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운업을 영위함에 있어 국제해사기구(IMO)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IMO는 규제창설기구로서 설립 이래 해운에 관한 수많은 국제협약을 제정하여 안전하고 깨끗한 바다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다. 특히 IMO는 항만국통제(PSC) 제도를 통하여 각종의 IMO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선박에 대하여는 출항정지라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IMO 기준을 따르지 않는 선박은 국제항해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많은 해상계약의 경우 계약조건 위반이 될 수 있다. 특히 IMO는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묵시적 수락절차를 통하여 개정된 협약이 빠른 시일 내에 발효되기 때문에 우리는 IMO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2009.8.부터 2012.10.까지 약 3년여를 주영한국대사관에서 국토해양관으로 근무하며 한국대표로서 거의 모든 IMO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회의참가를 통하여 국제회의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많은 외국대표와의 만남을 통하여 국제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기간 중에는 2번의 총회와 2번의 국제기구 장 선거(IMO 사무총장과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s) 사무국장) 선거가 있어 국제적으로 선거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또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서 후학들의 참고를 위하여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 글의 내용은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 소견이며 국토해양부나 외교통상부의 공식의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지난 3년간 특기할 사건
가. IMO이사국 선거(IMO 제26차 총회, 2009.11)
이 총회는 필자가 영국에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개최되어 업무파악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이 이 총회에서 라이베리아는 그간 무투표로 당선되던 IMO의 A category 이사국 선거에 출마를 공언하였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다. 라이베리아는 세계 제2위의 선복량(이에 따른 세계 제2위의 IMO 분담금)을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아프리카 국가로서 category A 이사국이 없다며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개도국에 대한 유세를 호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세계 유수의 해운·조선국이며 IMO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인 우리나라는 무난히 당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당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2011년에 예정된 사무총장 선거에서 후보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로서는 반드시 이사국에 당선되어야만 하였다.


IMO의 이사회는 총 40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A category(10개국), B category(10개국), C category(20개국)로 구분된다. 당시 A category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이탈리아, 그리스, 영국, 미국, 러시아, 파나마, 노르웨이 등 국제해운계의 중심국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만일 라이베리아가 선전한다면 기존 10개 이사국 중 1개 국가가 탈락할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당시 최장현 국토해양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총 25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선거에서 주요 득표활동은 각국의 외교경로를 통한 지지확보로부터 시작된다. 이 선거에서도 우리나라는 선거를 앞두고 각국 외교부와의 상호지지, 교환지지, 일방지지 등을 통하여 상당수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아니한 국가의 경우 선거현장에서 수석대표의 결정에 따라 지지국가 선정이 이루어지곤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표단은 최장현 차관 주최로 IMO 건물(delegation lounge)에서 리셉션을 개최하는 한편, 현장 득표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즉, 대표단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지역별로 팀을 나누어 IMO 회의장 주변에서 득표활동을 하는 한편, 각국이 주최하는 리셉션에도 참석하여 다른 참석자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당시 국토해양부 임기택 국장은 승용차를 대절하여 하루에 10여개 국가의 리셉션을 순례하며 눈도장을 찍기도 하였다.


종래의 경우 선거에는 130-140국이 참여하였으나 이번 선거에는 무려 156개국이 참가하여 IMO 설립 이래 최대의 국가참여를 기록하였다. 2009.11.27. 개최된 선거 결과 일본은 142개국의 지지를 얻어 1위로 당선되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은 나란히 138개국의 지지를 얻어 공동 2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이탈리아(131개국), 그리스·영국(130), 미국(129), 파나마(124), 러시아(122)가 뒤를 이었다. 노르웨이는 109개국의 지지를 얻어 101표에 그친 라이베리아를 제치고 마지막으로 이사국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선거에서 우리가 2위에 오르자 많은 IMO 관계자들은 우리의 약진에 큰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비교적 국토면적도 작고, 국제무대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아니하는 우리나라가 강대국들과 경쟁에서 선전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놀랐으리라... 그날 저녁 런던 근교의 한인촌 뉴몰든(New Malden)에서는 대한민국 대표단의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가 밤늦게까지 진행되었다.

 

나. 제6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2010.3.)
2007.12.7. 충남 태안 해안에서 발생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이하 ‘허베이’호라고 함) 오염사고는 그 오염피해의 규모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또 이 사고의 처리과정에서 미숙한 국제적 대응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상당히 실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사고의 당사자로 지목된 허베이호의 인도 국적 선장 및 1등항해사의 출국을 금지하였으며, 2008.12.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을 업무상과실 선박파괴죄(형법 제189조)를 적용하여 법정 구속하였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와 인도정부 간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으며, 국제해운회의소(ICS), 국제운수노동자연맹(ITF) 등 비정부간기구(NGO)는 지속적으로 우리나라가 국제협약을 위반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다행히 2009.4.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들의 업무상과실 선박파괴죄에 대하여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기름유출에 따른 벌금형은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적 입장은 계속 수세에 몰려 있었다. 즉, 외교부의 입장도 우리 법원 판결의 타당성을 주장하지 못하고 “헌법상 독립되어 있는 사법부의 판단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ICS 등 11개 NGO는 제60차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 의제문서를 제출하며, 허베이호 선장 등을 유죄로 판단한 우리 대법원 판결의 근거에 대하여 다음 3가지 사항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MEPC 60/16). 즉, 선장 등은 IMO에서 제정한 관련 협약, 지침 및 업계의 관행을 충실히 이행하였는데 이들에게 유죄를 인정한다면 향후 국제협약의 유용성 등에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기술적인 문제에 더하여 향후 법적인 문제에 대하여도 IMO 법률위원회 등에 문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① 선장 등은 사고 직후 화물탱크의 측심(sounding)을 하느라고 즉시 기름유출 방지조치를 취하지 아니함: 사고 이후 선박의 안전상태 확인을 위하여 선내 모든 공간에 대한 측심은 필수적이며, 사고 이후 측심을 하도록 하는 내용은 IMO 지침에 명시되어 있음.
 

② 선장 등은 사고 직후 파손된 화물탱크에 불활성가스를 주입함으로써 탱크 내 압력을 높여 기름오염을 확대시켰음: 사고 이후 화물탱크에서 화재와 폭발방지를 위한 불활성가스의 주입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올바른 절차로서, 이런 내용은 IMO 지침에 명시되어 있음.
 

③ 선장 등은 화물펌프를 최대한도로 작동시켜 파손된 화물탱크에서 다른 탱크로 기름을 옮기지 않았으며, 파손된 탱크에서 기름유출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충분한 선박의 경사를 만들지 않았음: 당시 다른 모든 탱크에는 이미 기름이 거의 가득 차 있어(95~97%) 화물펌프의 최대작동을 통한 화물유의 신속한 이송이 곤란하였으며, 선박의 대각도 경사(10도)는 당시 진행되던 기름이송작업을 어렵게 하며, 심지어 선박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었음.

 

이 의제에 대한 외교부의 훈령은 상기의 지적에 대한 반박을 하지 않고(또는 못하고) “주권국가의 독립된 사법부 결정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언급(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따라서 유조선 운항의 국제적 관례에 따른 기술적 접근을 통해 유사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국제기준 제·개정 작업을 해나가자”는 취지로 입장 표명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후보를 낼 것으로 예상되었는 바, 이러한 훈령을 그대로 발표할 경우 비판적 여론의 확산으로 사무총장 선거결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 이 의제를 다루는 회의장에서도 분위기는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 대표단의 수석대표인 필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현장에서 훈령원안에 일부 문구를 추가하여 발언하였다. 즉, 발언문의 서두에 허베이호 선장 등에게 유죄를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해기사 출신인 본인으로도 당시의 허베이호 선장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개인적 감회를 표명하고 이후는 훈령에 충실하게 발언하였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우선 필자의 발언을 경청하기 위하여 회의장이 조용해졌으며, 우리나라에 대하여 적대적인 발언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다. 발언 이후 휴식시간에 ICS의 Hinchliffe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대표단 자리에 찾아와 한국 측의 발언에 만족을 표시하는 한편,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실제 허베이호 사건은 IMO에서 거의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다. IMO 사무총장 선거(IMO 제106차 이사회, 2011.6.)
당초 차기 IMO 사무총장 후보로는 당시 IMO 해사안전국장이던 세끼미즈(Koji Sekimizu. 현 IMO 사무총장) 씨가 비교적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그는 IMO 내의 주요 보직을 역임하였으며, 미트로폴러스(Mitorpolous) 당시 사무총장(그리스 출신)도 그와 같이 동일한 보직경로를 거친 후 당선된 선례가 있었다.

 

더욱이 UN의 지역대표 순환선출 관행에 따라 이번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이 당선되는 것이 순리로 이해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무국 직원들 사이에 업무에 지나치게 꼼꼼하며(micro-management), 전임 총장들과 달리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인색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또 영어와 서구문화에 다소 서툴다 보니 의사소통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중론도 있었다. 가장 앞선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후보가 비교적 약체로 평가됨에 따라 각국은 자국후보의 출마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당시 국제이동위성기구(IMSO)의 Pacha 사무국장(스페인), IMO 이사회 Lantz 의장(미국),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 Chrisostomou 의장(사이프러스), IMO 해사안전위원회 Ferrer 의장(필리핀)이 속속 출사표를 던졌다.
 

필자가 예상한 대로 우리나라도 차기 IMO 사무총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기로 결정되었다. 우리 후보로서는 IMO 법률위원회 의장 출신의 채이식 교수(고려대) 및 필자의 전임자였던 임기택 당시 국토해양부 국장이 물망에 올랐다. 채 교수의 경우 최근 5년간 IMO 법률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풍부한 법률지식, 고려대 법대 학장으로서 이룩한 학교발전 업적 및 행정경험 등이 강점으로 부각되었다. 임 국장의 경우 IMO 해사안전위원회(MSC) 전문위원회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기국준수전문위원회(FSI)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한 해기사 출신으로서 세계해사대학을 졸업하여 해사안전분야에 국제적으로 넓은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최종 순간까지도 양자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후보 추천 마감시한(2011.3.31)을 얼마 남기지 않은 2011.3.25. 채 교수를 차기 IMO 사무총장 후보로 등록을 마쳤다.
 

당시 우리 외교부의 입장은 이 선거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즉, 우리 후보 지원요청을 위한 특사파견, 외국정부와 교환지지의 확보 등 우리의 외교자원을 활용한 지원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개인자격으로 채 교수의 이사국 방문에 대하여는 현지 공관에서 면담주선이나 교통편 제공 등을 지원할 정도였다. 더욱이 후보등록이 지연됨에 따라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 교수는 선거일까지 가능한 많은 이사국을 방문하여 정책담당자에게 본인을 직접 보여주고 그들의 평가를 기다리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개별국가의 방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국들은 세계에 흩어져 있어 방문하려면 장거리 항공여행을 해야 했으며, 면담대상자와 일정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국가들은 비자를 발급받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으며, 면담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으면 입국이 불가능하였다. 케냐,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비자발급의 어려움은 물론 수도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객은 고산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채 교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선거일까지 근 30여개에 달하는 국가를 방문하였다.
 

선거일이 다가옴에 따라 각국 후보의 활동도 점점 활발해져 갔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자국후보에 대한 거국적인 지원태세를 갖추고 민관합동 지원반의 이사국 방문이 시작되었다. 채 교수의 방문을 통하여 지원을 약속하거나 비교적 호감을 보였던 국가들이 일본 대표단의 방문 이후 속속 일본 지원으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특히 우리가 지지를 기대했던 몰타, 터키 등이 일본의 물량공세에 따라 이탈한 점이다. 또 우리에게 항상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이 천안함 사건 이후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국제무대에서 비교적 우리를 지원하던 인도도 허베이호 사건으로 인하여 등을 돌린 점도 매우 아쉬웠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판세의 윤곽이 드러났다. 일본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여 40개 이사국 중 20개국에 근접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호언하였으며, 필리핀·미국 등도 상당수 국가의 지지를 확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일하게 방글라데시가 서면으로 지지를 약속하였고, 구체적인 답을 주진 않았지만 내심 중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터키 등의 지지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1차 투표결과는 예상과 달리 일본이 거의 과반에 가까운 득표를 하고 우리는 후보자 6명 중 최하위인 2표를 얻는데 그쳤다. 개표 전 나이지리아는 우리에게 투표했다고 귀띔하였는데 개표 결과 이는 거짓말로 추정되었다. 우리가 득표한 2표 중 우리의 1표를 제외하면 다른 지지국가는 사전에 서면으로 지지를 약속한 방글라데시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선거 이후 최하위인 우리는 탈락하고, 이어진 제2차 선거에서 일본은 23표를 획득하여 세끼미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선거결과로 놓고 볼 때 일본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석권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1차 선거 직후 일본 측은 우리에게 지지를 요청하였으나 우리는 2차 선거에서 사이프러스를 지지하였다. 이미 대세는 일본에게 기울었지만 사전에 사이프러스와 한국은 일찍 탈락하는 후보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기로 후보자 간에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아직 일본을 맞상대하기에 외교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미 한국인이 유엔의 수장을 역임하고 있던 현실은 외국인이 일본을 지지하는데 좋은 논거를 제시하였을 것으로 본다. 선거 후 만난 많은 외국인들도 IMO 사무총장까지 한국인이 차지하려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일단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며, 또 이에 필요한 외교자원을 충분히 투입해야 할 것이다.

 

라. 한국해사센터(Korea Maritime Center: KMC) 이전(2011.11.)
당초 KMC는 런던 주재 IMO 파견관에 대한 사무실 제공 목적에서부터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대 이후 IMO의 역할이 점차 강화됐다. 우리나라는 이에 효율적인 대응을 위하여 1988.12.부터 IMO 파견관을 런던에 파견하였다. 당시에는 별도 사무실이 없고, IMO 건물의 한 구석에 책상을 마련하여 근무를 시작하였다. 이후 특정국가에만 사무공간을 제공한다는 다른 국가의 비판에 따라 IMO는 우리나라에게 사무실을 비우도록 종용하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2001.9.부터 IMO 파견관은 주영대사관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주영대사관에 주재관 증원으로 사무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됨에 따라 2007.2.부터 IMO 파견관은 대사관을 나와 재택근무를 시작하였다. 해양수산부에서는 IMO 파견관의 근무공간 확보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다가 KMC를 런던에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2007.11. 런던의 워털루(Waterloo) 역 인근의 Elizabeth House에 KMC 사무실을 개소하였다.


KMC가 소재한 사무실의 규모는 1,530 제곱피트(약 43평)로서, 향후 KMC가 활성화되면 해운관련 단체에서 파견인력이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KMC가 전체면적의 약 60%를, 한국선급(KR)이 약 40%를 사용하도록 구획을 나누었다. 또 두 사무실의 중간에는 대표단이 런던에 출장왔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넓은 회의장도 마련하였다. 한편 KMC는 한국과 영국 모두에서 법인격이 없으므로 KR 현지법인이 대표로서 사무실 임대계약 등 모든 법적인 행위를 대행하고, 비용은 내부적으로 KMC와 KR이 분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무실의 위치가 IMO 본부 건물에서 너무 먼 곳에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에 따라 IMO 출장단이 이 사무실을 이용하기도 어려웠고, 수시로 IMO 본부를 오가야 하는 IMO 파견관도 왕복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더욱이 당초 예상과 달리 다른 해운단체에서의 파견이 지연되다 보니 KMC 1명(IMO 파견관), KR 2명이 쓰기에 사무실의 면적은 너무 넓었다. 이에 따라 필자는 2011. 8. 경 국토해양부 관계자와 협의를 거쳐 이를 IMO 부근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막상 이전하려고 보니 KMC와 KR이 이전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영국 경제의 불황으로 이 지역에는 빈 사무실이 많았지만 대부분 200평 이상의 대형 사무실이지 30평대의 작은 것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김현태 IMO 파견관과 KR 박주성 런던사무소장은 몸으로 뛰어 찾기로 결정하고, 워털루 역에서 IMO 본부를 지나 복스홀(Vauxhaul) 역에 이르는 지역에서 임대로 나온 사무실을 모두 방문하는 탐색작업에 돌입하였다. 며칠에 걸친 발품 덕분에 IMO 건물 뒤쪽(1분 거리)에 있는 비교적 작은 사무실을 발견하고 임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무실의 면적은 987 제곱피트(약 27.7평)로서 종전의 약 3분의 2 정도의 규모다. 물론 면적의 축소에 따라 각종 관리비도 훨씬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종전 사무실의 잔여 임대계약 때문에 실제 이사는 다소 지연되어 2011.11.초가 되어야 새로운 건물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제 KMC는 IMO 파견관의 사무실이자 IMO 출장단원이 방문하여 업무협의와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IMO를 방문하시는 분은 누구든지 부근의 KMC 건물에 방문하셔서 사무실을 둘러보시기를 추천한다.

 

 
 


마. 제27회 총회(2011.11.)
2009년의 총회 이후 2년이 지나고 다시 총회의 시간이 돌아왔다. 총회는 IMO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서 지난 2년 활동의 결산, 향후 2년간 예산 및 사업계획, 이사국의 선출, 사무총장의 선임, 모든 위원회 보고서의 승인 등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더욱이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는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참가하여 친교를 맺기도 하고, 주요 현안문제를 상호 협의하기도 한다. 제27회 총회의 경우 우리나라는 권도엽 국토해양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석해균 선장은 IMO의 가장 용감한 선원 상(IMO Award for Exceptional Bravery at Sea)을 수상하였다.


권 장관과 같이 국내 고위인사의 영국방문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일정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쪽이 고위직이니 면담 상대방도 어느 정도 고위직이어야 하는데, 이쪽 고위직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상대방을 만나려면 꼭 만나서 협의해야 하는 의제가 있어야 하며, 설사 의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약속은 충분한 사전(보통 2-3개월 전)에 해야 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쪽에서는 의례적인 예방이라고 판단되면 면담요청을 거절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달 이내에 무조건 일정을 잡으라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나마 어렵게 일정을 잡아도 국내사정이나 개인사정을 들어 이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 선진국에서는 약속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며, 만일 이를 어기는 것은 큰 결례이다. 만일 불가피하게 약속을 어기게 되면 본인이 직접 상대방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정을 정중하게 설명하고 상대방의 양해를 얻어야 하는 것이 영국 쪽의 예절이다. 만일 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아니할 경우 면담을 주선한 현지 외교관의 경우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권 장관의 IMO 일정은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다행히 당초의 계획대로 영국방문을 마칠 수 있었다.


권 장관의 방영일정은 총회 전 토요일 영국 도착에서부터 월요일 오후 출국까지 짧은 시간이었다. 권 장관 숙소는 IMO 부근의 호텔(Park Plaza Riverbank Hotel)로서 템즈(Thames)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요일(2011.11.20.) 아침 일찍 산책을 함께 한 후 오전에는 포츠머츠(Portmouth)의 마리나 시설을 관람하였다. 영국은 해양국가답게 요트의 정박 및 관리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권 장관은 마리나 시설 및 요트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질문을 하였으며, 포츠머츠의 부두를 재개발하여 만든 쇼핑센타(Gunwharf Quays) 운영에 관하여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셨다. 필자는 권 장관이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답게 사물을 볼 때 단순히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보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날 오후에는 그린위치(Greenwich) 해양박물관을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극심한 교통정체 때문에 개관시간이 지나 박물관 입장을 할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박물관 입구만 둘러보고 안내인으로부터 템즈 강 건너 카나리와프(Canary Wharf) 도심재개발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2011.11.21.)은 IMO 총회 개막식 날로 아주 바쁜 하루였다. 점심시간에 우리나라는 각국 대표를 상대로 리셉션을 개최하였다. 통상 IMO에서 리셉션은 자국의 국경일, 자국 인사의 수상, 자국의 선거활동 등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오찬 리셉션은 이미 석해균 선장의 수상이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수상기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관 숙소인 호텔에서 개최된 이 리셉션에서 권 장관과 주영대사관의 추 대사가 영접라인에 서서 손님을 맞았으며, 필자는 손님 소개를 담당하였다. 리셉션에는 IMO 사무총장, IMO 총회 의장인 멕시코 대사(Mr. Eduardo Medina-Mora), 각국 대표단 등 400여명이 참석하였다.


오후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석 선장의 수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식 단상에는 미리 석 선장 부부, IMO 사무총장, 권 장관, 추 대사가 자리를 잡았다. IMO 사무총장이 석 선장을 수상자로 호명하고 나서, 석 선장의 업적에 관한 설명자료가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 소개되었다. 이후 석 선장은 비록 어눌하지만 정확한 영어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였다. 자신은 IMO에 이런 상이 있는 것도 전혀 몰랐으며, 더욱이 이 상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아울러 35년간 해상생활을 해온 자신으로서 해적행위가 자행되고 있으며, 수많은 선원들이 소말리아에 억류 중인 현실에 대하여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고 울먹이며 국제사회의 조속한 조치를 요청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역경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기도해 준 부인과 가족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발언하였다. 이에 회의장에 가득 찬 1,000여 명의 청중은 전원이 일어나 약 5분간 박수를 계속치며 선 선장의 수상을 축하하였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기립박수의 순간이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축하는 석 선장 개인의 영예는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영예로서 IMO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번 총회에서 라이베리아는 C 카테고리 이사국에 출마함에 따라 A 및 B 카테고리에서 이사국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지난 총회에서 우리를 속인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지리아를 지지하지 않았고, 나이지리아는 1표 차이로 C 카테고리 이사국에서 낙선하였다.

 

사. IMO 기술협력사업의 효율화 추진
다른 국제협약과 달리 IMO 협약은 매우 자주 개정되고, 또한 묵시적 수락절차(tacit acceptance procedure)11) 에 따라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발효된다. 또 개정된 국제협약이 발효되면 이를 이행하지 않는 선박은 항만국통제(port state control) 제도를 통하여 출항정지 등의 불이익처분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각국의 해사당국은 IMO 협약의 제·개정 추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수시로 자국의 법령을 개정하여 자국 선박소유자들이 국제협약에 따라 선박의 안전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선진국과 달리 행정기관의 불비, 관련 지식·경험 등의 부족으로 인하여 적기에 자국법령의 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IMO는 기술협력기금을 만들어 개도국의 능력강화(capacity building)에 필요한 갖가지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IMO 자체의 활동과 별도로 자발적인 기금 기여를 통하여 개도국에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에 맞추어 2003.6.2. 당시 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과 O'Neil IMO 사무총장은 IMO-한국 간 기술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양해각서의 주요 내용은 우리나라가 IMO의 종합기술협력계획(ITCP)에 매년 자발적인 기금을 제공하고, IMO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기술협력 사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술협력사업은 각종 기술협력사업과 세계해사대학(WMU)에 대한 장학금 지원으로 하고, 구체적인 사업의 내용은 한국과 IMO가 상호 협의하여 정하기로 하였다. 이 양해각서에  따라 우리나라는 매년 약 50만불(미화) 정도의 기금을 IMO에 제공하여 왔다.


필자가 현지에서 IMO 업무를 담당하며 보니 IMO 기술협력사업(IMO-한국 기술협력 포함)은 일종의 눈먼 돈 같았다. 우선 기금을 기여한 국가는 일단 기금을 IMO에 기여한 후 사용방법에 대하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기술협력기금의 지원대상인 개도국도 일단 피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는 데에 대하여는 신경쓰지만 역시 그 구체적 사용방법에 무관심하였다. 더욱이 사업의 선정 및 집행에 신경써야 할 IMO 기술협력국 직원들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각종 프로젝트를 자신이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 전문가에게 용역을 주는 식으로 업무를 처리하였다. 프로젝트의 선정도 지역 조정자(regional coordinator, 이들도 IMO 직원임)가 각국에서 수집한 신청사업 중에서 적절히 고르는 정도였다. 이들이 선정한 프로젝트도 대부분 워크숍, 세미나 개최 등 일회성 사업이 많아 기금을 모두 사용했다는 생색을 내는 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과연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측정할 수 있는 수단조차 없었다.


필자는 우선 IMO-한국 기술협력사업을 개선하기 위하여 현지에서 이 사업의 추진사항 점검을 위한 IMO-주영대사관 간 정기 협의회 개최(연 2회)를 제안하였다. 이 협의회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사업의 추진현황 파악, 애로점 타개를 위한 IMO의 요청사항 청취, 기타 사업추진에 관한 의사소통을 행하였다. 우리 측 참석자는 필자와 김현태 IMO 파견관이었으며, IMO 측에서는 IMO 기술협력국장, 부국장 등이 참석하였다.

 

IMO에 파견되어 해사안전국(MSD)에 기술관(technical officer)로 근무하는 최성용(후에 김석훈으로 변경) 사무관 등이 참석하였다. 결과는 매우 만족할만 했다. 이러한 소통을 통하여 IMO 직원들은 한국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우리는 IMO의 사업집행에 관한 보다 자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협의회가 활성화된 이후 동아시아기후변화계획(EACP), 여수엑스포 관련 사업(Yeosu Project) 등 한국의 자금지원을 받는 사업이 연달아 채택됨으로서 IMO 직원들도 신이 났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기술협력사업 관행을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필자는 지속적으로 워크숍 등 일회성 사업을 지양하고, 장학금 지원 등 장기적인 사업으로 방향전환을 제안하였으나 별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IMO 직원들은 필자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방향전환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사업의 방향을 바꾸려면 과거사업의 평가(impact assesment exercise)를 통하여 잘못된 점과 새로운 방향을 지적해야 하는데 사실 이것이 쉽지 않았다. 인간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IMO 기술협력사업에 대한 2012년의 IAE(5년마다 시행) 결과도 모든 사업이 대체로 잘 추진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는 필자의 제안으로 2003년 이후 시행된 IMO-한국 간 기술협력사업에 대한 IAE를 추진 중이다. 이 용역은 IMO 용역사업 중 최초로 한국기관(한국해양수산연수원)이 수행기관이 되어 집행될 예정인 바, 여기에서 우리 사업의 추진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용역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1. 향후 IMO 활동 개선방안
가. 회의에 대한 기본지식 숙지

회의란 대화(verbal interaction)를 통하여 공동목적 달성을 위하여 2인 이상의 모임으로 정의될 수 있다. 국제회의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의 국적의 수가 2개국 이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회의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회의에 대한 참석요령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국제회의에서 교양인으로서의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공적인 회의운영의 요건으로서 몇 가지 사항을 고르면 다음과 같다.


① 의제(agenda)의 확정 ② 참석자의 권한수임(authorization) ③ 절차적(procedural) 의제와 실질적(substantive) 의제의 구분 ④ 발언의 자발성 ⑤ 토론에 기여하는 대안의 제시 ⑥ 회의결과의 기록

 

나. 회의절차규정 및 선례(precedents)의 숙지
IMO의 모든 회의에는 회의의 종류별로 의사절차규정(rules of procedures)이 정해져 있다. 전문위원회(Sub-committee) 등 하부기구의 경우 그 하부기구가 속한 이사회 또는 위원회(Committee)의 의사절차규정을 준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 각 회의에는 의사절차규정에 나오지 않는 과거의 선례가 있다. 예컨대 이사회의 경우 과거 IMO의 기금을 특정 단체에게 대여한 경우 다음에 유사한 사례에서는 해당 행위의 적법성에 대하여 더 이상 토의되지 아니한다. 이밖에도 IMO 내부규정으로서 각종 지침이 있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엉뚱한 다리를 긁는 격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IMO의 대표적 회의라고 할 수 있는 MSC의 회의절차규정 중 유념해야 할 주요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IMO 회의는 비공개(private)회의임(Rule 8). ② 실질적 의제의 경우 적어도 24시간 이전에 위원회에 보고되어야 함(Rule 13). ③ 결정은 과반수 찬성(Rule 26.1) ④ 투표는 통상 손을 들어 찬반을 표시하되, 어느 국가라도 지명투표(roll-call vote)를 요청하면 지명투표를 시행해야 하며, 그 결과는 회의록에 첨부되어야 함(Rule 27 & 28). ⑤ 의사진행발언(point of order)은 아무 때나 가능(Rule 36). ⑥ 제안의 토의순서(Rule 37)

 

다. 적절한 외국어의 구사
IMO의 회의는 공식언어(official language)인 아랍어, 중국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및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또 실무회의는 실무언어(working language)인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통상 한국인은 IMO 회의장에서 영어로 발언하다보니 회의매너, 언어구사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자기 의사의 전달에 여러 가지 아쉬움이 발생하곤 한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인이 흔히 실수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① 감사인사의 부족 ② 적절한 속도로 발언 ③ 발언의 머리 부분에 발언자의 찬성과 반대의사를 명확히 표명 ④ 찬성 또는 반대할 경우 그 이유를 명시 ⑤ 발언문의 문장은 짤막짤막하게 준비 ⑥ 사전 충분한 발언연습 ⑦ 회의 분위기에 따른 순발력 발휘

 

라. 전문가의 지속적인 회의참석
우리나라 IMO 활동에 있어 가장 큰 애로사항은 사람이 자주 바뀌는 데에 있다. 가뜩이나 외국어로 회의를 하다보면 어려움이 많은데 참석하는 사람조차 바뀌면 새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국제회의에서 회의대표가 자주 바뀌는 나라는 없다. 필자가 2001년도에 만난 폴란드 대표는 동일한 회의에 60년째 참석하였다고 한다.


국제관계에 있어 인맥(human network)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제관계가 국가 간의 관계라고는 하나 자세히 들어가면 결국 국가를 대표한 인간 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만남을 통하여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가고, 이러한 신뢰는 국가 간 신뢰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자주 바뀌는 사람 간에 신뢰관계를 쌓을 수는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 국제회의를 주도하는 것은 내공이 깊은 일부의 핵심그룹(core group)인 바, 우리나라가 국제활동을 잘 하려면 우리 전문가가 계속적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핵심그룹에 들어가야 한다.


IMO는 정부 간 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다 보니 회의 참석자는 주로 각국의 공무원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안은 우리나라 공무원이 계속 동일한 IMO 회의에 계속 참가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행 국가공무원법에 의한 전문관 제도를 적극 활용하되, 현행과 같이 형식적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해당 전문관이 승진여부에 관계없이 동일 직위에 5년 이상 장기근무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만일 공무원이 계속 참석할 수 없을 경우에는 민간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민간인이 개인차원에서 국제회의에 참석할 경우 역시 승진, 보직변경 등 개인사정에 따라 참석자가 변경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민간전문가 활용에 관한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즉, 국토해양부장관은 어학능력, 전문성 등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여 민간전문가를 선발하고, 민간전문가가 소속된 기관의 장은 해당 전문가가 계속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관보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토해양부장관과 민간기관의 장 사이에 양해각서(MOU)의 체결 등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선발된 민간전문가의 경우 우리 정부를 대표하여 국제회의에 참석하므로 이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옳다.

 

마. IMO에서 정책적 주도권 확보
IMO의 모든 의사결정은 각종 위원회를 통하여 토의되고, 이러한 내용은 IMO 이사회 및 총회에 보고되어 최종 의사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특히 IMO의 예산은 2년 단위로 편성되며, 그 내용은 향후 2년간 IMO의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표단은 주로 기술적인 사항에 대하여는 심층검토를 통하여 잘 대응하고 있으나 IMO의 정책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이와 같이 정책적 사항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원인은 실무자들이 기술적인 검토를 하다 보니 정작 이사회나 총회까지 충분히 추적하지(follow up)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IMO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IMO 직원의 인사, 예산의 결산 및 편성, 국제회의 운영, 외부기관과의 관계 등 정책적인 사항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는 IMO의 기술적인 의제를 검토하는 실무진이라도 기술적인 검토가 향후 어떻게 정책과 연결되는지를 알아야 하며, 지속적으로 동일한 직위에 근무함으로써 업무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 실무자 선에서부터 IMO 정책 문제에 대한 검토는 향후 실무자가 자신이 속한 기관의 책임자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실무자들이 양질의 정책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IMO업무 담당자 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의할 수 있는 온라인 포럼(forum) 마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바. 주요 의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
국제관계의 문제도 중요한 의제가 있고 가벼운 의제가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장 큰 차이는 중요한 의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경우 자국에 다소 경제적 손해가 나더라도 인류보편적으로 필요한 사안에 대하여는 찬성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개도국은 우선 자국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빠른 시간 내에 경제성장을 이룩하다 보니 우리가 과연 선진국인지 개도국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산업화 단계, 국민소득수준 등의 기준으로 보아 이미 선진국에 진입하였으며, 이는 우리가 OECD 회원국인 점으로도 입증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선진국으로서 IMO의 주요 의제에 대하여 전략적으로 대응할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우리나라가 혼란을 보이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소개하기로 한다.

 

① 선박으로부터 온실가스의 감축
현재 IMO에서 가장 치열하게 토론되는 의제 중의 하나는 선박으로부터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감축에 관한 사항이다. 이 논의에 있어 우리나라는 그간 아주 애매한 태도를 취해 왔다. 온실가스 감축은 원래 1992년에 채택된 UN기후변화협약(UNFCCC) 및 1997년의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 따라 추진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감축을 시행하는 나라는 교토의정서 부속서I에 포함된 선진국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토의정서 채택 당시 부속서 I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준에 따르면 개도국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선박의 온실가스 감축에 관하여는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조선기술력이 관건인 바,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조선국가로 인정되고 있다. 필자의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는 2011.3. 선진국과 보조를 맞추어 선박의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를 의무화하는 해양오염방지협약 부속서 VI 개정안에 대하여 찬성하였지만 아직도 다소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는 앞으로 시장기반방식(MBM) 도입 시에도 재개될 소지가 높다.

 

② 각종 선박환경안전기준
과거 선진국들은 국제협약기준을 자국 해운보호 및 조선산업의 이익에 적절히 활용해 왔다. 예컨대 국제협약이 강화되어 유수분리기(oily water separator)나 방수복(immersion suit)의 설치가 의무화될 때면 이미 선진국들은 이를 이미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기 때문에 개도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비싼 값에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이렇게 고가의 장비를 선박에 설치하다 보면 자본력이 취약한 개도국들의 해운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해운계는 반사적으로 새로운 설비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국제협약의 개정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경쟁력이 매우 강한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을 거느리고 있다. 또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빨라 협약개정이 있더라도 해당설비를 단기간 내에 산업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심지어 선박평형수처리설비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형식승인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달성하지 못할 정도의 높은 수준이면 국제기준으로 채택될 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 선진국이 우리나라에 대하여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협약개정을 활용한 안전환경설비의 강화에 적극 찬성할 때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각종 기준의 강화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kicking)효과를 나타나게 될 것이다.

 

③ 어선의 안전기준
일반적인 상선의 안전환경기준과 달리 어선의 안전기준에 관한 논의는 약간 차원이 달라 보인다. 1912년에 발생한 타이타닉(Titanic)호 침몰사건 이후 일반 선박의 안전확보를 위하여 채택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은 그 역사가 길며, 이제 완전히 정착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에 어선의 안전기준을 정하는 토레몰리노스협약은 어선을 많이 보유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의 반대로 그 발효가 지연되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국가의 태도를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 국가의 경우 상선을 담당하는 부처와 어선을 담당하는 부처가 다르며, 어선을 담당하는 부처의 경우 선박의 안전보다는 어선 선주의 이익을 더 많이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이 자국의 이익, 그중에도 사업상의 이익을 안전보다 우선시하려는 태도는 국제보편적 기준으로 보아 인정되기 어렵다.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사고는 어선에서 발생하며, 선원 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상선보다는 어선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약자인 어선에 승무하는 선원이나 그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 선주의 반대로 안전성이 부족한 어선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매우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어선의 안전문제에 관한 토의에 있어 어선 선주의 입장은 물론 이에 승무하는 선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는 균형감각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안전은 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IMO는 그간 해운문제에 관하여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IMO는 새로운 사무총장의 지휘 하에 변신을 모색 중이다. 세계경제의 악화로 해운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IMO도 이러한 경제상황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국가의 경우 자국 외교관의 봉급을 삭감하였으며, 향후 경제난으로 인하여 IMO 분담금 납부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IMO는 예산편성에 있어 영성장(zero growth)을 표방하고 있으며, 비용절감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토의되고 있는 사항으로는 일부 전문위원회의 통폐합, 회의기간의 단축, 직원의 감축, 일하는 방식의 변화 등이다. 이와 같은 IMO의 변화는 결국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나타날 것이므로 우리는 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절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3년 여의 영국생활을 통하여 IMO 업무에 관하여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보다 넓은 시각에서 IMO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특히 그간 책에서만 보던 정부대표의 임명, 신임장의 제출, 훈령의 이행, 회의의 진행 등 국제적 절차에 대한 이해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실질적인 문제(substantial matters)에만 집중하다 보니 절차적인 문제(procedural matters)에 대하여는 비교적 소홀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권위적인 우리나라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회의는 상급자의 일방적인 지시로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보니 정상적인 회의운영에 대하여 훈련을 받을 경험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는 적정절차(due process) 원칙에 따라 절차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절차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 IMO 회의에 잘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향후 IMO 회의에 참석하는 우리나라 정부대표들을 위하여 필자는 IMO 회의절차에 관한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이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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