 히트

서산시 지곡면 왕산포구에 노래비

충남 서산시 지곡면 왕산포구에 건립된 서산갯마을 노래비
충남 서산시 지곡면 왕산포구에 건립된 서산갯마을 노래비

대중가요 ‘서산 갯마을’은 충남 서산사람들의 애향가로 통한다. 노래제목에 지명이 들어있는데다 가사에 굴, 전복 등 서산에서 많이 나오는 해산물들이 지역을 알리는 데 한몫하고 있어서다. 4분의 4박자 트로트 곡으로 1절 끝 소절의 ‘사공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나’ 대목에선 애잔한 느낌이 든다. 

1966년 이미자가 맨 먼저 원곡 발표
‘서산 갯마을’은 김운하 작사, 김학송 작곡, 조미미(본명 조미자) 노래로 1969년에 선보였다. 이 노래는 1966년 이미자가 맨 먼저 발표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조미미가 취입해 본격 알려졌다. 박재란, 남상규, 백설희 등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 함께 담긴 이 원곡음반은 대중들이 많이 찾지 않아 거의 묻혀버렸다. 그러다 조미미가 불러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70년 대 ‘서산갯마을’은 그 무렵 국민가요와 같았다.

 
 
1966년부터 가요계에 발을 디딘 조미미는 1967년 ‘강화도 처녀’를 거쳐 1969년 이 노래를 히트하면서 대표적인 트로트가수로 자리 잡았다. 노래가 뜨면서 나훈아, 김부자, 주현미, 김용임, 김하늘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불렀다.

조미미 노래가 인기몰이를 거듭하면서 서산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금을 모아 2010년 6월 25일 서산시 지곡면 중왕2리 왕산포구에 노래비를 세웠다. 서산갯마을노래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대복) 주관으로 마련된 노래비는 지곡면 중왕리 출신의 김창곤 경원대학교 조각과 교수가 만들었다. 황포돛대를 현대적으로 형상화해 바람을 품은 힘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진취적 기상과 열린 세계를 향한 정신을 담은 것이다. 비 앞쪽엔 ‘서산 갯마을’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노래비가 입소문을 타면서 왕산포구를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 지역의 횟집과 주민들이 반기고 있다. 노래배경지에선 2011년부터 서산갯마을축제추진위원회 주관의 ‘지곡 왕산포구 갯마을축제’가 열리고 있다. 행사에선 △낙지, 주꾸미 등의 해산물 시식회 △연예인 초청공연 △노래자랑대회 △바지락 빨리 까기 △바지락 캐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노래무대 간월도, 관광지로 유명세
세계 5대 갯벌의 한 곳인 가로림만의 왕산포구엔 벚꽃 길(3.3㎞) 등이 있어 포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해산물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조미미가 ‘서산 갯마을’을 부르면서 갯마을은 서산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서산 갯마을로 알려진 곳은 낙지로 유명한 왕산포다. 서산시 지곡면 중왕2리의 낙지마을이기도 하다. 서산 나들목(IC)을 나와 음암면으로 들어서면 4차선 도로가 지곡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왕리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서산 갯마을’ 노래비가 있는 왕산포가 나온다. 입구 횟집들을 지나 선착장에 서면 ‘서산 갯마을’ 노랫말을 떠올리게 하는 비릿한 갯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아름다움과 낭만의 서산 갯마을이 몇 년 전 원유유출로 절망의 마을이 되고 말았다. 호미 대신 걸레를 들고, 굴 대신 바위에 붙은 기름을 닦는 사공과 아낙들은 ‘서산 갯마을’ 대신 한탄의 노래를 토해냈다. 깨끗한 옛날 모습을 되찾기까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전형적 갯마을인 서산 간월도에선 ‘씨 푸드 페스티벌’ 등 여러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간월도는 ‘서산 갯마을’ 노래무대다. 그곳은 1970년대만 해도 살기 힘든 벽촌이었지만 지금은 확 달라졌다. 간월도는 천수만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유명관광지가 됐다. 바다는 기름져 입안을 톡 쏘는 어리굴젓, 살이 통통하게 오른 키조개도 나온다. 겨울바람 속에서 캐낸 어리굴젓은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려졌을 만큼 이름난 지역특산물이다. 간월도엔 어리굴젓기념탑까지 섰다. 11월부터 시작된 굴 채취는 이듬해 봄까지 이어진다. 썰물에 여린 햇살을 등에 얹고 아낙네들이 호미모양의 ‘조세’로 돌에 붙은 굴을 떼어내는 모습은 정겹다. 간월도 굴은 그리 크지 않는 대신 털 모양의 돌기가 많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양념이 깊이 배이므로 예부터 젓갈이나 김장용으로 유명했다. 해마다 정월보름엔 굴 풍년을 기원하는 군왕제도 열린다. 앞마당에 바다가 펼쳐지는 간월암 또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승지다. 관광시즌 주말이면 전국의 길손들이 모여든다.

 
 
조미미, 지난 9월 9일 별세

조미미는 지난 9월 9일 오전 11시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투병 중이던 그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 경기도 양평 무궁화요원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는 등 음악활동을 했으나 지난 8월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병과 싸워왔다. 그러다 끝내 눈을 감았다.
그녀는 1947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그 뒤 1964년 동아방송(DBS) 소속으로 1965년 ‘떠나온 목포항’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어 1969년부터 ‘여자의 꿈’, ‘동창생’, ‘바다가 육지라면’, ‘서산 갯마을’,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서귀포를 아시나요’,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고인은 1973년 6월 재일교포사업가(안성기씨)와 결혼,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다. 결혼 뒤에도 1976년 ‘연락선’ 등을 발표해 MBC 10대 가수에 뽑혔고 2010년 귀국해선 KBS ‘가요무대’ 25년 특집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낭랑하고 경쾌했던 당대 최고 목소리를 가졌던 고인은 결이 고운 음색과 부드러운 소리로 자연스럽게 꺾어가며 맛깔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1970년대 남진, 나훈아, 윤항기, 옥희, 이수만, 최백호, 혜은이, 송창식 등과 함께 우리나라 가요계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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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 wss4044@hanmail.net
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아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가끔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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