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남이섬 강변의 긴 머리 여인 그려
노래제목 ‘호수의 여인’서 ‘해변의 여인’으로 고쳐

남이섬 선착장 입구
남이섬 선착장 입구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 빛에 물 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 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해변의 여인’은 나온 지 오래된 가요지만 인기는 신곡 못잖다. 부르기 쉽고 가사가 서정적이어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중·장년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바닷가나 강변을 찾는 연인들의 분위기를 띄운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록풍인 이 곡은 박성규 작사·작곡에 나훈아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잔잔히 깔리는 듯한 멜로디가 해풍을 타고 실려 가는 분위기라 봄에 부르면 딱 맞을 것 같다. ‘해변의 여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목과 달리 바다가 아닌 강과 관련돼 있다.
 

1969년 만들어졌으나 1971년 빅히트
이 노래는 나훈아의 사실상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불리던 1969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처음엔 빛을 보지 못하고 1971년에야 떴다. 말하자면 ‘지각 히트곡’인 셈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69년 여름 오아시스레코드사 임·직원들 야유회가 계기가 됐다. 그 땐 가수도 그랬지만 작곡가, 작사가들도 레코드사 전속이 일반화돼있었다. 지금처럼 저작권법이 적용돼 발표 곡에 따라 작사료, 작곡료를 받는 게 아니었다. 발표하는 곡의 숫자와 관계없이 소속 레코드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 신분이었다. 나훈아와 같은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인 박성규 씨도 그날 야유회에 끼었다. 장소는 남이섬(면적 약 0.453㎢, 둘레 약 4km). 가평에서 남쪽으로 3.8km쯤에 있는 이곳은 행정구역상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속하나 가평군 달전리와 닿아있다. 조선 세조 때 이름난 무관 남이장군 묘가 있다고 해서 ‘남이섬’이다. 인기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남이섬 인어공주상
남이섬 인어공주상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박 씨는 야유회 팀들을 벗어나 혼자 강변으로 갔다. 조용히 생각하고 더위도 식힐 겸 해서였다. 그는 나무그늘이 있는 물가에 앉아 상념에 젖어 주위경치를 돌아보고 있었다. 마침 그때였다. 강 건너편 높은 바위에 앉아 있는 긴 머리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강줄기를 쳐다보는 그녀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움직이지 않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만 강바람에 휘날릴 뿐이었다.

박 씨는 문득 독일 로렐라이언덕의 전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꼼짝도 않은 채 바위에 앉은 모습이 하도 인상깊어 이를 가요에 접목시켜 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그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을 남겨두기 위해 오선지를 꺼냈다. 미술가들이 초벌 그림격인 데생을 하듯 악상을 정리, 오선지에 담았다.
20대 초반부터 탈모현상이 나타나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박 씨는 ‘머리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만 보면 무조건 따라다닐 정도로 자신의 대머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잖았다.
 

같은 제목 국내·외 영화도 나와
그날 서울로 돌아온 박 씨는 집으로 가지 않고 청계천 5가 오아시스레코드사 사무실에서 낮에 떠올랐던 악상을 작품화하기 시작했다. 밤늦도록 악보를 다듬은 그는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다른 가요와 달리 작사보다 작곡을 먼저 한 이번 노래만큼은 자신이 노랫말까지 붙이고 싶었던 것. 메모지를 꺼내 남이섬 강변에서 우연히 봤던 여인의 모습과 주변 자연의 풍광들을 노랫말로 적어나갔다.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 말없이 거니는 호수의 여인아~”

남이섬 강변 모습
남이섬 강변 모습

창밖이 부옇게 밝아올 무렵 노랫말은 거의 완성됐다. 제목은 ‘호수의 여인’. 악보와 노랫말은 다음날 레코드사로 나온 전속가수 나훈아에게 건네졌다. 한동안 속으로 중얼거리던 나훈아는 “노래제목을 ‘해변의 여인’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다. 우리나라는 호수가 별로 없는 대신 3면이 바다이고 해변도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여인’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대중가요라 바다와 해변에 얽힌 추억의 감흥을 줄 수 있는 ‘해변의 여인’이 더 낫다는 설명이었다. 노랫말의 ‘호수’도 ‘해변’으로 바꿨다. 박 씨는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부산출신 나훈아 얘기에 일리가 있다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해변의 여인’ 노래취입이 이뤄져 음반이 나왔다. 그러나 반응은 별로였다. 박 씨가 쏟은 열정에 비해 대중들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한 것이다. 박 씨가 작곡·작사가로서 유명세를 타지 못한데다 나훈아 역시 지금과 같은 톱 가수 대열에 끼이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더욱이 노래가 앨범의 밑 곡으로 깔려 대중들 눈길에서 멀어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같은 음반에 담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히트하는데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나훈아는 전속회사를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지구레코드로 옮겼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지구레코드사 소속 작곡가인 김영광 씨 작품이었던 게 발단이 됐다. 3시간 만에 28곡을 취입했을 정도로 부르는 대로 히트곡을 쏟아냈던 나훈아를 다른 레코드사로 빼앗겼다는 건 오아시스레코드사로선 큰 손실이었다. ‘가지 마오’ ‘머나먼 고향’ 등이 잇따라 터지자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조바심은 더했다. 결국 생각해낸 게 맞불작전. 나훈아의 또 다른 노래를 한꺼번에 내놓아 지구레코드사에서 발표하는 신곡의 빛깔을 흐려놓자는 계산에서였다. 그래서 발표 곡 중 괜찮은 걸 골라 새로 포장해내기로 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해변의 여인’. 음반 밑에 깔렸던 노래를 위로 끌어올려 나훈아 음반을 새로 내놨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노래가 만들어져 취입된 지 몇 년 지나 빛을 본 것이다. 지금의 대형가수 나훈아를 예견하는 듯 신인이었던 그에게 행운을 안겨준 가요가 바로 ‘해변의 여인’이다.

이 노래와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다. 1947년에 만들어진 외화 ‘해변의 여인(The Woman On The Beach)’과 2006년 8월 홍상수 감독이 만든 방화 ‘해변의 여인’이 그것이다. 외국영화 ‘해변의 여인’(장 르느와르 감독)엔 로버트 라이언(스콧 역), 조안 베넷(페기 역), 찰스 빅 포드(토드 역), 낸 레슬리(이브 역), 월터 샌드(오토 역) 등이 출연했다. 우리나라 영화 ‘해변의 여인’은 로맨스 멜로물로 김승우, 고현정, 송선미, 김태우가 출연해 눈길을 모았다.
 

나훈아, 2500여곡 취입…현재 잠적
노래를 부른 나훈아(본명 최홍기)는 1947년 2월 부산시 동구 초량2동에서 태어나 초량초등·대동중학교, 서울 서라벌예술고를 졸업했다. 클래식가수를 꿈꾸다 대중가수가 된 그는 여자 복(?)이 많은 편이다. 26살 때인 1973년 7살 위의 영화배우 김지미 씨를 만나 1981년까지 대전서 살았다. 이어 1983년 후배여가수 정수경(본명 정해인)과 결혼, 가정을 꾸렸다. 그가 불러 히트한 노래는 60곡에 가깝고 취입은 2500여 곡, 작사·자곡한 건 800여곡, 음반 낸 양을 앨범수로 따지면 200여장, 판매량은 약 2000만장에 이른다. 현재 잠적한 나훈아는 각종 루머 속에서 콘서트, 공연, 방송활동 등을 멈춰 팬들의 궁금증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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