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반야월, 통영친구 딸 소재 작사…은방울자매 취입 대히트
영화 ‘무정한 그 사람’ 주제가로 유명, 같은 제목 영화도 제작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님이여
이제가면 오실 날짜 일년이요 이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
소꿉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
이 배 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마는
기다려요 네~ 기다려요 네~ 삼천포아가씨
 

꽃 한 송이 꺾어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
님을 싣고 떠난 배를 날마다 기다려도
그 배만은 오건마는 님은 영영 안 오시나
울고가요 네~ 울고가요 네~ 삼천포아가씨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은방울자매 노래의 ‘삼천포아가씨’는 1960년대 암울했던 시절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크게 히트한 대중가요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마음을 그린 노랫말이 돋보인다. 반야월(본명 박창오, 가수명 진방남)이 가사를 쓰면서 아름다운 여심을 여러모로 생각한 흔적들이 구절구절 묻어난다.

 
 
여성듀엣가수 은방울자매가 불러 국민들 심금을 울렸던 ‘무정한 그 사람’의 영화주제가로 들을수록 애절한 맛이 난다. 1960년대 부산~여수를 오가던 여객선들이 승객을 싣고 떠나면서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는 소절이 스피커로 울려 퍼질 땐 전송 나왔던 많은 이들은 눈물을 훔치곤 했다.
‘삼천포아가씨’는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마산출신 음악인 반야월이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할 때 통영(충무)에 살았던 친구의 딸을 소재로 작사한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진방남 일행이 공연을 위해 진주에서 삼천포로 갔다. 삼천포는 와룡산이 있고 한려수도가 펼쳐져있어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뱃고동을 울리며 오가는 여객선, 잔잔한 바다, 점을 찍어놓은 듯한 섬, 통통배, 어선들이 그림처럼 떠있었다.

진방남은 삼천포수산시장에서 젓갈을 사들고 약국을 하는 친구의 딸을 찾았으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여고를 갓 졸업하고 삼천포청년과 사귀었으나 실연을 당했다. 방학 때면 고향으로 오던 그 청년이 고시준비를 핑계로 소식을 끊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며 약국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진방남은 “그만큼 기다렸으면 됐지. 언제까지 이러면서 살래? 올 사람이면 벌써 왔지. 아버지 몸도 안 좋은데 정리하고 서울로 가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친구 딸은 “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고 얼마 뒤 1960년 그녀의 아버지는 병으로 별세했다. 반야월은 애도의 노래시를 써 이듬해 초 작곡가 송운선에게 “삼천포에서 처녀로 약국을 하며 혼자 사는 둘도 없는 내 친구 딸 이야기”라며 넘겨줬다. 내용은 이별한 임을 부두에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여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노랫말에 감동 받은 송운선은 은방울자매를 떠올리며 자신이 주인공이 돼 곡상을 다듬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노래가 바로 ‘삼천포아가씨’다.
 

음반 나오자 품절됐을 만큼 최고판매기록
1961년 크라운레코드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음반이 나오자 품절이 됐을 만큼 최고판매기록을 세웠다. 은방울자매의 독특한 화음과 애절한 창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노래는 애틋한 사랑을 가슴에 안은 삼천포아가씨가 연인을 싣고 뱃고동의 긴 여운만 남겨놓은 채 부산, 마산으로 가는 여객선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1960년대 초 삼천포항 서동부두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부산~충무~삼천포~여수 뱃길을 이용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노래 바람에 인구 5만명 남짓이던 삼천포가 전국에 알려졌고 우리 동포들이 사는 세계 각 나라에서도 삼천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특히 1966년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개봉됐다. 강찬우 감독의 이 영화엔 이수련, 강신성일, 이수동, 황정순, 김승호 등 그 무렵 쟁쟁했던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모았다. 내용은 삼천포에서 태어난 여성이 결혼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아들형제만을 위해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속을 썩인다. 고생만 하던 그녀는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숨진다. 아들들은 그때서야 생전의 불효를 뉘우치고 어머니 주검 앞에서 목 놓아 우는 멜로물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삼천포대교공원 주차장 옆에 노래비
삼천포를 관할하는 경남 사천시와 시민들은 2005년 5월 5일 사천 대방동 681-9번지에 있는 삼천포대교공원 주차장에서 ‘삼천포아가씨’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행사장엔 은방울자매, 작사가 반야월, 강기갑 국회의원, 김수영 사천시장, 정복영 사천시의회의장, 류명철 사천시교육장, 김재구 사천소방서장과 경남도의원, 사천시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사천시의 관광명소로 지정된 노래비엔 삼천포아가씨의 애틋한 사연과 노랫말이 새겨져있고 센서가 달려있어 사람이 다가가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2011년부터는 ‘삼천포아가씨 가요제’도 해마다 열리고 있다. 지난해는 7월 26일 오후 7시 30분 남일대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3회 대회가 열렸다. 1회 대회 땐 작곡가 송운선씨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했고 은방울자매도 초대가수로 무대에 섰다.

노래비가 있는 삼천포대교는 사천시와 남해군을 잇는 5개의 다리(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 중 하나다. 늑도, 초양도, 모개도를 디딤돌삼아 사천시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도를 이어준다. 3.4km로 1995년 2월 착공, 2003년 4월 28일 개통됐다. 2006년 7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에 뽑히기도 했다.

 
 
노래를 작곡한 송운선(본명 송성덕)은 법대출신으로 가수 박재란을 만나 파라마운트레코드사에서 같은 신인끼리 음반취입을 하게 돼 음악에 발을 디뎠다. 그는 레코드 쪽으로 눈을 돌리며 상경, 대선배 작곡가 김교성의 도움아래 편곡에 재능을 보였다. 이어 작곡한 ‘삼천포아가씨’, ‘쌍고동 우는 항구’ 등이 히트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63년엔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은방울자매 노래의 ‘무정한 그 사람’도 크게 히트해 가요계를 놀라게 했다. ‘히트작을 작곡하는 귀재’로 불린 그는 1964년 ‘영산강 처녀’로 송춘희를 히트가수대열에 올려놨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가요인들의 숨통을 죄는 정부기구가 생겨 ‘삼천포아가씨’, ‘쌍고동 우는 항구’ 등 15곡이 방송금지곡으로 묶였다. 그는 작곡을 접고 편곡에 몰두했다. 파라마운트레코드사 문예부장, 크라운레코드사 기획실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장을 지낸 그는 한국연예협회 가요창작위원회 최고고문으로 있으면서 음악관련 책들도 냈다.
 

큰방울 박애경 별세, 작은방울 김향미는 이민
노래를 부른 은방울자매는 ‘은쟁반에 옥이 구르는 목소리를 내는 그룹가수’란 애칭을 가졌다. 1950년대 중반 솔로가수로 활약했던 두 사람은 부산에서 듀엣을 만들었다. 동갑(소띠)이지만 박애경은 키가 커서 큰방울, 김향미는 작은방울이 됐다. 큰방울 박애경(본명 박세말)은 부산서, 작은방울 김향미는 경남 창녕서 태어났다. 둘은 1954년 은방울자매로 송운선을 만나 히트곡을 쏟아내는 행운을 안았다. 그러던 중 박애경은 김향미가 미국이민을 떠나자 여가수 오숙남과 짝을 이뤄 활동했다. 그러나 박애경은 2005년 5월 8일 부산KBS홀에서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 공연을 끝으로 위암이 악화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권혁두)과 두 아들(준현, 준범)을 두고서다. 김향미는 캐나다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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