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lk Uruguay1) 판결을 중심으로

정기용선 계약에서 선박의 운항은 용선자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행해지게 된다. 항해개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용선자의 항행지시를 선장이나 선주가 거부하게 된다면, 이는 당해 항차를 수행하지 않겠다는 선주의 의사로 볼 수 있어 용선자는 실제 항차 수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선주의 계약위반을 선언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근거는 영국법상의 anticipatory breach이다.
다만, anticipatory breach는 계약이 이행되기 전이라도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것을 예견하여 당사자에게 계약위반에 준하는 손실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 요건이 상당히 엄격하다. 그러므로 실무에서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하기 전에 법률적 고려가 필요하다. 어떠한 상황에서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할 수 있는지 대상 판결의 분석을 통하여 그 요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의 개요>
2010년 7월 2일 계약선주와 용선자는 필리핀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Supramax급 선박인 BULK URUGUAY를 35~37개월 동안 일일용선료 USD 18,500를 지급하는 정기용선 계약을 체결하였다(NYPE 기반). 용선계약에는 Conwartime 2004 조항과, (a) 단락과 (b)단락이 삭제된 BIMCO Piracy Clause가 포함되어 있었다.2) 용선계약 조건 협상 중, 용선자는 계약선주의 동의 없이 해적위험지역인 Gulf of Aden을 통항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이 계약의 중요한 사항임을 강조하였다. 계약선주는 원선주와 역시 정기용선을 체결한 상태였으며3), 여기에는 Gulf of Aden을 통항하려면 원선주의 동의가 필요하였다.

2011년 7월 선박이 조선소에서 원선주에게 인도될 즈음, 용선자는 Gulf of Aden을 통항하는 항해를 요구하였고, 계약선주는 이 요구를 원선주에게 전달하였는데, 원선주는 처음에는 Gulf of Aden 통항을 불허하였으나, 3일 뒤, 선례가 되지 않는 조건으로 통항을 허락하였다. 계약선주는, 상위 계약서 하에는 원선주의 동의가 필요하며, Gulf of Aden 통항 여부는 원선주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였다. 용선자는 이러한 계약선주의 주장이 anticipatory breach임을 주장하며, 당해 용선계약을 해지하였다.
 

<중재인의 판단>
중재인은 상위 정기용선계약과 당해 정기용선계약은 소위 back to back basis가 아님을 인정하였다. 즉, 당해 정기용선 계약서에서는 계약선주의 동의가 없이도 Gulf of Aden을 통항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에, 다음의 사항을 검토하여 용선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판단하였다.
(1) 계약선주가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확실히 밝혔는지 여부
(2) 만약 계약선주가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용선자는 이 계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 전부를 상실하는지 여부
중재인은 (1)에 대하여, 계약선주는 용선자의 항차수행에는 원선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을 뿐이지, 그 자체로 계약이행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계약선주는 그저 원선주의 동의를 받겠다고 한 것이지, Gulf of Aden을 통항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에 대해서는 중재과정에서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계약선주가 선박의 Gulf of Aden 통항을 거부했더라도 용선자가 계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상당부분을 상실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중재인은 계약선주가 이행기 도래 전에 계약 이행을 거부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용선자가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고 판단하여, 약 650만불이 넘는 계약선주의 손해를 인정하였다.
 

<1심 판결의 내용>
1심에서는 anticipatory breach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보았다. 즉,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이행기 도래 전에 계약이행을 하지 않을 것을 명백히 밝혔거나, 혹은, 계약이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자초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우, 상대방은 이행 불능이 필연적임을 인지하고, 이행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실제 계약이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용선자는 1심에서 계약선주의 계약이행이 제 3자의 행위나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anticipatory breach의 요건이 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재인의 판단을 인용하여, Gulf of Aden 통항에 대해 계약선주가 원선주에게 동의를 구하는 행위가 계약불이행의 의사표시에 이르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용선자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또한, 제 3자의 행위나 판단에 따라 계약이행이 불명확해질 수는 있겠으나, 단순히 계약이행이 불명확해진 것만으로는 anticipatory breach에 이르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계약이 이행기에 놓여있는 경우, 이러한 불명확성이 해소되지 아니하면 계약불이행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행기가 도래하지 않는 경우는 그 불명확성이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 양 당사자는 알 수 없으므로, 단순한 불명확성으로 인해 계약불이행이 필연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한편, 용선자는 항행명령에 따라 선박을 운항하는 계약조건4)은 innominate term으로서 그 위반 자체로는 계약의 해지에 이르지 않고 위반의 효과와 그 심각성을 따져야 하나, 항행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것은 대부분 용선계약의 근간을 위반한 것이며, 특히 계약 체결 전에 용선자가 Gulf of Aden을 계약선주 동의 없이 통항하는 것은 계약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밝혔고 계약선주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Gulf of Aden 통항 거부는 계약의 해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이를 판단하기 위하여, 잔여 용선기간동안 용선자가 얻었을 이익 및 계약선주의 행위로 인해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이 상실되는 지를 다음 두가지 사안을 통해 검토하였다.
(1) 용선자가 잔여기간 동안 Gulf of Aden 통항을 얼마나 자주 요구하였을 것인지
(2) 용선자가 Gulf of Aden 통항을 요구하였을 경우 발생할 상황

법원은 이 선박이 Gulf of Aden 통항 후 유럽지역 시황에 따라 유럽대륙 내에서 재용선될 가능성이 많았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Gulf of Aden을 통항할 가능성이 낮았다는 중재인의 판단은 법리 판단이 아닌 사실 판단의 문제이므로 중재인의 판단을 존중하였다. 또한 중재인의 판단에 따르면, 용선자가 Gulf of Aden 통항을 요구하더라도 계약선주가 즉각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을 위험이 있으므로, 용선자는 Gulf of Aden 통항에 허용되는 재용선을 피했을 것이고, 이로 인한 손해는 Gulf of Aden 통항이 허용되는 선박의 시황 용선료보다 약 USD 1,250의 일일용선료를 덜 받는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용선자가 계약선주의 행위로 상당한 이익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법원은 Gulf of Aden 통항을 위해서는 원선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계약선주의 주장이 anticipatory breach에는 이르지 아니한다는 중재 결정을 존중하였다.
 

<결론>
대상 판결은 계약 협상부터 해지까지 계약선주와 용선자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판결이다. 이에 비추어, 만약 당사자 일방이 특정 계약조건을 강조한 경우, 그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명확한 의사가 있는 경우,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할 요건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영국법 하에서 특정 계약조건 위반으로 인한 계약의 해지를 미리 합의하는 것은 유효하며, 위 판결에서는 계약선주가 의무이행을 거부한 것이 아닌, 제 3자의 의사를 물어보는 상황이 anticipatory breach에 이르지 아니한다는 것이지, 특정 계약조건의 이행하지 않을 것을 명백히 밝힌 경우라면, 동 판결의 향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 항로에의 항행이 계약의 목적이거나, 단기 용선계약, 혹은 One trip charter인 경우는 위와 같은 특정항차의 항행명령은 계약의 근간이 될 수 있으므로 계약선주의 항행 거부시 용선자가 계약 해지를 주장할 유인이 될 것이다.

다만, 대상판결과 같이 장기 계약에서는 선박 인도이전에 특정지역 항차 수행을 거부하는 것을 anticip
atory breach로 보고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위험이 따를 것으로 판단된다. 판결에서 언급했듯이, 장기계약에서는 용선자가 특정지역  항차만 수행하는 것이 아닌, 허용된 항행구역을 두루 항해하는 항차 수행을 지시하는 것이 보편적이므로, 특정지역 항차 수행을 거부하는 것은 계약의 근간을 파기한다고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는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무적으로 용선료의 변동에 따라 분규 발생시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할 것인지 여부는 영업적인 판단이 깊게 작용한다. 그러나 분규의 내용이 anticipatory breach에 이르지 못한 경우, 용선자가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하여 계약이행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anticipatory breach를 주장하기에 앞서 심도있는 법률의견을 미리 확보한 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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