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arl C1) 판결을 중심으로-

I. 서론
정기용선계약 하에서 선박을 감속운행(이하 ‘slow-steaming’)하여 운용하는 것은 각 당사자의 영업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용선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사용하여야 할 연료유를 절약하거나, 항만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운항이익을 도모할 수 있으며, 선주 입장에서는 시장상황에 따라 고율의 용선료를 더 수취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합의되지 않는 일방의 slow-steaming 지시는 다양한 분규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영국 1심법원은 정기용선계약 하에서 특정항차에서의 선속의 저하는 slow-steaming 운용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며, 이 경우 NYPE 정기용선 계약서 제 8조(조출의무) 위반 및 제 15조(오프하이어) 적용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상 판결의 분석을 통하여 slow-steaming의 사실관계를 추론하는 방식과 그 결과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II. 사실의 개요
선주는 수정된 NYPE form의 계약서를 사용하여, 용선자와 9~12개월의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서는 선박의 속도에 대하여 “about 13 knots(in ballast and laden) in good weather conditions”로 규정하고 있었다.
반선 이후, 용선자는 용선기간중 3항차동안 선속이 계약서에 명기된 속도에 미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계약서 제 8조에 규정된 선주의 조출의무 위반이며, 제 15조 오프하이어 규정이 적용된다는 주장과 함께, 선속 저하에 따른 시간 손실에 해당하는 용선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선주는 반발하며 영국 중재원에 미지급된 용선료 전액을 청구하는 중재를 제기하였다.
중재원은 선속이 계약서에 명기된 속도에 미치지 못한 이유가, 해당 항차 수행 시 엔진의 RPM이 평소보다 저조함에 비추어, 선원의 의도적 조작에 의한 slow- steaming이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선주의 제 8조 위반 및 제 15조에 따른 오프하이어를 인정, 용선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선주는 이에 불복, 항소심인 영국 1심법원에 항소하였다.
 

III. 선주의 주장
원고인 선주는, 중재인이 제 8조 위반을 인정한 근거로 당시 3항차의 선속이 계약에 명기된 속도에 미치지 못함을 들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계약에 명기된 속도는 선박 인도시의 속도만 의미할 뿐 선주가 그 선속을 계속 유지할 의무는 없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정기용선 계약서에는 지상약관으로서 헤이그 규칙이 편입되어 있으므로, 해당 규칙 4조 2항(a)2)에 의거, 선원의 행위로 인한 손실은 선주 면책사항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당해 계약의 정기용선계약서 제 15조의 해석상 오프하이어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That in the event of the loss of time from deficiency, sickness, strike, accident or default of Master, Officers or crew, or deficiency of men or stores... the payment of hire shall cease for the time thereby lost;[이하 “1번 문단”]
... if upon the voyage the speed be reduced by defect in, or breakdown of, any part of her hull, machinery or equipment the time so lost... shall be deducted from the hire.”[이하 ‘2번 문단’]
선주는 대상 사건에서 선속 저하는 오프하이어 상황에 적용될 내용이 없으며, 또한 선속 저하는 2번 문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바, 이는 선체의 결함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제 15조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IV. 법원의 판단
법원은 중재인의 법리 오해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1. 조출의무 위반(제 8조)
법원은 비록 계약에 명기된 선박의 속도가 선박인도 당시에만 구속된다 하더라도, 정기용선계약서 제 8조 위반 여부에는 계약에 명기된 선박의 속도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상 사건에서 용선자는 선속 저하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하였으며, 다만 외부업체의 분석을 통하여 특정항차에서 선박이 계약상의 속도로 운용되지 않은 점만 입증하였다.
이에 중재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선속 저하의 일반적인 원인을 (1)선체 문제 (2)해양환경 (3)선원의 조출의무 미이행 3가지로 보고, 이 중 선체문제와 해양환경 부분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여, 선원의 조출의무 미이행을 선속 저하의 원인으로 삼았다. 법원은 이와 같은 중재인의 사실 및 원인분석을 인용하여 비록 양 당사자가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하였으나 선원의 조출의무 미이행, 즉 slow-steaming이 선속 저하의 원인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선주의 선박 slow-steaming 운용이 정당한 판단이 아닌 이상, 선주는 조출의무를 위반한 것이 명확하며, 이는 대상 사건 선박이 선박 인도 후, 첫 번째 항차에서 계약상의 속도로 운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해당 항차에도 계약상의 속도로 선박을 운용했어야 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즉, 해당 항차에서 slow-steaming으로 선박을 운용한 것이 계약상의 속도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한 것이므로 이를 근거로 제 8조 위반을 인정하였다.
또한 법원은 헤이그 규칙에 기재된 선주의 면책조항에 대하여, slow-steaming 결정은 선주나 선원의 고의적인 행위이지, 과실이 아니므로 면책조항이 적용될 여지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2. 오프하이어 여부
법원은 위 사안에 비추어, slow-steaming은 제 15조의 조건 중 “선장이나 선원의 과실(default of Master, Officers or crew)”에 해당하므로, 이로 인한 시간 손실은 오프하이어로 인정하였다. 또한, slow-steaming을 2번 문단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으며, 1번 문단에도 “시간 손실(the time thereby lost)”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1번 문단에 의한 오프하이어를 인정하였다. 선주는 slow-steaming으로 인한 시간 손실을 2번 문단으로 국한시키기 위하여 The Ioanna3) 판결을 언급하였다.

The Ioanna 판결의 사안은 해양생물이 선저에 붙은 채로 선박이 정기용선자에게 인도되어 약 7.2일의 시간손실이 발생한 건으로, 해당 정기용선계약서의 오프하이어 규정 역시 2개의 문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선속저하로 인한 시간 손실은 2번 문단만 적용한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선주는 이 판결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상 사건의 법원은 The Ioanna 판결의 적용을 배척하였는데, 그 이유로서 오프하이어 규정이 다른 것에 주안을 두었다. 실제 관련 조항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법원은 The Ioanna 판결의 1번 문단에 대한 해석으로, 선박의 사용이 완전히 중단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보았다. 즉 순수한 시간손실이 아닌, 선박의 사용이 중단되고 다시 사용가능한 기간까지를 전부 오프하이어로 인정하는 조항이고, 선속문제에 관한 한, 2번 문단의 적용이 더 명확하므로 2번 문단의 적용만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달리, 대상 판결에서는 1번 문단도 순수한 시간손실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1번 문단은 대상 사건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The Ioanna 판결과는 달리, 대상 판결에서는 1번과 2번 문단의 적용을 다르게 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4)
 

V. 대상 판결의 해석 및 소결
대상 판결은 계약서에 기재된 선박의 속도가 slow-steaming 분규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중요한 판결이다. 또한 용선자가 slow-steaming을 직접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선속저하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면 slow-steaming으로 의제하는 중재인들의 접근을 법원이 인용함으로써, 앞으로 대상 판결은 선주의 제 8조 위반 및 제 15조 적용을 용선자가 입증하는 문제에 있어서 가중된 입증책임을 완화시켜 준 것에 의의가 있다.

또한 합의되지 않은 선박의 slow-steaming 운용은 선장이나 선원의 과실(default of Master, Officers or crew)이라는 오프하이어 요건에 해당된다고 인정함으로써, 지상약관에 일반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헤이그 / 헤이그 비즈비 규칙에서의 선주면책사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으므로, 선주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상 판결은 선주에 불리한 판결이긴 하나, 최근 BIMCO에서 나온 slow-steaming clause을 계약서에 삽입함으로써 선주의 위험을 다소 상쇄할 수 있다. slow-steaming clause는 용선자의 요청에 따른 slow-steaming을 전제하고 있으나, 요청이 서면으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용선자는 선하증권에 slow-steaming 사실을 기재할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분규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 추천할만한 계약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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