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도 묵묵히 경영하는 장수 포워더들

1976년 국내 최초 포워더 등장…등록제 이후 업체 과당경쟁 시대
물량 악화·출혈운임 이중고, “특별한 전략 없다. 기본에 충실할 뿐”

 

 
 

우리나라가 무역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포워더는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복합운송주선업의 태동과 함께 최초로 등장한 1세대 포워더들은 반세기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장의 길을 걸어왔으며 수많은 난제를 극복하며 국제물류시장의 터를 닦아 주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운송물량 악화와 출혈운임의 위기 속에서 장수 포워더들은 굳이 위기관리 경영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아도 화주와의 ‘신뢰’,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묵묵히 ‘기본에 충실한 사업’을 해오며 불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포워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당시 선박대리점들이 외국 포워더의 한국 대리점 역할을 맡아 포워딩 서비스를 제공해오다가 점점 선박대리점에서 취급하던 포워딩업무가 하나둘씩 별도의 독립법인체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1976년 10월 해운항만청으로부터 한국 최초의 해상운송주선업 면허를 취득한 국내 최초 포워더 26곳이 탄생했다. 이들은 제일항역, 삼영익스프레스, 일양익스프레스, 오리엔트해운, 선진해운항공 등을 포함한 26개사로 복합운송주선업의 태동이 됐다. 이후 1979년 말까지 50여개의 포워더들이 영업활동을 벌였으며 포워더의 난립방지 및 업체의 부실화 방지라는 면허제 도입 초기 목표에 따라 1982년까지 3년 동안 신규면허가 중지됐다.
 

포워더는 1970~1980년대 기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부의 수출입 정책에 힘입어 운송할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났으며 일정한 업체 수를 유지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며 호황을 누렸다.

 

시장 완전개방…영세업체 난립 위기
이후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83년 12월 해상운송사업법이 해운법으로 대체되고 1985년 해운업법 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해상운송주선업도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된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등 세계적인 개방화 추세에 따라 일정등록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포워더 회사를 차릴 수 있게 됐다. 이 때를 기점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로컬 포워더들이 시장에 너도나도 진출했으며 기존 포워더 업체나 선사에 근무한 임원들이 독립하거나 분사하여, 자사를 차린 경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포워더 업체 관계자는 “그 때 당시만 해도 보세장치장과 사무실 규모까지 규정되어 있는 등 나름대로 면허 기준이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이후 1991년 화물유통촉진법 개정과 함께 포워더들은 복합운송주선업자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1996년에 들어서 등록기준은 더욱 완화됐다. 복합운송주선업 등록기준이 자본금 3억원 이상으로 완화되고 등록관리 업무도 구 건설교통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됨에 따라 등록업체 수가 또 다시 급증하면서 과당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업규모가 영세하고 등록을 취소당하거나 정지 당하는 업체도 해마다 늘어났다.
 

설립시기별로 회사 규모에도 차이가 생겼다. 1980년대 이전 설립된 업체가 평균 50명 이상, 1980년대 설립 업체가 평균 21~50명 이하 규모였다면 1990년대 후반에 설립된 업체들은 평균 20명 이하의 직원을 둔 상대적으로 더 영세한 회사들이 많았다.
 

인력의 잦은 이탈은 업계의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었다. 포워더는 인력의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는 ‘맨파워(man power)’라는 점에서 직원들의 잦은 이동현상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경쟁사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해 핵심인력을 데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업계는 새 인력을 확충해 교육시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포워딩 업체의 수는 1996년 350여개에서 2013년 현재 3,000여개로 파악되고 있다. 이중 실질적인 경영이 가능한 곳은 1500여개 미만이다. 그나마 수익을 올리는 업체는 약 5~10% 정도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한 업체 간 출혈경쟁, 소비자 피해, 서비스질 저하 등 부작용이 여전하다. 포워더들의 단체인 한국국제물류협회(KIFFA)에 정식가입된 회사는 740여개사이다. 협회 관계자는 “그나마 작년부터 등록업체의 수가 조금 주춤한 편”이라면서 “그러나 협회 가입도 어려워하는 영세업체가 많고 매달 4만원의 회비조차 내지 못하는 장기미납업체들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포워더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포워더 업계에 따르면, 경기침체에 따른 물량난과 운임단가 인하경쟁 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1980년대 포워더를 차려 운영했다는 한 사장은 “업체 수가 많지 않았던 그 때가 사업의 재미가 좋았다”면서 “포워더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1세대 로컬 포워더들 중 일부는 지금도 30년 이상 포워더라는 한 우물을 파고 꾸준히 경영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경영난 악화로 인해 회사가 매각된 사례도 있지만 창립정신의 초심을 잃지 않고 위기에도 사업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60~70년대에 설립돼 30년 이상의 역사를 갖춘 국내 장수 포워더들은 제일항역, 오리엔트해운, 일양익스프레스, 삼영익스프레스, 선진해운항공, 한생해운항공, 해륙해운항공 등이 있다. 80~90년대에 설립돼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회사는 해우GLS, 우진글로벌, 대아트랜스, 화산해운항공, 스카이매스터, 천지해운, 트러스트앤베스트, 월드로드항공해운, 조선해운, 국보해운, 유니트란스, 코스타해운항공, 포맨해운항공, 이엔알해운항공, 태웅로직스, 엠엘씨월드카고 등이 있으며 전문 콘솔업체로는 모락스, 맥스피드, 은산해운항공, 골드웨이, 큐브라인 등이 활발한 사업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설립된 회사로는 NCL, 삼민해운항공, 동서콘솔, 오리엔트스타로직스, 마레콘솔, 나우리해운항공, 성일해운항공, 휴맥스해운항공 등이 있다. 특히 서중물류, 유니코로지스틱스는 TCR(중국횡단철도)과 TSR(시베리아횡단철도) 전문 포워더로, 청조해운항공은 몽골운송 전문 포워더로, 협진해운은 프로젝트 화물 전문 포워더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기관리? 특별한 것 없다. 원칙에 충실”
한 중견 포워더 업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물류시장은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특히 자생 로컬 포워더들은 대형 2자물류회사들과 경쟁으로 화물영업이 쉽지 않아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일항역, 삼영익스프레스, 선진해운항공 등 1세대 포워더를 비롯한 장수 포워더들은 업계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기존에 하던 대로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다는 방침이다. 장수 포워더들은 △하주와의 신뢰 및 고객 중심서비스 △집약된 경험과 전문성 △AEO 인증 등 내실 강화 △프로젝트 화물 등 신사업 발굴 △사옥 재신축 및 임대업 등의 공통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집약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단순히 화물을 주선하는 것을 넘어서 화주 맞춤형의 종합적인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 본사 빌딩을 최신식으로 재신축하여 임대사업에도 새롭게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신사옥은 1세대 포워더로서 명예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공실률이 높은 편이어서 임대수익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AEO(종합인증우수업체) 인증 취득을 통한 전문운송업체로서의 내실도 다지고 있다. 이를 통해 화주들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영업기회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제일항역 관계자는 “AEO인증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번거롭긴 하였지만 전 직원 교육과 위험관리 및 체질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월 기준 AEO 인증을 취득한 국내 포워더 업체는 101곳이다. 올해도 30~40개 업체가 인증획득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1세대 포워더들은 사업에 있어서 보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격적인 경영 마인드 보다는 안정과 방어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 신사업 발굴과 투자 등 시장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 다소 느리며 젊은 감각이 퇴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삼영익스프레스, “2016년 전 직원 주주 목표”
삼영익스프레스는 수출입 화물의 해상항공복합운송을 시작한지 37년째 접어들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포워더이다. 2008년 마포에 신사옥을 새롭게 준공해 입주했으며 240여명의 인력과 함께 국내 10곳, 해외 22개 사무소, 해외 포워더 300여곳과 파트너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해 3월 3일 열린 ‘삼영익스프레스 비전 2020’가치관 선포식에서 정은구 대표는 “최근 세계 경제가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를 맞아 많은 기업들이 생존을 염려하고 있는 때 삼영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임직원이 함께 고민하며 의논해 삼영의 가치관을 수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의 비전은 창립 40주년을 맞는 2016년까지 해외지점 50개, 2020년까지 100개로 늘리는 것이다. 매출과 이익을 연 20%씩 늘린다는 목표와 함께 2016년까지 전 직원이 주주가 된다는 비전을 세웠다.

 

 
 

제일항역은 국제물류주선업의 법정 도입 전부터 사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포워더로 잘 알려져 있다. 1966년 설립돼 현재 창립 47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동안 인공위성, 이스라엘 전력발전소 기자재 등 굵직굵직한 화물을 운송해왔다. 2011년 마포에 지상 14층, 지하 3층 규모의 본사 사옥을 재건립해 둥지를 틀었고 인천국제공항 사무소, 부산사무소와 청도, 대련, 하노이, 호치민, 타쉬켄트 등에 지점을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포워더 시장은 끊임없이 업체가 생겨나는 구조적 한계 가운데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화주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본적인 업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위기관리 방식은 기존에 해왔던 부분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며 “한 예로 아주 가끔씩 연락이 오는 외국 파트너라 할지라도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면 결국 회사의 안정성에 대한 화주의 신뢰는 저절로 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량 증대 소망…새 수익모델 검토”
새해 장수 포워더들의 경영방침은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물량이 늘어나는 것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다각적으로 찾는다는 전략이다. 보수적인 마인드가 팽배해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기본적인 비용절감 노력을 뛰어넘어 새로운 수익 사업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 화물의 전담 부서 확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프로젝트 화물은 수익성이 높은 반면 준비 기간이 길고 진입장벽이 높기에 일반적인 해상포워딩만을 주로 해온 업체들의 경우 사업진행이 쉽지 않은 편이다.
 

대형 물류센터를 확보해 종합물류서비스를 확대하는 업체들도 있다. 맥스피드와 모락스, 골드웨이, 은산해운항공 등의 콘솔업체들은 각각 부산신항 배후물류센터를 확보하여 콘솔을 기반으로 한 3자물류, 포장, 조립, 가공 및 라벨링 등 새로운 부가가치 물류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화물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기본적으로 포워더의 업종전망이 좋은 편이라고 얘기한다. KIFFA 관계자는 “업체 난립이라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이지만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서 무역규모가 커질수록 국제운송의 업종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행히 올해부터 포워더의 관리감독이 까다로워지면서 시장정리도 조금씩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새롭게 바뀐 물류정책기본법의 주요 내용에 따르면, 국제물류주선업 등록기준 충족여부를 3년마다 주기적으로 신고하여 등록기준 미달 부실업체는 영업정지 또는 등록취소 등을 통해 퇴출토록 했으며 1년 이상 장기 휴업 업체도 영업정지 또는 등록취소의 처분이 내려진다.
 

우리나라에서 국제물류주선업이 반세기를 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포워더 업체들이 탄생했다 사라졌다를 반복해왔다. 업계의 과당 경쟁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워딩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다. 위기의 시대, 장수 포워더들에게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경영이 바로 생존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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