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19일 중앙항만정책심의회 수정안 의결
트리거 룰의 도입으로 능동적인 발전 계획 수립 가능

지난 11월 한국을 내방했던 함부르크 항만의 조르겐프라이 항만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동남아시아의 모든 항만들은 타이밍을 맞춘 발전 전략에 모든 미래가 달려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시아 지역의 항만들에게 있어서 지금은 가히 ‘춘추전국시대’라 불러도 좋을 만큼 복잡한 시기이다. 전통적인 강호인 싱가폴과 홍콩, 그리고 한국이 주춤거리는 사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매김한 중국을 필두로 베트남 등 신흥 무역국들이 빠르게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혼란의 시기인 만큼 패권을 장악하려는 각 항만들의 능동적인 전략 변경이 눈에 띄는 지금, 우리나라 해양부도 지향하는 목표자체를 수정한 항만 정책을 내놓았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해양부가 구랍 19일 중앙항만정책심의회를 개최하여 ‘제2차(2006~2011) 전국항만(무역항) 기본 계획 수정계획’을 의결함으로서 우리나라 항만들의 개발 계획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번 수정 계획의 골자는 ‘양적 성장 추구에서 질적 성장 추구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항만 개발계획은 제2단계에 접어들어 있다. 먼저 1차 항만기본 계획은 1992년에서 2001년까지의 물동량을 약 9억2,400만톤(2001년 기준)이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중장기적으로 10조원을 투자하여 전국의 무역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어진 2차 항만 개발계획도 이와 유사하게 2002년부터 2011년까지의 물동량을 약 15억1,300만톤(2011년 기준)으로 추정하고 그 물동량 증가세에 발맞춘 개발로 물량면에서 명실공이 동북아 물류허브국가로 성장하겠다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 동향은 장기적 계획이란 것이 발붙이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동북아 경제권은 그 규모와 위상이 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을 아우르는 동북아 지역 경제규모의 비중은 2006년을 기준으로 GDP는 전 세계의 18%, 인구는 23.1%, 수출입 물동량은 16.3%이다. 세계 경제 연평균 성장률이 2~3%인데 반하여 아시아 지역은 6~7%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금세기 내에 EU, NAFTA와 더불어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부상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국가별 위상도 변화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무역이 급속히 발전하던 70~9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가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품질을 무기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 위치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일본과 더불어 기술선진국의 위치에 올라서고 있다.


우리의 2차 항만 기본 계획 수정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고가의 소량 다품종을 취급하는 기술선진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인건비의 상승으로 다수의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전하여 기존의 수출입 성장세는 둔화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또한 기존까지는 대중국 환적화물 물량을 우리나라에서 많이 취급하였으나, 우리의 물량적 개발계획이 조금 늦어지는 사이에 중국의 새로운 거대 항만들로 직기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따라서 이제 처리 물량만으로 승부하기에는 중국의 입지가 너무나 커져버렸으므로, 물량 이외의 매력 요소로 선사와 화주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 수정계획은 이러한 냉정한 현실을 인지하고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정부는 밝혔다.

 

OSC 물동량 예측결과에 따른 계획 순연
이번 기본 계획 수정안 수립에 있어서 해양부는 먼저 영국의 해운·항만분야 컨설팅업체인 OSC(Ocean Shipping Consultants)와 한국종합물류연구원에 물동량 재점검을 의뢰하였다.
OSC 물동량 예측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전국 항만물동량은 2005년에는 9억8,400만RT를 약간 상회하였고, 2020년에는 약 18억8,000만RT로 전망되어 연평균 4.4%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며, 항만물동량의 증가율은 차츰 감소되어 2005~2011년 사이에는 연평균 6.1%, 2011~2015년 사이에는 연평균 3.5%, 2015~2020년 사이에는 연평균 3.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컨테이너 물동량에 있어서는 2005년에는 1,500만TEU를 약간 넘었으며, 2020년에는 약4,741만TEU로 전망되어 연평균 8.0%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리고 항만물동량의 증가율은 차츰 감소되어 2005~2011년 사이에는 연평균 10.1%, 2011~2015년 사이에는 연평균 7.1%, 2015~2020년 사이에는 연평균 5.9%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물동량 예측결과들을 살펴보면 ’01년 수립된 기본계획의 예측에 비해 약 7%가 감소하였으며, 컨테이너 화물은 9%가 감소(’11년 기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컨테이너항만은 지금까지의 시설대비 하역능력이 과소평가되었다고 하여 적정하역능력(년간 화물을 처리하는 기준능력)이 상향됨으로 인해 기존 개발계획들의 순연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해양부는 2005년 11월 14일에 이 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여 확정하고, 2006년 6월 14일부터 19일까지 각 항만이 속한 지자체들과의 개별협의를 통하여 지자체의 요구사항들을 수렴하고 이를 검토 후 수정계획에 반영하였으며, 6월 27일 공청회를 개최한 후로도 지속적인 지자체들과의 협의를 통한 의견 수렴 끝에 경제정책조정회의와 중앙항만정책심의회 심의를 거쳐 이번 기본 계획 수정계획을 확정하였다.

이로 인해 단계별 개발계획이 순연되게 되었지만, 당초에 계획된 개발규모는 유지 또는 장기적으로 물동량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양부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추구하는 모델은 싱가포르와 로테르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항만개발계획의 순연은 대외 해운항만물류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측면과 국내 경제구조의 선진화로 인한 수출상품의 경박단소화 및 경제성장의 하향안정화 경향 등에 영향을 받았다”며, 이번 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항만개발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정계획이 추구하는 것은 전술했듯이 ‘항만의 질적 성장’이다. 이에 대해 해양부가 모델로 설정한 선진 항만은 바로 싱가포르항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과 같은 ‘고부가가치 창출형 항만’이다. 우리나라가 자체 생산력으로 수출입 물량을 증대하기엔 중국의 힘이 너무나 강대하다. 이에 물량으로 승부하겠다는 발상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격’이기에 우리 정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일종의 ‘고급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자체 생산력이 상당히 약한 국가이지만, 엄청난 환적 유치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가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선박이 기항하는 데에 있어서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스톱 서비스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을 비롯하여 배후물류단지를 이용한 신규 고객의 유치, 수리시설과 선박을 위한 금융과 보험 서비스 제공 활성화에 이어 이제는 관광까지 포함하기 위해 카지노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발전 방안을 위하여 먼저 기존의 항만 위주의 개발계획에서 탈피하여 종합물류항만 지향 및 항만 클러스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전과 같은 단순 화물처리나 하역외에 보관, 포장, 운송, 가공, 통관, 검역, 정보처리 등 종합적인 물류거점 기능을 수행하도록 변환하여 항만이 국제생산 및 물류네트워크상 역동적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한편, 구항만 시설을 크루즈나 마리나 등 해양관광 시설로 변경, 해양 관광 인프라도 구축하는 등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여러 방안을 개발 중이다.
또한 최근 국내외 여건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측면을 감안하여, 지난해 7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내에 ‘항만수요예측센터’를 설립하여 상시 항만별 품목별 물동량을 모니터링하고, 물동량 변화요인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 분석결과를 토대로 매년 항만개발 및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금번 수립되는 수정계획에서 개발규모 및 품목 등의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는 적기 변경하는 등 항만개발정책을 대내외 여건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 나가기 위해 싱가포르항과 홍콩항 등에서 활용 중인 Trigger Rule 개발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바로 기회
어쩌면 함부르크 항만청장이 말한 ‘타이밍’이란, 대형 선사들이 기항지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동북아지역의 물량이 급증할 때 먼저 그 물량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항만으로 선사들이 몰리게 되고, 한번 자리 잡힌 세력구도는 짧은 시간에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물동량 면에서 성장률이 감소하고 중국을 위시한 다른 신흥항만들이 부흥하는 것으로 볼 때, 적절한 타이밍과는 살짝 어긋나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국 생산량에 의존하는 수출입 물동량에는 한계가 반드시 온다. 이미 중국도 인건비와 물류비 등의 상승으로 목재와 같은 염가 자원 생산에는 채산이 맞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수정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더 늦지도, 모두가 납득하지 못할만큼 너무 이르지도 않은 적절한 때에 확립되었다고 본다.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항만개발 수정계획 선석수 표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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