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운시장의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P3 네트워크’ 출범이 가시화됨에 따라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우리 항만업계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중국항만과 경쟁관계에 있는 부산항이 P3로 인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항만 전문가들은 터미널 얼라이언스 구축, 피더 네트워크 강화 등 부산항의 강점을 최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BPA)는 ‘부산항 네트워크’를 발족시키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해운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P3 출범이다. 지난 3월 미국 FMC(연방해사위원회)가 P3 출범을 승인함에 따라, 해운업계의 ‘거대공룡’인 P3의 운영이 가시화된 것. 아직 EU, 중국, 한국, 독일 등 경쟁국의 기업결합여부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미국이 승인했고 EU도 P3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P3 출범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P3 출범으로 국내 해운업계는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그러나 P3 여파가 해운업계를 넘어 항만업계에도 미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상하이항을 비롯해 신진 중국항만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부산항에겐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P3 상하이, 닝보항 기항 ‘유력’,
상해자유무역시험구 출범 부산 환적화물 ‘빨간불’

지난 4월 15일 개최된 ‘2014 철강·조선·해운 세미나’에서 김대진 KDB 박사는 “중국은 자국선사 보호를 위해 P3에 반대했지만, 자국항만인 상하이항, 닝보항 등의 기항확대 조건으로 승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예측했다. 환적화물 비율이 49.6%, 그 중 대중국 환적화물 비율이 60%가 넘는 부산항으로서는 분명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전망이다.


P3에 관한 해당선사인 머스크, MSC, CMA-CGM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P3가 중국 상하이항과 닝보항을 동북아시아 기항지로 정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닝보항의 경우  CMA CGM이 컨터미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P3와 더불어 지난해 9월 중국 정부가 출범한 ‘상해자유무역시험구’도 부산항에겐 악재이다. 그간 중국정부는 해외선박의 국제환적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상해자유무역시험구 출범으로 비중국선의 국제환적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만약 P3가 중국항만을 기항지로 정하면 연간 10% 이상씩 증가했던 우리항만의 대중국 환적화물 물량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연구자는 “P3 출범 발표 이후, 중국 정부는 기민하게 대응하며 항만업계에 가할 충격파를 최소화했다. 중국내에서는 P3 출범이 중국 해운산업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지만, 항만산업에게는 기회라고 말할 정도”라면서, “수출입 물량이 풍부한 중국항만은 상해자유무역시험구를 통해 부산항의 환적화물을 유치하고자 하는 전략이며, 당장은 중국지분이 포함된 비중국선에게만 환적을 부분 허용하지만 점차 기준은 완화될 것이다. 이는 향후 P3를 포함한 선사에게 상당한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얼라이언스 대형화, P3 독과점 항만업계도 악영향
P3 출범으로 인한 해운 얼라이언스 대형화도 항만업계에는 분명 악재이다. P3는 아시아-유럽항로의 40.7%, 한국-유럽항로의 48.3%, 대서양항로의 33.8%, 아시아-북미항로의 24.3%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유럽항로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이로인한 독과점적 지위가 예상된다. 특히 P3가 기존 얼라이언스와 다른점은 공동운항 뿐 아니라, 연료유 구매는 물론 항만터미널, 내륙운송업계와의 협상에서도 공동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드나드는 선박이 있어야 운영할 수 있는 터미널 업계로서는 ‘초대형 甲’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P3뿐 아니라 기존 얼라이언스도 덩치를 불리고 있다. 올 3월 코스코, K라인, 양밍, 한진해운이 속한 CKYH가 대만의 에버그린과 손잡고 CKYHE로 재탄생했으며, 4월 16일에는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와 칠레선사인 CSAV가 컨테이너 사업분야를 합병해 덩치를 불렸다. 대선사 협상력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항만터미널 업계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내 해운 연구자는 “P3의 가장 큰 목적은 ‘비용’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성을 내며 업계를 장악하기 위함인데, 이렇게 되면 항만은 물론 조선 등 관련산업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3 출범 초기에는 경쟁자들과 비난 여론을 의식해 무리하게 가격을 다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독과점 체제가 형성되면 터미널 등 비용 할인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항만 연구자는 “터미널사 입장에서는 손님, 곧 선사가 많을 수록 좋다. 협상할 상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P3 등 얼라이언스가 대형화되면 터미널 공급에 비해 선사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협상력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시아 최대 피더 네트워크 살리고, 터미널 얼라이언스 구축해야”
이처럼 P3 출범이 항만업계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국내 항만업계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P3에 대해 국내 항만단체에 문의했으나 “P3는 해운쪽 문제”라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학계·연구계에서는 P3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부산항의 강점을 최대화하고 보완점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부산항이 보유하고 있는 피더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부산항에는 동남아 85개, 일본 71개, 중국 43개 등 총 221개의 아시아 항로가 확보돼 있다. 이러한 풍부한 아시아 역내 피더 네트워크는 부산항의 입지적 강점을 보여주는 경쟁력으로 꼽힌다. P3가 출범하면 초대형선이 주요 항만에 직접 기항하기 때문에, 기항지가 줄어드는 반면 피더 서비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부산항의 강점인 촘촘한 피더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높은 환적비용과 항만배후단지는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신항의 환적비용은 1teu당 약 6~8만원, 만약 타부두로 환적할 경우 1teu당 15만원 수준으로 중국 상하이항보다 비싸다. P3는 물론 대형 얼라이언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환적비용을 내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 북항의 경우, 공급과잉과 운영사간 경쟁으로 컨테이너 하역요금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이다. 선사 유치를 목적으로 과도하게 운임을 내린다면, 부산신항도 북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에 학계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터미널 얼라이언스’를 구축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선사 얼라이언스와 마찬가지로 부두 운영사들이 영업은 별도로 하면서 선석은 공유하자는 것. 터미널 얼라이언스를 통해 선사 얼라이언스에 대응하고 과당경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산항 관계자에 따르면 “몇몇 터미널 운영사들 사이에서도 터미널 공동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직 구체적 논의단계는 아니지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5개로 나뉜 신항 운영사들의 입장이 각기 달라 구체적인 논의단계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 항만 연구자는 “북항 운영사 부분 통합에도 2년 이상이 걸린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부와 BPA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출입 화물 증대로 항만 기초체력 강화, 인터모달 서비스 개선
항만 배후단지 활성화를 통한 수출입 화물 증대와 내륙운송 등 인터모달 서비스 강화도 지적되고 있다. 항만 활성화를 위해선 수출입 화물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재 부산항의 경우 수출입화물과 환적화물이 50:50인 상황이다. 수출입 화물의 경우 비교적 고정적이지만 환적화물은 선사와 화주에 따라 급감할 수 있기 때문에 항만의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선 수출입 화물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항만 배후단지 활성화를 통해 제조·유통업체를 유치하고 이를 통한 수출입 물류 활성화가 장기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로, 철도 등 내륙운송과 연안운송간 인터모달Intermodal 시스템 정비도 요구된다. 유럽과 중국 항만의 경우 철도와 피더선을 활용한 인터모달 시스템이 발달돼 있는 반면,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우리 항만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P3의 경우 비용 합리성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지만 중심항만으로서의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기능을 강화한다면, 동북아 항만 중 입지적으로 유리한 부산항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한편 P3를 구성하는 선사들의 자회사 터미널 유무도 항만 기항지 선택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APM, CMA CGM은 Terminal Link, MSC는 Terminal Investment Ltd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운영사들은 전세계 28개 항만에서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아시아 항만은 중국 대련항APM, 닝보항TIL, 칭다오항APM, 샤먼항(Terminal Link, APMT), 일본 고베항APM, 요코하마항APM, 싱가폴항TIL, 탄중펠레파스항APM으로, P3가 기항하는 주간 서비스는 상하이항 14개, 싱가폴항 11개, 닝보항 11개, 탄중펠레파스항 9개 등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2013년 8월호, 포커스-‘P3 네트워크’ 전세계 항만터미널 과제 남겨)

 

이에 대해 국내 항만 연구자는 “부산항을 포함해 국내에는 P3 선사 터미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지만, 선사 터미널의 보유여부가 P3 기항지 선택의 ‘필요조건’은 아닐 것”이라면서, “P3는 비용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만큼, 다른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기항지 매력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BPA, ‘부산항 네트워크’ 발족.. “항만업계 힘 모아야”
정부와 BPA는 P3 출범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부산항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해양수산부와 BPA를 중심으로, 선사, 부산항 부두운영사, 부산지역 해운업계, 학계, 연구계 등이 참여하는 산관학 협의체인 ‘부산항 네트워크’는 4월 2일 BPA 회의실에서 발족식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BPA에 따르면, 부산항 네트워크 참가자들은 부산항 환적화물 유치를 위해 하역료 등 비용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터미널 간 환적화물의 효율적 운송시스템 개선, 항만 배후단지 기능활성화, 환적화물 및 피더선 이용 인센티브 강화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임기택 BPA 사장이 의장을 맡고, 김길수 한국해양대학교 교수가 부의장을 맡아 운영될 ‘부산항 네트워크’는 앞으로 격월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부산항 운송 효율화, 비용경쟁력, 서비스 개선 등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BPA는 별도의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피더 네트워크 활성화와 함께 P3가 공동운항을 하지 않는 중남미, 아프리카 등을 신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P3 유치를 위해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포트마케팅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정부와 BPA가 P3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업계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더이상 P3가 해운업만의 ‘이슈’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정부의 적절한 정책 수립과 대응을 위해 업계가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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