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식
김연식
<‘지구별 항해기’내용>
(1)바다로 간다 (2)승선 (3)고요속 긴장, 수라바야 (4)항해의 시작 (5)문명의 경계, 아마존 (6)고단한 선원 (7)파도마저 얼어붙은 발틱의 겨울, 라트비아 (8)대륙의 끝, 무르만스크 (9)커피공화국, 산토스 (10)해적의 바다를 가르다 (11)그들이 사는 법, 인도 (12)지도보다 빨리 성장하는 중국 (13)지금은 항해중,
본호에서는 (6)(7)(8) 게재.

#고개 숙인 선원
우리는 아마존의 보크사이트를 근처 사오 루이스에 풀었다. 다시 캐리비안해 연안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서 석탄을 싣고 영국 동부 연안 이밍햄(Immingham)으로 향했다. 화물을 싣고 내리는 바쁜 일은 끝났다. 열흘간 대서양을 건너면서 슬슬 배를 정비하면 된다. 선원들은 숯불에 새끼 통돼지를 구워 파티를 열었다.

갑판장은 피부라기보다 껍질 같은 손으로 잔을 집었다. 두툼하게 앉은 굳은살이 샛노랗다. 갈라진 손톱 사이에 검은 때가 영원처럼 끼었다. 희끗한 머리칼과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얼마나 많은 태양과 얼마나 많은 해풍이 스쳤단 말인가. 환갑이 넘은 갑판장은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거칠다. 배를 오래 탄 사람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퀭한 태도가 엿보인다. 과묵하지만 가끔 던지는 한마디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그러니 그의 첫인상을 좋게 기억하는 선원이 없다. 갓 승선한 나는 그와 유독 자주 부딪혔다.

-뭣 하려고 배에서 휘파람을 부노!!
갑판장은 바다를 보며 감탄하는 나를 쏘아보고 지나갔다.
-물을 틀어놓고 손을 씻으면 우짜노! 배에서 청수가 그냥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참말로….
언제 왔는지 핀잔이다. 깐깐한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얼마 후 바람이 거칠어지자 갑판장은 내가 휘파람을 불어서 그렇다고 떠벌렸다. 그는 배에서 유일하게 뱃사람의 낡은 미신을 지킨다. 배 생활을 어선에서 시작해 생선도 뒤집어 먹지 않는다. 그 미신을 다 지키면 일거수일투족이 불편하다. 나는 그가 어려웠다.

회식을 빌미로 갑판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한 때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사우디아라비아에 입항할 때는 주사기로 오렌지에 위스키를 넣어 두기까지 했다. 이 나라에 갈 때는 법에 따라 모든 술과 사진기를 밀봉한다. 입항 첫날 술 냄새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검사관은 그의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술 냄새가 나는 것이다. 선장은 바늘 하나까지 털어내 쓰레기통에 있는 오렌지 껍질에서 덜미를 잡았다.

그런 갑판장이 술을 끊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달에 커피를 끊었다. 지난해에 담배를 끊었다. 좋아하는 고기를 물리고 쓴맛 나는 야채와 보약을 먹는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철판 위를 걸을 때마다 오만상이다. 무릎을 들춰보니 검게 부었다. 언제부터인지 그가 안쓰럽다.

갑판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3항사, 나도 한 때는 애국자라 불렸다. 76년도. 우리나라가 한참 가난할 때 배를 탔어. 그 때는 선원들이 외화를 엄청 벌었다고. 그 때 내 월급이 공무원 친구보다 5배나 많았어. 달러벌이로 나라 살리고 가족들까지 다 챙겼어. 그 때는 선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지.

노선원은 술김에 속 이야기를 풀었다.
-일본 배에서 5등 갑판원을 할 때는 맨 손으로 똥물을 치우고 좁은 바닥을 기어 다녔어. 그러다 말을 못 알아들어서 턱 아래를 스패너로 얻어맞았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 때는 애국하다 생긴 상처라 생각했어. 근데 이제 찬바람에 시려 죽겠다.
-자식들은 나도 모르게 훌쩍 컸지, 배 탄다고 하면 동네에서 좋게 보지도 않지. 이제는 몸이 아파서 술도 마음껏 못 먹는다.
안에 쌓인 상처가 없는 나는 상처가 문드러진 그의 마음을 좀처럼 헤아리지 못했다. 고개를 떨어뜨린 갑판장은 연거푸 잔을 들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사실 갑판장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노선원들도 같은 심정이다. 이제 선원은 기피직종이다. 평생을 바다에 바쳤지만 가족조차 박수치지 않는다. 평생을 바다에서 산 선원들도 이제 바다의 가슴팍에 머물 수 없다. 회식은 점점 한을 달래는 자리가 되었다.

 
 
# 실제의 공간, 바다
써니영은 긴장 속에 한겨울 북대서양으로 향했다. 새들도 숨어든 바다는 파도소리만 요란하다. 퍼렇게 뜬 보름달은 조각구름에 가려 차가운 빛을 뿜는다. 불청객의 노크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문을 두드린다. 레이더는 파도의 잔상으로 혼잡해지고, 기온은 추락했다.
-철컥.
선장님이 브릿지에 올라왔다. 보통 3항사는 경험이 부족해 캡틴이 같이 근무한다. 나는 책임자와 어둠 속에 서너 시간을 보내기가 어지간히 불편했다. 그래서 선장님이 볼 때는 지나가는 배마다 일일이 무전을 넣어 어떻게 피해갈지 확실하게 못 박았다. 영어로 원만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동안 혼자 일하게 했다. 그러던 캡틴이 갑자기 브릿지를 찾았다.
-달이 밝구나.
선장님이 조용히 속삭였다. 파란 달빛이 그의 은테 안경을 스쳤다. 조타실 밖으로 나가 바람을 살피더니 대뜸 기압을 물었다. 가만 보니 바다가 어제와 다르다. 캡틴은 기상도를 받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는 귀신같이 날씨를 맞췄다. 중단파 팩스로 받은 기상도는 온통 저기압. 악명 높은 비스케이만(Biscay bay)이 기다렸다.
프랑스 동부와 스페인 북부 연안에 걸쳐 움푹 들어간 거대한 비스케이만은 항해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15~17세기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을 떠난 배 10척 중 2척이 돌아오지 못했다. 유럽과 식민지를 오가던 수많은 범선이 이곳 파도에 침몰했다. 가까이 지난 2002년 11월, 높이 10미터의 파도에 유조선 프레스티지(Prestige)호가 두동강 났다. 세계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다. 내가 타고 있는 써니 영보다 긴 243미터의 유조선이 침몰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장님은 비스케이만을 앞두고 독일의 용선주와 위성으로 교신했다.
-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파도가 거세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속도도 느려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항로를 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용선주의 반응은 차가웠다.
- 무슨 말입니까. 기상정보를 보니 심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배들도 잘 가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예정대로 항해하세요. 하루가 급합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직원은 종이에 적힌 각종 정보를 놓고 우리 상황을 판단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보는 것처럼 확신에 찼다. 독일 사무실은 가상의 공간이다. 종이와 전화 통화, 은행의 숫자로 세상 모든 일을 결정한다. 내가 있는 곳은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철저한 현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현실은 가상의 공간인 육상 사무실에서 결정한 것에 좌우된다. 매트릭스의 두 개 세상처럼, 실제와 가상이 엇갈린다.

문제는 가상의 공간에서는 파도와 바람의 세기를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선원의 안전보다 영업이익의 숫자 한자리가 중요하다. 용선주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않지만, 그는 숫자와 기상정보로 선장처럼 배를 지휘한다. 마치 첩보 영화에서 요원의 격투 상황을 위성과 카메라로 보면서 명령하는 본부 지휘자 같다.
2012년 개봉한 ‘007 스카이폴’의 시작부분은 유독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가 기차 지붕에서 악당과 얽혀 난투극을 벌인다. 총을 쏘면 누가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본부 지휘자 ‘M’은 악당을 놓칠세라 저격을 지시한다. 총알은 빗나가 제임스 본드의 가슴에 박힌다. 총에 맞은 본드는 다리 밑 강물에 빠지고 악당은 유유히 사라진다. 나는 내 눈앞의 파도를 몰라주는 육상 직원의 말이 얄미웠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기상관측이 정확하다지만, 현장은 모르고 제한된 정보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M'같았다.

- 독일 땅에 선장이 있으니 나는 내려가련다.
배 위의 선장님은 뼈 있는 말을 남기고 체념하듯 브릿지를 떠났다.
사흘 뒤 포르투갈을 지나자 예상대로 바다가 거칠어졌다. 커다란 파도가 몰려오면 배는 그 위에 올라섰다가 골짜기로 떨어졌다. 그 때마다 선수에서 커다란 파도가 부서져 하얀 물보라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물에 커다란 솜사탕이 달린 것 같다. 선체는 좌우앞뒤를 예측할 수 없게 마구 흔들렸다. 내 몸 하나 똑바로 세우기도 힘든데, 물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어느새 책상은 깨끗해지고 바닥은 난장판이다. 배에서 생활하다보니 강박증이 하나 생겼다. 탁자 위에 물 컵이 있으면 불안하다. 배가 흔들리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간다. 바닥에 내려놓아야 후련하다.

우리는 힘겨운 항해를 꾸역꾸역 이어갔다. 뱃사람이 파도를 무서워하면 안 된다는데, 나는 좀처럼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인지 모른다. 배가 흔들리는 사이, 하나 남은 프린터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마저 고장 났으니 서류를 만들지 못한다. 배에는 고장 난 전자제품이 많다. 파도에 흔들려 구르는 건 다반사. 자체 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쓰다 보니 전압이 오락가락 할 때가 있다. 고장은 잦은데 수리공을 태울 시간이 없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버리는 편이 낫다. 그래서 배의 창고에는 반쯤 고장인 전자제품이 수두룩하다. 이 프린터도 창고로 직행했다.

# 행동하는 믿음
드디어 영국 동부 연안 이밍햄(Immingham)에 닿았다. 콜롬비아를 떠난 지 열하루만이다. 영국은 항만국 검사가 까다로워 애초에 상륙을 포기했다. 이 검사는 안전 기준에 미달하는 선박을 걸러내는 제도다. 부실한 선박이 좌초하면 태안 원유 유출 사고처럼 사고 현장 국가가 해를 입는다. 그러니 각 나라 정부는 자국 항구에 입항하는 선박이 안전한지 검사할 수 있다. 기준에 못 미쳐 사고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면 배를 항구에 묶을 수 있다. 영업정지에 해당한다. 선원 모두 바짝 긴장한다.

뜻밖에 프린터를 사느라 이밍햄에 상륙했다. 선원센터 홍보직원이 찾아온 틈에 선장님이 차를 얻어 타고 다녀오라 했다. 현문을 나서면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다. 마음이 붕붕 뜬다. 센터에는 노인 여럿이 앉아 있었다. 각자 차를 대고 기다렸다. 소일 삼아 선원을 상대로 운전기사 일을 하는 모양이다. 직원은 프린터를 사야하는 내 상황을 설명한 뒤 머리가 새하얗고 키가 큰 패트릭을 소개했다. 주인만큼 낡은 차를 타고 상점가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패트릭은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첫 번째는 고향.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꼭 물었다. 자연스럽게 최근 한국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남북문제를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다. 천안함 사건을 전쟁으로 봤다. 세상을 오래 산 노인에게 코리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다. 전 세계 어딜 가든 북한 이야기를 꼭 묻는다. 지구상에서 북한에 무관심한 건 우리 남한사람 뿐이다.

화창한 휴일 오후, 도시는 사람들로 붐볐다. 의자에 앉거나 잔디에 누워 모처럼 볕을 즐겼다. 가족이 공놀이하거나 도시락을 먹었다. 퍽 단란해보였다. 그 속을 걷자니 나만 물 위에 뜬 기름 같았다. 이방인이어서가 아니라 혼자라는 느낌 때문이다. 집 떠난 지 고작 3개월. 다정한 영국 사람들 모습에 가족과 여자 친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패트릭은 꽤나 성급했다. 처음 보는 풍경에 젖은 나를 재촉했다. 나는 노점에서 군것질하고 싶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싶고, 가게에서 기념품도 사고 싶다. 낭만 없는 노인은 서둘러 전자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가 못마땅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나를 두고 가면 그만이지,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모르겠다. 돌아갈 때는 차라리 다른 택시를 타고 싶었다. 그런 그를 어렵게 끌고 가서 피자와 소설책을 사는 성과를 거뒀다. 어미 새가 물어 올 먹이를 기다리는 선원들 때문이다.

그리고는 곧장 배로 향했다. 생각보다 이르다. 항만국 검사관이 올지 몰라 마음이 다급했지만, 목석같은 노인의 재촉도 한몫했다. 내 상륙을 무미건조하게 만든 꼰대가 미웠다. 반면 뾰로통한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은 달랐다. 항구가 가까워지자 나는 교통비 이야기를 꺼냈다. 대단히 감사한데 어떻게 표시하면 되겠냐고 돌려 물었다. 노인은 손사래 쳤다.
-이것은 내 사명(Mission)이야.
-사명이라니 무슨 말이죠?
-약자를 돕는데 여생을 바치기로 했어. 우리는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을 도와. 그게 더 보람 있지. 선원은 약자야. 언어의 약자, 교통의 약자, 관습의 약자. 버스 같은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줄 모르고, 기다리는 줄도 엄한 곳에 서는 바람에 시간만 버리기 일쑤야. 현지 사정에 어두우니 바가지를 쓰는 일도 다반사고. 그러다보면 어이없는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야. 앞을 못 보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처럼 도움이 필요해. 오늘 내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자네야. 안 그래?
-내가 약자라니….
맞는 말이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딜 가든 당당하려고 애쓰는 나다. 곱씹어보니 나는 어린 아이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길을 묻지 않으면 한참을 헤맨다.
패트릭은 자동차 기름 값이라도 줘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나를 한사코 말렸다. 오히려 제 사명을 완수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대체 그의 신은 누구란 말인가. 우리나라 지하철과 번잡한 거리에서 수많은 전도행렬을 봤지만 한 번도 그 사람들의 신이 궁금하지 않았다. 말년의 노인을 이렇게 단단하게 한 그 신이 나는 궁금했다. 그에게 미안했다. 아마존에서 ‘따뜻한 돈’을 생각한 나다. 나는 그새 내가 낼 돈 만큼 그를 부리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선의도 모르고 몇 푼 쥐어주고 보내려고 했다. 노인의 순수한 사명 앞에 지폐 몇 장을 든 내 손이 초라했다.

파도마저 얼어붙은 발틱의 겨울, 라트비아
우리는 다시 거친 대서양을 건넜다. 캐나다 동쪽 뉴펀들랜드 섬 인근 카티어항에서 철광석을 싣고 째즈 도시 미국 뉴올리언스에 하역했다. 꼬불꼬불 미시시피강을 한나절이나 거슬러 올라갔지만 까다로운 비자 때문에 상륙하지 못했다. 다시 미국에서 석탄을 실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하역했다. 그 사이 북반구는 겨울이 깊어졌다. 이번에는 라트비아 벤츠필즈(Ventspils)에서 석탄을 싣고 벨기에에 내려준다. 발틱해의 입구는 좁고 오가는 배는 많다. 게다가 우리는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계절이 변할 것이다. 그런데도 설렌다. 지도에서 눈에 띄지도 않는 이곳에 가는 것은 아프리카에 가는 것만큼 흔치 않다. 라트비아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다. 가만히 미소 지었다.

# 신비의 바다, 발틱(Baltic)
덴마크 북쪽 끝을 돌아 발틱 입구에 들어서자 뱃길은 좁아지고 물살은 거세졌다. 가장 좁은 ‘더 사운드’ 지점은 폭이 고작 3킬로미터. 한강 하구와 비슷하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치른 거제와 통영사이 견내량 해협만큼 좁다. 왼쪽으로 스웨덴 도시가, 오른쪽으로 덴마크 가정집이 눈에 들어왔다.
너른 발틱에 들어서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멀리 배 한척이 하늘에 떠 있는 게 아닌가. 어떤 배는 높이가 보통 것의 두 배가 넘는다. 선교가 한참 위에 있다. 반대쪽 육지는 칼로 자른 듯 반듯하다. 그런데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어떤 물체는 뒤집어져 있고 허리가 끊어진 것도 있다. 영문을 몰랐다.
잠시 후 공중에 떠 있던 배의 형상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수평선 아래서 아까와 같은 배가 나타났다. 신기루다. 대기 밀도가 달라져 광선이 굴절되었다. 흔히 사막에서나 나타나는 줄만 알던 신기루는 이곳 발틱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과연 바다에는 놀라운 장면이 넘친다.

기온이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졌다. 지구의 꼭대기 근처라 정오에도 태양은 어깨 아래. 하늘은 가을처럼 푸르렀다. 기상도를 보니 러시아 지역에 강한 고기압이 보였다. 시베리아의 한파가 닥칠 모양이다. 역시나 폴란드 연안에 접어들자 바다가 입김을 토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 위에 찬바람이 덮치면서 물안개가 꼈다. 날씨는 맑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종일 배를 둘러쌌다. 저 너머 세상으로 가는 것만 같았다.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섬뜩했다. 이승에 한이 있어 못 떠나는 귀신의 입김은 아닐까? 이곳에서 숨진 사람이 적지 않으니 그럴 만 했다.

보통 최악의 침몰사고라면 1천503명이 숨진 타이타닉호를 말한다. 널리 알려진데다 유명인사가 많이 희생된 탓도 있다. 그러나 세계 5대 해난은 모두 이곳, 발틱에서 일어났다. 딱 이맘때다. 1945년 1월 30일. 1만583명을 태운 독일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이 근처에 침몰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1천239명. 나머지 9천343명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됐다. 타이타닉 희생자보다 6배 많다. 사고 열흘 뒤 여객선 슈토이벤호가 5천200여명을 태우고 항해하다 가라앉았다. 4천500여명이 숨졌다. 같은 해 고야호, 캡 알코나호, 티엘벡호가 해난사고를 당했다. 그 해 이 바다에 여객선 5척이 가라앉아 2만7천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중에 동프로이센에서 피난하는 민간인. 전세가 연합군으로 기울면서 독일은 피난 행렬을 재촉했다. 소련군이 밀려들고 도로와 철도가 끊겼다. 독일은 대형 여객선을 동원해 수송 작전을 폈다. 배는 정원을 5배 이상 넘겨 선실과 복도, 갑판과 화물창까지 피난민을 가득 태우고 항구를 떠났다. 차가운 바다를 가르던 배는 소련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줄줄이 가라앉았다. 사흘 전 암스테르담에서 안네 프랑크 생가와 2차 세계대전 위령탑을 봤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뼈아픈 과거가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전쟁은 수심이 100미터도 안 되는 얕은 바다를 마수로 만들었다. 과연 인류 최악의 사고는 전쟁이다.

# 고마워요. 알렉세이
 
 
벤츠필즈에서 두 번째 상륙이다. 오늘도 운전기사 알렉세이가 우리를 기다린다. 머리가 허옇게 센 70대 노인이다. 이곳의 숨은 약속인지, 운전사끼리 배를 나눠 맡았다. 그는 종일 배 저만치에 낡은 승용차를 세워놓고 존다. 다른 배에는 얼씬도 안한다. 그러니 그가 아니면 도시로 갈 방법이 없다.

나는 그를 늙은 여우라고 부른다. 어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근처 대형 상점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우리를 정문에 두고 후다닥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돈을 어디서 바꾸는지도 몰라 한참 헤맸다. 가게를 둘러보는데, 할인 코너 앞 길게 늘어선 줄에 알렉세이가 보였다. 바구니에는 저녁거리가 잔뜩. 손에 노란 메모지를 들고 나선 걸 보니 작정하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것 같았다. 할인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른 모양이다. 웃음이 절로 났다. 나와 눈을 마주친 노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메모지와 우리 사이에 있는 노인을 보자니 안쓰럽기도 했다. 한편 그의 부인에게 연탄이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다. 만일 그랬으면 우리는 연탄 공장을 유명한 관광지나 되는 것처럼 갔을 테니.

이어서 알렉세이는 주점을 소개했다. 농구장처럼 지붕 높고 넓은 가게는 우리가 들어가자 문을 열었다. 탁자는 달랑 8개. 길손은 우리 뿐. 하얗게 입김 나오는 홀에서 마신 맥주가 한 병에 6달러나 했다.
-도대체 소개료로 얼마를 받기에 우리를 이런 곳에 데려 온 거야?
우리는 노인에게 잔뜩 실망했다. 오늘은 이 여우에게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밤사이 배에 올라온 인부들에게 물어 주변 명소를 알아 놨다. 어딘지 모른다고 발뺌하지 못하게 라트비아어로 이름과 위치를 자세히 적었다. 유명한 음식점과 유적. 이 정도면 오늘 상륙은 완벽하다. 알렉세이는 내 메모를 슬쩍 보더니 시큰둥하게 알았다고 끄덕였다. 낡은 자동차는 칼바람을 뚫고 나아갔다. 한참을 달려 노인이 차를 세운 곳은 황량한 주차장. 밖에서는 ‘우우웅’하고 매서운 바람소리가 났다.

-벤츠빌즈는 해변이 유명해. 가봐.
-뭐야, 이렇게 추운데 밖에 나가라고?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해도 너무했다. 알아듣지 못할 것을 알고 한국말로 노발대발했다.
-잘 보라고! 유. 적. 지. 유적지를 가자고!
나는 종이를 들이밀며 언성을 높였다. 노인은 다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일단 다녀오라고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 늙은 여우에게 끌려 다녀야 하는 거야.
일행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둔덕을 오르며 투덜거렸다. 꼭대기에 오르자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냥 바다구만! 어쩌라는 말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하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주변은 고요하다. 사진을 보는 것처럼 잠잠하다. 알 수 없는 느낌이다. 물가에 가자 다들 탄성을 터뜨렸다. 바다가 얼었다. 그것도 파도치는 모습 그대로.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이 동그래졌다. 바다의 푸른빛을 담은 파도는 마녀의 마법에 ‘뿅’하고 얼었는지 물결을 그대로 간직했다. 수평선까지 모두 얼었다. 새들도 바다 한가운데를 잔디처럼 걸어 다녔다. 얼음 맛을 봤다. 짜다. 우리는 신이 나서 그 울퉁불퉁한 얼음 위를 뒤뚱뒤뚱 오르내렸다. 만날 보는 바다에 이렇게 감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참 만에 알렉세이의 차로 돌아갔다. 그는 시계를 내려 보며 ‘얼마나 놀랐기에 이제 오느냐’ 하는 표정이다. 이어서 노인은 영웅 야니스의 동상, 중세 광장, 주말시장, 도서관을 안내했다. 촌음을 다퉈 바쁘게 돌아다녔다.
나는 반나절이면 돌아와야 하는 짧은 여행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려 버둥거렸다. 그래서 박물관이니 유적지니 하는 것들에 욕심을 냈다. 오늘도 노인을 그렇게 닦달하지 않았던가. 그런 식으로 에펠탑과 런던브릿지 앞에서 사진을 찍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열심히 다녔는데 기억에 남는 건 겨울의 마법뿐이다. 다른 게 아니라 만날 지겹도록 보는 바다의 작은 변화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 뜨겁게 했다. 전 세계를 구경하겠다며 바다로 나온 나다. 나는 무엇을 보기위해 이 먼 길을 나섰단 말인가? 대단한 유적보다 일상의 작은 변화가 놀랍고 신비하다. 아마 이 때부터일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짧은 여행을 나서기 시작한 건.

# 따꾸의 심정
라트비아를 떠나는 날 저녁, 주방 일을 돕는 사롱보이 따꾸가 물었다.
-3항사, ‘샤끼’가 무슨 뜻이야?
-샤끼? ?끼? 아! 새끼?
-맞어. 새끼.
-칩쿡이 ‘이 쌔끼야’ 했구나?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데 답을 하자니 멋쩍다. 분명 조리장은 이 말에 짜증을 섞었을 것이다. 눈치가 있다면 따꾸도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알 테다. 거짓말을 하자니 뻔히 들통 날 것 같고, 그대로 말하자니 고자질 같다. 무엇보다 우리말 ‘욕’의 느낌을 살려 영어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악의 없이 주의를 주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사실 따꾸에게 적도 지역 사람 특유의 게으름이 있다. 영어가 서투른 한국인 조리장은 적당하게 주의를 줄 줄을 모른다. 조리장은 따꾸가 못마땅해 욕을 했을 것이다. 그 의도를 제대로 설명해야 오해가 없다. 슬며시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따꾸가 반찬을 준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난 ‘이 새끼야!’를 ‘어텐션(Attention)’ 정도로 번역했다.
버마 선원은 약자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고된 일은 이 친구들이 맡는다. 항해의 역사는 노예들이 노를 젓는 시절로 이어진다. 국제노동법이 있지만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게 버마 선원이다. 방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조리장의 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 사관의 입장에서 사실만 파악하려 했지 약자인 따꾸가 느꼈을 두려움을 외면한 건 아닐까. 어른들의 입장에서 학교 폭력은 아이들끼리 치고 박는 문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목숨을 끊을 만치 지독한 고통이다. 따꾸가 두려운 건 욕 자체가 아니다. 그 당시 조리장에게서 나오는 분노의 기운이다. 나는 해결사가 아니지만 오늘은 막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야겠다.

대륙의 끝, 무르만스크
라트비아 석탄을 벨기에 앤트워프에 하역했다. 동화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고, 세계 최대 면세점이 있다. 다이아몬드로도 유명하다. 매력 있는 항구지만 항만국 검사를 받는 바람에 상륙은커녕 정신없는 사흘을 보냈다. 다음은 지구의 꼭대기 러시아 무르만스크(Murmansk). 노르웨이 연안을 따라 아이슬란드보다 높이 올라갔다. 항해하는 내내 노르웨이의 험준한 설산이 보였다. 레이더로 거리를 재니 100킬로미터가 넘었다. 과연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우리가 아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5밀리미터 차이
항해사는 매일 4시간씩 2번, 총 8시간 동안 항해당직을 맡는다. 3항사는 매 8시부터, 2항사는 매 12시부터, 1항사는 4시부터다. 4시간 당직의 전통은 콜럼버스가 항해했던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갑판에 모래시계를 세워두고 시간을 측정했다. 30분짜리 모레시계를 8번 뒤집으면 4시간이 지나 당직이 끝났는데, 유리를 등불로 데우면 관이 팽창해 당직이 서둘러 끝나기도 했다. 시간을 잘못 측정하면 하루 사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계산할 수 없어 항해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모래시계에 잔꾀를 부린 선원은 채찍질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듯 배에서 가장 중요한 항해를 하는 데는 사람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요즘은 GPS와 레이더 같은 첨단장비가 발달해 사람의 역할은 장비를 감시하는데 그친다. 예전에야 선박 위치를 태양을 관찰해 구했다지만, 이즈막은 기계가 그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항해당직 외에 1등 항해사는 화물을 관리하기 때문에 ‘화물장’, 2등 항해사는 항해를 맡아 ‘항해장’이라 부른다. 3등 항해사인 나는 의약품과 소화 장비를 관리한다. 복사, 출력, 편집이 매일이다. 잡무다. 나이 많은 선장님들은 컴퓨터에 서툴러 내가 대신한다. 때때로 연필과 지우개, 풀 같은 학용품 따위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한다. 가위로 자르고 붙이고 떼는 게 일이다. 시시하다. 처음 배에 올라서는 이게 뭔가 싶었다. 창고에 앉아 테이프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각각 몇 개 남았는지 셀 때면 학창시절 광고지 5천장을 접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한 배는 이게 아닌데….

3항사의 잡무는 연초에 절정이다. 서류를 죄다 새로 만든다. 배에서는 문서에 펀치로 구멍을 두 개 내어 서류철에 끼우는데, 가짓수만 50개가 넘는다. 일은 그 때 터졌다. 종이를 서류철에 매는 쇠 클립의 길이가 중구난방이다. 구입할 때 길이를 정하지 않는 바람에 70mm, 75mm, 80mm가 들어왔다. 서류에 구멍을 뚫고 철에 끼우려고 보니 구멍과 쇠 클립의 간격이 다르다. 그러면 펀치 간격을 조절하고 구멍을 다시 낸다. 벌써 구멍이 세 개가 생겼다. 다른 사람도 내가 만든 철에 제 서류를 끼울 때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일을 두 번씩 하면서 종이는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한숨을 쉬었다. ‘이 바보 같은 3항사’라고 하면서…. 산더미 같은 서류 한 장, 한 장에 내 험담이 붙었다.

나는 나름 싹싹한 편이어서 업무를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속이 불편하다. 누구보다 똑 부러지게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하루 수십 번씩 서류를 정리할 때마다 나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쇠 클립 길이가 5밀리미터 짧아서. 사소한 일을 못하면 중요한 일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작은 일이 무서운 건, 실수했을 때 그것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믿고 배를 맡길 선장은 없다. 나는 끝내 서류를 죄다 꺼내 쇠 클립 길이를 모두 맞췄다. 그러나 3개월간 헛구멍 난 서류들은 쉽게 가릴 수 없다. 이제라도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 실수연발 늦깎이
새벽에 곤히 자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지금 몇 시예요!
2항사는 냉랭하게 쏘아붙이고 수화기를 거칠게 내렸다. 벽에 걸린 배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자명종은 3시를 가리킨다. 아차! 한 시간 전진한 걸 깜빡하는 바람에 당직에 늦었다. 어제 내가 이렇게 방송했다.
-선내에 알립니다. 금일 본선은 한 시간 전진합니다.
나는 어제 배의 시계를 1시간 앞으로 돌려놓고, 내 자명종은 그대로 놔뒀다. 배는 동이나 서로 15도씩 항해할 때마다 1시간씩 시계를 돌리는데 이를 전진, 후진이라 부른다. 지구 한바퀴 360도를 24(시간)로 나누면 15도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15도를 가면 해가 전보다 한 시간 일찍 뜬다. 서쪽은 반대다. 그래서 동쪽으로 가면 시간을 당기고 서쪽으로 가면 늦춘다.
배에 사정이 생겨 당분간 나는 4시부터 8시까지 일한다. 새벽에 상급자인 2항사의 당직을 인수하니 늦으면 곤란하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실수로 사고를 쳤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선교에 올라갔다. 이미 4시 10분. 교대시간을 한참 넘겼다. 배에서는 근무시작 15분 전에 선교에 오는 게 원칙이다. 항해 상황을 익히고, 어두운 바다에 맞춰 동공이 열리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2항사는 잔뜩 화난 표정이다. 꽤나 언짢아 보이는데 시원하게 말은 안한다. 그는 내 고등학교 1년 후배다. 하급자가 늦깎이, 그것도 가까운 인연이 왔으니 족보가 꼬이기 시작했다. 불편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내가 실수 없이 잘해야 하는데, 가끔 이렇게 깜빡할 때가 있다. 2항사는 침착하게 담아둔 말을 꺼냈고, 나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내가 잘못했지만 왠지 속이 거북한 게 사실이다. 종일 울적했다.

처음 배에 왔을 때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3등 항해사라면 일단 반말이다. 그건 전화기 너머 얼굴 모르는 본사 직원도 똑같다. 대부분 해양고교나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승선하기 때문에 3등 항해사와 기관사는 어리다. 상급자 일수록 나이가 많다. 또 해양계 학교 출신들은 승선으로 군복무를 대신한다. 이런 사정이 얽혀 위계가 엄격하다. 하지만 나는 병역을 정식으로 마쳤고, 이곳은 직장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군대처럼 엄하고 상명하복을 강조한다. 다시 이등병이 된 느낌이다. 못마땅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 않던가. 나는 모두 내려놓고 바짝 엎드렸다.

승선하기 전까지 나는 늦깎이의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대학을 재수한 것도 아니고, 군대를 늦게 다녀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학방송국 실무국장을 하며 다른 동아리 3학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재수한 후배들 때문에 불편했을망정, 어린 선배 때문에 어려운 적은 없다. 그런 내가 나이 서른에 이등병 역할을 다시 하려니 속이 배배 꼬인다. 어른이 되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세상의 갖은 맛을 보며 기쁨은 나누고, 슬픔은 꾹꾹 눌러 삼키는 것. 내 고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 항구를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그 사이 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돌아 러시아의 북서쪽 끝 콜라반도에 들어섰다. 눈 덮인 동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무색의 도시 무르만스크가 나왔다. 이파리 없는 나무로 뒤덮인 검은 산, 그 속에서 검은 연기를 뿜는 재래식 가옥. 수면은 무거운 구름을 머금어 하늘처럼 어둡다. 반복하는 강추위에 나뭇가지 같이 금이 생긴 건물과 빛바랜 페인트. 바닷물에 살이 터져 누렇게 녹슨 배와 성냥갑처럼 똑바로 선 아파트. 그 안을 비추는 전구의 어두운 주황빛. 본래 새하얀 눈은 도시를 메운 석탄 가루로 덮이는 바람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지 땅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랄산맥 동쪽, 중앙아시아 한복판에서 수만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석탄은 어느 날 요란한 굴착기 소리에 깨어났다. 석탄은 기차를 타고 열흘 밤낮을 달려 러시아 무르만스크까지 왔다. 러시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여기서 여정을 마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다. 이곳은 대륙의 끝. 이제 석탄은 우리 배를 타고 공장과 발전소가 있는 유럽 대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켜켜이 쌓은 장구한 시간의 에너지를 불태운다. 땅 속 깊은 곳에 갇혀 있던 세월의 먼지. 항구는 검은 석탄의 아우성으로 뒤죽박죽이다.

무르만스크는 정확히 내가 바라는 곳이다. 도시가 항구를 감싸고 있다. 배에서 500미터만 걸어 나가면 북적이는 시내다. 부두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시공의 문을 지난 것처럼 다채로운 사람 냄새가 덮친다. 특히 이곳은 화물을 작은 크레인으로 싣는 바람에 닷새는 족히 접안한다. 배에서 도시의 속살이 보이는데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상륙에 게으른 선원들도 삼삼오오 밖으로 나갔다. 나도 바람에 실려 다니는 나뭇잎처럼 도시를 활보했다.
3월 러시아는 계절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하루가 다르게 겨울을 털어내고 봄옷을 입는다. 매일 10여분씩 낮이 길어진다. 겨우내 쌓인 얼음이 슬슬 녹는다. 처마에서 고드름이 뚝뚝 떨어지고 웅덩이마다 물이 고였다. 거리는 온통 진흙탕. 굴삭기가 바닥에 단단히 붙은 얼음을 걷어내느라 소란스럽다. 길섶 얼음 녹은 자리에 노오란 민들레가 힘겹게 뻗어 나왔다. 그걸 보고 미소 짓는 푸른 눈들을 보니,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모 각진 아파트가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부터 늘어섰다. 박물관의 유물처럼 보기 좋게 줄 세웠다. 색깔 없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다. 전체주의란 저런 것인가 보다. 무리 짓는 것만으로 무리 밖 사람을 억누르는 것. ‘아니요’라는 말이 쏙 들어가겠다. 저 아파트 아래 있는 것 하나로 모든 사람이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아니요’라는 말을 잘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보며 ‘노’라고 했다. 남의 사진기에 잡히는 것을 무척, 무척 싫어했다.

북위 70도. 무르만크스는 이 대륙 북서쪽 맨 끝에 있는 도시다. 그런데도 난류가 흐르는 바렌츠해를 접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러시아 항구 중 유일하게 사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1916년, 작은 어촌에 사람이 모이고 도로와 기차가 놓였다. 항구는 점점 커져 유럽을 향하는 러시아의 바닷문이 되었다. 마을이 전략적 요충지가 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과 러시아는 이곳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지금도 항구를 훤히 내려다보는 알료산에는 전사한 군인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러시아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입항하면서 대서양에서 작전하는 항공모함 쿠즈네초프 제독호와 북해함대, 핵잠수함을 봤다. 단단한 쇄빙선 여러 척이 소래포구 어선들처럼 줄지어 정박했다. 이 중 커다란 쇄빙선이 두 척 있는데, 하나는 1959년 건조한 세계 최초 원자력추진 ‘레닌호’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다른 하나는 2005년 만든 세계 최대 원자력 추진 ‘야말’호다. 길이 159미터로 우리 쇄빙선 아라온호보다 48미터 길다. 또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찻길의 종착역이 여기 있다. 도시는 치열한 2차 세계대전을 기념하는 박물관과 동상 같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항구를 보면 그 나라를 짐작할 수 있다. 전 세계의 공장 중국에는 갓 들여온 석탄과 철광석 같은 원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브라질 해변은 늦은 밤에도 축구인파로 가득하다. 911테러를 기억하는 미국은 이슬람권에 다녀온 선박에 총을 든 보안관을 태운다. 배들의 휴게소 싱가폴에는 연료와 선용품을 받으러 온 선박이 줄지어 있다. 전 세계 교역의 90% 이상이 바다를 통한다. 항구가 바쁘면 나라 경제도 활발하다. 부두가 한산하면 주변 도시도 죽어 있다. 나는 이 나라 끝자락에서 있지만, 동토 위에 피운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커피공화국, 산토스
우리는 러시아 석탄을 유럽 제 1항 로테르담에 내려줬다. 이제 브라질 산토스에서 설탕을 실어 아시아로 간다. 도버해협을 빠져나온 배는 남으로 남으로 나아갔다. 밤이면 별들이 포도 알처럼 알알이 매달렸다. 은하수 앞에서는 영웅의 별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너른 바다에 별똥별이 쏟아졌다. 당직서는 4시간 사이 눈으로 9개를 셌다. 이 중 하나가 우리 배 1해리쯤 앞에 떨어졌다. 같이 당직서는 타수가 ‘어! 어!’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초록빛 조명탄 같은 것이 궤적을 그렸다. 무척 밝아서 옆 사람 얼굴이 다 보였다. 이튿날 선원들은 이 유성이 배에 떨어졌을 경우의 위험성과 경제 가치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이튿날 아침 우리를 반긴 건 검은 수염고래. 온천수가 보글보글 끓듯이 사방 수십 곳에서 물보라가 뿜어 올라왔다. 그런 곳에서는 어김없이 집채만 한 고래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난생 처음 보는 고래다. 이 신비한 물고기가 잠시 모습을 보여 줄 때마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배를 타기 전에 꼭 고래를 보기 바랐다. 승선한지 5개월. 그토록 바라던 고래를 이렇게 쉽게 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사는 도시 밖, 이 먼 곳에도 수많은 바람결이 수많은 파도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마법에 경탄했다. 우리 지구는 이 깊숙한 곳에 이런 광경을 숨겨놓았다. 남들은 내 것이 아니어서 욕심 없이 바라 볼 수 있다는데, 나는 그걸 영원토록 갖고 싶어 사진기를 들고야 말았다.

# 산토스에서는 커피향이 난다
열흘을 달려 브라질 중부 연안 산토스(Santos)항에 도착했다. 서울의 관문 인천처럼 이 나라 최대 도시 상파울루와 바다를 잇는 항구다. 그러니 나드는 배가 많고 부두에는 화물이 가득하다. 짧은 사이 계절이 반대가 되었다. 우리는 개나리와 벚꽃, 철쭉도 구경 못하고 싱겁게 여름을 맞았다. 남위 24도. 추위도 더위도 없는 이 도시는 한참 우기다. 우리 장마철과 비슷하다. 손을 내밀면 바람의 무게가 잡히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묵직한 것이 오간다. 검게 썩은 목조건물, 눈물자국처럼 말라버린 구정물, 어두운 골목의 축축한 바닥이 우리를 맞았다. 낮게 깔린 구름이 만들어내는 이런 저런 모양이 신비하다. 내내 태양을 못 봤다. 잿빛 하늘은 소리 없이 음산한 비를 뿌렸다.

산토스 거리에는 커피 향이 난다. 담장너머 마을 어귀까지 풍기던 어머니의 된장찌개 냄새처럼, 가게마다 볶는 구수한 커피향이 도시 구석구석을 메운다. 어딜 가도 커피다. 허름한 식당의 단돈 몇 푼짜리 식사에도,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원에도 향긋한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어둑한 밤 커피향 가득한 골목을 걷노라면 이곳 사람들은 산소가 아니라 커피 향으로 숨 쉬는 것만 같다.

커피는 산토스의 원동력이다. 브라질은 19세기 말부터 커피경작으로 부를 쌓았는데, 대부분 이 항구에서 수출했다. 커피 덕에 항구가 생겼고, 돈이 흘러들었으며, 일자리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이민했다. 도시가 커지면서 축구팀이 생겼는데, 축구 황제 펠레가 산토스 축구클럽에 평생 몸담았다. 산토스는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난다. 그래서 산토스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크고 작은 카페가 각자 향으로 손님을 맞는다. 여기는 커피공화국, 산토스다.

도시를 활보하다 날이 저물어 브라질 대표음식 츄라스코(Churrasco)식당을 찾아갔다. 소와 양, 돼지와 닭 등 각종 고기를 꼬치에 훈제한 것이 끝없이 나온다. 직원은 ‘네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보자’는 듯이 고기를 권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 방금 덩어리에서 잘려 나온 살점은 숯의 온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나는 포크로 한 접을 집어 입에 넣었다. 고기 향이 퍼지며 입안에서 녹았다. 육즙이 스펀지에 담긴 것처럼 뿜어 나왔다. 하루 종일 쌓인 허기에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만찬의 기쁨은 잠시뿐. 다들 약속한 듯 숟가락을 내려놨다. 기름진 음식을 김치 없이 먹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경험 많은 1등기관사가 배에서 김치와 된장을 싸왔지만 냄새 때문에 선뜻 꺼내지 못했다. 다른 손님들 눈치를 봤다. 이럴 땐 타국에 있는 게 원망스럽다. 김치 대신 기름에 담근 이 나라 올리브를 주문했다. 포크로 기름을 털어냈지만 입에 넣자마자 미끄러운 것이 혓바닥을 감쌌다. 물컹한 알갱이를 앞니로 터뜨리자 텁텁한 과즙이 쏟아졌다. 나는 양칫물을 머금은 것처럼 어쩌지 못하면서도 직원에게 웃는 낯을 보였다. 머릿속에는 그저 검은 비닐봉지 속 김치를 손가락으로 쭉 찢어 한입에 넣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쌀쌀한 밤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바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숟가락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진수성찬도 김치 없이 못 먹는 우리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다.

# 매일 경기장을 그리는 아이들
여행은 영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소설 속, 가슴 벅찬 로맨스를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월미도에 가면 갈매기와 호객꾼뿐이듯, 나를 기다리는 건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는 그저 마음껏 보고, 듣고, 걷고, 만나고, 맛보고, 주고, 받으면 된다. 도시의 향을 맡고,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놀라고, 웃고, 떠들면서 이 도시를 느끼면 그만이다.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인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서로 말하게 되고, 이것저것 주고받게 된다. 처음 상륙했을 때 현지인들은 장난스럽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라고 했다. 나는 썩 유쾌하지 않아 반쯤 웃고 지나쳤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주로 티 없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관심을 보인다. 그런 낌새가 있을 때 얼른 웃어주거나 한마디 건네면 질문이 와르르 쏟아진다.

부루노가 그런 아이다. 이날 저녁 찾아간 산토스 해변은 축구인파로 가득했다. 파도소리와 환호성, 공차는 소리와 숨찬 소리가 섞여 들렸다. 200여명이 각자 모둠지어 맨발로 공을 찼다. 공이며 옷이며 갖춘 것은 초라하지만 선수들 눈빛은 시리게 총명했다. 해변에서 사진을 찍자, 부루노 이 녀석이 우리 쪽으로 공을 흘렸다. 공을 주우러 오면서 계속 시선을 보내는 게 아닌가. 내가 사진을 찍자며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멀찍이서 지켜보던 친구들까지 우르르 몰려왔다. 그렇게 어울리다 같이 공을 차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공하나만 있으면 금세 친해지는 모양이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해변을 뛰었다. 선원들 체력은 형편없고 발재간은 어설프지만, 이 친구들이 배려해 즐겁게 어울렸다. 시간만 허락하면 저녁을 먹고 합숙까지 할 기세였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될 즈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배로 돌아왔다.

부르노와 친구들은 매일 모래 위에 축구장을 그린다. 고운 모래가 두툼하게 깔린 바닷가는 발이 빠질 만큼 무르지도, 발이 다치도록 거칠지도 않다. 천연잔디처럼 곱고 푹신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소년은 학교를 파하면 바닷가로 몰려와 굳은살 벤 발뒤꿈치로 경기장을 뚝딱 그린다. 책가방으로 세운 골대와 낡은 축구공 하나면 충분하다. 해가 지고 숨이 가쁠 때까지 공을 찬다. 그의 축구장은 길이 일흔 걸음, 폭 마흔 걸음이다. 사춘기를 훌쩍 넘은 그의 걸음 폭은 예전보다 길다. 경기장은 코흘리개 시절보다 세배가 넘게 넓어졌다. 그의 경기장은 매일 달라진다. 피곤하거나 다리가 아픈 날이면 자기도 모르게 보폭을 줄이고, 친구들이 많이 모이면 폭을 넓힌다. 그래서 언제나 축구가 즐거울 수 있다. 날이 밝으면 부르노의 경기장은 파도에 쓸려 나간다. 그러나 그는 내일도 새 경기장을 그릴 것이다. 소년이 그리는 건 경기장이 아니라 펠레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이다.
이튿날 우리는 설탕 6만 톤, 20톤 트럭 3천대 분량을 싣고 두바이로 출발했다. 떠나는 날에도 두터운 구름이 내려앉았다. 커피와 츄라스코, 그리고 한밤의 뜨거운 축구. 짧은 여행 속에서도 산토스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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