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고은 시인이 1970년 우리말로 작시作詩한 번안노래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려…은희, 양희은 취입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이 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이여 바다를 비춘다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이며 지새우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 바다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부산 태종대 등대
부산 태종대 등대

은희가 부른 ‘등대지기’는 비교적 단조로운 음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외국번안곡이다. 등대근무자(등대지기, 등대수)들을 소재로 한 노래로 오기택이 부른 대중가요 ‘등대지기’와 제목은 같지만 흐름이나 노랫말은 전혀 다르다.
‘등대지기’는 4분의 3박자 왈츠풍으로 나가 부르기가 쉬운 편이다. 악보와 함께 밝혀진 원곡은 1864년께부터 미국에서 발간된 음악교본 속의 찬송가 ‘The Golden Rule’이다. 제목은 등대지기를 직역한 ‘Lighthouse Keeper’. 작곡자는 Richard Storrs Willis란 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건 없다. 작사자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I. J. Zimmerman으로 확인됐으나 미국의 어느 기독교 종파에서도 불리지 않는 잊혀져버린 찬송가다.
 

일본에도 같은 내용 노랫말 동요 있어
우리나라에선 고은 시인이 1970년 우리말로 작시(作詩)해 44년간 고운 선율로 불리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도 실린 이 노래 가사는 아름다운 시구절로 이어진다.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멜로디여서 국민가요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번안곡 ‘등대지기’는 일본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노랫말로 잘 알려진 동요 ‘등대수’가 있다. 일본의 유명문학자이자 시인인 Katsu Yoshio씨 창작품이다.

1970년께 은희와 양희은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영국(또는 아일랜드)민요란 설명과 함께 대중가요로 소개했다. 그 뒤 정부의 4차 교육과정(1981~1987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악보와 함께 작곡자는 특정이름 대신 ‘영국민요’로 돼있다. 웹페이지에도 작곡자는 영국민요·아일랜드민요(또는 스코틀랜드민요)로, 작사자는 고은 또는 유경손으로 웹페이지마다 각기 다른 가사와 함께 부정확하게 돼있다. 음악전문가들은 이처럼 잘못된 기록은 바로잡아야한다는 견해다. 이 노래가 1947년 이후 발행된 일본초등학교 음악교과서의 노래제목과 가사내용을 그대로 빌렸으므로 2010년부터 새로 실린 ‘등대지기’ 작곡자와 작사자에 대한 기록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 가사가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다. 1, 2절 모두 일부 단어가 바뀐 부분이 1~2개 있긴 하나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 있을 수 없는 ‘북쪽의 바다(北の海)’부분 등을 빼면 완전히 같은 단어와 의미의 가사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리면서 새로 창작했거나 작사됐다기보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가사내용을 번역해 썼음을 알 수 있다.

‘등대지기’의 일본어가사를 우리말로 옮긴 사람으로 유명한 원로성악가 유경손씨(80, 앨토)는 2011년 8월 20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한국기독교 유아교육연합회장, 서울YWCA 회장을 지낸 그는 1943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뒤 해방 후 ‘로켓’, ‘병원차와 소방차’ 등 동요를 작사·작곡하며 유아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작곡가 고(故) 나운영씨와 결혼했다. 유족으론 나건씨 등 1남2녀가 있다.
 

우리나라 유일한 내륙지 등대인 영산포 등대
우리나라 유일한 내륙지 등대인 영산포 등대
‘등대지기’,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애창곡
‘등대지기’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애창곡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4월 6일 오후 8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Memory of Him-김수환 추기경 추모의 밤’ 때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김지영 신부(서울 미아3동 본당주임)와 황수경 KBS 아나운서 진행으로 이어진 추모행사에선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 양미경(엘리사벳)씨가 ‘감사와 사랑운동’에 대한 소개시간도 마련됐다. 행사는 김 추기경이 즐겨 불렀던 ‘등대지기’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선창으로 참가자들이 합창하며 막을 내렸다.

가수 서문탁도 ‘등대지기’를 불러 뉴스메이커가 됐다. 그녀는 2012년 11월 4일 방송된 MBC ‘일밤-나는 가수다2’에 출연, 이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나는 가수다’ 사상 처음 동요를 선곡한 그는 “이 무대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며 각오를 다진 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등대지기 이야기라 생각해주길 바란다”며 선곡이유를 밝혔다. 피아노선율에 맞춰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그는 폭발적 고음으로 깊은 감정을 나타냈다. 일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감격적이었다는 평가다.
2001년 9월 ‘등대지기’란 같은 제목의 책(저자 조창인, 출판사 밝은 세상)도 나왔다. “진정 마음 깊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당신도 아름다운 등대지기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름들이 있다. 이를테면 뱃사람들에게조차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 등대지기가 그렇다”는 책 소개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노랫말에 나오는 ‘등대’는 망망대해를 오가는 무역선, 여객선, 군함 등엔 수호천사와 같은 시설물이다. 인천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 1일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다. 이 등대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대한제국 때 일본이 한반도 침탈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맺기 2년 전 일본 배들이 인천항을 드나들다 바다 속 바위에 부딪히는 사고를 겪자 조선정부에 ‘통상장정(通商章程)’을 들이대며 등대를 세우도록 강요했다.

1903년 6월 해발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 높이 7.9m, 지름 2m의 콘크리트등대는 그렇게 세워졌다. 처음엔 90촉광짜리 석유등으로 불빛을 만들었다. 일제의 강요와 프랑스기술자에 의해 세워졌지만 조선인 근로자들이 동원돼 대한제국 이름으로 세워진 우리나라 첫 등대다. 이렇듯 팔미도등대는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는’ 감상적 불빛이 아니라 침탈자의 뱃길을 인도했던 ‘제국의 불빛’이란 아픈 역사를 품고 태어났다. 특히 6·25전쟁 땐 인천상륙작전(1950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2년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등대는 더 쓰지 않고 새 등대에 역할을 물려주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 모습만은 남아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로 지어진 등대 안엔 팔미도 소개와 인천상륙작전 승전을 기념하는 박물관 형식의 홍보관이 있다. 위층엔 무의도, 실미도, 서해안 일대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 현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
우리나라 최초 현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

우리나라, 1962년 9월 국제등대협회(IALA) 가입
육지 하천가에 있는 유일한 영산포등대(나주시 이창동 280-1 / 등록문화재 제129호)도 이채롭다. 1915년에 설치된 이 등대는 해상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영산포 선창에 세워진 높이 8.65m의 산업시설물이다. 영산포 홍어거리로 가는 영산포의 끝자락에 서있는 이 등대는 영산포가 잘 나가던 때 배 안내자 역할을 했고 해마다 넘치는 영산강 물 높이를 재는 기능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2011년 4월 8일 KBS 광주방송국이 보도했다. 건설기술연구원 김원 박사는 영산포등대가 내륙등대 기능을 하지 않았고 영산강이 넘치는 지를 확인하는 수위관측시설로 지어졌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일제강점기 때 사진과 1962년 발간된 한국수문조사서의 건축물설계도, 관측자료 등 역사적 고증으로 확인했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섬에 있는 높이 110m의 등대다. 우리나라는 1962년 9월 국제등대협회(IALA)에 가입했다. 현재 우리나라 등대시설은 양적, 질적으로 국제수준의 시설을 갖췄다. 1903년 점등을 시작한 장기갑등대(경상북도기념물 제39호)엔 1985년 등대박물관이 세워져 국내·외의 등대관련자료 800여점을 전시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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