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분쟁사례 및 해사중재판정의 집행

 

대한상사중재원과 한국무역협회 하주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던 해사분쟁에 관한 설명회에서 소개됐던 사례들을 2회에 거쳐 그대로 싣는다. 이 설명회에는 법무법인 김신유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정해덕 변호사가 강사로 나섰다.

 

<싣는 순서>
Ⅰ. 태풍을 인한 운송물손해와 해상운송인의 책임
Ⅱ. 선하증권에 기한 클레임 사례
Ⅲ. 선하증권 상환 없는 화물인도와 과실상계
Ⅳ. 유류오염손해에 대한 국제기금의 배상범위
Ⅴ. 신용장거래와 선적서류
Ⅵ. 안전항

 

<강사 정해덕(丁海德)의 주요 약력>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University of Hawaii 교환연구원  ▲Wales Cardiff Law School 보험해상법과정 수료 법학석사(LL.M.)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상법) 법학박사(Ph.D.)
경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13기 수료 ▲미국 하와이 Honolulu Moon, O’Conner, Tam & Yuen 법률회사 근무 ▲영국 Clyde & Co. 법률회사 근무 ▲국민대, 경희대, 한양대, 영산대 강사 ▲사법연수원 외래강사 ▲법무법인 김신유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I. 태풍으로 인한 운송물손해와 해상운송인의 책임

1. 태풍과 해상운송인의 면책사유
해상운송인은 항해과실면책과 선박화재면책 등을 주장할 수 있는 이외 다음 각 호의 사실이 있었다는 것과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그 사실로 인하여 보통 생길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한 때에는 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 상법 제789조 2항의 위 개별면책사유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해상 기타 항행 할 수 있는 수면에서의 위험 또는 사고
2) 불가항력
3) 전쟁, 폭동 또는 내란
4) 해적행위 기타 이에 준한 행위
5) 재판상의 압류, 검역상의 제한 기타 공권에 의한 제한
6) 송하인 또는 운송물의 소유자나 그 사용인의 행위
7) 동맹파업 기타의 쟁의행위 또는 선박폐쇄
8) 해상에서의 인명이나 재산의 구조행위 또는 이로 인한 이로 기타 정당한 이유로 인한 이로
9) 운송물의 포장의 불충분 또는 기호의 표시의 불완전
10) 운송물의 특수한 성질 또는 숨은 하자
11) 선박의 숨은 하자
그러나 수하인이나 선하증권소지인이 상법 787조 및 788조 소정의 해상운송인의 감항능력주의의무 또는 운송물에 관한 주의의무를 다하였더라면 그 손해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의를 다하지 아니하였음이 증명된 때에는 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따라서 위 면책사유는 일정한 유형의 사고에 대하여 운송인의 추정적인 면책(prima facie liability)을 규정하여 과실문제에서 입증책임의 전환을 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법정면책을 인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입증책임의 분배를 명확히 하여 운송인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태풍에 의한 운송물 손해는 위 해상운송인의 면책사유중 특히 해상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 해상기타 항행할 수 있는 수면에서의 위험 또는 사고) 또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나 해상이 아닌 육상에서의 운송물 손해는 해상고유의 위험이 아니므로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가 주로 문제될 것이다.

 

2. 태풍과 해상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
해상고유의 위험에 의한 운송물 손해는 예컨대 거친 바다(황천, heavy sea)에서 발생한 선박충돌, 암초와의 충돌, 빙산과의 충돌, 좌초, 침몰 등과 같은 해상에서의 위험으로 인하여 운송물에 생긴 손해를 말한다. 즉, 해상에서의 조난(shipwreck), 파도의 충격(foundering), 좌초(strand), 폭풍우에 의한 침수, 충돌 또는 화재 등이 해상고유의 위험이 될 수 있으나 폭풍우(storm) 그 자체는 항로상 적절하게 예견할 수 있는 날씨의 한 현상이기 때문에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 또한, 태풍래습의 경우에 있어서도 해상운송인이 태풍의 래습을 예측할 수 있고 운송물에 대하여 손해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배상책임이 있다고 본다.


외국판결중에는 폭풍과 관련하여 북대서양에서 풍력 8의 거친 날씨는 흔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풍향이 바뀌고 바다가 혼란하여서 삼각파가 생기고 그 파정에 의해 선창의 커버가 파손되었다면 해상고유의 위험에 의한 손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것이 있으나(Hiram Walker & Sons Ltd v. Diver Nav. Co.(1949) 83 LILR84), 반대로 운송물 손해가 북태평양에서 풍력 11과 파고 60피드의 거친 날씨에서 생겼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선체의 손상이 없었고 그 사실을 검정한 결과 60피드의 파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을 갑판일지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으며 손상을 발견한 후에 즉시 통신연락이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하는 폭풍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해석할 만큼 아주 격심했거나 또는 예상 밖의 상태가 아니라고 판시한 것도 있고(The Farland(1972) AMC394), 알라스카 만에서 풍력 9의 폭풍을 만나서 해치가 금이 가서 침수했고 또한 운송물이 깨어지고 흐트러져서 침몰하였더라도 그곳에 있었던 다른 16척의 선박은 이 날씨를 극복하여 손상을 입지 아니하였다면 이는 해상고유의 위험에 의하여 침몰한 것이 아니라 감항능력의 부족에서 침몰하였다고 판시하여(The Pennsylvania(1957) AMC 1181) 해상고유의 위험을 부정한 사례도 있다.

 

3. 태풍과 불가항력(Force Majeure)
원래 불가항력은 천재지변(Act of God)을 포함하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은 물론 인위적인 사건으로서의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Act of God란 인위적인 사람의 개입이 없이 발생하는 자연의 힘에 의한 재난으로서 자연의 직접적이고 전체적인 힘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예방하거나 방지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것들을 가리키며, 폭풍우, 벼락, 번개, 홍수, 자연적 산불, 화산, 지진, 안개 또는 해일 등이 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인위적인 불가항력은 개인 또는 단체의 행위에 의한 것으로서 전쟁, 내란, 폭동, 화재, 해적 또는 강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항력이 있었다고 하여 반드시 운송물에 손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해상운송인이 면책되려면 본선의 감항능력 유지의무와 운송물에 대한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 하여야 한다.

 

4. 태풍과 해상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사례
우리나라에서는 태풍에 의한 운송물손해를 해상고유의 위험이나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으로 보아 해상운송인이 면책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원래 태풍으로 인한 운송물 손해에 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하여 운송인이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라는 이유로 그 불법행위 책임을 면하려면 그 태풍이 선적당시 예견 불가능한 정도의 천재지변에 속하고 사전에 이로 인한 손해발생의 예방조치가 불가능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한다(대법원 82다카1533 판결).


그러나 피해가 오로지 태풍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태풍의 강도 및 그로 인하여 발생한 다른 피해상황의 정도, 사고해역의 지형적 특수성 및 사고발생의 경위 등을 종합하여 피해 가운데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배상하여야 할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이를 참작하여 손해배상액을 그 비율에 따라 감액할 수 있을 것이다(대법원 92다17280 판결 등 참조).
또한 집중호우의 경우에도 집중호우로 인한 손해가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라는 이유로 그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려면 그 사고 원인이 된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등이 예견불가능한 정도의 천재지변에 속하고, 또 사전에 이로 인한 손해발생의 예방조치가 불가능하였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할 것이다(서울지법 92가합11478 판결 등).

 

5. 결론
태풍으로 인한 운송물손해에 대하여 해상운송인으로서는 불가항력을 주장하여 면책되는 것보다 해상고유의 위험임을 주장하여 면책되는 것이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운송물이 컨테이너 야드나 육상에 보관된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가항력을 주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 불가항력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기상관측기술의 발전으로 태풍의 위력이나 피해가 미리 예측 가능한 경우가 많아 더욱 그러하다. 다만 태풍 매미와 같은 초특급 태풍의 경우에는 그 특수성 등을 종합하여 불가항력을 좀 더 넓게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제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불가항력 여부 판단에 관하여 좀 더 확실한 해석기준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II. 선하증권에 기한 클레임사례

1.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
기명식 선하증권의 수하인란에 배서금지(Non-Negotiable Unless Consigned To Order)의 취지가 삽입된 소위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의 경우 그 양도가능성 및 방법, 상환증권성 인정여부, 운송물인도청구권자 등이 문제된다.
기명증권은 배서 또는 교부에 의하여 권리이전을 할 수 없고 그 권리이전에는 지명채권의 양도방식을 취하여야 하며,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이 이러한 기명증권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은 배서금지의 문언을 기재한 약속어음의 양도방식에 관하여 “배서금지의 문언을 기재한 약속어음은 양도성 자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지명채권의 양도에 관한 방식에 따라서, 그리고 그 효력으로써 이를 양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민법 제450조의 대항요건(통지 또는 승낙)을 구비하는 외에 약속어음을 인도(교부)하여야 하고 지급을 위하여는 어음을 제시하여야 하며 또 어음금을 지급할 때는 이를 환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9. 10. 24. 선고 88다카20774 판결).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도 약속어음과 같이 유가증권성을 인정하는 한, 위 판결내용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의 본질과 관련하여 상환증권성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운송물을 인도함에 있어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의 제시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하증권의 문언성을 규정한 상법 제814조의 2의 규정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 상법 제814조의 2는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운송인이 그 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하증권상의 수하인은 운송계약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므로 운송인이 하자있는 운송물을 수령하였음에도 무하자선하증권을 발행한 경우에는 그 수하인이 선의인 한 상법 제814조의 2 단서규정에 따라 보호되어야 할 것이며, 이 같은 원칙은 배서금지 기명식 선하증권의 경우에도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2. 선일자 선하증권
실제 선적일보다 선하증권 기재일자가 빠르게 된 선하증권을 선선하증권 또는 선일자 선하증권(Back-dating B/L)이라 한다. 운송주선인이 화물이 선적되기도 전에 미리 ‘선적’ 표시가 된 이른바 선선하증권을 발행해 주는 해운업계의 관행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가리켜 정상적인 행위라거나 그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보아 사회적 상당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그러한 선하증권의 발행행위는 당연히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우리 법원도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은 그 문면상 운송인의 명칭이 기재되어 있고, 운송주선인인 피고 회사가 운송인을 대리하여 서명하였으며, 운송물이 선적되었음이 명시되어 있어(on board) 외관상 이 사건 각 신용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해상선하증권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고, 피고 회사 이사인 피고 이정완과 계장인 피고 이정열이 위 김일수의 부탁을 받고서 이 사건 각 화물이 아직 선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발행하였으며, 원고 은행 직원들이 이 사건 각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이 이 사건 각 신용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해상선하증권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고, 또한 이 사건 각 화물이 선적되었다고 믿고서 이 사건 각 환어음을 매입한 이상, 피고 회사의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발행행위와 원고 은행의 이 사건 각 환어음의 매입 및 그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고, 피고들은 운송주선인이 화물이 선적되기도 전에 미리 “선적” 표시가 된 이른바 선선하증권(Advance Bill of Lading)을 발행해 주는 것이 해운업계의 관행으로 위법하다 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설사 피고들 주장과 같은 관행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가리켜 정상적인 행위라거나 그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보아 사회적 상당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 피고 회사의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발행행위는 위법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므로(대법원 1985. 8. 20. 선고 83도2575 판결 참조), 이와 같은 행위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허위의 내용이 기재된 선하증권에 서명을 하여 송하인에게 교부한 점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1996. 10. 22. 선고 96나15864 판결 참조).

 

3. 이른바 공권(空券)의 문제
운송물의 수령 또는 선적없이 발행된 선하증권을 공권이라 하며 그 효력이 문제된다. 선하증권에 의한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받은 운송물 즉 특정물에 대한 것이고 따라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그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이는 누구에 대하여도 무효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우리 법원도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포함하는 유가증권인 바, 이는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인 점, 선하증권은 운송물을 “수령한 후” 또는 “선적한 후”에 교부하도록 되어 있는 상법 제813조 1, 2항, 선하증권에 운송물의 종류, 중량, 용적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상법 제814조, 선하증권의 처분증권성, 그 교부의 물권적 효력에 관한 상법 제820조, 제132조, 제133조의 규정취지로 보아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받은 운송물 즉, 특정물에 대한 것이고 따라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그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 이는 누구에 대하여도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

 

4. 스테일 선하증권(Stale B/L)
소위 스테일 비엘(STALE B/L) 조건 아래 무역매매를 함에 있어 그 운송물이 양육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신용장을 개설한 바 없고 매도인이 지시식 선하증권을 발행 받은 경우에는 운송물에 대한 처분은 선하증권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그 효력이 없는 것이므로 매도인이 그 선하증권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않고 소지하고 있다면 그 운송물의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유보되어있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1980. 10. 24. 선고 80다2943 판결).

 

5. 무하자 선하증권의 “On board” 등 기재
몇 가지 관련 판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지방법원 1996. 2. 2. 선고 95가합31060 판결은 “피고가 운송인인 위 이에이에스를 대리하여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하면서 실제로는 이 사건 화물을 선적하지도 아니하였음에도 선적하였다는 기재가 있는 선하증권을 발행한 이상 그로 인하여 원고가 손해를 입었다면 피고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는 할 것이나(피고는 이 사건 선하증권은 고전적인 해상선하증권이 아닌 복합운송증권이고, 그 운송조건도 수출지의 컨테이너 야드에서 수입지의 컨테이너 야드까지 운송하는 CY-CY조건이므로, 선적되었다는 ‘On board’의 기재는 아무런 법적 의미가 없는 것이어서 그 기재를 잘못하였다고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항쟁을 하나, CY-CY 조건의 복합선하증권이라 하여 운송인이 선적하지도 아니하고 그 증권에 선적되었다고 기재하는 행위가 적법하다고 할 수는 없고, 그러한 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항쟁은 이유 없다), 나아가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와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에 관하여 보면, 원고가 주장하는 위 삼청물산에게 지급한 매입대금에서 이 사건 화물을 처분하여 얻은 금원과의 차액 상당의 손해는 피고가 위 삼청물산으로부터 인도받은 이 사건 화물의 실제가액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것으로서 이는 위 삼청물산의 부도로 인한 중국의 수입상 또는 개설은행의 대금지급 거절과 위 삼청물산이 매입대금 상환능력 상실 또는 위 삼청물산이 피고에게 정상품이 아닌 화물을 인도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 할 것이고, 달리 피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할 당시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거나, 알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에 대한 주장입증이 없는 한, 피고가 위 삼청물산으로부터 이미 이 사건 화물을 인도받아 선적이 받아 선적이 예정된 상태에서 단지 선적되었다는 취지의 선하증권을 미리 발행한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결국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와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 사이에는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선하증권 기재문언에 따른 운송인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으며, 서울지방법원 1990. 4. 12. 선고 89가합25354 판결도 “송하인으로부터 화물을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in 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 인수하였다는 내용의 이른바 무유보선하증권(clean bill of lading)을 발행한 운송인이나 운송계약에 따라 실제로 운송을 담당한 하수운송인은 선하증권의 문언성에 비추어 그 정당한 소지인에 대하여 선하증권의 문구와 다른 사유로써 대항할 수 없다. 이 사건 화물이 부산항에 선적할 당시에 하역회사, 검정검수인 및 위 제3장영호의 1등 항해사 등이 작성한 선적명세(을 제2호증) 및 화물손상보고서(을 제3호증)상에는 이 사건 화물이 위 제3장영호에 선적할 당시 모두 부분적으로 녹이 슬어 있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기는 하나, 한편 아래 구상의 범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해사검정협회가 조사 검정한 이 사건 화물의 녹손상은 해수의 접촉으로 인한 녹손상에 국한될 뿐 기존의 대기 습기에 의한 녹손상은 제외된 것이 명백할 뿐더러 피고 범양이 발행하여 소외 수입업자가 적법하게 취득한 선하증권은 동 선하증권상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이 사건 화물을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in 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 인수하였음을 기재한 이른바 무유보선하증권으로서 이러한 선하증권의 문언성에 비추어 운송인은 물론 그 운송계약에 기하여 실제 운송을 담당한 하수운송인 역시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에 대하여 선하증권의 문구와 다른 사유를 들어 대항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위 피고의 위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라고 판시하여 무하자선하증권의 문언성을 강조한 바 있다.

 

III. 선하증권 상환 없는 화물인도와 과실상계

1. 선하증권과 상환 없는 화물인도에 대한 해상운송인의 책임
해상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그에 표창된 화물을 타인에게 넘겨주어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이를 인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물의 법적 멸실에 해당되며, 해상운송인은 채무불이행책임은 물론 운송물 멸실에 따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 경우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과 화물소유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권리자는 그 중 어느 쪽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법 제820조, 제129조의 규정은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의 제시가 없는 운송물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인도를 거절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운송인 또는 선박대리점이 선하증권과 상환함이 없이 화물선취보증장(letter of guarantee)만 교부 받고 화물을 넘겨주는 보증도에 의한 화물의 인도는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확립된 상관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운송인 또는 선박대리점의 선하증권소지인에 대한 책임의 면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보증도로 인하여 선하증권소지인이 입게 되는 손해의 배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해상운송인 등이 보증도에 의한 화물인도에 의하여 선하증권소지인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위법성이 없는 정당한 행위라거나 화물인도에 있어서의 주의의무가 감경 또는 면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확립된 입장이라 할 수 있다(대법원 1992. 1. 21.선고 91다14994판결, 1992. 2. 14.선고 91다4249판결 등 다수). 따라서, 운송인이 보증도로 인하여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의 운송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에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게 된다.

 

2. 과실상계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있어서 과실상계는 공평 내지 신의칙의 견지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으로서 그 적용에 있어서는 가해자, 피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의 정도, 위법행위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원인이 되어 있는가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배상액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며,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가해자의 과실이 의무 위반이라는 강력한 과실임에 반하여 과실상계에 있어서의 과실이란 사회통념상, 신의성실의 원칙상, 공동생활상 요구되는 약한 부주의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화물이 인도된 경우에도 운송인은 과실상계의 법리에 따라 책임이 경감될 수 있을 것이다.

 

3. 신용장조건상의 네고금지특약과 과실상계
(1) 서울고등법원은 2007. 2. 15. 선고 2005나90348판결에서 신용장상의 네고금지특약 등을 이유로 30%의 과실상계를 허용한 바 있다. 그 판결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불법행위에 있어서 과실상계는 공평 내지 신외칙의 견지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으로서 그 적용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의?과실의 정도, 위법행위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원인이 되어 있는가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배상액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며, 불법행위에 있어서의 가해자의 과실이 의무위반의 강력한 과실임에 반하여 과실상계에 있어서의 과실이란 사회통념상, 신의성실의 원칙상, 공동생활상 요구되는 약한 부주의까지도 가리키는 것이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다61120 판결 참조).

2)이러한 관점에서 보건대, 이 사건 신용장은 일람불(drafts at sight) 대금지급조건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 그 매입은 선하증권 발행일로부터 51일 이후에만 가능하도록 네고금지특약의 조건으로 발행된 사실, 이 사건 화물은 2003. 8. 22. 선적된지 불과 3일 후인 2003. 8. 25. 평택항에 도착하였고, 위 화물의 선적서류는 화물의 무단 반출 이후 2003. 10. 중순까지도 네고금지특약에 따라 매입조차 되지 아니한 채 수출상인 니쇼 이와이가 소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이미 앞서 본 바와 같고, 한편 갑19호증, 을5호증의 2, 6, 7, 10, 13, 을7, 8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①페타코는 2003년 초순경부터 정유사와 유류 수입사간의 국내 출혈경쟁 등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되어 원고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들이 페타코의 신용장 개설한도를 일부 축소 조정하였던 사실, ②페타코는 그 영업구조상 이 사건 신용장 거래 이전부터 해외 유류 중개상으로부터 정제된 유류 완제품을 수입하여 이를 인도받은 후 국내대리점 내지 주유소 등에게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으로 신용장 대금을 결제하여 왔으며, 원고 은행도 이러한 사정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 ③그럼에도 원고 은행은 2002. 10.경 페타코와 사이에 이 사건 외국환거래약정을 체결한 이래 2003. 10. 페타코의 최종 부도시까지 총 41회에 걸쳐 유류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신용장 거래를 하여 오면서 당초 지급보증한도인 700만 달러에 대하여는 포괄 근담보조로 정기예금 10억원 및 요구불성 예금(MMDA) 10억원 상당의 담보만을 확보하였으며(원고 은행이 자인하고 있음), 그 중 이 사건을 포함한 34건의 신용장 거래에 관하여는 이 사건과 같이 네고금지기간을 단기 21일 내지 장기 81일까지로 정한 일람불 조건의 신용장을 개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페타코로 하여금 신용장 대금 결제기한의 시차를 이용하여 유류 판매대금에 관한 편법금융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였던 사실(21일건: 3건, 50일건: 1건, 51일건: 23건, 60일건: 2건, 81일건: 5건), ④이 사건 신용장거래에 즈음하여 페타코는 신용등급이 낮아 정상적인 기한부 신용장(Usance L/C)의 개설이 곤란하였던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다.

3)위 인정사실에다가 ①이 사건 화물의 거래는 물품 인도와 자금 결제가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거래인 바, 원고 은행은 이 사건 신용장 개설시 51일간의 네고금지특약을 부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하증권의 취득과 수입대금의 결제를 지연시켜 일람불 신용장인 이 사건 신용장을 기한부 신용장과 동일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하였고, 그럼에도 원고 은행은 이 사건 화물의 도착이나 행방에 관하여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 점, ②또한 페타코는 원고 은행이 부가한 51일간의 네고금지특약으로 말미암아 선하증권보다 먼저 도착한 화물의 처분 대가로 신용장 대금의 결제가 가능한 편법금융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 점, ③네고금지특약하의 신용장은 그 성격상 선하증권 발행일(선적일)로부터 21일이 경과한 이른바 스테일 선하증권 수리가능 조건(Stale B/L Acceptable)에다가 일정 기간 네고금지 조건까지 부가된다는 점에서 실무상 그 이용례를 찾기 어려운 이례적인 신용장이고, 따라서 선하증권 취득 및 수입대금 결제 지연에 의한 위험 부담이 상존하고 있는 점, ④이 사건과 같이 대만에서 선적되는 유류 화물의 경우 2 내지 3일이면 국내에 양하가 가능한데, 51일간의 네고금지특약조건으로 신용장이 개설된다면, 수입자가 부담할 선박 용선료와 유류 탱크 화물 보관료 등의 제반 필요 경비 등을 감안할 때 상거래상 선하증권 원본과 화물과의 상환은 당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를 띠고 있는 점, ⑤페타코는 국내 최대 유류완제품 수입회사로서 운송인(선사)의 입장에서 볼 때 거래 규모가 매우 큰 중요한 거래처인바, 피고 회사와 같은 운송인으로서는 선하증권보다 먼저 도착한 화물의 인도를 요구하는 화주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기 어려웠던 점, ⑥네고금지특약으로 페타코에게 편법금융의 이익을 주면서 이 사건 화물의 무단 반출에 관한 원인을 제공하였던 원고 은행이 위 화물의 멸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고 회사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신의칙이나 구체적인 형평에도 반하는 점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이러한 사정 등은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 확대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회사가 배상할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이를 참작하기로 하되, 그 비율은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30%로 봄이 상당하여 피고 회사의 책임을 70%로 제한한다(대법원 1995. 9. 15.선고 94다61120 판결, 1992. 2. 14. 선고 91다4249 판결, 1991. 12. 10. 선고 91다14123 판결 등 참조).
(2) 대한상사중재원도 2007년 4월 24일에 있었던 중재 제06111-0062호 사건에 대한 중재판정에서 신용장상의 네고금지특약 등을 이유로 15%의 과실상계를 허용한 바 있다.

 

4. 결어
최근 법원과 중재원에서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화물이 인도된 사안에 대하여 신용장조건 등을 들어 과실상계를 허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선하증권소지인이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지경위나 신용장조건, 화물인도경위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무조건 그 책임을 전부 해상운송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대부분의 경우 선하증권소지인은 화물에 대한 소유자로서 화물운송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거나 관여할 수 있으며, 거래과정은 물론 화물의 행방에 대하여도 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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