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선소 1위’ 명성의 현대중공업이 고된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 2분기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고 수주물량은 예년에 비해 뚝 떨어지며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회사측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임원감축 등 고강도 개혁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악재들이 많다. 노조와의 임금 및 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파업의 가능성이 있고, BIG3 조선사 중 가스공사 LNG선 입찰에서도 유일하게 탈락했다. 신규수주 부진으로 수주목표액도 겨우 절반을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 역사상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았다.

 

 
 

현대중공업은 올 상반기 매출액 26조 3,323억원, 영업손실 1조 2,926억원, 반기순손실 7,076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실적은 분기실적 기준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영업손실이 1조 1,037억원, 순손실은 6,166억원으로 1조가 넘는 영업손실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 그룹인 현대중공업 그룹은 지난 9월 15일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권오갑 前현대오일뱅크 사장을 임명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측은 “그룹사 경영을 쇄신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하고, “사장단 인사와 함께 보다 효율적인 경영체제를 위해 기존 현대중공업 기획실을 그룹기획실로 개편했다”고 덧붙였다.
 

최악실적 타개위해 ‘권오갑 사장’ 선임, 한달만에 노조와의 스킨십 강화, 강도높은 구조조정 착수
9월 임명된 권오갑 사장은 취임 한달만에 적극적인 개혁과 함께 노조와의 스킨십 강화에 나섰다. 9월 23~24일 취임 일주일만에 권오갑 사장은 출근길에 나서는 회사 직원들에게 자신이 직접 쓴 ‘임직원에게 드리는 글’을 나눠주며 위기극복에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이날은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 첫 날이었다.
 

권 사장은 이 글에서 “동종업계 어느 회사보다도 여러분이 일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제 진심이 여러분에게 전달됐기를 바라며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회사 안팎의 경영상황이 전에 없이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무엇보다 회사가 현대중공업 가족 여러분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며 “그것은 회사의 잘못이며 책임으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출근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출근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그러면서 권 사장은 지난 2분기 회사가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실적을 낸 것을 언급하며,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여러분께 실망을 드렸다”며 “이는 바로 회사의 책임이고 회사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여러분이 회사를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앞장서서 하겠다”며 “모든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오직 현대중공업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달라”고 강조했다. 권 사장은 “함께 손잡고 진정한 새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큰 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비록 우리가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신다면 반드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화합을 촉구했다.

 

현대重·현대미포·현대삼호 임원 262명 중 31%, 81명 감축
현대중공업은 10월 12일 전체 임원 사직서 제출이라는 강수와 함께 동시에 16일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3사 임원 262명 중 31%인 81명을 감축하는 고강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인사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어려움에 처해있는 회사에 변화를 주고, 체질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조기 인사를 단행했으며, 조직을 슬림화하여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여기에 맞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도 “지금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우리 회사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국민들과 국내외 고객, 주주들을 생각해 분명한 개혁 청사진을 갖고 책임감 있게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현대 3사 영업조직 통합, 조직·부서 감축 등 ‘조직 슬림화’
이어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직통폐합 및 슬림화 작업에 나섰다. 동 그룹은 10월 23일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 3사의 영업조직을 통합한 ‘선박영업본부’를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울산에 있는 현대미포조선 선박영업부와 기본설계부가 서울 계동사옥으로 이전하여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현대중공업은 7개 사업본부 체제를 유지하면서, 본부아래 부문 단위가 기존 58개에서 45개로 22% 축소되고, 전체 부서도 432개에서 406개로 감소했다. 또한 인원을 대폭 축소하고 기능을 통합하여 ‘기획실’을 재정비했다. 기획실은 기획팀, 재무팀, 인사팀, 커뮤니케이션팀, 윤리경영팀, 준법경영팀, 자산운영팀 등 7개 팀으로 구성되었고 현대중공업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획 및 조정 역할을 담당한다.


해외법인 및 지사에 대한 점검도 시작됐다. 현재 조선 3사는 해외에 25개 법인과 21개 지사 등 46개 해외조직을 두고 있는데 이 중 사업성과가 낮은 법인과 지사는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해외주재원도 대폭 줄이고 필요한 인원에 대해서는 단기파견형태로 근무하기로 했다. 국내지사도 그룹 지사망을 활용하여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조직통폐합 및 슬림화 작업과 병행하여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제도개선전담팀’을 두어 임직원들의 건의내용을 항목별로 분석하고 개선과제를 도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메일을 통한 접수 뿐 아니라 현장 임직원들의 의견도 직접 듣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며 개선사항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사장 집무실 바로 옆에 팀의 위치를 두었다. 이외에도 동사는 수익창출이 어려운 한계사업에 대한 사업조정 작업, 공정 및 작업 환경개선을 위한 생산현장의 혁신 작업 등도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다.

 

노조 파업 가능성, 수주실적 부진, 中-日 조선사의 추격 등 악재는 여전
이렇듯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강도높은 조직개편 등 경영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을 둘러싼 악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권오갑 사장의 적극적인 스킨십에도 불구하고 노사간 임단협이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20년만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 측은 수년간 임금인상이 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임금협상에서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노조측이 양보해주길 바라고 있는 상황.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경우 매일 약 1,030억원의 매출손실과 160억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게 사측의 주장이다. (기사시점, 10월 28일)


부진한 수주실적도 고민이다.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까지 지난해 대비 25.1% 감소한 163억 5,600만달러의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올해 수주 목표액으로 제시했던 295억 6,000만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올해 3/4을 넘긴 상황에서 목표달성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분기 개별 수주금액도 51억 2,200만달러에 그치며, 지난해 같은기간 72억 2,700만달러 대비 29.1% 감소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 가스공사가 진행한 LNG선 입찰도 실패했다. 현대중공업은 KC-1 선형 부문에 현대글로비스, KSS해운과, 非KC-1선형 부문에 SK해운, 현대글로비스, KSS해운과 짝을 지어 동 입찰에 참여했으나 모두 다 탈락해 단 1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반면 경쟁자인 대우조선해양이 4척, 삼성중공업은 2척을 수주해 명암이 갈렸다.


업계의 반응도 희망적이지 않다. 발주감소와 일본, 중국 조선소들의 강세로 수익성 악화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대폭 발주됐던 오프쇼어 분야가 올해는 눈씻고 찾아야 할 정도로 미미한데다 상선 발주도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중국 조선사와 엔저효과를 보고 있는 일본 조선소도 강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가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다”면서, “현대중공업도 우선 노조설득 등 급한 불부터 처리하고 수익성 악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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