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 ‘독점적 노무공급권’ 여전.. 부산항운노조 ‘수급위’ 계획 성공여부 주목

 
 
2007년 부산항을 시작으로 인천, 평택, 울산항까지 확대된 항만 노무인력 상용화는 당시 100년간 이어져온 ‘우리 항만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큼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상용화 7년이 지난 지금, 항만 노무인력 체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7년전 상용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항만노무인력은 여전히 항운노조가 독점하고 있고, 고질병으로 여겨져오던 항운노조 취업비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인한 갈등까지 더해졌다. 이에 부산항운노동조합은 노·사·정 모두가 참여하는 ‘부산항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무인력 공급체제를 수정·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항만의 노무인력체계는 2007년 ‘항만노무상용화’가 도입되며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100여년간 항운노조에 의한 도급제로 운영됐던 항만업계는 2007년 부산항, 평택항, 인천항에서의 상용화 시행으로 항운노동조합원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항은 879명, 인천항 982명, 평택항은 298명을 상용인력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평택항을 제외한 부산항, 인천항, 그리고 2010년 상용화 대열에 합류한 울산항은 전면 상용화가 아닌 부분 상용화를 시행하고 있다.
 

2007년 부산서 처음 시행, 기대만큼 효과는 ‘없었다’
상용화에 의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근로자들은 하역회사의 소속 정규직원으로서 고용을 보장받고, 하역회사는 자율적 인력 운용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 항운노조의 노무공급 독점을 막을 수 있고 이를 통해 항만운영사의 유연한 운영과 투자가 기대됐다.
그러나 항만상용화로 인한 효과는 기대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행된지 7년이 지났지만 가장 핵심인 노무공급권은 여전히 항운노조가 독점하고 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2008년 이후 시작된 물동량 감소와 그로 인한 항만운영사 경영악화, 복수노조 시행 부작용 등으로 운영사와 항운노조는 더욱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운영사 관계자는 “언론에 대고 ‘항운노조’라는 네글자만 말하는 것으로도 불경죄”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했다. 그만큼 근로자를 고용하는 운영사측과 근로자를 공급하는 항운노조는 ‘멀고도 더 먼사이’가 됐다.

복수노조 허용되며 울산, 포항 노노갈등 잇달아
최근 2~3년간 전국 항만에서 항운노조를 둘러싼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2011년 7월부터 정부가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노-노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 울산과 포항에서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울산신항에서는 민자부두 운영사와 울산항운노조간 ‘노무공급권’을 두고 일어난 사태였다. 울산항은 전면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항만으로, 2010년 울산신항컨테이너터미널UNCT만이 울산항운노조와 상용화에 합의한 상태. 그러나 2011년 12월 울산신항 9번 선석에 민간업체인 T사가 부두운영을 맡으면서 항운노조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개장초부터 울산항운노조는 동사에게 항운노조원을 하역작업에 투입하라고 요구했고, 회사측은 국가 부두가 아닌 민간부두이기 때문에 직접 고용한 직원을 투입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울산항운노조는 선박 입항저지, 항의시위 등을 벌이며 대립하다 2013년 9월에서야 T사가 윈치 작업권을 항운노조에 넘기기로 하면서 극적으로 타결했다.

2010년에는 정일울산신컨테이너터미널이 울산항운노조와 처음으로 노무계약을 해지하면서 싸움이 일었었다. 정일터미널은 울산신항 개장으로 하역물량이 급격히 줄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당시 항운노조 조합원 21명에 대해 계약해지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울산항운노조는 즉각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내는 등 크게 반발했었다.
포항항에서 나타난 노노 갈등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아직까지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올 7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으로부터 근로자 공급사업을 허가받으며 정식 출범했던 포항항운노조가 포항신항 운영사인 I사와 노무교섭을 벌였지만 경북항운노조의 반발로 해산됐다. 또한 2005년 포항신항 건설에 반발하며 설립된 포항영일신항 항운노조도 노무공급권을 요구하며 조합원 음독자살 기도 등 과격시위를 벌였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포항영일신항 항운노조원 2명이 높이 85m 갠트리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과격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항운노조 취업비리도 여전, 독점적 노무공급권의 폐해
항운노조의 취업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 4월 부산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부산 항운노조 지부장 김 모씨 등 간부 9명과 알선책 2명 등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임시직 조합원들에게 정조합원으로 등록시켜 주겠다며 돈을 받고, 취업희망자들에게 항운노조원으로 취업시켜 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등 총 1억 9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이다. 10월에도 부산항운노조 지부장인 정 모씨가 항운노조 조합원으로 채용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를 받아 불구속 입건됐으며, 작업일지를 허위로 꾸며 대체반장 임금 7,2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부산항운노조원 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문제는 항운노조가 갖고 있는 독점적 노무공급권에 따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노무공급 상용화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하역회사는 항운노조와 매년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고 항운노조가 공급하는 근로자를 채용한다. 결국 항만 근로자 공급의 칼자루는 여전히 항운노조가 쥐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만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국가 물류를 넘어 산업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항만운영이 안정화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항운노조가 탄생했고 우리 항만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항운노조의 몫이 컸다.
그러나 항운노조의 분명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에는 업계와 항운노조 측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용화가 상용화가 아니다”라는 말로 현재의 상황을 대변했다. 업체가 근로자를 고용함에 있어 자율권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노조 측도 연이은 취업비리와 노노갈등으로 인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모양새다. 부산항운노조 측 관계자는 “조금씩 변화하려고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다”며, “항운노조원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업계와 정부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급격한 개혁보다는 부작용 없이 점차적으로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부산항운노조, ‘부산항 항만노동인력 수급위’ 구성계획 발표
노사정 참여해 적정인력 산출, “기득권 내려놨다”

11월 14일 부산국제항만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도 변화를 위한 항운노조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부산항 항만노동인력 수급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산항 노·사·정이 항만 노무 적정인력을 산출하고 인력 공급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항운노조가 독점적으로 운영해왔던 항만노무공급을 사측, 정부와 함께 논의하겠다는 방안으로 풀이된다. 부산항운노조 측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항만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지금까지의 소모적인 노사관계 프로세스에 갇혀서는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면서, “다기능화·현대화·자동화·첨단화된 항만하역기능에 소요되는 적정인력을 산출해 수급관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급관리위원회에는 부산항운노조와 부산해양항만청, 부산항만공사, 부산항만물류협회, 부산항만산업협회가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 2만명의 항운노조 중 8,000명을 보유해 가장 규모가 큰 부산항운노조가 이 같은 방침을 밝힘에 따라 향후 전국 항운노조의 정책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업계 “일단 환영.. 급진적 개혁보다 점진적 변화 원해”
이번 부산항운노조의 발표에 대해 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지만 항운노조가 노무공급권에 대한 ‘독점적 기득권’을 내려놨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자동화·무인 터미널이 늘어남에 따라 항만인력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항운노조의 이러한 움직임은 시의 적절하다는 평가가 대다수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항운노조의 실력행사는 있어 왔다. 지금도 미국 서부항만에서 항만노조가 파업을 진행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홍콩항에서 노동자 파업이 40일동안 지속되기도 했다”면서, “항만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부산항운노조의 움직임은 우선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다만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운노조의 내부적 반발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면 노조나 업계 모두 손해”라면서, “합리적인 방안으로 천천히 변화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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