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항 ECT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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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로 인하여 해운업계가 위기적인 상황에 있다. 외항해운과 내항해운을 구분하지 못하고 해운조합과 선주협회를 구분하지 않는 매스컴은 해피아라는 신조어로 해운과 관련된 모든 관계자를 무차별 난타하고 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는지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올바른 대책이 없다면 사고는 재발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해페리’ 사고로부터 배워야 했다.

연안여객선, 그 중에서도 세월호 사고의 이면에는 우리 연안여객업계를 둘러싼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연안여객수송이 가진 공공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여객수송을 민간업자의 영역에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민간사업자의 기본은 수익성 추구에 있다. 연안여객이 가진 공공성을 과소평가하는 지금과 같은 체계 하에서는 민간사업자는 채산성을 맞추고 수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무리한 구조 변경, 정원 초과, 화물량 초과와 같은 불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는 서해페리호 사고뿐만 아니라 남영호 등의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연안여객선을 민간의 손에만 맡기지 않는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이제 공공교통정책의 관점에서 연안여객의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연안여객수송은 철도나 버스, 택시, 항공기 등과 같은 불특정 다수의 여객이 이용 가능한 공공성을 가진 공공수송기관(public transportation)이다. 여기서 공공성이란 사회전반의 폭넓은 이해를 가진 것으로 공공교통은 국민경제 발전과 국민생활영역의 확대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교통기관은 생산, 유통, 사람의 이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부문으로 대량수송성, 규칙성, 신속성이 요구되는 경우, 공공교통기관의 사회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특정산업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에도 교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연안해운은 국가교통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 교통수단이다. 국가의 경제성장과 지역간 균형발전을 담당하며 도서와 육지를 연결하는 생명선이자 도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교통은 국가가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운송서비스의 공급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연안여객선은 공공교통의 일환으로 취급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위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관련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연안여객은 기본적으로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비채산 공공교통으로 정책의 중심과제는 소시얼 미니멈(Social Minimum)의 시점에서 공공교통의 존속과 유지에 관한 교통보조의 실시에 있다. 소시얼 미니멈이란 지역사회가 공생하기 위하여 최소한으로 제공되어야만 하는 공정서비스를 말하고, 국민이나 지역민이 안심하고 문화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생활환경을 정비하는데 있어 공적부문이 최저한도 이상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비채산성의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대체교통수단이 없는 연안여객수송은 정부가 공공교통의 관점에서 보조를 실시하고 직접 관여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선진국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연안여객수송을 민간사업자의 사업으로 보고 도서지역 주민의 헌법상의 권리인 이동권, 생활권, 문화추구권 등을 누리기 위하여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할 책무를 연안여객선사업자가 대신하여 담당하고 있다. 또 정부의 정책은 육상교통이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공공교통정책을 수립하고 있고 시내버스 준공영제, KTX 철도건설 등과 같은 지원책에 비하여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현재 여객선을 위한 지원책은 전환교통보조금, 화물선유류세보조, 여객선면세유공급, 도서민 운임지원 등이 있지만 일부 국민이나 일부 기업에 한정되어 왔다. 연안여객수송이 대중교통이고 공공교통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이 없이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의 재정지원 부담만이 강조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영국의 스코틀랜드 정부는 북서부 지역의 도서와 본토를 연결하는 페리를 국가전체 교통망에 포함시켜 정부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페리운영회사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선박의 신조, 해체 등에 대한 정부예산계획을 포함한 연안여객선지원정책인 Scottish Ferries Review를 수립, 실행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우리나라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본토에서 떨어져 있는 타스마니아섬의 산업경쟁력강화 및 주민들의 공공복지증진을 위하여 Bass Strait Passenger Vehicle Equalisation Scheme(BSPVES), Tasmani
an Freight Equalisation Scheme(TFES)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주정부가 직접 타스마니아 페리회사를 소유,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워싱톤주가 1951년부터 Washington State Ferries(WSF)를 설립하고 모든 페리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경우에도 페리회사를 직접 소유 운영하고 있다. 우리와 정책여건이 유사한 일본의 경우에도 연안여객수송을 공공교통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지역공공교통확보 유지개선사업 및 교통약자를 배려한 지역공공교통 Barrier Free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크게 네가지가 있다. 첫째는 연안여객수송이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지역주민의 생활안정, 도서방문객의 증대를 통한 도서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동일거리의 육상교통 운임이상은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하는 Road Equivalent Tariff를 실시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는 민간이 운영하던 기업도 국가나 지자체가 직접 담당하는 완전 공영제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는 운임지원 등의 이용자 지원과 함께 안전성이 높은 선박확보에 정부의 대폭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반드시 동반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조선 확보에 대한 정부지원이야 말로 중고선 도입에만 의존하고 도입 중고선의 개조 증축을 통한 무리한 수익성 확보를 추구한 것이 세월호 사고의 근본적 원인의 하나라고 볼 때 여객선 공영제가 필요한 이유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연안여객선이 공공교통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여객선 공영제를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세월호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 차량 몇대가 지나가는 것이 고작인 산간오지의 도로개설을 위하여 국가는 공공교통시스템의 구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노드, 모드, 링크로 구성되는 교통시스템에서 도로나 철로의 건설을 국가가 직접하고 있다. 연안여객의 경우, 모드인 선박, 링크인 항로가 결합된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국가는 선박을 고속도로로 인식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워싱톤주는 Marine Highway하는 관점에서 여객선수송을 직접 담당하고 있다.

영화 ‘명량’이 전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면서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성공 배경에는 수군병사들을 먹여살린 도서지역의 경제활성화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도서지역을 방어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섬 주민들을 모두 육지로 소개하고 섬을 비운 조선시대 관료들의 공도정책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고 섬지역 주민들의 사회복지서비스제공, 도서지역산업의 발전을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여객선공영제가 도입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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