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폭 강화
“2PL→3PL 전환? 시장 혼란” 우려도
“공정한 경쟁 입찰 기회 보장해 달라”

국내 물류시장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공격적인 확장경영과 영업활동으로 중소 물류기업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새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물류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2자물류사의 3자물류 전환이 시장에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해 들어 중소 물류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중소 물류기업들의 사업영역을 침범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 물류업체들은 힘과 자본을 갖춘 2자물류업체들과의 물량확보 다툼이 불가피해졌다고 아우성이다.
 

한 국제물류업체 관계자는 “가뜩이나 물량이 줄고 영업이 어려워 업체 간 출혈경쟁으로 운임이 말도 안 되게 깎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중소업체가 주로 맡는 산업공단의 소규모 짐까지 뺏어 가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그는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은 기본물량을 확보하고 있으니 운임경쟁과 네고에서 확실히 유리해 우리처럼 작은 업체는 애초부터 상대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형 C사 공격적 영업, 로컬 포워더 술렁
요즘 국제물류를 담당하는 포워더들은 대기업 물류계열사인 C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술렁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C 물류사는 최근 자사의 운송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기존 중소 포워더들이 운송하던 소규모 화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형화주인 S사와 맺었던 연간 3,000억원 규모 물량의 동남아 물류거래가 중단되면서부터다. 이는 C사와 S사 그룹 간 상속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양사의 사업 협력도 틀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C사는 전체 매출의 20% 규모가 넘는 물량이 줄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자 물량확보를 위한 영업활동을 더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S사의 동남아 생산판매법인은 지난해 말부터 이 지역의 운송과 보관, 하역 등을 담당할 물류업체 선정 입찰을 진행해 왔으며 입찰결과, 해외 대형물류업체들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S사는 앞으로 자사 물류계열사의 물류비중을 늘린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2자물류 규제 강화, 시장 파이 늘어날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계열사 20개사 간 내부거래의 88%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물류사업부문의 수의계약 비중은 무려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국토해양부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들의 내부거래 비중은 롯데그룹의 롯데로지스틱스가 97.1%, 삼성그룹의 삼성전자로지텍이 92.9%, LG그룹의 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가 91.3%, 현대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가 86.8%로 드러났다.


오래 전부터 물류업계는 대기업 물류자회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놨다. 대기업의 물류계열사간 내부관행으로 폐쇄적 시장질서가 형성되면서, 역량 있는 중소 물류기업의 사업 참여는 물론 성장기회도 제한됐다는 비판이 커져만 갔다. 물류업계는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면서 대기업 제조기업의 2자물류회사 또는 관계회사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마련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정위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처벌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일감 몰아주기’ 현황을 공개하기는 했으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 탓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보안문제 또는 효율성을 내세우며 어쩔 수 없이 계열사에 물류를 맡겼다는 입장이다.
 

‘경제 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추진키로 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분야로 물류, 시스템 통합(SI), 광고, 건설 등 4대 업종을 꼽았으며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사익추구를 위한 특혜성 거래를 금지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23조를 개정해 ‘일감 몰아주기’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23조는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상품, 용역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명시된 ‘부당하게’와 ‘현저히’라는 요건을 위반했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 중 ‘부당하게’에 해당하는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현저히’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쪽을 검토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 계열사의 내부 물량이 시장으로 나와 중소 물류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중소 물류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 커졌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 업계의 관행과 대기업 물류계열사의 실제 역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예로 삼성전자의 해외물류업무를 맡고 있는 삼성SDS는 올해부터는 그룹 물량을 넘어 대외 물량까지 조금씩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SDS 측은 신사업 개발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며 '4PL'을 통한 종합물류 IT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PL→3PL 진출? 물류시장 질서 파괴 우려
물류업계는 국내 물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기업들이 대부분 물류계열사를 설립해서 자체 일감을 주어 물류자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3자 물류회사가 상호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적인 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새 정부의 규제로 인해 오히려 대기업의 물류자회사들이 3자 물류시장에 역으로 진입할 경우 시장 질서가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이 2자물류 보다 3자물류의 매출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고 자연스레 기존 3자물류 시장의 몰려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 중소 물류업체 관계자는 “제조공장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그룹 내 자체 물량이 부족해지자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이 3자물류를 한답시고 시장에 뛰어들었다”면서 “가뜩이나 좁은 3자 물류시장에 2자물류업체들이 가담해 덤핑현상이 심화되고 자생 로컬 물류기업이 대다수인 시장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물류 자회사들에게 2자물류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라고 할 수도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2자물류업체들이 3자물류로 전환했을 때 과연 모기업의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3자물류로 확보할 수 있을 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또 2자물류가 3자물류로 전환하는 것과 3자물류를 독자적으로 키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입찰 기회만 보장해라”
일례로 현대차그룹 계열의 현대글로비스는 국내외 3자물류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그간 현대ㆍ기아차의 해외 공장 확대, 시장점유율 상승, 현대제철의 고로 증설 등 2자 물류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현대글로비스의 대부분의 매출은 2자물류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계열사 관련 매출이 80% 이상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는 네트워크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본업이었던 자동차 운송 외에도 해상운송과 3자물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오일뱅크와 2014년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1조 1,000억원 규모의 원유 장기 운송계약을 체결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그간 원유 운송을 맡아왔던 현대상선에 입찰제안서(LOI)도 송부하지 않고 입찰을 추진해 현대글로비스로 낙찰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를 위해 현대삼호중공업에 초대형유조선(VLCC) 4척을 발주했으며 유조선 선가를 조달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계열의 하이투자증권이 주관하는 4,000억원대 선박펀드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들이 발주한 유연탄 수송권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대형 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제한한 해운법 조항에 위배돼 국토부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아 입찰은 무기한 연기된 바 있다.
 

이를 바라보는 해운 및 물류업계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현대글로비스가 새 정부 들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하기 위해 3자물류 비중의 확대를 서두른다며 이는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는 유조선 운항경험이 없는 글로비스가 현대오일뱅크의 물량을 넘겨받은 것은 사실상 물량을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역량과 경험, 전문성을 갖춘 중소 물류기업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입찰 기회만 보장된다면 충분히 물류시장에서 승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고 화주 특성에 맞는 물류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제한하긴 어렵다”면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영업활동으로 물량을 가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무엇보다 수의계약만 하지 말고 중소물류업체도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입찰 기회만이라도 보장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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