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노래

남순백
남순백
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한 ‘제 7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의 일부를 올해 신년호부터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연재하고 있다. 1월에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정혁씨의 ‘소년과 바다’(수필)를 게재했고, 본호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한 남순백씨의 소설 ‘파도의 노래’를 싣는다. 소설의 특성상 원고분량이 길어서 남순백씨의 수상작은 4회(3-6월)에 걸쳐 연재한다.
‘파도의 노래’는 필자가 △선장의 고독한 독백 △바다와 결혼한 사나이 △구멍난 뱃사람의 주머니 △살아있는 선원의 무덤 △파도의 노래 △하나로 통하는 바다의 신비... 글을 나누어놓았는데, 본 호에서는 이중 파도의 노래, 하나로 통하는 바다의 신비 부분을 편집했다.                             -편집자 주-

많은 시인들이 바다를 여인의 보드라운 가슴살에 비유했다. 그 여인은 엄마이리라. 세상에 엄마의 젖무덤 살보다 더 보드라운 것이 있을까? 잔잔한 바다! 다만 솜털보다 가볍게 일렁이는 바다는 여인의 속살이 분명했다. 하늘은 높고 갈매기가 나르며 자그만 고기떼가 폴짝폴짝 물위로 뛰어오르는 바다는 제 혼자만 아는 소녀의 속살보다 더 보드라웠다. 내가 본 바다 역시 시인이 본 바다와 같이 고왔다.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바다는 보석을 뿌린 듯 고왔고, 수많은 잔잔한 유리알이 흩어져 강처럼 흐르고 있는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 계곡보다도 더 부드러워 보였다.

어떤 이들은 바다를 엄마에 비유했다. 그들은 바다를 엄마의 치마폭이라 하며 넓고도 아늑하다고 했다. 내가 본 바다 역시 그랬다. 그 치마폭은 한번 싸이면 세상의 어떤 것도 무섭지 않은 나의 안식처였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본 바다는 엄마의 마음 한 구석이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다. 하늘보다 높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요, 바다보다 더 깊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온갖 것들이 품속으로 흘러들어도 바다는 엄마처럼 그 모든 것을 가슴속에 품어서 삭여내었다. 세상에 내가 아니면 이런 더럽고 험한 일을 누가 하랴며 바다는 용광로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녹여내었다. 내가 본 바다는 바로 그랬다.

또 어떤 이는 바다를 시앗 같다고 했다. 샘이 많고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진 게 분명했다. 바다는 만선의 깃발만을 흔드는 곳이 아니었다. 바다는 엄마의 치마폭처럼 그렇게 녹록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본 바다 역시 그랬다. 시앗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은 것이 바다였다. 바다는 샘이 많아 가슴에 고이 안았던 배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기 일쑤였다. 심청이를 달라며 인당수 물에 심한 파도를 일으켜 지나가는 배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바로 시앗 같은 바다였다. 바다는 샘이 불같이 일 때는 애꿎은 고기잡이배까지 눈에 거슬린다며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혀 버리기를 밥 먹듯이 해대기도 했다.

또 바다를 폭군과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다가 화가 날 때는 육지까지 쳐 올라가 온 바닷가를 휩쓸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바다도 그랬다. 바다가 미쳐 날뛸 때에는 마치 점령군처럼 무자비하게 온 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남정네들을 잡아가고 약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 말발굽은 잔인하고 너무나 처절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지막 남았던 한 줄기 재기의 의욕마저 깡그리 가져가고 말았던 것이다.
 

바다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그러나 누구도 바다를 바르게 본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역시 거짓말쟁이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바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바다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불과했다. 모두들 바다의 진짜 모습은 보지 못하고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실루엣을 보았을 뿐이었다. 종교인들이 신을 보았다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단지 마음속이나 흐릿한 환상으로 신의 그림자 내지는 염원하던 느낌의 꼬리 정도를 느꼈을 뿐이었다. 시인들이, 사람들이 본 바다가 바로 그랬다. 그들이 본 것은 바다의 참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파도의 노래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월이 지난 북태평양으로 난 뱃길은 춥고 파도가 높았다. 이때 떠나기 싫은 항구를 떠나는 기분은 우울하고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난바다로 나아갈수록 살을 에는 찬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 닥쳤다. 미국 서부해안을 향하여 가는 우리 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고는 도저기 배겨내지 못하겠다는 듯 배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마구 흔들렸다. 앞뒤로 흔들리고 좌우로 흔들리는가 하면 아래위로 널뛰기를 하듯 춤을 추었다. 키를 바로 잡았지만 키를 잡은 손도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이번 항차에는 화물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쪽에서 싣고 올 긴급화물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히 떠난 뱃길이기도 했다. 배수톤수가 2만 톤이 넘는 큰 배였지만 수심이 수천 미터에 달하는 바다 위에서는 그냥 가랑잎에 불과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급한 나머지 솔리드 발라스트를 적재하지 않고 출항한 것을 후회하면서 일단 발라스트 탱크에 물을 가득 채웠다. 배를 최대한 가라앉혀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다의 요동은 우리의 노력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날씨는 좋아질 줄 몰랐고 오히려 악천후는 더 심해지기만 했다. 백전노장을 자랑하던 베테랑 선원들도 두 손을 들었는지 밥도 먹지 않고 어디에 처박혀서 아랫배를 움켜잡고, 토악질을 해대며 끙끙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항해 십오년 차인 나였지만 더럭 겁이 나며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잘 없었다. 겨울의 난바다. 그것은 바로 저승사자가 활개를 치는 죽음의 바다와도 같았다. 망원경을 꺼내들고 아무리 살펴봐도 물론 육지라고는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선박도 없었다.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픈 곳이 밤이 되면 더 쓰리고 아프듯이 바다가 바로 그랬다. 수평선을 밝히던 겨울 해가 꼬리를 감추면 파도는 더 심해지고 바람도 더 거세졌다. 추위도 더 심해져 마음과 몸을 쪼그라들게 했다. 흔들리는 배는 이제 나를 지켜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때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마음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기댈 곳은 없을 때,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도는 점점 간절해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다사나이의 입에서 기도라니? 기도는 약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제발 이번 항해만 무사하게 해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하며 선하게 살겠다는 맹세도 수없이 해댔다. 그건 바다와 파도, 그리고 그를 굽어보고 있는 하늘에 드리는 기도 제목이 되었다.

이때 이상한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기도에 응답이 온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뱃전을 때리던 파도소리가 멈췄다. 선창을 문풍지처럼 흔들어대던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의 요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 어떤 음성이 나의 귀에 들렸던 것이다. 그 음성은 쇠미했다. 큰 물결이 흘러가는 소리와도 같았고, 수많은 우레가 한꺼번에 울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와 같은가 하면, 연인이 귓가에 속삭이는 밀어 같기도 했다. 끊어졌다가는 다시 들리는 그 음성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화음 같기도 했고 때로는 수천 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분명히 힘이 있었다. 단번에 할머니의 약손이 내 배를 쓸고 간 듯이 마음의 평정이 찾아왔다.

나를 사로잡던 두려움이 씻은 듯이 없어진 것으로 그랬다. 나는 너무나 신기하여 다시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그 음성이 다시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크게 열린 귀는 그 음성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신기한 평화의 목소리, 신의 계시와도 같은 그 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희미한 소리의 여운을 따라갔다. 그 여운이 아주 가느다랗게 아직 귀에 쟁쟁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소리는 바다로 통하고 있었다. 그 여운이 남아 있는 곳은 바로 차디찬 겨울 파도였던 것이다. 더 가까이 귀를 갖다 대자 다시 그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파도가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파도의 노래는 파도가 외로울 때 부르는 노래였다.

바다는 너무 외로웠다. 바다는 늘 혼자였다. 넓은 바다는 외로움에 떨고 있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친구라고는 없었다. 산이 있는 육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구름이 없는 하늘은 너무 높이 있었다. 이렇게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는 늘 가까이서 출렁대는 파도도 바다의 친구가 되지 못했다. 바다는 너무 넓었다.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달려도 바다엔 오로지 바다뿐이었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바다였던 것이다. 사방이 온통 바다뿐이고…, 바다가 그렇게 많은데 왜 외로우냐고 물었더니 바다는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고 답했다. 외로운 그 바다에 이는 것은 파도뿐이었다. 파도는 그 크기가 크고 작을 뿐 그 모습은 언제나 똑 같았다. 눈만 뜨면 낯설지 않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봐도 바다였고 뒤로 봐도 바다였다. 온통 사방이 모두 바다였다. 계속되는 똑 같은 풍경에 사람은 두려웠고 파도는 지루했다.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파도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나를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파도의 노래를 듣고 난 후 나는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았다. 바다와 더 친숙해지고 바다를 닮아갔다. 나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최근에는 원유를 실어 나르는 탱크선을 자주 몰았다. 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름 탱크이기도 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원유를 선적하여 미국의 여러 항구로 실어 날랐다. 유조선은 점점 대형화 되어 배의 길이는 자그마치 삼백 미터가 훨씬 넘었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 서너 개를 합쳐 놓은 길이였다. 갑판이 길다 보니 선미에서 선수까지는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배가 크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인 파나마운하는 이용할 수가 없었다. 자연적으로 남아메리카의 긴 항로를 돌아서 와야 했기 때문에 항해 기간이 길었다.

이 거대한 선박에 선원이래야 기관부, 갑판부, 통신장과 주방장까지 모두 합쳐야 겨우 서른 명을 조금 넘을 정도였다. 그것도 각자 교대로 근무를 서다 보니 교대시간이면 서로 잠깐씩 얼굴은 마주하고 근무 상황을 주고받았으나 진정한 이야기를 나눌 짬은 없었고 그럴만한 상대도 없었다. 바다에서는 사람이 귀했다. 배의 기기가 발달할수록 줄어드는 것은 사람이었다. 회사로서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필요로 했다. 흙냄새와 사람 냄새가 가장 그리운 곳이 바로 유조선이었다. 탱크 선은 육지에서 보통은 4-5킬로미터 먼 곳은 10킬로미터가 넘게 뚝 떨어진 바다 가운데 설치된 부이를 통해 원유를 싣고 내리기 때문에 육지에 상륙할 기회가 다른 배들보다 더 적었다. 멀리서 그냥 아련하게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육지에서 날아오는 흙냄새가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흙냄새의 감미로움은 경험한 사람만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대화할 사람이 적고 물위에 떠있는 시간이 길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스트레스란 감정은 묘했다. 원인도 실체도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똑같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이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주 심한 사람도 있었다. 배에서 이런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었다.

“선장, 이 자식 어디 있어? 이 나쁜 놈…”
“아유, 이러지 마세요. 제발…”
조리장이었다. 그가 아니면 그럴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우리 배에는…. 그가 심한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쿵쾅쾅…, 요란한 발소리 가운데 그의 숨을 헐떡이는 숨소리도 섞여있었다. 뒤에는 바쁠 때마다 조리장을 도와주던 갑판원 한 사람이 뒤따라오며 그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이 원수 같은 선장 놈을 가만 두지 않겠어. 절대로…. 야, 인마!”
드디어 조리장이 내 방문을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방문을 열었다. 그가 날이 시퍼렇게 선 주방용 넓적한 칼을 들어 대뜸 나를 후려쳤다. 하마터면 큰일이 나고도 남을 판이었다. 나는 응급 결에 칼날을 피했고 뒤뚱거리는 그를 밀쳐냈다. 칼날이 내 책상의 모서리를 찍는 것과 그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책상 위에 고정시켜 두었던 유리가 깨어지면서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난 그것을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급히 조리장을 피해 좁은 방을 빠져나와 줄행랑을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칼을 다시 주워 든 채 달려왔다. 우리는 좁은 복도를 쫓기고 쫓으며 이리저리 내달렸다. 배에서 피할 곳이라곤 이러는 수밖에 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비겁한 놈아! 네가 그렇게 잘났어? 네가 나를 무시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잘난 체 해도 어림도 없어…”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난동을 부렸다. 그는 술이 취해 있었고 그런 만큼 행동이 굼뜨길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사고가 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의 난동은 두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칼을 들고 있으니 제지가 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가 나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관장이나 통장장이나…, 다른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그였다. 술은 인사불성으로 취했지만 목표만은 분명했던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난동을 쳤다면 누군가 다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술이 점점 더 취해갔고 몸에서 힘도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드디어 통로의 한쪽 모퉁이에 꼬꾸라지더니 이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했다.

조리장은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해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는 일단 일반 선원으로 배를 타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면서 항해사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해기사시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여러 번째였다. 할 수없이 조리장이란 직책으로 배를 계속 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는 열심히 일했으나 항해사에 대해서만은 적대감이 심했다. 못 이룬 꿈이 그에게 열등의식을 주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꿈을 이룬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변했던 것이다.

그와 나의 인연도 오래되었다. 우연 치고는 질긴 것이 그와의 인연이기도 했다. 우리 회사에는 여러 종류의 배가 많았으나 그가 내가 탄 배의 주방장으로 자주 배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항해사였을 때부터 시작된 인연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의 아픔을 알았기에 그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에겐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고 또 성실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남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힘든 일이 떨어져도 말없이 잘 참고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배에서 그는 인기가 있었다.

이번의 우리 배는 원유를 싣기 위해 중동 지역의 산유국들을 주로 다녔기 때문에 배 안에는 그가 마실 술이 없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술을 엄하게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여 술이 발견되는 날에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조리장은 재주가 비상했다. 어디선가 누룩을 구해서 그것으로 잔반을 막걸리로 빚어냈던 것이다. 폭풍우가 심해 직원들이 밥을 잘 먹지 않은 때면 잔반이 많아졌고 따라서 막걸리의 양도 많아졌다. 술이 심하게 취할 때면 조리장은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며 분풀이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화살의 방향을 뜬금없이 나에게로 돌리곤 했다.

주사(酒邪)를 부리는 사람은 천성이 착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건 나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주위의 선원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더러 있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부분이 보통 사람보다 이해심이 많고 잘 참는 성품들이다. 마음이 착해서 남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남의 애로를 거절하지 못하고 수용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쌓이는 것이 많다. 그들은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주사로라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조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많은 뱃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조리장의 세 살배기 같은 여린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남다른 조리 솜씨도 알고 있었다. 그가 가끔 난동을 부려도 누룩을 그로부터 감추려고 노력했지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징계를 주지도 않았다. 술기운이 떨어지는 그때, 조리장은 쥐구멍을 찾느라고 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뱃사람은 거칠다. 거칠지 않으면 뱃사람이 아니다. 바다가 사람을 거칠게 만드는 것이다. 거칠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는 것이 바다 생활이기도 하다. 밖에는 파도가 맹수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들고 배안에는 불이 나서 온몸이 녹아들어도 피할 곳이 없는 곳이 바로 바다다. 아무리 다급해도 바다로 뛰어내려서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파도 갈 곳이 없는 곳이 배다. 배는 하나의 축소된 사회였다. 움직이는 사회인 배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고는 다반사였다. 난데없이 급한 너울파도가 일어나 갑판에서 일하던 사람을 휩쓸어갔다. 때로는 죄 없는 사람이 동료의 칼끝에 쓰러지기도 했다. 육지라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요 충분히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이 이렇게 어쭙잖게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바다가 아니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죽음이 분명했다.

바다에서 사고는 늘 가까이 있었고 그때마다 죽음도 그 곁에 함께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와 벗하며 살아야 하는 곳이 배였다. 피할 데라곤 오직 바다뿐이었지만 그 바다는 바로 죽음으로 통했다. 수심이 수천 미터에 이르는 난바다에서는 난공불락의 성곽처럼 크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우리의 큰 배도 한갓 가을바람에 뒹구는 낙엽에 불과했다. 그냥 물결이 휘둘러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밀려가기만 하는 것이 우리 배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 낙엽을 의지하고 있는 부질없는 존재였다. 우리의 운명은 바다가 쥐고 있었고 바다만이 알고 있었다. 바다는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있었지만 우리가 알기엔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그랬다. 변함없이 늘 그랬던 것이 바다였다. 누군가 자꾸 파도를 만들어 냈다. 파도는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끝없이 넓은 바다가 끝없이 많은 파도를 끝임 없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넘실대는 파도가 바로 바다였다. 또 푸른 바다가 하얀 파도이기도 했다. 바다는 온통 우글거리는 파도 떼로 그득했다. 파도는 푸른 초장에 뛰노는 흰 양떼보다 많았고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구름 떼보다 많았고 밤하늘을 수놓고 반짝이는 별무리보다도 더 많았다.

바다는 파도를 낳고 기르는 목장이었다. 바다는 파도를 많이도 낳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가 낳은 파도가 바다에 그득해졌다. 바다 목장에는 먹이가 많았다. 파도가 잘도 자라는 것으로 봐서 그랬다. 가만히 보니 파도는 바람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냥 일렁이던 물결에 불과했던 잔잔한 파도는 폭풍우를 먹고는 금세 거대한 산더미 같은 파도로 자라났다. 덩치가 커진 파도는 세상의 울분을 모두 삼킨듯 사납기 그지없었다. 곧장 우리 배를 향하여 무소처럼 돌진해 오는 것으로 그랬다. 파도의 맹렬한 기세에 눌려 우리 배는 도망도 치지 못하고 있었다. 오금이 저려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파도는 재빨리 우리 배를 포위하고는 뒤집어엎을 듯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때 바다였던 파도는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파도는 우리에게 태어난 곳도 가는 곳도 알려주지 않았다. 파도는 비밀이 많았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파도는 수십 미터 높이로 무진장 몰려왔다. 밀려드는 파도의 어디에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의 뒤 줄기가 앞 줄기 파도의 꼬리를 문 채 또 뒤 줄기 파도는 또 그 뒤의 파도에 꼬리를 물린 채 곧장 우리 배를 향해 돌진해 올 뿐이었다. 그렇게 돌진한 파도는 점령군처럼 무자비하게 뱃전을 때리고 흔들어 대기를 되풀이했다. 부서질 듯 덜컹대며 요동을 치는 배 안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파도는 제사를 지낼 제물, 희생양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파도는 죽음의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댔다. 바다는 온통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죽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이렇게 삶과 가까이 벗하여 있는 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이 아주 없는 것 같았다.

드디어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다. 파도의 노래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성난 파도의 울부짖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배를 때리며 솟구친 파도가 공중에서 떨어지며 다시 갑판을 때렸다. 파도가 성난 소리를 지르며 우리 배를 자신의 머리 꼭대기까지 치켜 올렸다가는 순식간에 바다로 곤두박질시켰다. 어떤 파도는 배를 밀어 올리다가는 스스로 허물어지며 우리 배를 물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하였다. 아, 죽을 지경이다. 이 바다는 인당수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이 바다에 던져줄 심청이가 필요했다. 심청이가 있었다면 바다에 던지고도 남을 급박함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겠다는 그녀의 한 많은 사연쯤이야 내가 알 바 아니었다. 우선은 내 목숨부터 건져야 했기 때문이다. 파도는 나를 집어삼키고야 말겠다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때는 파도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다만 내 뒤를 바짝 추격해오며 길길이 날뛸 뿐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내쉰 채 성난 파도를 겨우 따돌리고 항구로 숨어들 때면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처럼, 따스한 솜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포근함이 찾아왔다. 마음은 모처럼의 안도를 맞는다. 드디어 사람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곳, 고향에 온 듯 편안함과 행복감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것이었다.
 

하나로 통하는 바다의 신비
아직 지금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때도 일본 미쯔비시회사의 배를 몰고 있었다. 중고 자동차를 가득 싣고 인도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나라의 헌옷이 인도에서 인기가 있듯이 일본의 중고 자동차가 인도에서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새 자동차를 사기는 어려우니 헌 차라도 사서 타겠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이들이 일본산 자동차를 아주 좋아하는데다가 일본인들은 안전을 위해서 자동차의 내구 연한을 짧게 했기 때문에 아직도 더 탈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 자동차의 현지공장이 인도에 먼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에겐 내가 운행하는 배에 새 차가 실렸든지 헌 차가 실렸든지 그건 상관할 바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일은 배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항해하고 실린 물건을 안전하게 하역하는 일이었다.

항구를 출항하여 서너 시간쯤 달렸을 때였다. 떠나온 항구는 멀어져서 보이지 않았고 높은 산들만 가물가물 보일 때쯤이었다. 파도만 출렁이고 있는 텅 빈 공해상에 수많은 배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공해상에 배들이 정박을 할 리도 없었지만 여기 모인 배들은 가만히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큰 배 사이로 작은 배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그랬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인 항해사를 불렀다.
“선장님, 저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 배들이 맞긴 한데요…”

그도 역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고기를 잡는 어선들도 아니었고, 해상 소방훈련을 하는 구급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상 군사훈련을 하는 자위대 소속의 함정들도 아니었다. 인도양으로 가는 이번 뱃길은 여러 번 통과한 눈에 익은 길인데다가 기후도 좋아 너무나 순탄하였다. 그 때문에 나는 늘 그 궁금증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일본인 특유의 끈질긴 성격인 그 항해사가 본국의 해양청 등에 문의를 하여 알아낸 모양이었다.
“선장님, 원래 그 지점 바다 밑에 물 위로는 드러나지 않는 암초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인공 섬을 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뭣이? 바다 밑 암초에 인공 섬을?…, 이거 아주 난공사가 되겠는 걸?…”
“정부에서 건설비만 수십조 엔을 투자하는 모양입니다.”

“뭐? 수십조 엔이라면? 그럴 가치가 있나? 특히 섬이 수두룩하게 많은 섬나라인 일본에서? 차라리 육지에 가까운 무인도를 개발하는 것이…”
“매우 남는 장사라는 설명입니다. 우선 그 섬을 기점으로 공해상에 수 평방킬로미터 넓이의 어장을 확보할 수 있고, 인공 섬에는 호텔, 카지노, 낚시터, 경정장…, 여러 가지 위락시설을 건립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바다 한가운데의 청정지역이란 이점을 내세우고 몰려드는 관광객에 공급하기 위해 각종 고급 어종의 수산물 양식장을 설치하고…”  

그가 공사를 기획한 정부의 홍보 관리처럼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나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부러움과 함께 질투가 불이 일듯이 일어나 머리끝까지 솟구쳤기 때문이다.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저들의 속셈이 이번 일과 오버랩 되기도 했다. 나는 해양에 대해 공부를 하던 어린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 가지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은 책을 통해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날이 갈수록 마치 바위처럼 점점 굳어져 가는 나의 생각이었다. 그건 앞으로도 내 기억 속에서 내 이름 석 자보다 더 지워지지 않을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는 ‘바다를 제패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인데 이 말은 국내에서는 단순한 이론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세계를 다니며 실제 경험을 하다보면 그건 절대로 부인하지 못할 실제 상황이라는 체험을 수도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각 나라들은 바야흐로 바다를 제패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바다에 육지보다 많은 자원이 있으며 바다에 미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북극의 자원을 개발하고 항로 이용권을 따내기 위해 각 나라들이 펼치는 경쟁이 뜨거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어느 나라가 넓은가?”
고등학교 때 해양지리 선생님이 자주 하던 질문이다. 학생들의 눈은 곧바로 교실 벽에 걸린 커다란 세게 지도로 쏠렸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의 질문이 애초 잘못되었다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남북한을 합쳐도 중국의 40분의 1에 불과한 면적인데요?”
그러나 선생님은 진지했다. 선생님의 하얀 지휘봉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희는 해양인이다. 육지에 살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다. 바다에서 살 사람들이고 바다를 제패할 사람들이다. 시야를 넓혀라. 육지에만 눈을 고정시키지 말고…”
“……”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 선생님의 말뜻을 모르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은 멀뚱거리는 학생들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안선은 중국의 해안선의 여러 배에 달한다. 그 해안선에 인접한 해양 즉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해양의 면적을 합치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면적은 같다.”
우리는 해양을 해운과 곧잘 결부시키기도 하고 흔히 혼동도 하고 있지만 해양에서 해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20퍼센트에도 못 미치고, 그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양은 해운, 수산, 해양기술, 해양자원, 해양생물…,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고 그 분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 건조량이 세계 제일을 자랑하고 있다. 숙련공들의 높은 기술력과 근면성, 발달된 자재의 원활한 공급 등 제반 여건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많은 건물과 아파트와 주택을 지었지만 우리는 주로 골조 공사를 많이 했다. 그 건물과 주택 안에 들어가는 내장품들은 일본이나 유럽의 고급품들이 차지했고 그 가격은 골조공사의 몇 배에 해당했으며 수익률 또한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선박의 건조도 그랬다. 선박의 설계와 박용기관, 선급, 표준화, 해양산업기술, 조선술…, 많은 값비싼 고급 기술은 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 해양국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설계도에 따라 각 부분별로 철재를 용접하여 그 작은 덩어리들을 한데 모아 한척의 배를 모으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인 줄도 모른다. 바다, 해양을 차지하고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것을 위한 각국의 속셈이 점점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요즘이다.
해양으로의 지향을 위한 해양영토의 확장은 해군력의 강화만이 아니다. 바다를 활용하는 기술이 그것을 결정짓는다. 세계 각국은 지금 심해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해양생물자원 배양, 관상어 양식 기술, LED해양융합기술, 남·북극 개척을 위한 극한기술…, 이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각 나라들은 한 뼘의 바다, 한 평의 어장을 더 차지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바다 영토의 확장을 위한 이들의 태도이다. 자국과 관련된 손바닥만 한 무인도의 활용을 위해서 역사를 바꾸는 것쯤은 약과이다. 바다 깊숙이 잠겨있는 바위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갖은 아이디어와 천문학적 자본을 투여하는 등의 국력을 동원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 나라를 가나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 배는 이제 해도에 표시된 암초를 조심하기 보다는 그 나라의 바다를 온통 뒤덮고 있는 각종 양식장을 조심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대형 양식장은 육지에 가까운 연안에는 물론이고 이제는 육지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공해상에도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육지에서 먼 해역에 거대한 양식장이 설치되어 참치와 넙치 같은 청정해역에서만 살 수 있는 고급 어종을 기르고 있었다. 바다는 파도만 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조절되어 인간의 미래 식량을 생산하는 바다 목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디 물고기뿐이랴? 해양생물에 대한 꾸준한 연구는 바다에서 사람의 식량문제를 해결 할 영양이 듬뿍 든 해초와 해조류를 양산해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양생물을 이용한 의약품의 개발이 활성화 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육지의 두세 배에 달하는 바다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을수록 미지의 분야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온갖 것을 제공해 주는 보고(寶庫)로 변해가고 있다. 해안선이 길어 수산물이 넘쳐나는 페루와 같은 나라는 차치하고라도 수산자원이 빈약한 북유럽에서 청어와 대구의 양식 기술을 발달시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세계의 매스컴을 화끈 달구고 있다. 이로써 국민들의 식단을 풍성하게 하고 양질의 단백질 공급으로 국민 건강을 도모하며 나아가 넘치는 물량을 수출하여 국민소득을 올린 사례 같은 것은 이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된 것이다. 바다는 그 가치를 먼저 알고 먼저 개발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또 해양레저산업이 발달한 곳이 바로 선진국이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해양을 이용한 레저산업이 첨단화 되고 예술적이 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각 나라들은 관광산업 발전과 국민건강 향상 그리고 외국 관광객의 유치라는 여러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해양을 이 분야에서도 개발하고 있었다. 도쿄의 오다이바 인공 섬에서 보는 것처럼 각 나라들은 바다에 설치한 기상천외한 시설로서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돈을 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지라고 불렸던 아프리카의 국가를 가더라도 해양을 개발하기 위해 항구와 인접한 바닷가에는 해양스포츠는 물론 온갖 놀이시설들이 설치되어 관광객이 북적되고 있다. 각 나라는 바다를 잘 활용하기 위하여 해수욕장의 개발은 기본이고 인공파도 시설을 설치하는가 하면 갖가지 수상레저시설을 설치하여 세계인을 부르고 있는데 나의 눈에는 이런 시설들은 국력이 강한 나라일수록 더 멋지고 더 화려한 것 같았다.
 

또 하나 내가 잊지 못하는 말은 ‘우리에게 바다는 땅이다’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바다를 간척하여 땅을 만든다거나 어장을 넓히고 개발한다거나 바다의 양식 산업을 부흥시킨다는 기존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말이다. 바다는 그 생태계 자체만으로도 이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담긴 곳이 분명하다. 바다는 인류가 활용해야할 최후의 영양과 자원과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바다가 개발되어가더라도 바다는 곧 육지의 활용도를 넘어설 것이지만 그 개발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의 바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지는 대륙별로 바다에 의해 분리되어 있지만 대륙을 분리시킨 바다는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해양은 그래서 세상의 공기처럼 더 중요한 것이다. 먼저 개발하고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나라의 몫이 커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선장님! 저기 저게 뭘까요? 아무래도 낯이 익은 물건 같은데요?”
우리 배가 페루의 까야오 항에서 냉동 수산물을 싣고 나올 때의 일이다. 까야오 항구 도시는 십년 전만 하드라도 수산물이 풍부하여 어획량이 많았다. 우리나라 어선들이 많이 모여들어 이곳에서 고기잡이로 번 돈을 뿌려댄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엘니뇨현상으로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 도시도 한산한 지경이 되어버렸다. 거리마다 넘쳐나던 선원들도 자취를 감추었고 시장마다 가게에는 팔 생선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다. 흥청거리던 술집의 노랫소리도 그친지 오래되었고 도시의 기능이 반세기 전으로 후퇴했다는 평이다. 이 도시의 지도자들이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양식업이나 관광업 같은 것으로 바다를 미리 개발하지 못한 탓이다. 이 도시는 우리나라의 지구 정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때 날씨는 맑았지만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어 기온은 차가웠다. 우리나라는 이때쯤이면 봄이 한창 시작되고 있을 무렵일 것이다. 이날따라 푸른 하늘은 높았고 쪽빛 물은 맑기 그지없었다. 한가한 오후, 늦은 점심 식사를 끝냈을 무렵이었다. 갑판원 한 사람이 선수의 오른 쪽을 가리키며 브리지에 있는 나에게 헐레벌떡 달려와 말했다. 그는 한국인 선원이었다. 배가 수면에서 높다보니 멀리서는 그 물체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물결에 휩쓸리며 물속에서 너풀거리는 것이 있기는 했다. 생명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여성용 팬티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손수건 같기도 한 것이 맑고 파란 물속에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파도가 잔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아! 여기는 태평양 한가운데야,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쪽이기도 하고…, 자네의 눈에 익은 물건이 있을 리 만무한 곳이야! 혹시 연인이라도 배에 몰래 숨겨 두었나? 자네 눈에 익은 팬티를 벗어서 바다에 던질? 하하하…”
“아닙니다. 선장님! 그런 게…,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분명히 저건…”
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말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농담을 잘 할 줄 모르는 친구 같았다.
“자네 지금 숨겨둔 연인 때문에 바쁜가?”
“아닙니다. 선장님! 그런 게…”
“그럼 시험 삼아 한 번 건져보게,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팬티거든 연인한테 다시 주게나? 저 쪽에 긴 갈고리가 있잖은가?”
짓궂게도 그는 당장 갈고리를 가져다가 물속에 떠다니는 그 물체를 건져 올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우리 배는 크게 선회를 한번 해야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건져놓고 보니 바로 우리나라의 한글 상표가 선명한 펼쳐진 라면비닐 봉지였던 것이다.
“아니? 이건…”
젖은 라면봉지를 만지작거리며 갑판원은 말문이 막힌다는 듯 봉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네 눈이 정말 정확하군. 그리고 우리나라는 정말 대단한 나라야! 허허허…”
“……”
“일본 대마도 바닷가를 온통 우리나라 쓰레기가 뒤덮었다더니…, 우리나라의 쓰레기가 지느러미를 달고 태평양을 건너 헤엄쳐 올 줄은 미처 몰랐어. 허허허…”
세계의 바다가 하나로 통하듯이 세계의 쓰레기는 바다로 통하고 있었다. 나는 세계의 모든 바다를 항해하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할 수가 있었다. 바다에는 육지에서 떠내려 온 많은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라면봉지나 과자봉지와 소주병과 사이다 캔을 대서양에서도, 인도양에서도, 태평양에서도 아주 흔하게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반갑고 가슴이 뿌듯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일단 쓰레기로라도 세계를 제패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세계의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고, 세계의 아무리 오지를 가도 우리나라 상품이 없는 곳이 없고, 이제 한국을 모르는 세계 사람도 없다. ‘빨리빨리’는 급할 때 사용하는 세계 공통어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조선(造船)국가여서 우리가 만든 배가 세계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우리나라의 쓰레기가 세계의 바다 구석구석에 둥둥 떠다니듯이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나로 통하고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산유국에서 전쟁이 터져도 당장 내일 아침에 우리나라에도 기름 값이 치솟는다.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라도 금융사고가 나면 우리나라의 주식이 폭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다! 푸른 물이 끝없이 넘실대고 그 아래엔 용궁이 있는 곳, 바다는 영원한 이름이다. 바다는 영원한 존재다. 사람이 멀리 우주를 다녀왔지만 아직 바다 밑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그냥 출렁댈 뿐인 바닷물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풀리지 않은 수수깨끼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다다. 우리는 바다를 경외하되 바다와 친숙해져야 한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는 그 활용가치도 육지보다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누가, 어느 나라가 남보다 먼저 바다의 수수깨끼를 푸느냐에 따라 바다의 주인은 판가름될 것이다. 그건 물류로서의 해운의 개념을 넘어 해양으로서의 바다를 활용할 때 가능해지는 일이다.  나는 인류가 우주를 개발한다지만 마지막 기댈 희망은 바다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바다는 바닷물과 함께 그 물밑에 산재한 미개척의 토지 역시 육지의 여러 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 바닷물과 함께 그 해저 토지의 활용법도 개발해 낼 것이다. 용궁처럼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해저도시가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우선 바닷물의 활용에도 엄청난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 그 도깨비방망이 같은 짠 물을 두고 각국은 치열한 경주를 하고 있다. 영토를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지금의 추세이고 변화다. 고기를 잡는 어장으로서, 물류를 대량으로 실어 나르던 교통으로만 존재하던 바다가 이제는 바다생물을 활용한 식량, 조력발전과 해조류의 활용을 통한 에너지, 바다 밑 지하자원과 바닷물을 활용하는 자원, 청정 환경, 생태계 보호, 해양 과학…, 등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을 담당하려 하고 있다.

바다는 각종 분야에서 점점 넓어지고 있다. 넓어지는 바다는 개척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바다는 개척할 것이 아직은 무궁한 미개척의 땅이기도 하다. 바다를 제패하는 것은 바다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를 활용하는 것이다. 바다를 활용하는 그 분야를 점점 넓혀가는 것이다. 바다는 공해상으로 각국의 공동소유다. 바다가 땅 그 이상일 때만이 우리의 미래가 창창한 것이다. 그리고 바다가 땅일 때만이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토와 맞먹는 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땅이 될 하나의 바다로 통하는 세계의 바다를 미리 밟아가며 다지고 있다. 내가 간 길을 동료들이 가고 또 그 길을 후배들이 연이어 간다면 그 길은 우리 길이 될 것이요, 그 길이 난 바다는 우리의 바다가 된다는 가슴 벅찬 자부심으로 배를 몰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가장 희망이 되어야할 선원이란 직업이 일부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희망이 없는 일이다. 바다는 우선은 어업과 물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건 바로 선원들의 몫이다. 아지트에 낙오한 사람이 모여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지트는 바쁜 선원들이 오가다 들리는 쉼터가 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그렇게 되는 날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큰 희망을 가지고…

우리가 언제부터 배가 그렇게 불렀는가? 배가 조금 부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바다 위의 생활은 위험하고 고단하다. 그러나 보릿고개의 과거사를 반추하며 우리는 그리로 나가야만 한다. 힘든 것을 기피하고 조금 살만하다고 중도에서 멈추려하는 젊은이들, 나는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나로 통하는 바다, 세계로 통하는 바다 위에 서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외치고 싶다.
“우리의 길은 바다에 있다! 바다로 나가자! 바다를 개척하자!”
우리가 바다를 두려워하고, 바다를 귀찮아하고, 바다를 기피할 때 우리의 미래 역시 해무 자욱한 바다처럼 불투명해 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바다를 다시 생각해야 하고, 바다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거기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배는 지금 미국의 서부해안 도시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태평양의 험한 항로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본을 거쳐 동남아시아 몇 개 나라의 항구를 더 들러서 인도양으로 가는 먼 뱃길이었다. 뱃길은 처음부터 험했다. 마치 험한 산을 넘어가는 것처럼 파도가 줄지어 늘어선 산봉우리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일만 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실은 우리 배는 항구를 나서자마자 출발 때부터 허덕이고 있었다.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명도 못 되는 선원들도 모두 힘겨워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항해였고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머나먼 바다라는 것 때문에 미리부터 질린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또 보름이 지났지만 우리 배는 아직 바다 한가운데 그대로 떠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파도만이 우리 배를 에워싸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이 마치 앵커를 내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앵커를 내릴 까닭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지루하여 갑판에 나서면 이글거리는 태양이 마치 콩이라도 볶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모두들 근무가 끝나면 곧장 자신들의 선실로 가서 드러눕기 일쑤였다. 설사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은 사막과 같은 태양 볕, 늘 보던 푸른 바다와 그 위에 일고 있는 파도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언제나 그랬다. 그 뱃길은 험하고 또한 지루했다. 선원들은 달력에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숫자 위에 빨간 색칠을 하여가며 이 지루한 항해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그러나 배는 멈춘 듯 가지 않고 달력의 날짜 역시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계의 바늘을 강제로 돌려놓고 싶은 충동이 일정도로 시간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선원들은 이 항해가 끝나고 일본의 항구에 입항하면 할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지금의 지루함을 달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우선 항구 옆의 호프집에라도 들려서 흔들리지 않는 의자에 앉아서 예쁜 아가씨의 그윽한 눈이라도 한없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시원한 안주를 한 접시 더 주문하며 맥주를 한잔 권하고도 싶었다. 그러다가 그 아가씨가 취기로 얼굴이 붉게 타오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룻밤을 청하여 온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도 이들의 고민이었다. ‘일본에는 물가가 엄청 비싸다는데…’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덜컥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선원들의 가장 감미로운 생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배는 아직 태평양의 검푸른 파도 위에서 발걸음 연습을 하는 아이처럼 꾸물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쉼 없이 계속 가고 있었다. 파도 위에서의 시계는 부지런하고 또 정확했다. 우리 배도 그랬다. 멈춘 듯 했지만 밤낮없이 험한 파도를 뚫고 꾸준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날 희뿌연 새벽, 아직 선원들이 곤하게 잠에 떨어져 자고 있을 때였다. 브리지에서 밤새워 당직을 서던 항해사가 놀라서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의 외침은 신대륙을 발견할 때의 콜럼버스의 흥분 이상이었다.

“육지다. 드디어 육지다. 일본 같은 것이 보인다.…”
그는 위대한 것을 찾아낸 것처럼 소리쳤다.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다. 그의 외침은 육지를 간절히 기다리던 모든 선원들에게 청량제였다. 모든 선원들이 잠옷 바람 그대로 눈을 부비며 갑판으로 뛰어나오던 것으로 그랬다.
“정말이네. 저기 보이는 것이 육지가 맞지? 확실하지?…”
과연 저 멀리 아침 안개 사이로 짙은 그림자처럼 육지가 우리 배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싹처럼 촉을 내미는 희망이었다. 선원들은 저마다 들뜬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감격스런 모습들이었다. 그 육지의 그림자 속에 정든 임이라도 있는 듯 야호를 외치는 사람도 다수였다. 다시는 보지 못할 땅덩어리인 줄 알았다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나 오랜 항해였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번 항해와 같이 지루하다면 다음부터는 승선을 포기하고 싶어…”

누군가 이렇게 말했는데 모두들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예인선이 다가왔고 나는 파일럿에게 키를 넘겼다. 그제야 나도 입항이 실감이 났다. 선원들은 갑판으로 나와 다가오는 항구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이미 상륙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들이 근무복이 아닌 외출복 차림인데다가 그들이 신고 있는 구두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광을 반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랬다. 그간 흙냄새를 잊은 지도 실로 오랜 기간이었다. 이번 항해는 모두에게 힘든 항해였다.
드디어 배가 거대한 기중기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는 부두에 접안을 했다. 이곳은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최신의 하역시설이 설치된 항구였다. 어느 항구를 가나 컨테이너선이 도착하는 곳은 다 이랬다. 항해사가 이 항구에서 내릴 물품의 목록을 전달하고 다시 실을 물품의 목록을 받아오는 데는 약 반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가 헐레벌떡 나에게로 달려오더니 긴급사항을 전하는 것이었다.
“선장님, 상륙금지입니다.”

“뭐야? 왜 그래? 갑자기…, 그간 이곳에 지진이라도 일어났었나? 방사능 유출이라도 됐느냐 말이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신경질적으로 항해사에게 분풀이 하듯 따져 물었다. 실제로 불끈하고 화가 솟구쳤던 것이다. ‘상륙금지!’는 선원에게 가장 중한 징계였다. 특히 이번 항차와 같이 오랜 항해 끝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배의 우리 선원에 대한 상륙금지의 권한은 선장인 내가 가지고 있었다.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비상사태인 것이다. 전적으로 항구의 사정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선장님, 아닙니다. 그게…”

그도 역시 황당하다는 태도였다.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듯 한참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오랜 항해에 지쳐서 상륙을 고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하던 것으로 그랬다. 갑자기 피로가 밀려오는 듯 한 그의 얼굴이었다.
“그게, 체류시간이 기껏해야 겨우 네 시간 정도랍니다.”
그가 여러 장의 물품 목록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수십 장이 넘는 두툼한 목록에는 각종 물품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뭐? 고작 네 시간이라고? 그 많은 물건을 싣고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다고 합니다. 하역시설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화된 최신식이랍니다. 선장님!”
“아무리 그래도…, 요새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군. 우리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나 역시 어이가 없었다. 잠시 뒤면 다시 배를 돌려 그 지루하고 험한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육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배 위에서 그냥 기다리다 떠나려니 갑자기 멀미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할 수 없지. 그 안에 선유를 채워 넣고, 선식을 고급으로 넉넉하게 공급하도록 하게. 그리고 신참들은 부두에 잠깐 발이라도 내디뎠다가 오르게 하게. 이건 뭐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로군 그래…”
 

언제부터인지 항구에는 바람이 불어댔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그 전에도 바람이 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외딴 섬에 바람이 심하듯 부두에는 늘 바람이 심했다. 파도가 바람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바람은 바다와 파도와 친한 게 분명했다. 바닷가에 바람이 시시때때로 부는 것으로 그랬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항구에 부는 바람은 예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메말라 건조할 뿐만 아니라 정나미라곤 한 점도 없는 찬바람만 을씨년스럽게 불어대고 있는 곳이 바로 요즘의 항구였다.

항구에는 정이 없어졌다. 정을 가진 사람도 없어졌다. 찬바람과 함께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제 항구에는 정을 붙일 곳도 없다. 정을 붙일 시간은 더 없다. 그건 모두 항구에 머물 시간이 짧아진 때문이었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겨우 도착한 항구였지만 도착과 동시에 먼저 떠날 것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항구의 아가씨에게 바다를 건너온 이국의 이야기를 전해줄 시간도 없고, 밤을 새워가며 긴 항해에 지친 몸을 녹여볼 시간은 더욱 없다. 하다못해 지친 두 다리라도 쭉 뻗고 한숨을 돌릴 시간도 없다. 고작 컨테이너 몇 개를 싣고 내리면 하역작업 끝이다. 파도를 피해 겨우 안식처라고 찾아온 항구였지만 이제는 하루 저녁도 밝히지 못하고 곧 다시 그 험한 파도를 맞으러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짐꾼들이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갑판에서 부두로 늘어뜨려 놓은 여러 개의 사다리를 타고 내리며 물건을 내리고 싣던 과거가 그리워진다. 그 때는 항구에 들어오면 푸근했다. 우선 적어도 며칠간의 꿀맛 같은 휴가의 시작인 것이다. 어느 항구든지 맞아주는 사람이 있었고 디딜 땅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향 같았다. 흙냄새를 실은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파도에 지친 선원들을 위로해 주었다. 시간과 함께 주머니에도 여유가 넘쳤었다. 항구에는 입항 때마다 찾던 단골 술집이 있었고 거기에 가면 밤을 새워 나눌 얘깃거리가 충분했다. 우리는 거기서 다음 항구와 고향 친구들에게 가져갈 자랑거리를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항구의 여인과 풋사랑을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여인들은 우리들의 항차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가 배가 들어올 때쯤이며 곱게 단장을 하고 미리 우르르 부두로 마중을 나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국의 손님이었고, 그녀들은 우리에게 고향의 정든 아줌마였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새로 온 신참을 소개하기 마련이었고, 그러면 그녀들은 공짜 술로 화답했다. 그녀들은 안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몸에 좋은 술이라며 자꾸자꾸 새로운 것을 내왔고, 뱃사람에게 좋다는 온갖 음식들을 구해 와서 우리를 대접했다. 그녀들은 우리를 너무 오래 보지 못해 상사병이 들었었다며 애교를 부리느라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들과 우리는 단 며칠 사이에 깊은 정이 들었다. 그 정으로 인해 우리는 그 항구를 그리워했고 바다의 파도와 싸울 힘을 다시 얻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들은 우리가 항구를 떠날 때면 뱃고동이 울릴 때마다 우리와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울어댔다. 우리가 배에 오르는 동안에도 부둣가에 서서 눈물에 젖은 손수건과 작고 예쁜 손을 흔들어대며 또 눈물을 뿌렸다. 못내 이별이 아쉬워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 바닷물을 불어나게 했고 바닷물을 짜게 만들기도 했다. 하룻밤 풋사랑으로 정이 든 선원들이 뱃전에 서 있으면 그녀들은 떠나가는 배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항구의 아가씨들! 그녀들은 마도로스의 연인들이었다. 그녀들은 항구의 꽃이었고 오아시스였다. 우리는 그녀들의 품에 안겨 고된 항해의 시름을 달랬다. 그녀들은 엄마처럼 우리의 아픔을 골고루 어루만져 주었다. 큰 누님처럼 고달픔을 위로해 주었다. 그렇던 그녀들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여인이 없는 항구는 향기 없는 꽃이다. 두리번거려도 반겨줄 이 없는 항구에는 사람 대신 기계들이 우뚝 서서 선원이 아닌 상품만을 반기고 있다.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부두의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를 터벅터벅 걷는 선원들의 어깨는 힘이 빠져나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항구를 뱃사람들은 앞으로는 잊고 살아야 할 형편이다.
 

나는 지금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구를 돌고 돌아 몇 바퀴나 돌았는지도 잘 모른다.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그 많은 것을 셀 여가도 없었다. 그러나 지구는 역시 둥글었다. 이쪽의 항구에서 항해를 시작하여 계속하다보면 종내는 다시 그 항구에 입항을 하는 것으로 그랬다. 이렇게 항해는 평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항해임은 분명하다.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나는 산업의 역군이었다. 이것은 내게 큰 자부심이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엔 탈 배가 적었던지라 외국 선적의 배를 많이 탔다. 우리는 해외송출선원이라 불렸다. 빛나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이 자랑스러웠다. 많은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것은 국가에 충성하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자부심이 사라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너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은 선원이란 이름의 자부심인 것이다. 자칫하다간 우리에게도 과거에 그런 영화로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히고 말 것이다. 평생을 두고 아끼며 벌었지만 별로 남아있는 것도 없다. 육지에서 차곡차곡 벌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그렇다. 육지의 친구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아는 것에 적응이 빠르고, 참 슬기롭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허탈감이고 상대적 박탈감이다. 남은 것이 없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은 것이 없어도 성공한 인생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파도에 쓴 우리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한 그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고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우리들의 문제이므로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바다사나이다.

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선원들이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찬바람 부는 항구를 누비며 다시 따뜻한 바람이 불게 할 것이다. 바다사나이답게 이제 다시 꿋꿋하게 새 힘을 낼 것이다. 바다사나이들이 모인 아지트에 무용담이 넘치게 할 것이다. 지금 선원들의 어려운 환경도 진정한 해양시대로 가는 잠시 동안의 산고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이다.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파도의 노래가 영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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