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 Rainbow'호 타고 일조·곡부·태산을 가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접점 '중국'

 

 

크루즈 관련 기사를 한편 쓰고 나서 ‘배타고 떠나는 여행’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던 기자에게 이번 ‘평택-일조간 카페리 취재기행’의 기회가 돌아온 것은 그야말로 천운(天運)이라 할 수 있었다. C&훼리의 협조로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4박 5일간 평택과 일조를 잇는 'KC Rainbow'호와 일조시, 곡부, 태산 등 산동성 일대를 돌아본 감상을 정리했다.

평택항에서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 KC레인보우 호의 선수
평택항에서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 KC레인보우 호의 선수

 

바다 위의 호텔 'KC Rainbow'호
평택항 터미널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부두로 나오니 서해대교를 배경으로 'KC Rainbow'호가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평택 국제여객터미널에서 'KC Rainbow'호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 거리가 멀지도 않고 지저분한 화물들이 널려있지도 않아서 깔끔하고 인상 좋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박중인 KC레인보우호
정박중인 KC레인보우호
'KC Rainbow'호의 선내에 들어서니 먼저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이러한 시설은 간단하지만 'KC Rainbow'호가 고급 선박이라는 첫인상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올라가니 각 복도와 계단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로비 한편에는 GS25 편의점이 조명을 밝히고 있고 반대편 카운터에서는 승무원들이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호텔의 느낌이었다.


기자단에게는 가장 좋은 선실인 로열 스위트룸이 제공되었는데, 방으로 향하는 복도 옆으로 식당과 영화 상영 등을 하는 이벤트 룸, 그리고 맥주를 판매하는 바가 늘어서 있었다. 'KC Rainbow'호에는 이 외에도 오락실과 체육시설, 노래방, 사우나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중 백미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큰 창문이 달린 사우나라고 하는데, 기자들이 묵은 로열 스위트룸에는 각각 샤워실이 포함되어 있어 이용해볼 기회는 없었다. 로열 스위트룸은 깔끔히 정돈된 비즈니스 호텔을 연상시키는 방으로 냉장고와 TV 등 전자제품도 잘 갖춰져 있었다. 특히 TV는 위성방송과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한국 방송을 즐길 수 있다.

 

KC레인보우호의 실내. 호텔을 방불케 하는 객실(사진 좌측), 로비에 입점해 있는 GS25 편의점(사진 우측 상단), 면세점에서는 실용적인 선물들을 판매하고 있어서 귀항하는 길에 대부분 매진되었다. 한 관광객이 쇼윈도에서 선물을 고르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
KC레인보우호의 실내. 호텔을 방불케 하는 객실(사진 좌측), 로비에 입점해 있는 GS25 편의점(사진 우측 상단), 면세점에서는 실용적인 선물들을 판매하고 있어서 귀항하는 길에 대부분 매진되었다. 한 관광객이 쇼윈도에서 선물을 고르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

여장을 풀고 곧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했다. 뷔페형식의 레스토랑은 이용료가 5,000원으로 다양하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맥주바 등 다른 수익성 위락시설들이 아웃소싱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에 반하여 레스토랑은 수익성이 떨어져서 C&훼리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KC Rainbow'호 이용객의 90% 이상인 소무역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식사를 위해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많아 레스토랑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KC Rainbow'호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관광 상품 이용객이 늘어날 때를 대비해서 꾸준히 레스토랑 운영에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면서 과연 편하게 잘 잠들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었으나, 정작 자리에 누워보니 침대는 편안하고 큰 진동이나 소음도 느껴지지 않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빠르게 발전 중인 일조시

일조시는 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도시로 새로운 도로와 함께 수많은 신축건물들, 그리고 분양 광고판을 접할 수 있었다
일조시는 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도시로 새로운 도로와 함께 수많은 신축건물들, 그리고 분양 광고판을 접할 수 있었다

일조(日照)시는 중국연해의 중부, 산동반도 남단에 위치한 총인구 300만 가량의 도시로 그 이름은 한자의 의미대로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조에 입항하면서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찬란한 햇살이 아니라 부연 안개였다. 게다가 안개의 정체도 평범한 물안개가 아닌 공해에 의한 것임을 매캐한 냄새에 의해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항만들의 많은 국제여객터미널들과 마찬가지로 일조항도 변변한 여객부두를 마련하지 못해 벌크화물들의 비산먼지가 휘날리는 화물부두 한복판에 하선하게 되었다. 부두에 내려서자마자 중국에 발을 디딘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혔으나, 사회주의 사상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하선하는 여객들을 응시하고 있는 제복의 사나이들이 무서워서 카메라를 꺼내들지도 못했다.

 

그 친구들이 군인인지 공안인지 그냥 항만 직원들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중국에는 제복을 착용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부두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정도 이동하면 나타나는 여객터미널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모두 제복일색인데, 우리나라 세관직원들의 제복이 편안함을 주는 양장 스타일이라면, 중국의 제복은 국방색에 견장까지 달린 말 그대로 군복 스타일이라서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겉모습에서 풍기는 위압감과는 달리 직원들 모두 상냥한 말투와 미소로 여객을 맞이해줬다. 기자단이 통과한 창구는 특히나 제복이 잘 어울리는 여직원이 입국심사를 맡아줘서 하선시 느꼈던 긴장감을 많이 풀 수 있었다. 여행 가이드 분의 설명에 의하면 일조항 여객터미널은 특히 직원들의 친절 교육이 잘 되어있어서 중국내 다른 항만들에 비해도 유난히 친절한 편에 든다고 한다.

 

일조항 작년 컨처리량 25만teu. 올해 50만 예상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일조항 홍보관. 입구 옆에 황금빛 글자들이 찬란한 거대한 머릿돌이 중국다운 스타일과 규모를 느끼게 해준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일조항 홍보관. 입구 옆에 황금빛 글자들이 찬란한 거대한 머릿돌이 중국다운 스타일과 규모를 느끼게 해준다
입국심사를 마친 기자단은 일조항 홍보관으로 이동하여 홍보관 안내원으로부터 일조항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일조항은 주변 1km 범위 내의 수심이 평균 13m 정도이며, 태풍이 불지 않는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석탄과 곡물, 목재, 광물 등을 주로 취급하는 벌크 항만으로 현재 연간 벌크화물 8,000만톤 정도를 처리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2억톤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컨테이너 처리 능력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어서 150만teu의 연간 처리 능력과 20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컨테이너 야적장을 갖추고 있다. 일조항의 2006년 컨테이너 처리량은
기자간담회에 이어진 만찬. 장 롱잉 일조시 여행국 부국장(우측)에게 건배제의를 하고 있는 해사경제신문의 정웅묵 국장(좌측). 가운데는 맹 칭뱌오 일조항만국 부국장
기자간담회에 이어진 만찬. 장 롱잉 일조시 여행국 부국장(우측)에게 건배제의를 하고 있는 해사경제신문의 정웅묵 국장(좌측). 가운데는 맹 칭뱌오 일조항만국 부국장
25만teu였으며, 올해는 100% 성장한 50만teu 처리가 예상된다고 한다.


일조항 홍보관은 민간인은 접근이 어려우며 주로 고위층 인사나, 이번 기자단과 같은 외국인 내빈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시설임에도 아주 거대한 규모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항만 브로슈어는 제작해 놓은 것이 있으나, 국가 정보이기 때문에 나눠줄 수는 없다는 점 등에서 아직은 사회주의 국가의 아리송한 정책을 느낄 수 있었다.


견학을 마친 기자단은 시내의 Bi Bo 호텔에서 맹 칭뱌오(Meng QingBiao) 일조항 항만국 부국장과 장 롱잉(Zhang RongYing) 일조시 여행국 부국장이 함께하는 점심식사 겸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맹 부국장과 장 부국장은 각각 일조시의 항만정책과 관광정책의 발전 상황을 간략히 소개한 뒤 일조시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C&그룹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에 C&그룹 홍보실 책임자 명재곤 상무는 “초기에 평택-일조 항로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협력과 도움을 준 일조시 관계자들에게 큰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곡부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기위해 관통한 일조시내는 ‘공사중’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넓은 길이 잘 깔리고 있고 여기저기 타워크레인들이 우뚝 솟아서 아파트와 빌딩들을 지어올리고 있었다. 모두 일조가 한창 발전하는 도시라고 입을 모으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문제는 하드웨어적인 설비는 잘 갖춰나가고 있는데, 소프트웨어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일단 횡단보도는 고사하고 웬만한 사거리에서도 신호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적어도 8차선은 넘는 사거리에만 신호등이 설치되는 것 같은데, 그나마도 잘 지켜지지 않아서 무단횡단과 과속, 역주행이 난무하여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사정은 고속도로도 비슷하여 길은 잘 닦여있었으나 간혹 사람들이 중앙분리대를 따라 거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공자님의 가르침 속에 시간이 멈춘 곡부

 

 

 

 

 

 

 

 

 

 

 

 

 

 

 

 

 

 

소싯적 TV에서 한·중·일 합작 애니메이션 ‘공자전’을 해준 일이 있었다. 실제로 공자님이 그 애니메이션에서처럼 꽃미남이셨을지는 의문이지만, 과연 모든 이들의 ‘선생님’이란 호칭을 받으실만한 삶을 사셨다는 점에서 기자는 공자님의 열성 팬이 되어버렸다. 비록 한문에 약하여 공자님의 철학을 온전히 공부해보지는 못했으나 그 가르침의 단편이나마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오던 차에 공자님의 본향인 곡부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곡부는 예전의 성읍이었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도시로서 실제 성벽이 내성 지역을 빙 두르고 있다. 곡부에는 110여 곳에 이르는 역사 문화 유적이 있으며, 이 유적들의 보호를 위해 중국정부는 내성에 대해 개발 제한 정책을 실시했다.


곡부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곳은 궐리빈사라고 하는 고풍스러운 호텔이었다. 개발 제한정책에 의하여 높이는 2층밖에 되지 않았지만 곡부 내성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이라고 한다. 호텔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위쪽으로는 공자님의 여정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었고 옆쪽 벽에는 그 가르침이 황금빛 글자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 과연 공자님의 동네에 와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짬이 나 내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기품이 넘치는 공자님의 마을이라서인지, 아니면 국가에서 철통같이 관리하는 관광지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거리에서 거지나 호객꾼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조명이 화려한 쇼윈도를 갖춘 옷 가게들과 미용실이 즐비한 가운데, 인력거나 마차가 성문을 지나 자동차들과 함께 아스팔트 도로를 질주하는 광경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춤을 통해 공자님의 가르침을 깨닫다
‘행단성몽(杏壇聖夢)’은 공자님의 가르침을 200여명의 무용수가 율동으로 표현하는 집단 무용극이다. 행단성몽을 공연하는 행단극장은 기자단이 묵고 있던 숙소에서 차량으로 10분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 개의 기둥이 우뚝 솟아있는 극장 입구의 웅장함부터 대륙의 힘이 느껴졌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행단성몽의 공연장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행단성몽의 공연장면

 

입구를 들어서자 동시에 200명의 무용수가 올라선다는 거대한 무대와 1,00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공연은 온 인류는 형제이니 인(仁)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는 내용으로 무대 양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서비스되는 한글 자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공연의 도입부에서는 공자님의 가르침과 공자님 당시 중국의 무용과 무술, 기예를 보여준 뒤 점차 무용과 음악을 통한 세계 각국의 문화적 공통점을 발견시켜준다. 뒤이어 견우와 직녀 등 유명한 커플들이 등장하여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는 사실과 전쟁과 전란의 비극과 그 슬픔을 무용으로 표현하며 사랑으로 이런 어려움을 넘어서자는 공자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공연은 마무리 된다.


공연에 대한 감상은 감동과 희열 그 자체로 군무의 장려함과 단련된 무용수들의 절도있는 동작도 멋졌지만, 진짜 놀라움은 공연자체가 지닌 ‘상업성’에 있었다. 문화혁명 당시 완전히 부정을 당했던 공자의 유산이 관광 상품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공자님의 가르침을 온 세계에 알린다고는 하지만 인도나 유럽, 우리나라의 전통무용까지 등장하는 건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처럼 보인다.

 

행단성몽의 주인공이시지만, 단 두번만 짧게 등장하시는 공자님(사진 왼쪽). 관객석을 한바퀴 돌아주는 행단성몽의 무희들에게서 자본주의를 제대로 깨우친 중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행단성몽의 주인공이시지만, 단 두번만 짧게 등장하시는 공자님(사진 왼쪽). 관객석을 한바퀴 돌아주는 행단성몽의 무희들에게서 자본주의를 제대로 깨우친 중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관광객에게는 아리랑에 맞춰 춤추는 한복에 족두리를 쓴 무용수들뿐만 아니라 상모돌리기까지 등장하는 철저한 팬서비스를 제공해줬다.
반면 이날 관객이 100명도 채 되지 않아 무용수들이 관객보다 많을 지경이었음에도 공연이 철저하게 진행되는 걸 보면,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공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본 기자는 두 가지 실수를 했는데, 무대에서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공자님과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과 공연의 감동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출구에서 판매하고 있던 VCD를 덜컥 구매한 것이었다. 공연실황인줄로만 알고 비싸게 구매한 VCD는 귀국해서 재생해보니 자막도 없는 곡부지역 관광 가이드였다.

 

별미! 매미 유충과 양고기 꼬치
공연관람 후에 기자단은 곡부의 살아있는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가이드 선생님의 안내로 호텔 앞에 있는 시장을 향했다. 낮에는 상인들이 다양한 생활용품을 팔던 시장이 밤에는 거대한 노천주점으로 변해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여기저기 모여앉아 맥주 한잔과 식사를 즐기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자단도 끼어 앉았다.

 

포장마차의 화려한 안주재료들. 주로 다리가 많은 것이나, 뭔가의 내장, 미끈덕거리고 끈적거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포장마차의 화려한 안주재료들. 주로 다리가 많은 것이나, 뭔가의 내장, 미끈덕거리고 끈적거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술은 곡부의 특산 명주인 ‘공부가주(孔夫家酒)’를 접할 수 있었다. 안주는 포장마차에서 재료를 고르면 주인장이 조리를 해주는 방식인데, 재료들이 주로 매미유충을 비롯하여 뭔가 알 수 없지만 다리가 많고 식욕을 억제 시켜주는 시각효과를 가진 것들 일색이었다. 이 중 매미 유충과 양고기 꼬치, 과일 안주를 선택했는데, 포장마차 주인이 과일 위에 인심 좋게 사카린을 듬뿍 올려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매미유충과 양고기 꼬치도 그 맛과 모양새가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중국만의 명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매미유충은 눈깔사탕정도로 큰데 맛은 번데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육질이 풍부하고 물기가 적은 편으로 담백했다. 다리 쪽이 혀에 닿으면 조금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별미라 할 수 있었다. 양고기 꼬치는 향이 강하여 오히려 매미보다 손이 가지 않았는데, 모 기자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 향기가 “서양인 겨드랑이 내음”과 같았다.


가이드 선생님에 의하면 곡부는 예를 중시하는 공자님의 본향인지라 내성지역의 음주문화는 이렇게 가볍게 한잔 할 수 있는 노천주점 정도가 전부라고 한다. 공부가주가 의외로 센 술이라 술기운이 거하게 도는 상태로 호텔에 돌아왔는데, 호텔 로비에 새겨져 있던 예를 통해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와 송구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공자님댁 가정 방문

공묘의 화려한 용주. 공자님은 사후 '왕'으로 추봉되신 뒤 여러가지 황제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으셨는데, 황제의 상징인 '용'과 황제의 숫자인 '9'가 사용된 이 용주도 그 중 하나이다. 실제 황제들이 공묘에 제사를 드리러 올 때는 질투를 불러일으킬까봐 이 화려한 기둥들에 천을 감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묘의 화려한 용주. 공자님은 사후 '왕'으로 추봉되신 뒤 여러가지 황제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으셨는데, 황제의 상징인 '용'과 황제의 숫자인 '9'가 사용된 이 용주도 그 중 하나이다. 실제 황제들이 공묘에 제사를 드리러 올 때는 질투를 불러일으킬까봐 이 화려한 기둥들에 천을 감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튿날 곡부의 3대 유적인 공묘, 공부, 공림을 돌아보게 되었다. 삼공 투어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받은 감동은 역시 중국답지 않은 자본주의적 서비스 정신이었다. 세 개의 유적지에서 따로 입장권을 구입할 필요 없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자유이용권 형태의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각각의 입구에서 개찰구에 달린 바코드 인식기에 티켓을 인식시키기만 하면 편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공부에서 여성들이 거주하던 내원으로 통하는 좁은 길. 한 사람도 통과하기 힘들정도로 길을 좁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공부의 여성들이 항상 이 길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의미와 도적이나 치한이 침입했을 때 손쉽게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부에서 여성들이 거주하던 내원으로 통하는 좁은 길. 한 사람도 통과하기 힘들정도로 길을 좁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공부의 여성들이 항상 이 길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의미와 도적이나 치한이 침입했을 때 손쉽게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자본주의적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성향은 자동화된 입구를 갖추고 있음에도 개찰구마다 검표원이 티켓을 받아서 찍은 뒤에 돌려준다는 점이 재밌기 이를 데 없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공묘는 태산의 대묘, 북경의 고궁과 함께 중국 3대 건축물의 하나로 노나라 애공이 공자님이 돌아가신 1년 뒤에 세운 사당이다. 남북이 1,120m, 동서가 140m, 면적이 1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유적이다. 공자님은 사후 황제와 같은 지위를 얻게 되어 공묘에는 황제의 상징인 숫자 9가 응용된 건축 구조와 다수의 용조각이 있다.

 

또한 13채의 비정과 800여개에 달하는 비석이 있는데, 그 많은 비석 중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문화혁명당시 어느 날 새벽 곡부사범대학의 여학생이 쇠망치를 들고 와서 모두 깨부쉈던 것을 다시 맞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연약한 여학생이 800개의 비석을 파괴할 수 있게 한 이념과 사상의 힘이란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묘의 동쪽에 위치한 공부는 1039년 건립되어 청나라 시대에 대대적인 확장 개축을 거쳐 현재 5만 평방미터의 면적에 500여칸의 방을 가진 거대한 건축물이 되었다. 공부는 공자님의 자손들이 거주하던 저택 겸 관공서로 황실과 버금가는 화려함 때문에 ‘천하제일의 가옥’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전면의 집무실과 후면의 생활공간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인데, 맨 뒤쪽 내실은 여성들의 거처로 철저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공자의 후손들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공산 혁명 당시 공씨 집안이 장개석 정권의 유력인사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공림은 공자와 그 가족들의 전용 묘로 세계에서 가장 큰 가족 묘지이다. 공부 북쪽 1.5km 지점에 위치한 공림은 2만 평방미터 규모로 10만 여개의 묘지가 있다. 이곳에는 공자 가문에서도 오직 남자만 입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공자님은 사후 왕으로 추봉되어 그 비석에도 王이란 한자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하지만 삼공의 유적 중 공자님 살아생전에 누린 것은 하나도 없음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오랜 뒤에도 공자님의 곁을 지키고자 공자님 묘를 향하는 길 어귀에 제자 자공이 세운 비석에 담긴 마음만이 공자님이 생전에 누리셨던 복락이었으리라.

 

태산에 올라 승천의 야망을 불태우다

태산을 오르는 현대적인 방법. 케이블카 터미널
태산을 오르는 현대적인 방법. 케이블카 터미널
이번 여행 코스에 태산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본 기자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인 그 태산에 가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태산은 한자가 太山인 상상의 산이며 관광 코스에 포함된 태산은 한자가 泰山이라고 한다.


태산은 ‘큰 산’이라는 이름의 의미 때문에 거대하고 높은 산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실제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1,545m에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의 한라산보다도 낮은 산이다. 하지만 태산은 156개의 산봉우리와 138개의 절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 있는 동굴만 72곳, 계곡 64곳, 유명한 샘물이 72곳이나 되는 등 산세가 웅장하고 우람하여 중국의 오악(五嶽) 중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또한 태산은 예로부터 중국의 성스러운 산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진나라의 시황제를 비롯한 많은 제왕들이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제왕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태산에 올라 제를 올릴 때 비가 내리면 ‘용이 비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다’고 하여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에 올라가면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날은 안개가 자욱하여 고산지대의 마을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에 올라가면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날은 안개가 자욱하여 고산지대의 마을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얼마 전 한국의 대권주자 한분이 태산을 방문했는데, 가랑비가 오다가 그쳐버려서 심히 아쉬워했다고 한다. 기자단이 태산을 방문했을 때에도 오전에 비가 왔었던 데다가 먹구름이 자욱하게 끼어있어 내심 작은 기대가 생겼었으나,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아 아직 제왕의 야망을 불태울 때는 아니라는 사실만 깨달았다.


현재 태산을 등정하는 코스는 태산의 명물 7,412계단으로 근성있게 오르는 방법과 쾌적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근성은 넘치나 시간이 부족했던 기자단은 불가피하게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블카라고 해서 우리나라 남산이나 설악산처럼 십수명이 탈 수 있는 큰 것을 떠올렸는데, 실제론 4명씩 타는 스키장 곤돌라 같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다.

 

처음엔 너무 작은 크기에 불안한 감도 있었지만, 오히려 4명이 쾌적하게 자리에 앉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사람 틈에 끼어 창가에는 닿기도 힘든 큰 케이블카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오르는 시간은 10분 내외인데, 절벽이 험하고 바닥까지 까마득해 10분 내내 동승한 기자단과 케이블카가 추락하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눈 아래 펼쳐진 절벽에 드문드문 계단들이 보이는데, 좁고 가파르고 난간도 없는 것이 과연 실제 사람이 다니는 길인가 싶기도 했는데, 한 중국인이 긴 장대 양 끝에 짐을 매달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런 짐꾼들이 이렇게 산 위로 한번 짐을 운송하는 데에 2~5위안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산 위의 물가가 비싸다고 불평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이날엔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절 연휴를 맞이한 수많은 중국인들이 태산을 찾았다
이날엔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절 연휴를 맞이한 수많은 중국인들이 태산을 찾았다
태산 정상 부근에는 케이블카가 생기기 전부터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을을 짓는 자재, 마을이 사용하는 물자 모두 사람의 힘만으로 올렸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특히 케이블카 터미널 건설 사진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긴 케이블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뒤덮은 듯한 모습이 있었다. 중국이 예전에 자랑하던 인해전술의 모토는 ‘인민의 바다에 적을 익사시킨다’라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청난 인구야말로 중국 국력의 근간임을 느끼게 해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가슴 한켠에 야망을 품게 해줬던 먹구름이 온 산봉우리를 안개처럼 휘감고 있어 관광에 엄청난 걸림돌로 다가왔다. 공자님께서 태산에 오르셨을 때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이는구나”하고 감탄하셨다는데, 이날은 천하는 커녕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노동절 연휴를 맞이하여 수많은 중국관광객들이 제를 올리기 위해 향을 등에 짊어지거나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글귀가 새겨진 빨간 띠를 머리나 팔에 두르고 태산을 오르고 있었다.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중국의 제왕들과 대서예가들이 남긴 글씨들이 석각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물론 탁월한 예술적 가치로 태산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 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글씨들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좋은 곳에 가면 낙서를 통해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심리는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태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본 기자도 분위기에 휩쓸려 태산 등정을 통해 만사 평안을 기원하는 빨간 띠를 샀는데, 이게 정상에 올라 어딘가에 묶어놓고 와야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듣는 바람에 그만 가지고 내려와 버렸다. 또 청명한 태산에서 천하도 굽어보고 싶고, 야망을 위해 비도 맞아보고 싶었다. 이래저래 기자의 마음 속에 태산은 재방문 1순위 여행지로 자리잡고 말았다. 

 

일조 만평구해안관광구 64km 모레사장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 배에 오르기 전에 가벼운 일조 시내 관광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일조시가 가장 자랑하는 관광상품인 만평구해안관광구를 들렀다. 이 해변은 입자가 고운 황금빛 모레사장이 64km나 펼쳐져 있어 중국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노동절 연휴의 첫날이라 그 큰 해변에 관광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바닷가에 가면 해수욕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국토가 넓어 내륙지방 사람들은 평생 바다 구경 한번 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바닷가에 와서 바다를 바라볼 수만 있는 것도 큰 감격이란다. 일조시에서는 이 만평구해안관광구를 일조시의 관광 중추로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 수준의 요트 경기장을 비롯하여 쇼핑, 숙박, 오락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건설 중에 있었다.

 

특히 관광구의 북쪽 끝에 인접한 산해천 해수욕장은 2005년 국내외 관광객 328만명이 방문했으며, 관광수입만도 6억3,000만 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향후 개발이 진척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접국의 관광객도 대거 유치할 계획이라고 하니 일조-평택간 카페리 항로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에 오르기 전 기념품 구매를 위해 Silver Plaza라는 백화점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중국 경제의 부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알만한 브랜드와 명품샵들이 즐비하게 입점해 있었으며, 가격도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인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또한 지하에는 큰 식료품 마트가 있었는데, 정갈하게 정돈된 진열대 사이에서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는 중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니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편견은 이제 완전히 버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이 경험한 것은 ‘중국’이란 나라와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을 주로 북경이나 상해를 돌아보는 일이 많은데, 그런 대도시들은 이미 국제화되어 중국다움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 그에 반하여 일조를 비롯한 곡부나 태산에서는 아직 자본주의 성향이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과거의 ‘중국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일조의 경우에는 개발이 진행 중인 도시라 머지않아 다른 대도시들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겠지만, 곡부나 태산은 개발 제한도 걸려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좀 더 지켜나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박’은 다른 그 어느 교통수단과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번과 같은 장거리 여행길에 오르는 카페리선이나 크루즈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텔과 같은 건물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도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모두 빠른 속도만 추구하여 비행기나 고속철도 등을 선호하지만 이동 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잠을 자는 것’뿐이다. 그에 비해 선박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싶은 분들은 꼭 배를 타고 여행을 해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C&훼리 조원욱 상무
C&훼리 조원욱 상무

C&훼리 일조 지역 책임자 조원욱 상무는 “정기선 서비스란 것이 무역이 발달하고 나서항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을 잇는 항로가 생김으로서 무역이 발달하고 지역들이 발달하게 되기 때문에 사업 초기엔 어려움이 많다”며 “C&훼리도 평택-일조간 노선 정착을 위해 지난 4년간 180억 이상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조상무는 또 “383마일이라는 긴 운항거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지속적으로 카페리를 이용하게 하기 위해 주3항차를 유지하려다 보니 평균 25노트의 고속 운행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거리가 짧은 다른 항로에 비해 유류비용만도 3배 이상이 소요된다”며 항로 유지를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일조항의 컨테이너 하역장비 보강 및 양·하역 서비스 단축 노력과 일조 현지에서의 마케팅을 통해 C&훼리의 인지도를 높이는 등 지속적인 투자와 화물 유치 노력에 의해 2006년 9월 최초로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조 상무는 “2007년에는 17억원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향후 흑자경영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2) 'KC Rainbow'호 사무원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KC레인보우호의 주병리 사무원(왼쪽)과 양준영 사무원(오른쪽). 주병리 사무원은 중국인이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KC레인보우호의 주병리 사무원(왼쪽)과 양준영 사무원(오른쪽). 주병리 사무원은 중국인이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KC Rainbow'호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칠 수 있는 승무원은 바로 사무원들이다. 이들은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기도 하고, 선내 면세점에 물품을 팔기도 하며, 레스토랑에서 배식을 지원하다가 어느새 선내 질서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KC Rainbow'호에는 4명의 사무원이 근무 중인데, 그 중 한국인 사무원 양준영씨와 중국인 사무원 주병리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여성 사무원은 주로 여객에 대한 안내나 물품 판매 등의 서비스를 많이 하는 편이고 남성 사무원은 질서유지에 주력한다고 한다. 양사무원은 “거의 모든 일을 다 하지만, 주로 선박내의 질서 규제, 화제와 관련한 흡연, 취사행위 규제, 그리고 항로가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약주 드신 분들 간의 분쟁 억제가 주요 업무”라고 말한 뒤 “배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각 개인과 개인에서 상단 대 상단으로 크게 번지는 경우가 많다. 크게 번지기 전에 초기 진압이 아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긴 승선 생활에 대한 고충을 묻자 양사무원은 “선상 생활을 하니 친구들과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어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덕분에 월급의 90%를 저금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사무원들은 2달에 12일씩 휴가를 쓸 수 있지만,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실제로 휴가를 쓰는 건 1년에 2회라고 한다. 남들이 모두 쉬는 명절 같은 때에는 기분이 어떠냐는 물음에 주사무원은 “만약에 육상근무를 하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지만, 해상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려워서 별다른 아쉬움이나 감흥 없이 보낼 수 있다”는 감상을 밝혔다.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는 민감한 질문에 두 사무원 모두 육상 활동을 거의 할 수가 없어서 이성을 만날 기회도 적고 선내 연애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끝으로 앞으로 업무상 바라는 점에 대한 물음에 양사무원은 “군대에서 분대장이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이 13명 정도인데 'KC Rainbow'호 사무원들은 1인당 100명 이상의 승객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조금만 충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사무원은 “좀 더 많은 홍보를 통해 여행객의 비율이 좀 더 늘어나서 'KC Rainbow'호의 여객선으로서의 입지가 강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3) 소무역 상인

 

'KC Rainbow'의 또 다른 가족

 

화물창에 늘어서 있는 소무역 상인들의 '보따리'. C&훼리 측에선 컨테이너 화물이 가득차지 않는 날엔 이렇게 화물창에 보따리를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고 한다
화물창에 늘어서 있는 소무역 상인들의 '보따리'. C&훼리 측에선 컨테이너 화물이 가득차지 않는 날엔 이렇게 화물창에 보따리를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고 한다

'KC Rainbow'의 전체적인 승객 비율을 살펴보면 99%의 이용객이 소위 ‘보따리 무역상’이라 불리는 소무역 상인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주일 3항차를 모두 이용하고 있으며 두 세달에 1항차 정도를 쉰다고 하니 승무원들과 더불어 'KC Rainbow'를 구성하는 식구라고 할 수 있다.

 

육상의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선상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다보니 배에 가져다 놓은 살림살이는 하선시에도 두고 내린다고 한다. 상인들이 이렇게 일하며 버는 평균 소득은 월 200만원 정도이다.


'KC Rainbow'호를 이용하는 상인들은 약 400명쯤이며 자율적인 질서유지를 위해 상인회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상인회는 회장 1명과 부회장 2명, 그리고 총무 및 자율 지원팀 등 40여명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으며, 상인회 회장은 1~2년에 한번 씩 가입한 모든 상인들이 모여 투표로 선발하고 있다.

상인회의 주요 업무는 선내 질서유지를 위한 승무원 지원과 원활한 하역작업 지원 등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소무역 상인들이 한 번에 들여올 수 있는 물품은 세관 제도가 바뀐 이후로 25kg의 짐 2개를 부칠 수 있고 30kg의 화물을 휴대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화물은 5kg내외의 초과는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1인당 85kg에 이르는 화물을 지닌 상인들이 배가 출항하기 전까지 하역을 마치고 육상에서 볼 일을 다 봐야하니 신속한 하역작업과 세관 통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따라서 상인회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일도 최대한 질서정연하고 빠르게 하역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선순서는 상인회에서 정하는데, 'KC Rainbow'호를 이용한 기간이 긴 상인이 빠른 순서를 배정받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선두에서 하선하시는 분은 거의 400항차 이상을 이용한 분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평택-일조를 잇는 'KC Rainbow'호의 장단점을 한 상인분께 물으니 “일단 시설이 최고 수준이라 좋고, 상인들의 텃세가 심하지 않아 편안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덧붙여 “C&훼리도 상인들에 대해 승선료 DC나 세관과의 중재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뒤 “많은 배를 타봤지만 한-중을 잇는 페리 중에는 가장 좋은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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