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음악인 한돌, 독도지키기운동 위해 만들어
‘조용필 평양공연’ 대미 장식…서유석도 취입

 

 
 
2013년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를 뒤로 하고 희망의 설계를 하며 각오를 다지게 된다. 특히 새 대통령 취임과 새 정부 출범으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이 맘 때 분위기에 맞는 노래가 있다.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로 나가는 ‘홀로 아리랑’이다. 2012년 12월 우리 겨레의 노래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홀로 아리랑’이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


이 곡은 23년여 전 음악인 한돌(본명 이흥건, 1953년생)이 독도지키기운동을 위해 만든 노래다. 한돌이 작사·작곡하고 취입까지 한 ‘홀로 아리랑’은 2005년 ‘SBS 특별기획 조용필 평양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곡이자 북한관계자가 요청한 노래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6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광주광역시 남구 주민과 시민 등 1만 5,000명이 동시에 참여한 오카리나 대합주 때도 이 노래가 울려 퍼져 눈길을 모았다.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사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한 이 노래는 들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다. 노래제목에 우리 민족의 한과 숨결이 서려있는 ‘아리랑’이 들어있는 데다 멜로디와 노랫말 또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독도의 날(10월 25일)엔 이 노래가 자주 불린다.

 

노래취입과 함께 독도에 나무심기도
독도사랑과 어려움을 은근과 끈기로 이겨내자는 뜻이 바탕에 깔린 이 노래는 1989년 10월 한돌 타래모음앨범에 처음 실렸다. 작사·작곡가 겸 포크가수이기도 한 한돌이 1982년 신형원이 부른 ‘불씨’로 작곡가로 데뷔한 뒤 7년 만에 독집음반을 선보인 것이다. ‘홀로 아리랑’은 이듬해(1990년) 서유석의 11집 앨범에도 담겨 발표됐다.


한돌이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만 해도 독도는 나무가 없는 바위섬이었다. 지금은 나무가 곳곳에 숲을 이뤄 아름다운 섬으로 바뀌었다. 한돌은 1989년 4월 2일 소설가 최성각씨, 사진작가 김정명씨 등과 울릉도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에 가입했다. 해마다 독도에서 나무를 심는 등 독도지키기운동에 앞장섰다.


한돌은 ‘독도에 비가 내리면’이란 노래도 만들었다. 1983년에 만들어져 선보인 개그맨출신 가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노래와 함께 독도 지키기에 한 몫 했다.


특히 한돌이 만든 노래들은 모두 순우리말로 쓴 가사, 고즈넉하면서도 푸근한 멜로디들로 대중들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져준 그의 노래는 세월의 공백 속에서도 때 묻지 않았다는 평가다.


그가 부른 음반수록곡들(10곡)은 대부분 만들어둔 지 10년이 넘은 작품들로 포크가 바탕에 깔렸다. 영어와 국적을 잘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끼어든 노래가사, 감성보다 소리에 집중하는 요즘의 대중음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돌은 지난해 12월 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아트홀 맥)에서 독도 사랑 음악회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열었다. 그날 음악회에선 한돌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독도를 순우리말로 담은 △‘독도의 아침’ △‘부디부디’ △‘모아비추로 가는 배’ △‘독도의 사랑’ △‘꿈꾸는 언덕’ △‘물골 가는 길’ △‘독도에 비가 내리면’ △‘미르봉의 하루’ 등 신곡 10곡을 포함한 13곡의 독도사랑 노래들을 선보였다.

 

한돌, 언더그라운드가요계 풍미

가수 한돌
가수 한돌
음악인 한돌의 걸어온 삶은 그리 평범하지 않다. 그는 유리벽, 불씨, 못생긴 얼굴, 터, 개똥벌레, 홀로 아리랑, 여울목 등의 노래로 1980대와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요계를 풍미한 음악인이다.


그는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 1월30일 약품도매업을 하던 아버지 이원수씨와 어머니 박정숙씨의 6남 2녀 중 다섯째로 경남 거제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함경남도 영흥출신의 실향민이다. 1.4후퇴 때 10살과 4살이던 두 아들과 7살인 딸을 함경남도 영흥 큰아버지 집에 남겨두고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에 닿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그해 10월 고향과 가까운 데로 간다며 강원도 봄내로 이사해 봉의산자락에서 살았다.


한돌은 4학년 때 부모님의 교육열로 서울 남대문초등학교로 전학해 공부하다 다시 옮겨간 덕수초등학교에서 졸업했다. 경복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고향누나가 DJ로 일하는 이화여대 앞 빅토리아다방에서 음반을 닦으며 노래에 빠졌다. 이후 학교예술제에 출전, 예선에서 떨어진 뒤부터 기타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낙제를 했다.


어렵게 경복고에 들어간 그는 ‘눈’, ‘빛을 잃은 별’ 등의 노래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한돌은 고교 3학년 땐 김진성 PD에 이끌려 박인희가 진행하는 CBS라디오 ‘세븐 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진학을 접고 노래작업을 위해 성남, 광주, 부천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성남의 약방에서 8년간 자리를 지켰다.


고교졸업 후 여러 음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포크음악에만 전념하려는 의지로 작은 돌의 역할이라도 하자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한돌’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랫말로 겨레에 대한 사랑과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내 고달픈 대중의 마음을 달랬다.


  한돌은 1980년 5월 데뷔음반에서 당신은 아시나요, 새벽열차, 갈래, 터, 들에 핀 꽃 등을 발표했지만 가창력 부족으로 데뷔앨범이 방송금지처분을 받았다. 1982년 신형원의 프로젝트앨범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서 작사·작곡한 불씨, 유리벽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한돌이 쓴 글 교과서에 실려
부모님의 중매로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한 한돌 부인은 신랑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러던 중 1987년 가요대상 시상식 때 신형원의 ‘개똥벌레’가 금상을 받자 한돌이 얼떨결에 방송에 나가 가수임이 들통 났다.     

  
1999년 동요 ‘나뭇잎 배’에 대한 느낌을 쓴 한돌의 글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국정교과서에 실렸다. 그해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23일간 700km를 걸어서 여행했고 그해 12월 백두산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1994~2002년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지역을 5번이나 다녀왔다. 남북한 사람들 다 함께 노래할 수 있는 한국적인 한과 정서를 담은 노래 ‘아리랑’을 캐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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