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첫 취입해 히트…노래 배경지 2가지 설說 ‘눈길’
옹진군, “인당수는 백령도 부근”…심청각 건립
곡성군, “심청의 출생지”…해마다 5월 중 축제


공양미 삼 백석에 제물이 되어
앞 못 보는 부친님과 하직을 하고서
사공 따라 효녀심청 떠나갈 때
산천도 울었다네 초목도 울었다네

인당수 푸른 물결 넘실거릴 때
만고효녀 심청이는 뱃전에 올라서
두 손 모아 신령님께 우러러 빌 때
물새도 울었다네 사공도 울었다네
맴도는 바닷 물결 용솟음치고 천 길이냐 만 길이냐
용궁에 가는 길 심청이는 치마 쓰고 뛰어들을 때
갈매기도 울었다네 바다도 울었다네 
 

백령도 효녀심청상
백령도 효녀심청상
전오승(세고천) 작사, 작곡의 ‘효녀심청’은 가수 김용만이 불러 히트했다. 4분의 4박자 룸바풍의 이 노래는 효성이 지극한 심청을 그린 곡이다. 가사는 고전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눈이 먼 아버지를 위해 어부들에게 팔려가는 딸 심청의 모습들이 영화필름처럼 이어진다.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아버지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뱃사람들 제물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모습, 바다 속 용왕을 만난다는 내용이 3절까지 그려져 있다.

나훈아, 조미미, 김부자, 최숙자, 송해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부른 이 노래는 해마다 명절, 어버이날 때 방송연예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효’계통의 트로트로 잘 알려져 있다. 노랫말에 담긴 사연도 그렇지만 넘어가는 곡조 또한 가슴을 저민다. 국내 최연소(7살)가수로 데뷔한 하춘화도 비슷한 제목의 ‘효녀심청 되오리다’를 부르기도 했다.

‘효녀심청’을 처음 취입한 김용만 선생은 1953년 ‘남원의 애수’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 뒤 ‘회전의자’ 등의 여러 가요들로 인기를 누렸다.
‘효녀심청’ 노래가 히트하면서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심청전’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신상옥 감독(조감독 이장호)이 메가폰을 잡았고 윤정희(심청역)가 주연을 맡았다. 김성원(심학규), 신성일(왕), 최은희(용왕)와 도금봉, 이경희, 최성호, 정애란, 송미남 등이 나온다. 이상현 씨가 각본을 썼고 최승우 씨가 촬영했다.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인 ‘심청전’은 작자, 연대 미상의 고소설로 80여종의 이본異本이 있을 만큼 민초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흥미로운 건 눈을 뜬 심봉사의 의학적 분석과 노래  바탕이 된 ‘심청전’의 배경지 주장이 팽팽하다는 점이다.
‘심봉사 눈은 백내장’이었다는 엉뚱하지만 신빙성 있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눈의 실명과정에 대해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상황으로 볼 때 지방이 눈의 수정체를 뿌옇게 만들었다는 게 의료전문가들 분석이다. 오랫동안 백내장을 앓던 심봉사가 딸을 만나던 순간 깜짝 놀라 시신경의 충격으로 수정체 지방층이 찢어져나가 시력을 되찾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노래와 관련된 ‘심청전’ 배경지를 둘러싼 주장도 재미있다. 인천시 옹진군과 전남 곡성군이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며 서로 ‘심청전’ 주 무대임을 내세워 관광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백령도에 ‘심청전’ 배경무대 관련지명들 많아
먼저 선수를 친 곳은 옹진군. ‘심청전’에서 나오는 인당수가 백령도 부근이라며 1999년 10월 20일 심청각을 지었다. 백령면 진촌동 면사무소 북쪽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심청각은 젊은이들에게 효 의식을 높이기 위해 29억원을 들여 준공됐다. 심청각은 2층짜리 목조건물로 앞쪽엔 심청동상이 있다. 효녀심청상은 과천의과대 부속 길병원과 가천문화재단 이사장 이길녀 박사가 1999년 9월 옹진군에 기증했다. 심청각 1층엔 심청이 스토리를 보여주는 전시관과 관련연극,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관도 있다. 심청전 모형, 사진, 책, 자료도 있다. 2층엔 심청 고향인 백령도 소개 자료와 상징물들이 있다. 백령도 모형지도, 인당수를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준비돼있어 여행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백령도엔 ‘심청전’ 배경무대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심청이 몸을 던진 두무진 앞 인당수,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바위, 연화리마을이 있다. 인당수는 백령도와 북한 장산곶 사이로 두무진에서 15km쯤 떨어져 있다. 남북분단 전엔 어부들이 이곳은 물살이 세고 험해 늘 조심했다.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 연봉바위는 봉우리가 2개로 위에서 보면 연꽃모양이다. 연화리마을엔 연꽃이 많이 핀다는 ‘연당蓮塘’이란 긴 연못이 있다. 연지동으로 불린 그곳 지명은 연지리로 바뀌었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주민들 사이엔 ‘심청전설’이 전해져온다. 1950년 6·25전쟁 때 남으로 온 사람들 말에 따르면 이 전설은 황해도 옹진, 장연지역에서도 전해져왔다고 한다. ‘심청전’은 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것으로 황해도에서 전해져오다 백령도에까지 내려왔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정확한 고증으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심청전의 배경설화,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결과 ‘심청전’ 배경무대가 백령도란 사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견해다. 옹진군은 매년 5월 ‘심청 효행학생 글짓기·그림그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대회의 작품주제는 효행, 효녀심청, 화목한 가정 등이다.

심청이 뛰어든 바다로 알려진 부안군 위도 연안
심청이 뛰어든 바다로 알려진 부안군 위도 연안

심청, 286년 곡성 태생…인당수는 위도 부근
곡성도 가만있지 않고 있다. 노래와 소설의 주인공 심청이 곡성출신으로 홍장(심청)이란 아가씨와 눈먼 아버지 얘기가 ‘심청전’이란 주장을 펴며 해마다 ‘심청축제’를 열고 있다. 역사적 근거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심청은 286년(고이왕 말년) 백제 땅 곡나(곡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286~291년) 아버지 등에 업혀 젖동냥으로 자란 심청은 292~301년 장님인 부친을 극진히 봉양, 마을사람들 칭송이 자자했다. 멀리 중국에까지 효심이 알려질 정도였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16세. 그는 301년 중국 회계국(지금의 절강성 보타구 일대)의 국제상인이었던 심국공 아내로 팔려간다. 관음사적기엔 서진 혜제의 황후가 되기 위해 중국사신에 의해 초빙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상황이 아니다. 중국 제후국의 왕이었던 심국공 부하가 심청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황후로 모셔간다’는 이야기로 꾸몄다는 것이다. 312년 중국 회계국 심국공의 아내인 성비가 돼 고국에 관음성상을 보내온다. 옥과의 성덕처녀에 의해 지금의 성덕산 기슭에 불상이 모셔지고 관음사가 창건됐다. ‘심청전’ 판본에도 남군 땅(남쪽에 있는 땅), 남섬 주부(섬진강이 있는 남쪽 마을)로 돼있다. 연구팀과 지역향토사학가들은 심청의 출생지가 곡성군 일대라고 주장한다. KBS1-TV 역사스페셜(심청의 바닷길)도 이를 뒷받침했다.

관음사 사적기엔 심청이름이 ‘원홍장’, 그의 부친은 원량으로 돼있다. 그러나 작품에선 부친이 심현, 심학규, 심학구, 심학귀, 심학효, 심평귀, 심확구로 나오고 모친은 정씨, 곽씨, 양씨 부인 등으로 나타난다.
심청이 뛰어든 바다는 부안군 위도면 위도부근이란 주장도 있다. 섬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해 고슴도치 위蝟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위도라 불린다.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에서 14km지점에 있는 위도는 해안선이 36km로 전북에서 가장 큰 섬이다. 본섬 주변엔 5개의 유인도와 16개의 무인도가 있다.   전설의 땅 위도는 홍길동이 그리던 이상세계 ‘율도국’과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 전설이 서려있는 섬이다. 한 때 조기파시로 황금어장이었던 칠산 앞바다의 조기 전설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띠뱃놀이로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은 낙조와 절경으로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고려시대 재상 이규보와 한말 유학자 전우선생이 머물렀다는 왕등도 일대는 바다낚시터로 이름나 있다. 위도는 오래전부터 수장풍습과 중국 상인들이 많이 오갔다. 수장은 산 사람을 용왕께 받쳐 한해 무사고와 풍어를 비는 그곳만의 풍습이었다. 심청과 백일홍 등의 얘기는 위도를 무대로 꾸며졌다. 위도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자란다.
사람을 수장시키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짐승을 용왕께 받치다 나중엔 사람모양의 돌을 깎아 바닷물 속에 넣었다. 이에 격분한 용왕이 산 재물을 한꺼번에 가져갔다는 얘기가 들린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도 그래서 생겼다는 설이 나돌았다.

우리나라와 중국 절강지역과의 해양교류항로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서긍의 ‘고려도경’에 심청과 바닷길 설명도 재미있다. 중국연안 바닷물은 황사로 늘 뿌옇다. 심청은 이 길을 통해 절강성 보타도에 닿았다. 3~4세기 국제교역수단으로 쓰던 범선은 5년 전 중국 절강성 영파해안에서 배의 일부가 수습, 복원돼 남경박물관에 전시돼있다. 이 배를 타고 중국에 팔려가 황후가 된 심청이 고국에 보내왔다는 소조관음불상도 눈길을 끈다. 관음사에 있는 이 불상은 미소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처럼 ‘효녀심청’ 노래 바탕인 ‘심청전’의 본고장이 곡성이네, 백령도 근처네 하며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몇 년 전  한 방송사가 인당수의 진실을 밝힌 결과 위도로 판명 났으나 공인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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