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고립된 광주 은유적으로 나타낸 가요

조선대 학생으로 현장 있었던 배창희 작사·작곡…1984년 김원중 데뷔곡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는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위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배창희 작사·작곡, 김원중 노래 ‘바위섬’은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 리듬으로 멜로디가 조용하게 이어진다. 1984년 만들어져 1985년 들어 본격 선보인 이 노래는 30년이 됐음에도 묵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적(詩的)인 가사에다 가락이 부드러워서다. 우리들 삶과 바위섬이 접목된 노랫말 뜻 또한 깊다.

잔잔히 흐르는 전주에 ‘쏴아~ 쏴아~’하는 바닷가 파도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낭만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곡이 바위섬을 의인화해 만든 애절한 사랑노래쯤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더욱이 노래제목이 ‘바위섬’이라 그런 느낌의 가요로 보기 쉽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런 가요가 아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고립된 광주를 바위섬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나타낸 곡이다. 신군부의 계엄군들에게 포위된 광주를 망망대해의 외로운 섬에 비유해 만들어진 것이다. 광주의 아픔을 소리로 에둘러 그려낸 이 노래의 사연을 알고 가사를 새겨보면 시대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 베여있음을 알게 된다.
 

바위섬 노래가 담긴 김원중의 음반
바위섬 노래가 담긴 김원중의 음반
배창희씨, 군사정권 때 작사·작곡 배경 말하지 않아
그 때 조선대학교 학생으로 광주에 살고 있었던 배창희씨는 5.18현장을 목격하고 당시 상황을 음악에 대입시켜 노랫말을 쓰고 곡까지 붙였다. 그는 이 노래를 만들고도 한동안 작사·작곡 배경을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해 계엄군에 맞섰던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붙인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래 입을 열지 않다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우연한 기회에 만든 사연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렇게 작사·작곡된 ‘바위섬’은 배씨의 또래인 대학생(전남대 2학년)가수 김원중의 데뷔곡이 됐다.

현재 광주 남부대 실용음악학과 교수인 배씨는 ‘바위섬’ 외에도 ‘시집가던 날’, ‘실개천’, ‘무등산 연가’, ‘꽃상여’, ‘허수아비’, ‘그 땅 그 하늘’ 등의 곡도 만들었다. 그는 2013년 8월 광주시민 도움으로 친정을 찾은 다문화여성 카이앙렝씨 사연을 담은 ‘엄마 찾아 캄보디아’란 노래도 작곡했고 2009년엔 음반 ‘순천만의 꿈’ 감독을 맡아 예술성을 높였다.

‘바위섬’은 1985년 광주지역가수들이 만든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옴니버스포크음반에 실렸다. ‘예향의 젊은 선율’은 전국 최초 지역음반으로 광주음악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김원중은 자신을 ‘국내 첫 지방분권가수’라고 소개한다. ‘예향의 젊은 선율’은 그가 고시공부를 하던 대학생시절 마음 맞는 아마추어 가수들과 만든 음반으로 대중가요 활동이 서울에 몰려있던 중앙집권에 대한 반기였다. 대학가요제 수상자 박문옥·김정식·김종률씨와 신상균·김원중씨의 합작품 ‘예향의 젊은 선율’에 실린 ‘바위섬’은 처음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학축제무대 등 대학가에서 불리면서 서서히 전국으로 파고들었다.

음반이 나왔을 때만 해도 김원중은 가수의 길을 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으나 노래가 방송을 타고 갑자기 알려지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1985년의 경우 ‘바위섬’이 ‘전국 인기가요 100곡’ 중 6위를 차지해 김원중이 프로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노래사연이 알려지자 ‘바위섬’은 ‘가요 톱10’에까지 올랐고 음반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바위섬’은 동요 이상으로 유명해져 유치원생들도 즐겨 부른다. 선율은 서정적이나 현실을 이야기한 이 곡은 1980년 5월 이후 광주의 아픔을 담은 지역대표곡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가 빛을 본 것이다.
 

처음 대학가에서 불린 ‘바위섬’ 북한서도 인기
김원중은 2013년 6월 16일 오랜만에 친구인 가수 하성관과 함께 KBS 1TV ‘콘서트 7080’무대에 섰다. 그는 ‘바위섬’을 열창하고 이 노래가 북한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줘 화제가 됐다. 2001년 ‘금강산 대토론회’ 등 공연을 위해 북한을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바위섬’ 노래를 알고 있었고 호응도 컸다고 전했다. 그는 CBS방송에 나가 “한번은 평양시내 호텔종업원에게 혹시나 해서 ‘바위섬’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안다며 앞 소절을 따라 불러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광주지역 노래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가수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내놓은 그의 노래 ‘직녀에게’(박문옥 곡)는 발표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염원하는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가사였지만 방송전파를 타지 못했다. 비슷한 사례로 광주출신 정오차씨가 198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바윗돌’(대상곡)도 금지곡이 됐다. 5·18 때 광주에서 숨진 친구의 묘비를 상징하는 노래란 이유에서였다.

촛대바위
촛대바위

김원중은 거리공연가수로도 유명하다. 1981년 군에 가서 고초를 당했던 그는 1989년 전국 처음 길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열린 5·18추모공연 때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알만 한 사람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거리공연에 나선 것이다. 그의 거리공연은 이듬해 광주 금남로 광주가톨릭센터 앞 5월 추모공연으로 확대됐고 전국의 노래패들도 모였다. 5월 추모공연의 전국화가 이뤄진 셈이었다. 1991년부터는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전야제 문화공연’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김원중은 ‘민중가수’란 소리도 듣고 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지난 8월 23일 오후 광주시 남구 사동 사직공원(옛 수영장) 무대에서 연 ‘광주사직포크음악제’ 때 가슴네트워크 박준흠 대표와 함께 ‘광주 포크음악의 발전방향’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재단법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 그는 ‘바위섬’ 등 자신의 히트곡들도 불렀다.
 

김원중, ‘세월호 참사 희생자 돕기’ 앞장
1959년 전남 담양군 봉산면에서 태어난 김원중은 매달 ‘북한 어린이 돕기 달거리공연’도 벌이고 있다. 그는 1987년에 독집음반 ‘직녀에게’를 낸데 이어 ‘5.18추모 거리공연’(1989년), 연세대 노천극장 연합공연(1991년), ‘5.18영령 49재 49일 공연’(1997년) 등 민중정서를 노래해왔다. 1999년 독집앨범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를 내놨고 그해 12월 4~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 ‘못 다한 사랑’에서 주인공 백범(김구)역을 맡아 뮤지컬배우로도 데뷔했다. 2008년 5집 앨범 ‘느리게 걸어가는 느티나무’를, 2010년 4월엔 ‘5·18 30주년 기념음반’을 냈다. 그는 올해 4월 28일 오후 7시30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달거리공연 때 ‘세월호 참사 희생자 돕기 성금모금행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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