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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지금, 한일관계를 생각한다
[489호] 2014년 05월 29일 (목) 17:01:50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前 주일대사) komares@chol.com

5월1일 오전 11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개최된 한일협력위원회 초청강연회에서 최상용 전 주일대사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인 최상용씨가 강연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일본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6년간의 학생 생활, 2년간의 대사 생활, 그리고 3년간의 교수 생활, 이렇게 11년간의 일본 경험을 바탕으로 해 가능하면 현안문제까지 포함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진솔하게 말하려 한다.

대사를 하면서 한일관계에 대해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물론 국민감정과 국가이익, 둘 다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복잡한 환경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사명을 가진 첨병이 바로 외교관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특히 한일관계에서는 언제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오늘은 한일 두 나라 관계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세계 속의 한국과 일본, 동북아 정치에서의 한국과 일본 이렇게 시야를 넓게 두고 말하겠다. 그러면 국민감정보다는 국가이익에 관한 전망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한일관계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단 이유에 대해,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지금’, ‘여기서’ 라는 것이 중요한 테마였는데, 내가 말하는 ‘지금’ 이라는 것도 과거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를 포함한다. 과거의 좋은 유산을 계승하면서 미래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을 현안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 문제, 즉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 풀기 어려운 3대 현안이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나로서는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답은 없다. 제한된 연구와 경험이지만 현재 내가 책임있는 공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솔직히 말하려 한다.

동북아, 세계 정치의 맥락에서 본 韓日관계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한미일 관계 속에서 한일관계가 어떤지는 사실상 불확실하다. 언제나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한중일 간에 지금 정상회담이 정례화됐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별로 나오고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중이라는 구도를 생각게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韓美日이다. 한미일 관계는 냉전시대와는 달라져 있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냉전이 무너졌지만 한반도에는 냉전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냉전시대의 한미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색하다. 냉전시대의 한미일 관계협력에서 얻은 긍정적인 유산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이를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지만, 매우 귀중한 공유재산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민간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한류의 매력도 있지만 역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다. 냉전시대에 한미일이 반공의 입장에서 연대를 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긍정적인 유산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미래에도 고수해야 할 가치하는 생각이다.

둘째는 韓中日이다. 한중일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구비중은 23%이다. 한중일 GDP 비중도  20%를 넘었다. 2500년 세계사를 볼 때, 세계의 중심축은 두 개다. 서양, 유럽, 미국으로 이어지는 한 축이 있고, 또 하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이다. 우리는 거대한 중국에 비해 작은 나라지만, 동아시아에서 한중일 3국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비중을 가진다. 중국 양저우의 최치원기념관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한 적이 있다. 9세기 최치원은 동아시아의 중심인 당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휘어잡는 외교, 군사문서를 많이 썼다. 최치원은 양저우 주변에서 16년동안 당시 중국문화를 체득했고 수많은 정치외교 문서를 집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걸출한 국제인이었다. 계원필경집은 사실 단순이 문학전집이나 시집이 아니다. 시도 있지만 당시의 시라고 하는 것은 문학장르에서 말하는 시詩이상의,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만큼 9세기에도 중국은 세계와 동아시아의 중심축이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미국과 중국이 G2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1세기 동아시아에서 한중일의 위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중요하다. 한중일간은 현재 놀라울 정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있다. 미증유의 일이다. 그러나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어려움이 많고, 특히 영토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갈등이 치유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20년 전부터 비정치 분야에서 협력의 상징으로 한중일 3국이 상설 오케스트라를 만들자고 주장해왔다. 한국과 일본 정치지도자들이나 예술인들은 대찬성이다. 중국만 찬성하면 급진전할 것으로 본다. 시진핑 주석의 부인은 중국의 대표적인 소프라노이다. 시진핑 주석이 결단을 내린다면, 한중일 전문 예술가로 구성된 상설 오케스트라 창설도 가능하리라 본다.

셋째는 韓美中과 南北韓 관계이다. 한미중은 삼각구도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이다.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이미 역사적인 시야에 들어와 있는 조국의 통일을 생각한다면 한중관계를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한중관계가 한미관계와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어떻게 발전할지, 고난도의 정치적 지혜와 외교역량이 필요하다.
다만 두려운 것은 한미중 관계를 논하면서 가끔 우리가 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한다든가, 이런 말을 스스로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실제 그런 역할이 제한적으로 있다 해도 외교사의 상식으로 보면, 우리가 영향력 있는 균형자 역할을 담당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평화통일 외교전략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 외국에서도 이해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패권을 지향하는 대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도 아니다. 적절한 군사력과 매력적인 문화의 힘을 가진 중견국가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평화통일 외교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대한민국은 천년 넘게 통일국가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688년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 단순 계산으로도 1222년 동안 한반도는 통일국가를 유지해왔다. 물론 삼국통일 후에 후삼국의 분열이 있었지만, 적어도 천년 이상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것이다. 대사시절 만난 외국대사들은 다들 교양이 있고 식견이 높았지만, 그중에 한국이 천년 넘게 통일국가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처럼 역사적인 당위성으로도 그렇고, 또한 국제정치적인 현실에서 봐도 이제 통일은 우리 차례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는 베트남, 독일, 그리고 한국이다. 베트남이 39년, 독일이 23년 전에 통일되었다. 과정으로서의 통일, 역사적 전망으로서의 통일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천년 이상 유지한 통일국가를 재통일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역사적사명이기도 하다. 헌법 4조도 평화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국제정치 현실로, 그리고 우리의 잠재적인 역량으로 볼 때, 통일외교 전략을 세워서 주변국가를 설득해나가는 작업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를 일찍부터 지지해 왔다. 주일대사 재임시 고이즈미 총리를 대사관저 공식 만찬에 초청한 적이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가 흔쾌히 수락하여 놀랐다. 현직 총리로서 주일 한국대사관저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은 아마 고이즈미씨가 처음일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와의 수차례 만남 속에서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이 경제력을 외교력, 정치력으로 전환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같은 내용의 얘기는 당시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던 도요타의 오쿠다 회장에게도 몇 차례 전했다. 고이즈미씨가 현직 총리로서 북한을 두 번 방문했다. 국교정상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납치문제 때문에 결국은 좌절되고 말았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도 그 기조는 살아 있다. 여러가지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예견할 수 있는 장래에 북한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일본이 미래지향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유산과 우호의 기준
한일관계의 긍정적 유산과 우호의 기준에 대해, 지금 한일관계가 최악이라고들 한다. 과거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 즉 좋은 유산이 무엇인지 찾아봤을 때 무라야마 담화를 빼 놓을 수 없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   총리가 일본의 전쟁 책임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한 최초의 문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으로 중요한 양국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거론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을 한일 쌍방이 합의한 것이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다. 예견할 수 있는 장래에 이보다 더 양질의 양국 정상 합의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무라야마 담화에서 사죄의 대상국은 ‘아시아의 여러나라들(Asian countries)'이다. 한국 또는 중국이라는 언급이 없이 아주 포괄적인 역사적 성찰이다. 사회주의자다운, 사회당 위원장 출신다운 양질의 역사관을 담은 것이다. 좋은 스타팅 포인트이다. 무라야마 담화를 문서화, 구체화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자민당정권의 오부치게이조총리가 1998년 합의한 것이 바로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의 한일관계를 ‘65년 체제’ 1998년 한일파트너십 선언 이후의 한일관계를 ‘98년 체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으로 검색해 보면 2~3페이지로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한일관계의 난제: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끊임없이 등장하는 역사문제와 외교현안에 대해한 소견을 말씀드린다.
첫째 독도 문제이다. 사견을 말하면, ‘평화적인 현상관리’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 유명 노정치가 중에 ‘독도문제는 미해결이 해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은 태만이나 회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토 내셔널리즘이라는 고통스러운 정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외교사에는 영토 내셔널리즘 때문에 대사소환, 국교단절, 때로는 전쟁까지 불사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 그런 지경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되겠다. 독도가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현상이란 우리의 실효지배라는 현재의 상태를 중심내용으로 한다. 대체로 영토분쟁에 있어서는 실효 지배하는 나라가 유리하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나 그에 멈춰서는 안된다. 외교전에서 사실에 대한 입증과 홍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가능한 한 냉엄하게 대응해야 한다. 냉엄하다는 것은 상대방의 도전이 있을 때는 그에 상응한 대응만 하면 된다는 뜻이며,  그 이상 더 나갈 필요는 없다. 이것이 평화적 현상관리이다.

둘째, 교과서 문제이다. 내가 온몸으로 대처했던 테마였다. 교과서 문제로 사실상의 소환에 해당하는 10일간의 귀국을 했다. 당시 공식적으로 ‘외교 협상차’ 귀국하여 국회에서도 많은 질문에 답을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학자로서의 본성이 살아났는지 ‘역사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다.

역사인식의 문제를 두 가지로 파악한다. 역사적 사실 확인(historical fact finding) 문제와,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이다.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관용을 갖자는 입장이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해석은 다를 수 있다. 나라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의 인식이다. 그래서 많은 강연에서 두 가지 문장으로 논지를 폈다. 역사학자 랑케 이야기를 했는데 꽤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자 이야기만 인용하기는 좀 그래서 문장을 만들었는데 ‘역사는 모래 위에 쓰는 글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역사는 지울 수도 없고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는다는 의미를 약간 운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외교가에서 이 말이 인구에 회자되곤 했다. 150여 차례 강연을 했는데 수백면에서 천명까지 모였다. 그 이상 경제적인 외교가 없다. 가령 책임 있는 정치가를 일본요정에서 접대할 경우 너무 큰 비용이 든다.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공외교의 시도와 비슷하게 ‘강연외교’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됐던 교과서의 채택률이 0.039%에 머물렀다.

그 결과를 보고 나는 평균적인 일본 국민에 대해 신뢰가 생겼다. 일본 국민은 세계적으로 교양이 높은 국민이다. 보통 교양이라고 하면 세익스피어와 베토벤은 물론 논어와 맹자도 안다. 만약 우리가 교양을 ‘동서양에 관한 균형잡힌 지식’ 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교양 수준이 가장 높은 국민 중 하나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제교과서에 대한 일본의 채택률 0.039%는 평균적인 일본 국민의 양식을 대변한 것으로 본다. 교과서 채택은 정부의 아무런 압력 없이 지방 교육위원회가 민주적으로 결정한다. 0.039%는 0%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숫자이다. 0%는 스탈린 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0.039%의 채택률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의 주장이 그래도 조용히 일본시민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셋째 야스쿠니신사참배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내에서 어느 정도 해답이 나와 있다. 우산 와타나베(渡邊恒雄)씨의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가장 판매부수가 많은 일본의 보수 주류신문인 요미우리(讀賣)신문의 회장 겸 주필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야스쿠니참배 문제를 일본인 자신의 문제로 파악하고 총리의 참배는 단호히 반대해왔다. 일본 역대 총리중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일본보수정치의 원로 나카소네(中曾根康弘)씨는 주변국의 반발에 이유 있다고 보고 그 후 참배를 하지 않았다. 자민당의 후쿠다(福田康夫) 전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담호의 수정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목표와 관련하여 이른바 ‘普通國家’론을 제기한 제1야당 민주당 당수였던 오자와(小澤一郞)씨도 그 보수성향에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다를 게 없지만 A급 전범의 분사分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제단체인 ‘경제동우회’도 총리의 야스쿠니참배를 반대한 바 있다.

이 정도 분위기의 성숙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총리의 야스쿠니참배 자제(自制)의 형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내가 일본신문에 게재한 칼럼이 미야기현 여자학원대학의 입학시험에 논술시험문제로 출제됐다. 한국이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과 이웃나라에 대한 배려는 결코 모순이 아니며 일본에 이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형성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골자였다.
아베(安倍) 총리도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약속한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받아들인다고 했고, 한때 야스쿠니참배를 자제한 바 있다. 다만 오바마 미대통령의 일본국민 방문을 앞두고 각료를 포함한 일본정치지도자들이 집단으로 야스쿠니참배를 강행한 것은 아베정권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며 이러한 경향은 아베정부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 한일간 쟁점을 푸는 출발점으로 두 나라 정부가 합의한 ‘21세기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역사문제와 관련된 3가지 쟁점에 대해서도 국가이익의 상호인정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선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두 나라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이념을 갖고 있는 두 나라라는 점. 이 점은 한일간의 모든 쟁점을 극복할 수 잇는 공통의 기반이 됨.
2. 일본은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나라라는 점, 지구상에서 1500년 이상 왕조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나라. 제 2차 세계대전 후 2009년 8월까지 단독야당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한 번도 없었던 나라, 요컨대 역사에서 변화보다 연속성을 강조하는 나라라는 점.
3. 한국의 주장이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면 그것을 이해할 만한 일본국민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 2001년 교과서 파동때 문제의 역사교과서 채택율이 0.039%에 그쳤고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참배를 반대하는 일본 국민이 53%였던 점.
4. 두 나라 사이에 쟁점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 두 나라 지도자가 공식 비공식적으로 대화하면서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다면 극복 못할 것이 없다는 점. 두 나라 지도자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 思慮(prudence)를 잃지 말 것. 특히 역사문제에 있어서 절제된 言行은 두 나라 국민의 상호존중의 기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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