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호·남영호·서해훼리호·세월호...대형참사 ‘닮은 꼴’

 
 
되풀이 되는 해난사고, 과적·정원초과 등 안전불감증 주범
올해 부산·여수서 운항과실 기름유출사고 잇따라 발생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대형 해난사고들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인명과 재산, 환경피해를 가져왔던 선박사고들은 주로 정원초과와 과적, 무리한 항행, 당국의 지도·감독 소홀, 사전·사후조치 미흡 등 안전 불감증이 낳은 전형적인 인재였다. 1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국내 역대 대형 해난사고 및 최근 해양사고 발생 동향을 짚어본다.

1953년 1월 9일 146톤급 여객선 ‘창경호’가 전남 여수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중 부산 다대포 인근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했다. 공식기록에는 선원과 승객 236명 중 229명이 숨지고 7명이 구조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창경호의 승선자 및 사망자 통계는 정확하지 않으며 사망자를 최대 330명까지 보기도 한다.

 
 
1953년 창경호, 강풍에 정원초과로 229명 사망
1차적인 사고 원인은 악천후와 풍랑이었으나 당시 선령이 20년 이상 된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개조한 창경호는 실제 수용 가능한 인원을 초과했을 뿐 아니라 쌀 200가마까지 실어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회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따르면, 창경호는 배에 비치되어 있었어야 할 구명보트 1척과 구명복 70벌을 모두 본사 창고에 두고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1963년 1월 18일 10시경 여객선 ‘연호’가 전남 목포시 허사도 앞 해역에서 침몰했다. 연호는 강한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항해하다가 강풍에 선체가 완전히 침몰했으며 14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했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간을 운행하는 정기 여객선 연호는 사고 당일 정원 86명을 초과한 여객 141명을 실었으며 여기에 곡물류 150가마 등 화물의 무게도 적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1967년 1월 14일 21시 54분경 경남 창원군 천가면가덕도 서쪽 1.6km 해상에서 여수항을 출발하여 부산항으로 가던 정기 여객선 ‘한일호’는 기지로 복귀하던 진해 해군기지 소속 구축함 충남함과 충돌, 침몰하여 93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1970년 남영호, 과적에 초기대응 미흡 323명 사망
862톤급 여객선 ‘남영호’ 참사는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로 기록돼 있다.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27분, 제주 서귀포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항해하던 남영호는 남해 여수 인근 소리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현재 기록된 국내 선박사고 중 가장 많은 323명의 사망자를 냈고 생존자는 12명에 불과했다. 가장 큰 사고 원인은 정원 초과 및 과적, 항해 부주의, 대응 미숙 등으로 밝혀졌다. 당시 선령 2년에 불과했던 남영호에는 302명이 정원인 선박에 338명이 탑승했고 농산물 화물의 규모도 130톤의 적재량을 넘어선 230톤이 실려 있었다.

초동대응도 허술했다. 남영호가 침몰 당시 발신한 긴급구조신호SOS를 국내에서는 단 한 곳도 수신하지 못했으며 사고 당시 부근을 순시하던 일본 해상 보안순시선과 일본어선 등이 일부 생존승객들을 구조했다. 어선사고로 오인한 해경이 사고발생 12시간이 지나 구조선을 급파하는 등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대부분의 승객들은 구조를 기다리다 영하의 바다에서 동사했다. 남영호 침몰을 계기로 1973년 12월 여객선 운항관리제도가 도입됐다.

 
 
1993년 서해훼리호, 무리한 출항 292명 사망
1993년 10월 10일 9시 40분경 전북 부안군 위도면 파장금항을 출항하여 격포항으로 향하던 ‘서해훼리호’가 악천 후 속에 침몰하여 292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고 원인은 정원 초과와 악천 후 속 무리한 운항 등으로 밝혀졌다. 서해훼리호는 당시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고 파고가 2~3m로 높았던 악천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출항에 나섰다. 서해훼리호는 해상 임수도 근해에서 높은 파도로 인해 운항이 어렵게 되자 위도로 회항하려고 선수를 돌리는 순간 선체가 한쪽으로 쏠리며 침몰했다.

서해훼리호는 정원을 초과해 운항했다. 110톤 규모에 정원이 221명에 불과했으나 사고 당시 362명이 승선한데다 사고당일 선박의 항로를 결정하는 항해사가 휴가를 이유로 탑승하지 않았고, 안전요원은 단 2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원을 초과한 배의 앞부분에는 화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침몰 뒤 대응이 늦어져 70명만 구조되는 등 희생자 수가 크게 늘었다. 경찰헬기는 신고 접수 후 30분 뒤에 출동했고, 해경의 구조선은 사고현장에 1시간 뒤에 도착했다. 당시 비상사태 발생시 인명구조에 사용되는 구명장비의 미작동과 실제 구조작업 및 선박인양 작업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 장비의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초대형 해양오염 사고 ‘씨프린스호’·‘허베이스피리트호’
우리나라 연안의 환경파괴를 불러온 초대형 유류 해양오염 사고도 있었다. 1995년 7월 23일 14시 5분경 전남 여천군(현 여수시) 남면 소리도 앞에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사의 키프로스 국적 14만톤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태풍으로부터 피항하던 중 암초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 과정에서 8,381㎘(5,035톤)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전남 여천군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4km의 해상과 73km에 이르는 해안이 오염됐으며 3,826㏊의 양식장 피해가 발생했다. 어민 피해 산정에 의한 재산피해는 443억 5,600만원이고, 씨프린스호의 선원 1명이 실종됐다.

사고 후 해안가에 달라붙은 기름을 제거하는 데 3개월 이상이 소요됐으며 대규모 오염 복원작업에도 불구하고 사고발생 6년이 지난 2001년까지도 침몰해역 밑바닥에서는 기름띠가 발견되는 등 사고의 여파가 지속됐다. 조개류 양식장이 황폐화됐고 바지락 채취량은 사고 전인 1994년에 비해 70%, 전복은 56% 감소했다. 지하까지 기름이 스며들어 양식장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 저서생물의 종류도 199종에서 151종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2007년 12월 7일에는 씨프린스호 사건 보다 2배나 많은 기름이 유출된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이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홍콩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는 해상 크레인과 충돌하여 총 1만 2,547㎘(1만 900톤)에 이르는 원유를 유출했다. 삼성 예인선단 2척이 인천대교 건설공사에 투입되었던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을 쇠줄에 묶어 경남 거제도로 예인하던 도중 새벽 6시 50분경 한 척의 예인줄이 끊어지면서 해상크레인과 유조선이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유조선의 3개 화물탱크에 구멍이 뚫리며 서해안 일대의 해상 및 해안가로 다량의 기름이 유출됐고, 7,341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하는 등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을 초래했다. 2007년 12월 11일 충남 태안·서산·보령·서천·홍성·당진 등 6개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정부 차원의 방제대책이 마련됐다. 10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반도의 방제 및 복구 작업에 힘을 모았다.

이밖에 크고 작은 선박사고가 매년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생했다.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해군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해 해군장병 46명이 사망하고 58명이 구조됐다. 4월 2일에는 천안함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캄보디아 화물선과 침몰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다. 2013년 10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파나마 국적 8,000톤급 화물선 ‘청루호’가 영일만항 방파제와 충돌해 침몰, 외국인 선원 10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올해 기름유출 사고 잇따라 발생, 여객선 세월호 침몰
올 초에는 부산과 여수에서 선박충돌로 인한 기름 유출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월 31일 광양항 원유 2부두로 진입 중이던 16만 4,000톤급의 싱가포르 유조선 ‘우이산호’가 무리한 접안을 시도하다가 송유관을 파손시키면서 송유관 내부의 기름 최소 164㎘가 해상으로 유출됐다. 사고의 원인은 도선과정에서의 운항과실로 추정된다. 도선사가 원유부두로 접안을 시도하던 중 안전한 속력을 유지하지 않고 약 7노트 속력으로 무리하게 접안을 시도하면서 송유관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2월 15일 오후 2시경 부산 남외항에서 ‘캡틴밴젤리스엘호’와 유류선 ‘그린플러스호’가 충돌해 대규모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에서 출항해 페루로 향하던 ‘캡틴밴젤리스엘호’가 부산 남서방 2.8마일 해상 정박지에서 유류공급선인 ‘그린플러스’호로부터 연료유를 수급하는 과정에서 높은 너울로 인해 양 선박이 충돌한 것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선박 연료유인 벙커C유가 사고선박으로부터 2.5마일까지 퍼져나갔으며, 유출량은 237㎘ 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화물선의 침몰사고도 있었다. 4월 4일 오전 1시 19분 여수 거문도 남쪽 74㎞ 해상에서 항해 중이던 몽골 선적 4,300톤급 화물선 ‘그랜드 포춘’호가 침몰했다. 동 선박은 북한 청진항에서 중국 장두항으로 가던 중이었으며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북한 선원 16명 중 2명이 숨지고 3명이 구조됐으며 11명이 실종됐다.

304명의 사망자 또는 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은 지난 4월 16일이다. 이날 오전 8시 48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황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에는 총 476명이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5월 23일 현재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사망자 수는 288명, 생존자 172명, 실종자는 16명이다. 현재 참사원인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나 화물과적과 허술한 고박, 선박평형수 부족 등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선장과 선원, 해운사의 부도덕성과 정부의 구조 초기 대응 미숙이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한편 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해양사고는 총 3,750건이고 월평균 63건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용도별로는 5년간 월 평균 80척의 선박이 사고가 났으며 어선이 58척, 화물선 8척, 예·부선 8척, 유조선 3척, 기타 2척, 여객선 1척 순이었다. 5년간 월 평균 인명피해는 19명이었다. 사고유형별로는 기관손상 1,050건(28.0%), 충돌 842건(22.5%), 좌초 289건(7.7%), 화재/폭발 213건(5.7%), 침몰 108건(2.9%), 기타 1,248건(33.2%)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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