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 안전관리 미흡, 업계 자율 ‘안전제도’ 문제 지적

 

 

어느 때보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가고 있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선야드에서는 두달새 8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야드에서 안전의 중요성은 매년 강조되고 있지만, 사상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잇따른 사고에 조선사들은 안전요원을 늘리고, 안전진단을 받기로 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안전관리와 업계 자율에만 맡겨진 조선업 ‘안전 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월 21일 현대중공업 울산야드에서 발생한 LPG선 화재사고
4월 21일 현대중공업 울산야드에서 발생한 LPG선 화재사고

현대중공업에서는 4월 한달동안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4월 21일 용접작업 중인 LPG선박에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으며, 26일에는 선박의 녹을 제거하는 샌딩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공기호스에 목이 감겨 숨진 채 발견됐다. 이틀 뒤인 28일에는 트랜스포터 차량의 신호수로 작업중이던 작업자가 2m 아래 바다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한달 전인 3월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작업중이던 노동자가 바다로 떨어져 1명이 사망했고, 현대삼호중공업 작업장에서 철판에 깔려 1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두달동안 이어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내놓고, 안전경영부를 비롯한 각 사업본부 산하 9개 안전환경 조직을 대표이사 직속 안전환경실로 개편하고 총괄 책임자를 전무급에서 부사장급으로 격상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중대 안전수칙 위반을 발견하면 안전 관리자가 즉시 작업 중지권을 발동해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현대重, ‘안전경영’ 쇄신 종합대책 수립 3,000억 투입해 안전강화
5월 13일에는 ‘안전경영’ 쇄신 종합대책을 수립한다고도 발표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회장,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하경진 현대삼호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 20여명이 참석해 종합 개선대책회의를 가지고 총 3,000억원의 예산을 안전경영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


이번 회의를 통해 현대중공업은 5월 중 외부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의 종합진단을 통해 회사의 안전경영 체제에 대한 전면적이고 심도깊은 분석을 받아 근본적인 안전경영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동사는 △안전환경조직 강화 △협력회사 안전활동 지원 확대 △잠재적 재해요인 개선 등 크게 3가지로 종합안전 개선대책을 마련했다. 현대중공업은 안전경영부를 비롯해 각 사업본부 산하의 9개 안전환경조직을 김외현 대표이사 총괄사장 직속인 안전환경실로 개편하고, 총괄 책임자를 전무급에서 부사장급으로 격상하는 등 안전 조직 및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협력회사의 안전전담요원을 200여명 수준으로 기존보다 2배 이상 증원해 현장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중대재해가 집중된 협력회사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안전요원을 협력회사별로 지정해 안전 도우미로 활동하도록 하고, 전체 협력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4시간의 맞춤형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여기에 안전진단 전문가에 의한 특별 진단팀을 운영, 경험적이고 관행적으로 간과됐던 잠재위험에 대해서도 철저히 개선하는 등 회사의 안전제반사항을 총체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또 현대중공업 관련 부서장과 협력회사 대표가 함께하는 합동 상시 점검반을 운영, 현장의 위험요소를 함께 개선하기로 했다.


매년 발생하는 조선소 사망사고, 하청근로자 관리 허술, 정부 감독부실 지적
올해 발생한 사고로는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고가 전부이지만, 국내 대형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안전사고에서 자유롭지 않은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12~2013년에 총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삼성중공업도 2012년 노동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조선업계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데에는 조선사와 근로자의 안전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조선업 관계자들은 대형 조선소에 파견되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청노동자의 경우, 제대로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보통 일정 업무 이후에는 바로 소속회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부실 관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조선업 관계자는 “조선야드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의 피해자는 하청 노동자들”이라면서, “하청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안전교육과 관리 대책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기업 자율에만 맡기는 정부의 감독 부실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산업의 안전관리를 관리하는 제도인 ‘조선업 안전보건 이행 평가제’가 각 기업 주도로만 진행되고 있어 정부의 강력한 감독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안전보건 이행 평가제’(이하 안전평가제)에 따르면, 기업은 1년에 한번 안전보건 이행 평가계획을 작성해 제출하고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반의 검사를 받는다. 이들 평가반은 3~4일만에 계획 이행 여부를 평가해 안전등급을 매기며, 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에 한해 차기 안전 평가를 면제·유보한다.
 

2011년부터 시행된 안전평가제는 2006년 도입된 ‘자율관리 평가제도’가 전신이다. 당시 정부는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관리 촉진을 통해 사업주의 안전의식을 제고하겠다는 명목으로 동 제도를 도입했으나, 시행 4년만에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로 현재의 안전평가제로 제도를 바꿨다.
 

문제는 제도를 변경한 이후에도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조선 전문가는 “과거 제도나 현행 제도 모두 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철저한 감독 없이 계획에 대한 평가만으로 안전사고를 100% 예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선업의 특성상 한번 사고가 나면 큰 사상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단순히 계획서만으로는 철저한 안전관리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조선사 노동조합 관계자는 “안전평가제에서 양호 판정을 받아 평가가 면제된 사업장에서도 사상사고가 발생하는 지경”이라면서, “허울뿐인 평가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 제도의 관할부처인 고용노동부 측은 안전평가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안전평가제 시행으로 산업재해가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사업자 자율적인 안전 관리도 더욱 철저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조선소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특정 사업장과 사업분야의 사고만으로 평가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면 안전평가제와 별도로 진행할 수 있으며, 조선업을 포함한 위험업종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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