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하다
세월호 참사로 침울하게 보낸 2014년. 비선실세, 십상시와 문고리 3인방......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지난 세모 정국의 화두들이다. 실선과 정상이 제자리를 못 잡으면 비선과 비정상이 똬리를 틀고 행세하는 것이 세상 사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4년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말이라고 강요받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날은 어둡고 갈 길이 멀어 마지못해 행하는 도행역시(倒行逆施)일까? 2015년 새해가 밝았다. 기대를 걸만한 조짐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어제의 아픈 기억은 잊고, 이젠 긍정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을미년 양의 해. 분요와 갈등의 긴 세월을 보냈으니 양처럼 온유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춘색만원관부주(春色滿園關不住) 일지홍행출장래(一枝紅杏出墻來)” “정원 가득한 봄빛 가두어둘 수 없어 / 빨간 살구꽃 한 가지 담 밖으로 나왔네.” 남송(南宋)의 강호(江湖)파 시인 섭소옹(葉紹翁)이 지은 시 ‘정원 나들이(庭園不値)’에 나오는 구절이다. 엄동설한에 이 시가 불연 떠오르는 까닭은 훈풍이 부는 따스한 봄볕이 더욱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구랍 콤파스에 코모스검정손해사정의 김동현 부사장이 나와 ‘유류오염 손해보상 제도와 사례’를 발표하였다. 김 부사장은 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공학석사, 텍사스주립대학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그후 대우중공업의 엔지니어, 텍사스주립대 연구조교, 미국 실리콘밸리 CISCO Systems 매니저를 거쳐 코모스 부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해양수산부 감정사, 금융감독원 재물(1,2종) 손해사정사이기도 하다.
 

1. 유류오염 손해보상 제도
1969년 영국 실리제도에서 발생한 유조선 토리캐년호의 해난사고로 인해 유류오염 피해에 대한 국제적인 경각심이 고조되어 유류오염 손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국제협약인 1969 CLC(International Convention on Civil Liability for Oil Pollution Damage)협약과 국제기금협약인 1971 FUND협약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사고로 미국은 OPA 90을 발효시키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유조선에 의한 유류오염손해 배상제도인 1969 CLC협약은 엄격책임(strict liability)을 적용하고 있는데, 대형 유조선에 의한 유류오염사고의 피해규모가 천문학적 수치로 올라가자, 그 보상 내지 피해 구제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유업계도 유류유출로 인한 손해에 대해 부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도 제기되어 1971년 유류오염손해에 대한 보상을 위한 국제기금의 설치에 관한 국제협약인 1971FC(Fund Convention)가 발효되었고, 석유업계에서 갹출한 기금을 조성하여 손해에 대해 사고당 3,000만SDR(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 2014년 12월23일 기준으로 1SDR=1.45USD)을 보상하고 있다.

그리고 개정된 1992 CLC의 특징은 화물 2,000톤 이상의 적재선박에 대해서는 보험을 들도록 강제하고 있다. 참고로 국내의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은 화물 200톤 이상의 선박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유류oil란 유조선에 화물로서 운송되거나 선용유船用油로 사용되는 원유, 중유, 윤활유 등 모든 지속성 탄화수소 광물유(persistent hydrocarbon mineral oil)를 뜻한다. 1992 FC는 1992 CLC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1992 FC의 체약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1992 CLC의 체약국이 되어야 하나 모든 CLC체약국이 FC회원국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CLC에만 가입하였다. 1992 FC의 기본원칙은 1992 CLC가 종료되는 곳에서 1992 FC가 적용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2003 추가기금협약은 유류오염사고 보상에 관한 기존 협약(1992 CLC 및 1992 FC)에 정해져 있는 보상한도를 늘려 대형 오염사고가 발생해도 충분한 보상이 가능하도록 제정한 협약이다. 다만, 1992 FC의 체약국 모두가 2003 추가기금협약에 가입한 것은 아니고 오직 희망하는 나라들만 가입되어 있다. 이 협약은 2010년 8월 6일 발효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010년에 가입하였다.

유류오염 손해보상 관련 국제협약 가입현황을 살펴보면, 1992 CLC만 가입한 국가는 19개국, 1992 FUND에 가입한 국가는 113개국, 추가 기금(Supplementary Fund)에 가입한 국가는 31개국이며 우리나라는 세 협약에 모두 가입하였다. 책임한도액은 1992 CLC는 5천톤 이하 기준 451만SDR, 5천톤이상은 초과톤당 631SDR로 14만톤의 경우는 8,977만SDR이고, 1992 FUND는 2억300만SDR(약 3,200억원), 추가협약은 7억5천만SDR(약 1조2천억원)이다.
 

2. 일반선박에 의한 유류오염 손해배상제도
비유조선인 일반선박에 의한 유류오염 손해배상제도로는 연료유인 벙커협약(Bunker Convention)이 있어 1992 CLC와 같이 일반선박 소유자의 무과실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연료유협약은 책임제한액을 특정하지 않고 체약국에 일임하며, 우리나라는 ‘2001년 선박연료유협약’이 2009년 11월 28일(조약 제1975호) 발효되었다. 일반선박의 책임한도액은 상법 제 770조에 따라 300톤 미만이 8만3천SDR, 500톤 이하가 16만7천SDR, 3만톤 이상은 매 초과 톤당 125SDR이 가산되어 7만톤의 경우 1억9만3,500SDR(약 160억원)이 된다. 책임제한액은 해사채권책임제한조약인 1976 LLMC(Convention on Limitation of Liability for Maritime Claim) 책임제한액과 거의 동일하다.
 

 3. 유류오염 손해배상보장법(유배법)
우리나라의 유류오염 손해배상보장법 (유배법)은 1992 CLC와 1992 FC 그리고 연료유협약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유배법의 적용범위는 지리적으로 대한민국 영역 및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발생한 유류오염손해이다. 다만, 이 지역에서의 유류오염 손해를 방지하거나 경감하기 위한 방지조치에 대해서는 그 장소에 관계없이 적용한다. 유류종류는 1992 CLC는 지속성 탄화수소 광물성 유류이다. 여기서 탄화수소란 원유 중유 선용연료유 윤활유 기타 섭씨 340도 이하에서 그 부피의 50%를 초과하는 양이 유출되지 아니하는 물질을 뜻한다. 연료유 즉 벙커협약에서 연료유란 윤활유를 포함하여 선박의 운항이나 추진을 위하여 사용되거나 사용될 수 있는 탄화수소 광물류를 말한다. 그리고 선종船種은 1992 CLC는 유조선과 유류저장 부선이고, 연료유협약은 유조선 및 유류저장 부선을 제외한 모든 일반선박이다.

   
4. 유류오염 손해보상 사례
1) 허베이 스피릿호 사고

허베이 스피릿호 사고의 개요는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 5마일 부근에 정박중인 중국적 탱커 허베이 스피릿호(14만6,848총톤)가 강풍에 의해 예인선의 로프가 끊어져 떠밀려온 크레인 바지선 삼성1호와 부딪쳐 좌현 화물창 3군데가 파공되었다. 당시 허베이 스피릿호에는 20만9,000톤의 원유를 싣고 있었는데, 그중 약 1만900톤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다. 위성사진을 보면, 사고발생 사흘 반 나절만에 태안반도가 온통 기름띠로 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안면도, 12월 16일 군산 앞바다, 흑산도와 추자도를 거쳐 2008년 1월 6일에는 제주섬까지 타르 볼(tar ball)이 도달한 것이 확인되었다. 해안선과 도서의 유류오염 범위는 서해안의 375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고, 그중에서도 태안해안 등 약 70킬로미터가 극심하였다. 충남과 전라도의 백 여 개의 섬들이 오염됐고, 해마다 2천만명이 찾는 태안국립공원의 해변과 지역들이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 발생한 주요 해양 유류유출 오염사고를 보면, 1995년 7월 24일 여수 앞바다에서 시프린스호가 좌초되어 원유 5,035kl를 유출했고, 1997년 1월 일본의 나호드카호가 침몰 벙커C유 6,240kl를, 1999년 12월 프랑스 에리카호가 침몰하여 벙커C유 1만4,500kl를, 2002년 11월엔 스페인 프레스티지호가 침몰하여 중유 6만3,000kl를 유출하였다.
 

2) 바다양식 피해와 방제작업
우리나라의 바다 양식업자들은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거주하고 있다. 특히 서해안의 조수 간만의 차이는 최대 9미터나 될 정도로 커서 갯벌에는 굴 조개 새우 같은 갑각류와 해초들이 잘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안면도와 태안에는 조피몰락 가두리양식장과 새우 양식장 및 넙치 부화장 등이 산재해 있다.
방제작업을 위한 태스크 포스 기구를 살펴보면, 해안방제(offshore cleanup)는 해양경찰청 주도하에 해양환경관리공단KOEM, 민간 방제업자들이 실시하였고 육상방제(onshore cleanup)는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실시하였다. 2007년 12월 8일에 양식장이 집중되어 있는 해안선 안으로 유출유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오일 붐이 설치되었다. 해안선의 기름을 제거하는 일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2007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방제작업에 투입된 선박의 연 동원척수는 해양경찰청 6,630척(boat·day), 해양환경공단KOEM 889척, 해군 723척, 어업지도선 97척, 어선 1만1,444척, 헬기 309대 등이다. 또한 같은 기간 방제에 투입된 연 동원인원은 해경 1만7,460명(man·day), 육경 3만2,356명, 지역주민 56만3,896명, 군인 15만2,695명, 공무원 7만6,684명, 자원봉사자 122만6,730명 등이다. 이처럼 많은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제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로 인해 사고 10일후에는 일부 해변의 검은 기름띠들이 어느 정도 제거되기에 이르렀다.
 

3) 허베이 스피릿호 어레스트와 어로작업 금지 및 재난지역 선포
 해양환경공단은 2007년 12월 24일 허베이 스피릿호를 어레스트 하도록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 선주는 2007년 12월 7일부터 2008년 1월말까지 발생한 인건비 120억원에 동의하고 현금공탁을 제공하겠다고 요청하여 허베이 스피릿호는 2008년 1월 7일 대산항에서 풀려났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조업제한조치를 발령하였다. A급, B급, C급의 오염등급이 2007년 12월 7일부터 2008년 9월 2일까지 순차적으로 공표되었다. 정부는 2007년 12월 11일 유류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1992 CLC/FC 한도를 초과하는 클레임이 발생하면 보상금을 지급하고자 준비하였다. 그리고 2008년 1월 24일 클레임을 효율적이고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허베이 스피릿센터가 서울에 사무실을 열었다. 2010년에 한국은 IOPC 추가기금에 가입하여 보상한도가 7억5천SDR로 상향되어 향후에 이와 같은 큰 유류오염사고가 발생할 때를 대비하고자 준비하였다. 참고로 1992CLC/FC의 한도는 2억3천SDR이다.
 

4) 클레임 건수와 평가액
클레임 건수는 어업 및 양식 및 방제가 6,052건, 염전 등 기타 어업이 3,877건, 어선어업 9,037건, 맨손 어업 8만4,937건, 관광숙박업 2만1,450건 등 총 12만5,353건이다. 그리고 보상청구액은 4조2천억원이나 법원 사정액은 그 17.4%인 7,340억원이고 IOPC 기금과 P&I클럽 평가액은 1,840억원으로 청구액의 4.3%에 불과했다.
이상 허베이 스피릿호 해난사고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유류오염사고이고, 클레임 건수가 12만5천건이며, 7년이 지난 지금도 재판 중에 있는 대형 사고였다.  
 
해양수산부와 해운발전

구랍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여 이 장관을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보도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이주영 장관의 사임을 아쉬워하며 다른 국무위원들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국정을 수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터진 세월호 사고로 136일 동안 현장을 지키며 유가족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이 장관이었기에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감회도 남다를 것이다.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할 일을 다 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 세월호 참사였기에 현장을 떠나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다한 이 장관에게 더욱 큰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함께 행한 세종청사 완공 기념식수에서 회화나무를 심으며, 선비를 상징하는 이 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과거를 보러 가거나 합격하게 되면 심어 학자수(學者樹)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곧게 학문탐구에 매진한 학자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청빈하게 정도를 걸어간 선비들이 그립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해양수산부의 설립목적은 해운업의 육성 및 항만의 건설 운영, 선박과 선원의 관리 및 해양안전, 해양자원 개발 및 해양과학기술 진흥, 해양환경 보전 및 연안관리, 수산자원 관리와 수산업 진흥 및 어촌개발이다.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해운업의 치유와 회복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해운업계 종사자들은 자괴심으로 인해 사기와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해운항만청과 해양수산부가 출범하던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단점을 고치고 장점은 살려 해운업을 회복하고 중흥시켜 국민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해운산업 그리고 이를 제도와 정책으로 견인하는 해양수산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은 길을 만드는 것이다. 막힌 것이 있으면 뚫고 맺은 것이 있으면 풀며 끊어진 것이 있으면 이어야 한다. 또한 정책은 선제적 대응이기에 정책수립자에겐 선견지명(先見之明)이 필요하다. 해운과 해양산업의 발전을 위한 혜안과 전문성을 가진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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