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침체와 해운불황으로 국적선사의 유동성 문제가 계속되고 일부 선사의 부도로 인해 국적선사의 존재 이유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간 해운산업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해 많은 지면에서 다루었지만, 최근 상황을 고려하여 국적선사 필요성을 다시 되짚어 본다.

첫째, 해운은 수출입 화물의 안정적 수송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은 연간 11억 톤에 달하는 수출입 물동량을 안정적으로 수송하고 있으며, 국적선사의 활약으로 외국선사에 의한 일방적 운임 상승도 억제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동남아 및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발전과정에서 자국 선대를 확충하는 정책을 전개하는 이유도 수출입 화물의 안정적 수송 필요성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대표적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은 자국선박을 지난 1991년에 비해 1.5~2배 이상 증가시켰다. 내륙국가 몽골이 해운항만청을 만들고 자국선박을 확보하여 국제해상운송에 참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자국선사에 의한 자국해운이 있어야 수출입 화물의 안정적 수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해운의 역할은 지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고, 해운은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후 국가체제를 제대로 정비하기도 전에 일어난 6.25 전쟁으로 인해 1950~60년대 우리나라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국경제 재건과 개발을 위한 계획 중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본 골격이 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962년에 시작되어 1997년까지 추진될 때, 해운은 전력·석탄의 에너지원과 기간산업 확충이 충실히 이루어지도록 원자재를 수송했다. 화학·철강·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 고도화, 중화학공업화 정책 추진과정에서도 해운은 이들 산업 활동에 필요한 물자를 묵묵히 수송했다.

둘째, 국적선사의 존재 가치는 국제수지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운산업은 국제수지 중 서비스 수지의 흑자 전환 및 외화 획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연간 315억 달러(2012년)의 외화를 획득하여 전체 수출품목 중 5위 산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2012년 수출실적을 보면, 1위 석유제품 567억 달러, 2위 반도체 509억 달러, 3위 승용차 423억 달러, 4위 선박 382억 달러, 5위 해운 315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해운산업은 제1의 서비스 산업으로 2012년 57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여 14년 만에 서비스 산업의 흑자 전환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셋째, 해운은 조선·항만과 전·후방 산업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외항해운업계가 직접 고용한 인력도 약 3만 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전쟁 등 비상사태 발생시의 전략물자 수송을 위해 국적선 88척을 국가필수선박으로 운영하면서 제4군의 역할 수행에 대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해운산업의 부실화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 운송의 차질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7대 무역국가로 성장하는데는 수출입 화물의 대부분을 수송해 온 해운산업은 역할이 무엇보다 지대했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상 모든 수출입화물이 해운·항공을 통해 운송되며, 특히 해운을 통한 운송 의존도는 99.8%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국적 원양선사가 수송하는 수출입 화물은 연간 1,000만TEU에 달하고, 또한 해운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의 핵심원료이자 전략화물인 철광석, 원유, 석탄, 액화가스 등의 주요물자를 수송하고 있다.

따라서 국적선사의 비정상적인 운영은 수출입 물동량 운송 차질과 운임 상승, 그리고 외국선사에 의한 국내 해운시장 잠식으로 연결될 것이다. 무엇보다 원양 컨테이너 서비스 시장을 외국선사에게 넘겨줄 경우 수출입 컨테이너 화물수송은 외국선사에 의존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높은 운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컨테이너 선사의 원양서비스망 1개 라인 구축에 1.5조원 이상이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를 위해 요구되는 7~8개의 원양 컨테이너 서비스망 운영에 최소 10조원이 소요되는 사업을 일시에 가동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유로 세계 주요국에서는 자국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우선 세계 무역국은 원양 컨테이너 선사 2~3개사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독일 2개사(하팍 로이드와 함브르크 슈드), 일본 3개사(NYK, MOL, K-Line), 프랑스 1개사(CMA-CGM), 중국 2개사(COSCO, CSCL)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둘째 자국화물의 자국선사 수송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이며, 일본, 미국 등 선진국도 외교적 분쟁 등과 같은 사태에 대비하여 국가 전략물자의 경우 90% 이상을 자국 해운기업이 수송하도록 제도를 만들어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해운안보계획(MSP)을 통해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선박을 중심으로 운항비 차액을 연간 60억 원 이상 지원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중반까지 해운업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아예 금지하였던 미국의 역사에 비춰 보면 새롭고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각국이 자국 해운산업에 대해 보호 내지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해운산업의 경제적·경제외적 중요성을 범정부적으로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운업에 대한 지원은 그 자체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수단으로 되고 있어 해운위기 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계속하고 있다. 해운산업 보호·지원제도에 의한 해운산업 가격경쟁력 제고효과를 분석한 KMI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약 13.1%의 해운원가 절감효과가 있고, 영국의 해운업체들은 자국정부의 보호·지원 정책에 의하여 약 2.5%의 비용절감 혜택을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은 위기시 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이루어져야 한다.

아담스미스는 일찍이 해운을 경제발전의 디딤돌(principal stepping stones)이라고 했고, 해운은 국가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최후의 보고라고 했다. 해운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경제발전과 국제수지, 관련산업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성장엔진으로 가동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필요한 해운산업이 계속 가동할 수 있도록 연료 공급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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