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신규 복수노조, 중노위는 항운노조 손 들어줘
운영사 “신규노조와 협상” 항운노조 “전국 총파업 불사”


항만업계에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지 3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법원과 정부의 유권해석이 달라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포항항에서는 지난해 대법원이 신생노조인 포항항운노조의 손을 들어주며 이들의 노무공급권을 인정했지만, 올 2월 중앙노동위원회가 “포항항운노조와 진행한 단독 노무공급권 교섭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은 다시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항신항 하역사인 인터지스가 우선 포항항운노조와의 교섭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북항운노조는 “전국적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항만외의 산업계에서도 복수노조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은 포항항운노조에 근로자 공급사업을 허가했다. 포항항에서 하역사업을 하고 있는 인터지스가 기존 경북항운노조 대신 포항항운노조와 노무교섭을 진행하면서 벌어진 법정싸움 결과, 대법원이 포항항운노조의 노무공급권을 인정한 것이 이유이다.
 

포항항운노조는 2011년 경북항운노조에서 탈퇴한 조합원 42명이 결성한 복수노조로, 당초 고용노동부는 직업안정법을 근거로 복수노조의 근로자 공급사업 신청을 불허한 바 있다. 그러나 포항항운노조는 고용부 포항지청을 상대로 근로공급사업 신규허가 불허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1, 2심 모두 승소했으며, 포항지청이 대법원에 신청한 상고심도 기각처리돼 전국 항만 최초로 복수노조의 노무공급권의 길이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운영사인 인터지스와 포항항운노조의 단체교섭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중노위는 최근 인터지스가 포항항에서만 단독으로 포항항운노조와 진행한 노무공급권 교섭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중노위의 결정에 따라, 인터지스는 포항뿐만 아니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 대해 노무공급권 교섭을 일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포항을 제외한 나머지 항만에는 복수노조가 설립돼 있지 않은 상태, 결국 포항항운노조는 포괄적인 복수노조로서의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교섭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인터지스는 3월 25일 포항신항을 비롯한 인천·부산·당진·마산항에 ‘포항항운노조가 교섭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공고했다. 인터지스 측은 “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공고한 것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업계에서는 인터지스가 포항신항을 제외한 나머지항의 교섭권은 항만물류협회에 위임하고 포항신항에 대해서는 별도로 포항항운노조와 교섭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교섭의사가 없을 경우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간 인터지스가 포항항운노조와의 교섭을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인터지스 관계자는 “경북항운노조에 하역을 맡기면 톤당 2,400원의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데 연간 40~50억원이 추가로 부담되는 상황”이라면서, “회사의 합리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밝혔다.
 

만약 예상대로 인터지스가 포항신항의 하역권을 포항항운노조와 교섭할 경우, 경북항운노조와의 첨예한 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항운노조 측은 “인터지스가 노-노간 갈등을 부추겨 항만을 마비시키고 있다”며, “만일 포항항운노조의 교섭권이 인정된다면 전국 항운노조연맹과 연대해 전국적인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복수노조 시행 3년 부작용 심각 “법제도 개선돼야”
복수노조가 시행된지 올해로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와 같은 노조간 혹은 노사간 갈등은 항만현장 뿐 아닌 다른 산업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2월 19일 금속노조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최한 ‘복수노조 악용 노조탄압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사례가 언급됐으며 토론회에 참석한 법률가들은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토론회 주최가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라는 점에서 토론회 분위기는 복수노조로 인한 부작용에 포커스가 맞춰졌지만, 많은 산업체에서 노노간 혹은 노사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 중 약 14% 정도가 복수노조에 따른 문제를 겪고 있다. 노조간 차별, 승진·인사고과 등의 불이익 등이 주요 내용이었으며, A사업장의 경우 복수노조만 4개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주영 노무사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개선을 위한 첫 단추로 부당노동행위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와 함께 소수노조의 노동조합으로서의 권한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운영사와 신규, 기존 노조 모두 피해자”
항만업계의 경우, 포항신항에서의 갈등을 제외하면 복수노조로 인한 부작용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포항신항 사태를 계기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복수노조로 인한 갈등은 아니었지만 울산항에서도 울산항운노조와 사측(태영GLS)간의 노무공급권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으며, 몇몇 항만에서도 복수노조 설립 추진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복수노조 시행이 결정된 직후부터 우려됐던 것이다. 특히 작년 대법원 판결 이후 몇군데 항만에서도 복수노조가 설립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운영사 측 입장에서는 기존 항운노조의 눈치도 살펴야 하는만큼 난감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항운노조와 복수노조의 노무공급권에 대한 법적 해석이 사법부-행정부간 엇갈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는 양측 노조의 신뢰를 잃은 운영사, 신규 복수노조, 기존 항운노조 모두가 ‘피해자’일 수 밖에 없으며, 전국 항만 총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 사태를 봉합하고 제 2의 복수노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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