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덕분에 서울구경 꿈 이룬 흑산도 어린이들 소재

1965년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대히트’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왕 성 상  wss4044@hanmail.net
왕 성 상  wss4044@hanmail.net
대중가요 <흑산도 아가씨>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黑山面을 소재로 한 노래다. 이 곡은 청와대 덕분에 서울구경의 꿈을 이룬 흑산도 어린이들이 바탕소재가 돼 만들어졌다.
노래사연은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서울에 초청받은 섬 지역 어린이들이 배가 없어 서울구경을 못 한다’는 일간신문 기사를 본 당시 육영수 여사(박근혜 대통령 어머니,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가 군함을 보내 아이들의 꿈이 이뤄졌다는 보도가 노래탄생동기가 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작사가 정두수씨가 흑산도 아가씨의 심정을 빌려 서울로 향한 ‘검게 타버린’ 마음을 애틋하게 그려내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카나리아 다방’서 신문기사 보고 아이디어
노래를 작사한 정두수씨는 지난해 한 언론에 <흑산도 아가씨>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다. 1965년 봄 정씨는 작곡가 박춘석씨와 스카라 계곡(인현동)의 ‘카나리아다방’에서 만나고 있었다.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서였다. 여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던 그 다방은 두 사람이 전속작가로 소속된 지구레코드사 부근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은 가요계 사람들의 단골찻집이었다. 서울 충무로와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인현동은 다방과 술집들이 즐비했다.

 
 
“가요는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건데….”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정서가 아니겠습니까?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정한情恨에서 노래를 찾아야겠지요.” “물론입니다. 바로 그런 것들이 지금 우리들의 몫입니다.”
만나면 늘 주고받는 이야기지만 그날 두 사람은 석간신문을 펼치다가 순간적으로 눈길이 부딪쳤다. ‘흑산도 어린이들과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가 사회면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흑산도 어린이들의 꿈, 이뤄지다! 육 여사 도움으로 해군 군함에 실려와 서울구경도 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학용품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이들을 가로막는 건 거센 풍랑이었다. 나중에서야 안타까운 이 소식을 전해들은 청와대가 곧바로 해군본부에 부탁해 소원을 풀어줬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이번 이미자 노래는 흑산도로 합시다. 어린이 대신에 아가씨로 해서….” <흑산도아가씨> 노래 탄생의 씨앗은 그렇게 움텄다.

노랫말에 섬 처녀 그리움, 외로움 담겨
정씨는 집으로 돌아와 흑산도 관련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섬. 노령산맥 말단의 침강으로 이뤄진 곳으로 목포와는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돼있었다. 서해안에서 ‘가거도’를 빼고 가장 먼 섬이었다. 홍어, 갈치, 조기, 삼치, 도미 등이 많으며 규사硅砂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인근 흑산군도黑山群島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돼있었다. 하지만 정씨가 노랫말을 쓸 때만 해도 정보가 어두운 시대라 그는 흑산도가 풍기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력을 갖고 작사에 들어갔다.

“검은 뫼섬 흑산도는 유배지가 아닌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님이던 정약전이 조선 정조 때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으면 이 대학자는 바닷가에 나가 고기 잡는 것으로 안타까운 세월을 보내야만 했을까.” “정약전은 고기를 잡아 어종별로 분류해 ‘자산어보玆山漁譜’란 역작을 남긴다. 이때 정약용도 전남 강진에 유배돼 바다를 보며 형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귀양살이를 한다. 마음 같아선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라도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정씨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섬 처녀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가사에 담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노랫말이 만들어졌고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로 음반이 나왔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노래가 히트한 배경엔 작사가, 작곡가, 가수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시대상황과 지역적인 특성, 사회적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어렵게 살아야했던 시절로 늘 바다에 나가살아야 했던 낭군을 기다리는 낭자의 가슴은 늘 검은 빛 흑산도처럼 검게 타 버렸다. 흑산도는 예로부터 조기, 고등어, 삼치어장이 성황을 이뤄 어민들 삶의 터전이었다. 정두수씨는 먼 바다로 나간 낭군을 기다리다 속이 검게 탄 ‘흑산도 아가씨’를 노랫말로 잘 그려낸 것이다.

1997년 흑산도 상라봉에 노래비
<흑산도 아가씨>가 유명해지면서 1997년 흑산도 상라봉엔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 때문인지 ‘흑산도 아가씨’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흑산도에선 옛날부터 해녀가 물일을 해 얼굴이 늘 섬의 색깔처럼 검게 타 ‘흑산도 아가씨’란 말이 생겼다.

 
 
노래 <흑산도 아가씨>는 지금과 달리 좀처럼 육지로 나가기 어려웠던 그 시절 흑산도 처녀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뭍을 그리워하며 ‘육지를 향해 검게 타버린 가슴’을 읊조려 더욱 인기였다.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의 ‘흑산도 아가씨’는 세 사람을 묶는 대중가요의 서곡이었다. 이후 세 사람은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아네모네’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비에 젖은 여인’ ‘타국에서’ ‘못 잊을 당신’ ‘고향의 꿈’ ‘가을초’ ‘대답해 주세요’ 등 히트곡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피아노 시인으로 불린 박춘석씨의 뛰어난 작곡솜씨에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의 타고난 목소리까지 버무려져 가요계를 휩쓸었다.

<흑산도 아가씨>와 같은 제목의 영화 ‘흑산도 아가씨’(감독 한홍열)도 나왔다. 1963년 개봉된 이 영화엔 김승호, 장훈, 이경희, 이민자 등 그 무렵 인기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는 계몽적 작품에 가깝다. 기사취재차 흑산도에 내려간 방송국 기자와 아나운서가 섬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고 전국적 규모의 구호운동을 벌인다. 이에 대전시가 흑산도와 결연을 맺고 전국서 모인 성금으로 어선을 사서 흑산도 사람들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흑산도, 면소재지로 목포서 쾌속선으로 2시간
한편 노래의 배경지 흑산도는 어선의 중간기착지이자 폭풍이 심할 때 피항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히 뱃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술집 색시, 다방종업원으로 외지에서 많은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뭉뚱그려 ‘흑산도 아가씨’로 불렸다. 신안군, 특히 흑산도에 살았던 섬 주민들에겐 한이 많다. 그중에서도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겐 더욱 그렇다.

 
 

예리항에서 ‘전설의 고향’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된 처녀당과 초령목을 지나면 ‘S자’ 길로 유명한 12굽이 고갯길이 나온다. 뱀이 똬리를 튼 듯 속리산 가는 말띠 재를 떠올리게 한다. 고개에 올라서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상라봉에 이른다. 흑산도에서 전망과 경치가 가장 좋은 곳으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흑산도는 서남해 끝에 있어 해가 맨 나중에 지고 뜨는 곳으로 해돋이, 해넘이가 장관이다.
노래비 옆 홍어마스코트 버턴을 누르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온다. 500원 동전을 반주기에 넣으면 1절을, 2개를 넣으면 2절까지 들을 수 있다.

 
 
바다와 산이 너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 주민들은 바다보다 산의 숲이 우거져 ‘흑산’이라고 주장한다. 흑산도와 홍도는 쾌속관광선으로 2시간이면 오가지만 30년 전만해도 흑산도~목포항은 일반여객선으로 8시간, 노 젓는 어선으론 24시간쯤 걸렸다. 새벽이면 중국 땅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서해 서남단 가거도를 포함, 100개의 섬(유인도 11개, 무인도 89개)으로 이뤄진 흑산면은 비금도, 도초도를 지나면 나온다. 신안군 부속 섬과 멀리 떨어져있는 섬이면서도 신안군의 가장 큰 본섬이다. 서쪽으로 24km 거리에 홍도가 있다. 목포서 중국 쪽으로 92.7km 거리(동경 125。25”, 북위 34。41”)에 있는 흑산도 면적은 49.25㎢, 인구 4,800여명, 해안선 길이 41.8km. 우리나라 섬 중 유일하게 대다수 주민이 천주교인이란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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