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시범운항이 지난 9월 15일 시작됐다. 이에 발맞춰 각 항만도시들은 북극해 중심항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부산, 울산, 동해, 포항 등 북극항로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항만도시들이 저마다의 논리를 앞세워 북극항로 중심항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 그러나 북극항로 개방이 이들 항만에게 ‘장밋빛’ 미래만 안겨준다는 보장은 없다. 경제성에 입각한 화물·화주 유치책이 없는 개발계획은 지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 해양실크로드’라 불리우는 북극항로 상업용 시범운항이 9월 15일 개시된 가운데, 우리 항만들도 북극항로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대응전략 마련에 한창이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 극동과 유럽을 잇는 항로로, 기존 수에즈,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보다 거리가 짧아 항해일수를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현재 북극해는 연간 50일 정도 운행이 가능한 정도로 아직 상업운항 궤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2020년 이후에야 연중 100일 이상의 운항이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총 46척의 선박이 북극항로를 통과했다. 2009년에는 독일 국적선인 ‘프라테르니트호’와 ‘포레지그트’호가 울산항에서 화물을 싣고 러시아 블라드보스톡을 거쳐 로테르담항에 도착한 바 있다.


북극항로의 개방은 우리 해운항만 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동북아시아 항만 중 러시아와 인접한 우리 항만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부산항, 울산항, 동해항, 포항항 등이 북극항로 시대의 중심 항만으로 도약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 이유이다.
부산은 2009년 한국해양대에 ‘북극해항로연구센터’를 설립, 북극항로가 부산항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으며 지난 2010년에는 상설협의체를 구성했다. 올해는 ‘북극해 환경변화 대응 종합점검단’도 발족시켜, 내년 상반기까지 ‘부산시 북극해 대응전략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9년 독일 국적의 화물선을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항으로 연결한 경험을 갖고 있는 울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울산은 세미나와 포럼 개최를 통해 여론을 조성하고 있으며, 울산항만공사는 국제세미나를 통해 울산항을 북극항로 시대 거점 항으로 발전시킬 전략을 이미 수립한 상태다. 경북 포항 역시 북극항로 거점 항과 전진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강원도 역시 동해안 지역 항만을 앞세워 9월 10일 국회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론몰이에 나섰다.

 

부산- 북극해항로연구센터 등 관련연구 활발, LNG벙커링 시설·북극해 크루즈 관광 개발 계획
부산시는 2009년 한국해대에 ‘북극해항로연구센터’를 설립, 북극항로가 부산항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최근 ‘북극해 환경변화 대응 종합점검단’을 구성,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이곳에서는 북극해 관련 해운·항만 및 조선기자재산업 육성전략 수립, 부산항 이용선박대상 종합서비스 체계 구축, 북극해 크루즈관광루트 및 상품개발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를 통해 2014년 상반기까지 ‘부산시 북극해 대응전략 계획 수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특히 부산은 부산신항 건설을 통해 국제 물류 중심항만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2022년까지 신항내에 LNG 벙커링 허브항 조성도 추진된다. 동 벙커링 시설은 친환경 항만으로서의 항만 투자는 물론 향후 북극해 운항을 위한 기반 시설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또한 2015년 북항국제여객터미널이 완성되면 북극해 관광을 위한 크루즈 사업을 시작, 북극해 관광의 모항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등 크루즈 관광을 시작으로 북극해 개발시대를 대비한다.


지난 9월 4일에는 부산상공회의소 주최로 ‘북극해 항로 시대를 대비한 부산경제 발전방안 연구용역’ 중간발표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류동근 한국해양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부산을 포함한 동남경제권은 북극항로 이용에 따라 경제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조선, 해양플랜트, 해양자원, 해양에너지, 수산, 해상운송, 항만물류, 해양관광 등 해양산업 전반에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며 신규 일자리 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북극해 진출 사업은 북극해 기후변화, 북극항로의 경제성 및 안전성, 북극해 자원의 개발 수요 불확실성, 북극해 연안 국가간 영토 갈등 등 다양한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리스크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 오일허브 강점 살려 북극항로 중심항 추진
부산과 더불어 울산도 북극항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올해 개항 50주년을 맞아 울산항만공사는 지난 7월 ‘울산항 개항 5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를 개최하며 북극항로 개발에 따른 울산항의 전략을 내비쳤으며, 8월에는 울산항 관계기관 및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북극항로 활성화와 울산의 대응방안’을 주제로 특강을 개최하는 등 여론조성에 박차를 다하고 있다.

 

 
 
울산항이 내세우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동북아 오일허브’로 추진되고 있는 울산항의 액체물류 인프라 계획이다. 원유선을 중심으로 기항 선박수를 늘리고, 아시아-유럽-러시아를 연결하는 북극항로 에너지 수송라인 중심항으로 자리잡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7월 울산항 50주년 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선 김성국 성균관대 교수는 “북극항로가 열리면 동남아 지역의 홍콩항과 싱가포르는 쇠퇴할 가능성이 큰 반면, 울산항과 일본 서부지역 항만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해양자원 개발에 러시아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울산에는 대규모 정유공장이 위치하면서 액체화물에 대한 물동량이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울산은 이러한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 경쟁우위를 이어가기 위해 2020년까지 울산항을 ‘동북아 오일허브 항’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북극해 개발과 관련, 북극해의 석유와 천연자원이 개발되면 이를 울산항으로 유치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UPA 관계자는 “북극해가 개발되면 북극해의 천연자원은 울산항을 통해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국제물류 거점, 다목적 복합항만 등 다양한 항만기능을 개발해 북극해 시대의 거점항만으로 발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 포항시도 북극항로 중심항 경쟁 뛰어들어
부산항, 울산항과 함께 최근 동해안 항만들과 경북 포항항도 북극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원도는 동해안 항만이 북극항로 개척과 관련해 그 어느 항만보다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동해안 항만은 극동러시아, 중국 동북3성, 일본 중북부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대북방 무역의 전초기지로 이미 동해항과 속초항을 모항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사카이미나토, 중국 훈춘 등의 국제항로를 운항하고 있어 환동해권의 사통팔달 요충지라는 것이 강원도의 설명이다. 또한 수도권과의 접근성 측면에서 부산보다 육상 수송거리가 140㎞나 단축되고, 부산항과 울산항에 비해 북극항로 진입이 빠른 이점이 있다는 것이 강원도의 설명이다.

 

 
 
화물 수송 측면에서도 북극항로 운송화물과 일치하는 벌크와 에너지(LNG)를 동해안 항만을 통해 운송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미 강원도는 국내 시멘트의 51%를 생산해 이 중 96%를 동해항을 통해 처리하는 등 벌크화물 공급의 중심항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호산항은 대규모 LNG 인수기지를 2014년부터 가동하여 러시아 야말지역과 연계한 북극해 가스자원 중심항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국제세미나를 통해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에서 좋은 물건을 만들어 그중에서 작고 가벼운 것들은 철도를 따라서 북한의 동해안, 나진~선봉 지구,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수출하고 크고 무거운 물건들은 배로 북극항로를 거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꿈이 있다”면서 이 두 개의 길을 따라 2018 동계올림픽 때 관광객들이 철도와 크루즈를 타고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동해안으로 올 수 있도록 노선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최근 해양수산부를 방문해 동해항의 북극항로 모항 지정을 요청했으며, 박승호 포항시장도 북극항로 허브 선점을 위한 논리를 개발하라는 주문을 시 공무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부담 높고, 운송비 부담” 화주 반응은 냉담
“북극항로 수송 가능한 화물 조사부터 선행돼야”

이처럼 각 지자체가 지역 발전을 위한 북극해 정책을 내세우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정작 북극항로의 잠재고객인 화주들의 반응은 냉담한 수준이다. 북극항로 이용에 따른 사고위험이 크고, 아직까지 운송비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 이에 일각에서는 각 지역의 북극해 허브항 정책이 현 인프라 위주의 전략이 아닌 화물과 화주 중심의 전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쇄빙선이 화물선을 이끌어야 하고 화물선도 얼음 무게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내빙선으로 제작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낮은 기온으로 인해 기온의 영향을 덜 받는 벌크화물이 주로 운송되며, 컨테이너 화물이나 액체 화물은 제품이 얼지 않도록 추가적인 설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9월 15일 개시된 북극항로 시범운항도 화주 유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시범운항 모항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울산항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2년전 독일 국적선의 북극항로 운항 경험이 있었고, 자원 운송·개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유류화물이 많은 울산항이 적합하다는 분석에서였다.


그러나 이번 시험운항의 최종 도착지는 울산항이 아닌 광양항으로 선정됐다. 울산항 화주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북극해 운송은 리스크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이번 사업을 계획했는데도 불구하고, 화주들의 반응이 냉담했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적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 8월, UPA가 마련한 특강에서 홍성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장은 “북극항로 개발에 앞서 운송 화물의 적절성과 경제성 분석을 먼저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 소장은 “북극항로 운항으로 물류비용 절감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 “가령 현재 벌크화물을 위주로 운송하는데, 낮은 기온 등의 영향으로 컨테이너 운송은 어렵다”고 전제했다. 또한 그는 “울산의 수출입 화주를 대상으로 북극항로 수송이 가능한 운송화물부터 조사하고, 연관 산업의 경제성도 검토해야 한다”면서 “자치단체도 유망 비즈니스 모델 발굴을 위한 지원책을 수립·시행하고, 북극항로 운항 선박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사업은 이제 막 시작단계이다. 분명 우리 항만업계에 있어서 북극항로 개척은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북아 물류의 중심허브이자 북극해 시대의 중심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개발계획 보다는 경제성에 입각한 화주·화물 유인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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