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부산 여관방 코미디언 백금녀 생일축하 자리서 탄생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 작곡, 백야성 취입해 대히트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없으랴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못 잊어 미스 리도 못 잊어
만날 땐 반가웁고 그리워해도
날이 새면 헤어지는 사랑이지만 사랑이지만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정들고요 미스 리도 정들어
행복도 짧은 시간 꿈과 같건만
다음 날짜 다시 만날 마도로스다 마도로스다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노래의 ‘잘 있거라 부산항’은 대부분의 노래들이 그렇듯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50대 이후 장·노년층이면 다 기억하는 전통가요다.
‘홀쭉이’ 서영춘, ‘비실이’ 배삼용 작사 동참
노래가 태어난 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일이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용만 씨가 지방공연을 다닐 때다. 그때 연예인들은 방송이나 전속회사보다는 주로 극단에 소속돼 활동했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연주자, 무용수 할 것 없이 주 수입원이 쇼 단이었다. 방송출연이 가끔 있긴 했지만 특별히 인기연예인이 아니고선 가뭄에 콩 나듯 전파를 타는 정도였다. 그래서 극단멤버들은 지방순회공연을 많이 가졌다. 그럴 땐 한 달 두 달은 보통이었다.
김 씨가 소속된 쇼 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부산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코미디언 겸 배우였던 ‘홀쭉이’ 서영춘 씨, ‘비실이’ 배삼용 씨, 여자코미디언 ‘뚱순이’ 백금녀 씨 등 일행은 공연을 끝내고 밤늦게 여관에서 묵게 됐다. 숙소에 들어간 일행들은 공연을 끝낸 뒤라 방에서 한 잔 하자는 의견이었다. 마침 그날이 백 씨의 생일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파티자리가 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행은 백 씨의 생일축하 술잔을 돌렸다. “오늘처럼 좋은 날 술만 마시지 말고 이왕이면 기념노래를 하나 만들자”는 얘기가 우연찮게 나와 모두 그러기로 했다. 생일축하 한마디와 노랫말 한 소절씩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먼저 배삼룡 씨부터 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 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로 운을 뗐다. 다음은 서영춘 씨 차례였다. 역시 백 씨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라고 한 대목 읊었다. 마지막으로 김용만 씨 순서였다. 다음 공연지를 향해 부산을 떠나야하는 점을 감안,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라며 배삼룡·서영춘 씨가 만든 가사 앞뒤에 들어갈 노랫말을 즉석에서 지어냈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쇼 극단 단골 곡으로 단시간에 히트
이렇게 해서 대충 만들어진 가사는 평소 손발이 잘 맞았던 작사가 손로원 씨에게 전해져 매끄럽게 다듬어지면서 3절까지 나왔다. 여기에 김용만 씨의 뛰어난 악상에다 순발력으로 곡이 붙여졌다. 김 씨가 싱어송라이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지방공연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 짬짬이 노래를 작곡했다. 그가 만든 노래들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문제는 이 노래를 누가 취입할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노랫말과 밝은 음색으로 볼 때 신인가수 백야성(본명 문석준)이 부르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곧바로 취입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음반이 나오고 발표된 게 노래가 바로 ‘잘 있거라 부산항’이다.
이 노래는 쇼 극단의 단골 곡으로 단시간에 떴다. 백야성은 부산시내 극장 쇼가 있으면 수시로 초청돼 ‘잘 있거라 부산항’을 구성지게 불렀다. 관중들 앵콜이 쏟아지고 방송전파를 타면서 히트곡 대열에 들어갔다.
김용만 씨는 이 노래 말고도 백야성의 히트곡 ‘항구의 영번지’ ‘마도로스 도돔바’와 가수 현철이 부른 ‘못난 내 청춘’ 등도 작곡했다. 가수 백야성과는 아주 가까웠다. 둘은 한창 전성기 때 가요계 동료로서, 작곡가와 가수로서 절친했던 사이다. 그 무렵 가요계에 나돈 ‘김군백군(金君白君)’이란 용어는 두 사람의 성씨를 딴 것으로 명콤비였다. 김용만 씨는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월하의 공동묘지’ 등 5~6편의 주제곡을 만들었다. 영화 ‘팔도강산’ ‘연전부자’ 등엔 출연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에선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특히 1970년 후반에도 창작활동을 계속해 가수 ‘강병철과 삼태기’가 부른 ‘행운을 드립니다’를 비롯해 나비소녀의 ‘두 마음’ 등도 작곡했다.
김용만은 가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무대에 자주 섰다. 1953년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 ‘생일 없는 소년’(1958년), ‘회전의자’, ‘청산유수’, ‘청춘 보우트’, ‘여반장’, ‘청춘의 꿈’, ‘효녀심청’ 등 취입한 노래들이 많다. 처음 만요(漫謠)가수로 가요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트로트가수, 민요가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이가 80이지만 요즘도 방송출연, 무대공연 을 열심히 하며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생일날 ‘잘 있거라 부산항’ 노래 제작 계기를 만든 백금녀(본명 김정분)는 그날 함께 있었던 서영춘 씨와 명콤비를 이뤄 유명세를 탄 코미디계 여왕이었다. 서울여상을 나온 그녀는 몸매가 풍만(90㎏) 했고 애주가였다. 1958년 영화 ‘공처가’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름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있다. 김수용 감독이 배우로 쓰면서 김정분이란 이름은 배우로서 적합하지 않다며 ‘돈이 필요한 여자’란 뜻의 백금녀(白金女)로 지어준 것이다.
백야성, ‘마도로스 가수’ 별명
노래를 취입한 백야성은 1936년 서울 태생으로 어린 시절 태평레코드사무실과 가까워 일찍부터 많은 대중가수들을 만날 수 있어 음악을 하게 됐다. 1958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데뷔한 그는 마도로스와 관련된 노래를 많이 불러 ‘마도로스 가수’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표곡은 ‘잘 있거라 부산항’이며 ‘마도로스 도돔바’ ‘ 샌프란시스코 굿바이’ ‘항구의 영번지’ ‘마도로스 부기’ 등 히트곡들이 많다. 그는 특유의 섬세한 고음으로 인기를 모았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그런 창법이 이들 노래들과 함께 왜색, 저속시비에 휘말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