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정책과 기업전략의 조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인 짐콜린스는 자신이 위대한 기업이라고 평했던 기업들이 10년뒤에는 몰락한 것을 보고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6천년에 달하는 역사를 조사분석하고 그 결과, 성공도 실패도 모두 기업이 자초한 것이고 회복도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해운업계에도 역사적으로 좋은 기업, 위대한 기업이 다수 존재하였다. 하지만 컨테이너라이제이션을 주도했던 시랜드, 해운국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던 네들로이드 등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용절감이 우선시되는 해운산업은 더 이상 선진국의 비즈니스가 아니고 선진국 중에서는 북유럽 국가와 같이 해운 이외에는 할 것이 없는 나라만이 하고 있다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꿋꿋이 글로벌 해운시장을 주도하는 선사가 있는 선진국은 일본밖에 없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글로벌 해운업계를 선도하는 일본선사의 생존전략은 우리 선사들에게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금회부터 4회에 걸쳐 일본선사의 생존을 위한 변신에 대하여 일본의 2대선사인 니혼유센(NYK), 쇼센미츠이(MOL),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인 선주들인 에히메선주들의 순으로 소개하고 우리 해운업에 대한 시사점을 같이 찾아보려 한다.
일본해운이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경쟁력의 기초를 닦은 것은 1963년 실시된 해운집약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63년, 일본정부는 전후 일본경제의 부흥에 따라가지 못하고 경영기반이 약한 일본해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해운업의 재건정비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외항선박건조융자이자보급 및 손실보상법 및 일본개발은행에 관한 외항선박 건조 융자 이자보급 임시조치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른바 해운재건 2법이라고 불리는 이들 법률의 성립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선사 12사가 일제히 합병계약을 조인하였다.

그 결과, 니혼유센(日本郵船, 이하 NYK), 쇼와카이운(昭和海運), 쟈판라인(Japen Line), 야마시타신니혼기센(山下新日本汽船), 오사카센파쿠쇼센미츠이(大阪商船三井船舶, 이하 MOL), 가와사키기센(川崎汽船)의 6사가 설립되었다. 해운기업의 통합을 통하여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극대화하려는 일본정부의 정책노력은 일본 해운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198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1982년 이자보급법이 폐지되고 해운업의 국제경쟁이 강도가 높아지면서 1985년에 들어서 일본정부는 민간에 의한 자립활동을 요구하는 행정지도를 실시하면서 드디어 해운사의 자율적인 경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1980년대 초중반의 해운불황으로 모든 선사가 반드시 좋진 않았기 때문에 그 뒤로도 기업간 수평통합은 계속되었다. 해운집약정책에 기반을 두고 일본해운기업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스스로 수평통합을 반복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NYK은 야마시타신니혼기센과 쟈판라인이 출자하여 1988년 설립한 일본라이나시스템을 1991년에 합병, 1998년에는 쇼와카이운도 합병하여 선복량을 확충하였다. 이에 대하여 MOL은 1989년에 쟈판라인과 야마시타신니혼기센이 합병하여 설립된 나빅스라인(Navix Line)을 1999년을 합병, 정기선에 강한 MOL과 부정기선에 가한 나빅스라인이 합병함으로써 NYK를 추격하는 판세를 만들었다. 한편, 제3의 선사인 가와사키기센의 경우는 1964년에 가와사키기센과 이이노기센(飯野汽船)이 합병한 이래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해운업의 대형3사에 의한 과점체제가 형성되었다.
다수의 기업경쟁체제에서 과점체제로 전환됨과 동시에 일본 상선대의 구성도 크게 변화하였다. 2,000톤이상의 외항상선대의 척수변화를 보면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감소하여 2003년 바닥을 기록한 이후, 2006년에 2,223척으로 증가, 1980년대 후반 수준을 회복하였고 2013년 현재의 일본상선대는 2,609척, 1억 7,193만DWT로 실질적으로 세계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운국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대형 3사의 과점체제가 있다. 실질적으로 대형 3사의 과점체제가 구축되면서 선사간 경쟁은 암묵적으로 조정되었다. “MOL의 수송량은 NYK의 2/3라는 암묵의 룰이 장기간 시장을 지배한 것에 알 수 있듯이, 일본해운업계는 제도적 안정성을 우선시하였다. 하지만 정책이 전부이었을까? 해운선사들은 생존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본인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있다. 일본선사들이 어떻게 100년 장수기업으로 세계해운을 리드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업분야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MOL과 NYK의 매출액과 총자산사업이익율(ROA)을 비교해 보면 MOL의 매출액은 NYK의 2/3로 고정적으로 추이한 것을 알 수 있다. (2013년의 경우, NYK는 매출액 2만 2,372억엔, ROA 1.5, MOL은 매출액 1만 7,294억엔, ROA 0.8). 그러나 양사간에 매출액의 추이는 고정적이었지만 사업내용은 상당히 변화하였다는 점에서 양사의 생존전략이 상이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약 해운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사업내용의 변화가 없었다면 이들 기업도 다른 세계적인 선사처럼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2사가 동일한 사업내용을 지속하여 왔다면 ROA 역시 동일하게 추이하거나 규모의 경제성이 작동한다면 상위기업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매출액이 낮은 MOL의 이익율이 NYK를 상회할 때도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러한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따라서 일본을 대표하는 양사의 생존전략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업분야별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현재, 양사 모두 해운사업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사업분야별 매출액 비중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MOL이 전형적인 해운사업 위주인데 비하여 NYK는 물류사업과 항공화물, 부동산 등 기타사업의 비중이 30.4%에 달하고 있어 사업다각화의 NYK, 해상운송위주의 MOL로 구분할 수 있다. 2008년의 사례를 보면 MOL은 해운사업의 비율이 89.2%인데 반하여 NYK는 69.2%이었다. 그 차이는 물류사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류사업이 NYK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19.2%, 2013년 21.8%(항공포함)인데 비하여 MOL은 3%내외로 낮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해운사업에 초첨을 맞춘 MOL, 육해공의 종합물류를 지향하는 NYK의 전략상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양사의 전략상의 차이는 “장기계약으로 안정노선을 추구하기 위하여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온 NYK와 해운시황의 흐름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이익을 극대화해 온 MOL”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양사의 전략상의 차이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추이해 왔는지에 대하여 NYK, MOL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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