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선사 성장을 위한 기반 조성을 중심으로

 
 
글로벌 해운경기가 말이 아니다. 건화물선 시황을 나타내는 BDI는 사상 최저 구간인 700포인트 대에서 오락가락한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운임사정이 좀 낫지만 2003년 이전에 비해 벙커가격은 최고 6배를 넘어 수익성이 좋지 않다. 금융위기로 2009년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대 슬럼프가 아니었나 싶다. 대공황 이후 세계경제가 후퇴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금년 세계경제는 살아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세계경제성장률이 나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IMF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2012년 3.2%에서 금년 3.5%로 성장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2014년 이후에는 4%대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예측의 내용이 중요한 것은 한국 해운이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위기극복에서 더 나아가 성장이란 고민을 함께해야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럼 어디에 성장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해운의 성장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해운의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효과가 해운시장에 가시화된 2003년 이후 금융위기 2008년까지 우리나라 해운은 급성장했다. 2003년 우리나라 선박량은 2,558만 DWT에서 2008년 3,676만 DWT로 44% 성장했다. 선사수도 50여개 사에서 164개 사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해운은 중소·중견선사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밑거름을 통해 우리 해운은 2010년 이후 세계 5위로 성장했다. 또 이러한 성장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중소·중견선사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산업의 저변을 확대시킴으로써 우리나라 해운의 다양성과 규모를 키웠다. 이러한 ‘다이나믹’한 과정이 없었다면,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해운이 어느 위치일지 의문이다.

같은 시기에 중국, 일본 및 유럽 주요 선주국의 해운도 대부분 커졌다. 중국효과가 준 선물이었다. 이러한 선물이 2008년 이후 갖고 있자니 손실이 늘고, 남에게 주자니 손해가 확정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게 벌써 4년째다. 이런 상황에서 선사들도 실적이 당연히 좋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일부 중소·중견선사들이 그나마 대형선사에 비해 나은 실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2009년 이후 대부분의 선사들이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대 벌크선사인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은 매물로도 나와 있는 상황이다. 중소·중견선사로 분류되는 벌크선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라리스쉬핑이나 장금상선 등 일부 중견선사는 어느 정도 상황이 낫다는 평가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대 대형선사를 제외하고, 어려웠던 2009년에도 실적을 냈던 고려해운 등 중소·중견 컨테이너선사들도 있다. 어려운 와중에 그나마 일부 중소·중견선사들이 선전함으로써 우리나라 해운을 지탱했다는 점이다.

최근 해운위기는 단순히 선사의 비이성적 투자가 부메랑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2008년 위기의 발단은 분명, 외부적 요인이다. 2008년 당시 충격으로 거의 모든 업종의 실적이 악화되거나 투자가 위축되었다.  2008년 이전에는 ‘세계화’ 이슈로 무역이 급성장하고, 중국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물을 실어 나를 선박이 분명히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선사들의 경쟁적 투자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운임 급등세가 나타난 것은 국제투자은행 등 금융자본의 선물운임시장(FFA)에 대한 투자를 감안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2003년 초 BDI는 1,738p에서 2007년 11월 최고 11,039p까지 치솟았다. 일종의 거품bubble이 발생했다. 이러한 총체적 리스크 관리 부재 상황은 금융과 선사의 합작품이라고 하는 게 옳아 보인다. 최근 ‘똑똑한’ 선박금융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충격에 대한 손해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안고 가야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고가의 선박에 대한 투자 책임은 선사의 몫이다. 그러나 선사들의 투자 책임은 이미 시장 내에서 선사들이 감내하고 있는지 모른다.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우리나라 해운의 성장과 다양성을 창출한 중소·중견선사들의 대부분이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이야기이다. 글로벌 대형선사들은 이미 자발적 성장의 기반이 되어 있다. 다소 어려운 국면이 있어도 다시 회생할 가능성과 역량이 있다. 굳이 정책적 보살핌이 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단도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되면, 해운업 성장을 위한 씨앗을 뿌릴 ‘밭’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어렵게 세계 5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데는 분명 중소·중견선사의 역할이 있었다. 글로벌 위기가 초래한 충격으로 이러한 밑거름을 걷어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원해도 효과가 적은 부분만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정되도록 하면 되리라 본다.

해운산업에서도 중소·중견기업 문제를 꺼낸 것이 ‘약자 보호’ 의미가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건설 및 IT분야 등에 비해 해운은 양극화 문제가 첨예하지 않다고 본다. 해운은 매우 분리된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공정거래 관계가 미미하다. 외항과 연안이 다르고, 외항에서도 원양과 근해가 다르다. 원양은 주로 대형선사, 근해와 연안은 주로 중소·중견선사의 시장이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의 경쟁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쟁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이다. 해운시장에는 국내문제인 ‘양극화’ 이슈가 적용될 여지가 적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중소·중견선사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낮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시장은 양극화가 분명 존재한다. Maersk Line, MSC 등 유럽 컨테이너선사들의 독과점적 위치, 글로벌 선사의 아시아 역내시장 잠식, Vale등 화주기업의 벌크시장 진입 등이 그것이다. 국제적인 규제도 유럽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의 2008년 10월 해운동맹 폐지, IMO에서 유럽의 역할 강화 등이 그것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우리나라의 규제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해운은 중소·중견선사들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가 없이는 세계시장에 있어 양극화의 희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중소·중견선사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단순히 국내 시각에서 본 ‘약자 보호’ 차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중소·중견선사는 어느 규모인가? 우리나라 대기업에 속한 선사는 한진해운, SK해운 등 약 11개사로 판단된다. 2010년 초 기준 우리나라 전체 선사는 170여개사로 중소·중견기업이 94%(159개사)를 차지한다. 선박척수는 중소·중견기업이 72%(673척), 선박량도 49%(2,180만 DWT)를 차지한다. 그 동안의 성장으로 해운의 중소·중견선사의 생산능력은 일반 제조업의 중소기업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중소·중견선사는 우리나라 해운의 성장을 위해 포기돼서는 안 될 자원이다.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100위권 이내 우리나라 선사는 8개사이다. 이 가운데 고려해운 등 5개사가 중소·중견선사이다. 우리나라 컨테이너선사는 모두 12개사 정도이다. 이 가운데 10여개의 근해선사들은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단일 국가로는 최대의 네트워크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벌크선시장에서는 확인되는 50위권 선사 가운데 8위 STX팬오션, 18위 한진해운 2개사가 대기업이고, 창명해운이 48위로 중견선사다. 컨테이너선 시장에 비해서는 세계 순위권 내에 중소·중견선사가 많이 포진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선사의 93%가 벌크선사다. 그래서 벌크선사에 대한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컨테이너선사들은 그나마 실적이 낫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는 선사 대부분이 중소·중견 벌크선사로 알려졌다.

그럼 중소·중견선사에 대해 관심이 필요한 부분은 어떤 것인가? 중소·중견선사들은 4가지 측면의 불균형 구도에 갇혀 있다고 본다. 첫째, 중소·중견에서 중견·대형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세계시장에서 중국, 일본, 유럽 등의 선사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거기에 대형선사 위주로 마켓 장악력이 커지고 있다. 중소·중견선사들이 규모를 키워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어려운 환경이 강화되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를 늘리기 위한 이들의 규모화가 필요하다. 세계시장이 포커스인 해운은 국내 경쟁보다는 글로벌 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금융의 불균형이다. 중소·중견선사가 아무리 실적이 좋다고 해도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 낮은 신용평가 탓에 금융이 어렵게 되는 악순환구조이다. 그리고 조건이 좋지 않은 제2금융권 위주의 자금 조달 구조가 문제가 된다. 국내 선박금융시장은 정책금융이 중심이 되고, 보조적으로 선박펀드가 있었다. 그마나 선박펀드는 대형선사 위주의 선박건조가 이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면, 성장성 있는 중소·중견선사라도 향후 전략을 짜는데 불편을 겪을게 뻔하다. 더욱 큰 문제는 단기 유동성 압박이다. 중소·중견 벌크선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판단됨으로 이에 대해 우선적으로 지원부터 하거나 금융권에 따라 이자율 인하나 만기 연장 등 쉬운 방식부터 적용범위를 넓히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선사가 할 부분이 없진 않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든, 실적과 비전에 대한 설명을 더하든 정부나 금융권에 성장성을 입증하는 책임은 선사에게 있다. 최근 금융권도 사정이 녹녹치 않아 더욱 그렇다. Basel Ⅲ 시행으로 금융권도 맞춰야 하는 요구사항이 많아 여신 규모가 충분치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금융권의 호의적 태도만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각종 지원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이러한 성장성에 관해 면밀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위기는 정부가 가이드하고, 금융권과 선사가 함께 풀어야 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셋째, 선원인력 확보에 있어 불균형도 있다. 대형선사들의 경우 선박관리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질 좋은 선원을 확보한다. 외국인 선원 채용에도 대형선사와 중소·중견선사가 다른 모양이다. 중소·중견선사들이 인력을 좀 더 수월하게 확보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인력 창출에 기여하는 선사에 대해서는 세 감면을 하거나 고용된 선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리는 방안 등을 통해서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선원 고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 중소·중견선사 위주의 ‘해외인력센터 건립’ 등을 지원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넷째, 정책의 불균형이다. 그 동안 대형화 위주의 정책 개발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 종합물류기업 인증제도,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규모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성장성 있는 작은 기업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산업 저변에 밑거름을 어떻게 뿌려야 하는지 좀 더 신경 써야한다는 말이다. 중소기업법상 정부는 매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추진할 중소기업시책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분야의 중소·중견 관련 정책은 특이점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정책이 대다수인 중소·중견선사에 특화되거나 고루 적용될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차제에 중소·중견선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관해 금융, 인력 및 제도 측면에서 종합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 해운법 제37조에 정부는 해운산업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공고하게 되어 있다. 세부 열거항목에 ‘중소·중견선사 육성에 관한 사항’도 명시해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책적 지원은 모든 선사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우량한 선사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시장원리가 작동하도록 하는 게 옳아 보인다. 우량한 선사에 대한 기준은 지원 정책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성장가능성을 보아 선박금융의 우선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와 구조조정 금융이 필요한 경우는 분명히 다르다. 또한 확장전략의 의사가 있는 선사는 M&A자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중소·중견선사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약자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 해운의 성장은 중소·중견선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저변이 약해지면 그 산업은 경쟁력이 사라진다. 향후 해운의 성장전략은 중소·중견선사의 성장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프레임을 통해 중소·중견선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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