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선주船主없이 해운업 발전 없다

 
 
우리 해운의 위기 뒷면에는 선박소유와 선박운항이 분리되지 못하고 대형선사도 소형선사도 소유와 운항을 함께 함으로써 위기가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해운업이 발전하면서 소유, 운항, 선박관리가 분화되고 그 중에서도 글로벌 대응능력을 갖춘 대형 운항사가 선박운항에 전념하고 중소형 선주사들이 선박을 공급하는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해운업의 저변이 확대되고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수행이 가능해진다. 해운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처방전의 하나로 건전한 선주업의 육성을 제시한다.

이에 선주업이 가장 발달한 두 나라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해운을 선도하는 선주로 그리스 선주, 일본의 에히메 선주, 중국 선주가 있다. 이 선주집단들은 전쟁과 세계경제의 변화에 따른 해운경기의 변동성을 극복해가면서 세계해운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일천한 중국 선주를 제외하고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에히메 선주와 그리스 선주를 비교하여 무엇이 같고 다른지 알아보고 우리나라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지역여건의 유사성
전월호에서 일본의 선주에 대하여 논의하였기에 에히메 선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스와 일본의 에히메 선주들이 처한 역사적인 유래와 지역여건에는 유사점이 많다. 에히메 선주들은 세토내해를 근거지로, 그리스 선주들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바다에서 삶을 개척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다. 토지는 척박하였고 수산자원이 풍부하지 않았기에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선주들은 고대로부터 이탈리아, 아프리카,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풍의 항구도시들을 건설하면서 해운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에히메 선주들도 12세기경부터 척박한 농토 대신에 시작한 제염업에서 생산된 소금을 일본전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해운업이 발전하였고, 임진왜란 전까지는 왜구로도 활동하면서 항해기술과 함께 해상무역도 함께 익혔다. 그 후 일본경제의 근대화와 함께 선박수리에 적합한 곳에 조선소를 만들어 지역의 고용창출을 명분으로 조선, 선주업이 지역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발전하였다.
 

가족경영에 기반을 개인주의와 화합주의
그리스 선주는 일반적으로 자본, 경영 및 가족재산이 혼재된 가족경영이 일본의 에히메 선주들과 유사하다. 그리스 선주들은 대부분, 선장, 기관장 등의 해상경력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다음, 처음에는 고철가격에 10~20%정도를 더한 가격 수준의 선박에 투자하여 중고시장에서의 선가하락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매선차익을 노리고 시장에 진입한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선주는 해운시황의 변화에 뛰어난 감을 갖고 있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기주장이 강하며 이재에 밝아서 사업에는 상부상조의 의식보다는 상대방에게는 계약대로 납기, 지불이행을 요구하지만 자기는 계약을 지키지 않거나 계약문면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실제 교섭시에 최초 가격을 과다하게 높게 제시하고 최종적으로 높은 선에서 결정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일본해운계의 그리스 선주에 대한 인식이다.

에히메 선주들도 가족경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리스 선주와 달리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 거의 없다. 또 사업 시작을 대부분 화주와 장기계약을 맺고 있는 대형운항사와 장기용선계약을 맺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조선소에서 지역은행의 지원을 받아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주의보다는 지역내에서 서로 협력하는 화합주의의 성향이 강하다.
 

선박관리 및 운항능력
그리스 선주의 강점은 실제 승선경험에서 오는 선박관리능력, 선박운항능력을 갖고 있고, 해운경기 여하에 따라서는 자사에서 집화하여 운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에히메 선주들은 운항사-선주사-선박관리회사로 분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선주사의 선박관리능력이 상대적으로 낮고 선박운항에 대한 당사자 의식이 그리스선주보다는 낮다는 지적도 있다.
선박관리의 경우, 그리스 선주는 전통적으로 선주 자신이 행하였지만 의사결정이 복잡해지는 현대해운기업의 흐름을 2000년대초반부터 독립된 선박관리전문기업에 위탁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리스 선주가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갖고 있지만 역시 가장 최대의 강점은 선박의 고품질 운항에 있다고 일본해운계에서는 보고 있다. 물론 에히메 선주도 선박관리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외부의 전문선박관리회사와의 교섭력이란 측면에서 그리스 선주보다는 낮다는 견해가 많다.
 

단기수익과 안정경영
에히메 선주들은 금융기관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장기용선계약이 딸린 신조 안건을 선호하는데 비하여 그리스 선주들은 현금 보유량이 많기 때문에 전문 브로커의 협력을 받아 단기간에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중고선에 투자하여 단기용선을 활용하면서 이윤창출을 노리는 투자형태가 많다. 따라서 그리스 선주들이 용선자와 관계 강화, 정기선부문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은데 반하여 에히메 선주들은 용선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중요시하고 운항사의 요구가 있으면 정기선이나 특수선에도 투자한다.

2003년 이후의 해운 호황시에 에히메 선주와 그리스 선주의 이러한 전략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에히메 선주들이 절세 목적으로 Purchase Option을 활용하여 중고선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반면에 그리스 선주들은 수익 향상을 노리고 윤택한 현금 보유액을 활용하여 중고선 투자를 하였다. 에히메 선주는 상속세 등의 세금부담을 낮추려고 선박 매입을 늘린 결과, 자본축적이 그리스 선주보다는 적었고 재무제표 상으로는 채무초과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반하여 그리스 선주는 본국을 탈출하여 세제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제삼국을 영업거점으로 삼고 나아가 주식공개를 통하여 자본을 모집, 보다 대형투자를 도모하기도 한다.
 

기업공개와 비공개
에히메 선주는 일반적으로 장기안정 지향적이고 타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불리한 일본의 세제 때문에 저수준의 자기자금, 지역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간접금융에 대한 의존(주식공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님)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금융기관, 특히 에히메현의 지방은행이 지역산업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큰 조선업의 보호 육성을 목적으로 지역 선주에게 대출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이에 반하여 선주의 수가 1,000개를 넘는 그리스에서 규모가 큰 선주 가운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경향도 일부는 진전되고 있는데, 로버트 라이트는 이를 The half-public half-private model이라고 하였다. 즉, 일부 그리스선주는 자본과 경영의 분리를 지향하며 보다 큰 투자를 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쉽게 접근 가능한 주식공개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증시에 상장된 Navios Maritime Holdings가 있다. 2001년 이후 뉴욕증시에 상장된 해운관련 주식의 반수 이상이 그리스 선주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리스 선주의 주식시장 활용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
에히메 선주는 선대로부터 이어온 노하우를 갖고 이마바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해사클러스터에서 화주, 조선소, 운항사와 협력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에히메 선주는 선주사-운항사-화주-조선소-지역은행이 결합한 지역해사클러스터 기반 비즈니스모델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 선주는 국내에 조선-해운-금융으로 이어지는 해사클러스터가 구축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국내 화주산업의 부재로 해외시장밖에 없다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스  선주들은 뛰어난 시황감각, 폭넓은 정보원, 선박관리와 운항에 관한 높은 전문성 등을 활용한 비즈니스, 즉 Knowledge Gap을 활용하여 돈을 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 선주는 해외기업과의 거래에서 지식 격차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기업과의 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에히메 선주와는 비즈니스 모델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사점
에히메 선주를 비롯한 일본 선주들은 타인과의 협조, 상호 의존, 이타적인 도덕관의 바탕 위에서 장기적 관계, 지속적인 노력, 안정을 중시하는데 반하여 그리스 선주들은 자립,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도덕관의 바탕 위에서 차별화, 경쟁적, 단기수익을 중시하고 있다. 그럼 일본 모델도 아니고 그리스 모델도 아닌 한국 모델이 가능할까? 우리가 일본과 다른 점은 지역은행의 강력한 협력도 없고 조선과 해운업의 동시발전에 대한 노력도 없다. 화주는 국내 선사와의 협력보다는 단기 운임차익을 노리고 외국 기업과의 거래도 불사하지 않는다. 또 해운업계 내부에서도 대형선사는 선박 소유와 운항을 분리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기 통제하에 두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 일본형 모델을 모방하기 어렵게 한다. 한편 그리스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그리스보다 훨씬 물동량이 많은 국내 시장을 갖고 있으며 조선, 해운, 항만 등의 해사클러스터가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그리스에 비하여 해운업에 대한 사회적 지위도 낮으며 해외의 고급정보 네트워크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선주는 해운산업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가 해운경기에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건전한 선주업을 육성해야만 한다. 이를 통하여 대형 운항사는 자기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선복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만들 수 있고 보다 폭넓고 다양한 선종에 대한 진출이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문화적인 유사성이 많은 일본선주가 해사클러스터내의 협력구조 구축을 통하여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한 것처럼 대형 운항선사와 선주사 간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그리스 선주와 같은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가면서 선주업의 발전을 이루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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