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 종물업인증제… 유사인증제 남발
인증포기 사례 속출, 정부정책 신뢰도 추락

종합물류기업인증제도가 도입된 지 7년이 넘었지만 ‘빈 껍데기’로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시점에서 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증정책의 보완이 시급하다. 물류업계에서는 종물업인증제의 애초 도입취지가 변질되었고 더 이상 인증이 무의미하다며 인증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 별 다른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유사한 인증제가 횡행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끓고 있다.

각종 인증만 주고 ‘나 몰라라’하는 정부에 대한 물류업계의 신뢰도도 크게 추락한 상태이다. 모호하고 현실성 없는 정부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기업들도 이제는 정부의 방향에 무조건 따르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법인세 혜택은 커녕 변질된 종물업인증제
종물업인증제가 유명무실해지고 변질되었다는 물류업계의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야심차게 도입된 종물업인증제는 업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시작됐으나 현재는 껍데기만 남은 인증제로 기업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종물업인증제는 자가물류의 3자물류 전환을 유도하고 중소물류업체간 M&A지원을 통해 전략적 제휴 및 기업군의 통합법인화를 통한 대형화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2006년 도입됐다. 당시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산업자원부 3개 부처의 공동부령으로 만들어진 종물업인증제의 가장 큰 이슈는 물류 아웃소싱을 하면 화주 법인세 인하 환급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이었다.

물류업계가 너도나도 종물업인증을 받기 위해 애썼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화주 세제감면과 이로 인한 3PL물량 확보를 위해서다. 하지만 종물업인증기업 이용화주에 대한 법인세 혜택은 당시 재정경제부와 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으며 현재는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인증서만 발급되는 기형적인 운영상황에 그치게 됐다.

업계의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의 목소리도 컸다. 인증업체들은 초기에 종물업 인증마크를 새기거나 화주기업 공개입찰 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등 직간접적인 홍보효과를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웬만한 기업 대부분이 인증을 받게 되고 실질적인 지원책도 없다보니 체감효과는 더욱 낮아지게 됐다.

한 인증기업 관계자는 종물업 인증을 받았으나 그 어떠한 혜택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종물업의 근본 취지가 무색하게 인증을 받은 이래 단 한 번도 세제혜택을 받지 못했다”면서 “2년마다 비용을 들여 인증유지는 하고 있으나 정부가 업계에게 인증만 주고 끝나버렸다”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2013년 현재 종물업인증기업 22곳
종물업인증제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는 분석과 함께 어렵게 획득한 인증을 포기하거나 반납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굳이 인증유지와 사후관리를 위해 불필요한 인력과 시간과 비용의 부담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물업의 최초 인증 수수료는 300만원, 정기검사 수수료는 150만원이다.

2007년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종물업인증을 획득했지만 인증유지를 포기했다는 한 포워더 업체 관계자는 “종물업의 경우 더 이상 의미가 없어서 재신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유사한 인증제들이 많아 중복과 낭비라고 생각해서 대표급 인증제로 AEO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현재 종물업인증기업은 22곳이다. CJ대한통운, 동방, 선광, (주)한진, 현대로지스틱스, 동부익스프레스, 영진공사, 천경해운, 흥아종합물류, 글로비스, 에버웨이즈(제휴), SINOKOR, 로지스올, 은산로지스, 인터지스, 범한판토스, 유성티엔에스, 세방, 한솔CSN, 천일정기화물자동차, 케이씨티시, 동원산업이다. 그동안 제휴로 인증을 획득한 곳은 24곳이지만, 2011년부터 인증대상이 단독기업으로만 국한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곳은 영진공사(영진공사, 디티씨), 천경해운(천경, 천경해운, 동진), 흥아종합물류(흥아해운, 국보), 에버웨이즈(한익스프레스, 극동티엘에스, 선진해운항공, 해우지엘에스), SINOKOR(장금상선, 평택컨테이너터미날), 로지스올(한국파렛트풀, 한국컨테이너풀, 한국로지스풀), 은산로지스(은산해운항공, 은산컨테이너터미널) 7곳이다. 나머지는 제휴가 해체되어 인증을 취소하거나 독자적으로 인증을 다시 받기도 했다.

종물인증업계는 인증업체를 이용하는 화주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혜택을 상향조정하고 인증기업에 대한 세제 및 금융지원책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물류시장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업계의 의욕도 한 풀 꺾이고 말았다.

인증기업 과다 배출 문제
종물업인증제의 또 다른 근본적인 취지는 글로벌 물류경쟁력을 갖춘 국가대표급 물류전문기업을 발굴해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종합물류기업 육성’이라는 기본목표에 따라 당초에는 1~5개 기업만 인증하여 육성하고자 했으나 전략적 제휴와 인증기준 완화 등으로 너도나도 인증을 받으면서 인증기업이 과다하게 배출된 상황이다. 대기업만을 위한 혜택이라는 지적과 함께 각 물류주체들의 반발이 생기면서 결국에는 제휴라는 형태가 인증제에 도입되므로 웬만한 물류기업은 대부분 인증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추진의지가 약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종물업인증제 검토단계부터 참여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선사나 항공사와 달리 물류기업의 경우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기업이 없기 때문에 DHL과 같은 국가대표급 물류기업을 육성하자는 차원에서 종물업인증제가 도입됐으나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눈치를 보며 흔들리고 다들 자기 밥그릇만 챙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 취지대로 종물기업을 꾸려나갔으면 지금 7년이 지난 현재 결과가 어땠는지 상상해 보라. 연구원들이 명확한 논리와 이론을 세워놓으면 공무원들이 밀어붙이고 뜻 있게 추진해 가야했는데 여기서 힘과 의지가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종물업인증의 근본취지를 다시금 되짚어서 제도의 실효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대형 물류기업의 한 임원은 “사실상 해외로 나가서 사업할 여력이 되는 곳이 얼마나 있나 의문이 든다”면서 “국내 토종 물류기업들이 해외로 나가서 성장하도록 정부의 지원과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증제 도입 마다 물류주체 반발 심해
종물업인증제가 도입될 당시 각 물류주체와 중소물류업계는 대기업만을 위한 특혜라며 반발이 극심했다. 중소물류기업들과 포워더들은 종물업인증 평가기준을 대폭 완화할 것과 전략적 제휴가 용이하도록 개선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종물업인증제 도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종물업인증제 도입을 둘러싸고 대형 물류업체들과 그에 비해 영세한 규모의 물류업체들은 극명히 나뉜 입장차를 보였으며 결국 전략적 제휴로도 인증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종물업인증제 이후에는 곧바로 우수화물운송업체인증제가 시행되어 또 다시 업계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종물업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 화물운송업체들이 대부분 인증을 획득했으나 종물업인증제와 내용상 중복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인증제를 모두 받은 업체들도 꽤 있었다.

새 인증제가 시장에 도입될 때마다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물류업계의 상황은 편치만은 않다. 내년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우수포워더 인증제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우수포워더 인증제는 국제물류 네트워크, 주선실적 등이 우수한 업체를 인증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정부는 이를 통해 등록기준 미달 부실업체의 퇴출을 유도하고 국제물류 서비스 질을 제고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포워더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대다수가 중소업체인 포워더의 입장에서는 우수인증제가 기존의 대형 물류업체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으며 시행을 유예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실질적인 혜택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기업과 중소물류기업 육성에 대한 접근방식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유사인증제 횡행, 울며 겨자먹기로 딴다
현재 물류업계에 시행되고 있는 인증제는 종물업인증제를 시작으로 우수화물운송업체인증제, 녹색물류인증제, 우수물류창고인증제, 글로벌물류기업육성제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해 AEO인증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떠오른 상황이다. AEO를 뒤늦게 준비 중인 한 종물업인증기업은 “계속 미루다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AEO 신청을 제출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00만원의 수수료가 드는 우수물류창고인증제는 지난해 도입됐으며 법률상 지원근거는 있지만 아직까지 지원예산은 없는 상황이다. 인증을 받은 업체들은 별 다른 혜택은 없으나 영업 홍보효과를 위해 획득했다고 설명한다.

또 종물업인증제의 본래 취지를 살린 글로벌물류기업육성제가 지난해부터 등장했다. 이는 기존의 양적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국내 기업을 선정한다는 것이다. 1차로 6개사가 선정됐으며 올해는 선진물류해운항공과 한솔CSN이 선정됐으나 관련업계는 이 역시 종물업인증제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업계는 유사 인증제들에 대해 “말만 다를 뿐이지 다 거기서 거기”라도 지적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업계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고 혜택도 없는 인증제가 남발되면서 비슷한 인증제로 업체들만 골탕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웬만한 기업들이라면 시장에 도입되고 있는 인증을 3~4개 정도 중복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장사를 못하고 수익을 못 남기는 상황에서 인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서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업체들은 더 이상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또 인증의 혜택이 전무한 상황에서 비슷한 인증제가 자꾸만 도입되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부정책 실망감 커져, 무관심 우려
하지만 업계는 시장에 도입되는 인증제를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증제에 별 다른 혜택이 없더라도 경쟁사의 움직임에 민감하기에 다른 회사들을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인증을 획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심지어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부서 간 인증의 필요성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다른 부서에서 ‘이 인증제가 없으면 안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따놓은 경우는 있지만 불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증제 등 전반적인 물류정책에 실망감이 더해지면서 일각에서는 더 이상 정부에게 기대하기 힘들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2007년 출범한 국제물류펀드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는 국내 물류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1조 3,800억원에 달하는 금융시스템이지만 설립 이후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한 채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또 올 초 해양수산부가 출범하면서 기존 국토해양부에서 전담하던 물류통합행정이 2개 부처로 갈라짐에 따라 물류의 시너지효과가 약해졌으며 부처 내 찬밥신세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류업계는 정부가 이미 벌여놓은 일들도 다 못한다며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각 회사의 임원들로서는 물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으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의지가 보이지 않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의 동맥역할을 담당하는 물류산업이 창조경제의 선도자이자 우리 경제의 효자산업으로 거듭나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알맹이가 빠진 인증제를 비롯해 말 뿐인 정책이 매년 거듭되면서 업계의 실망은 커지는 가운데 잃어버린 업계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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