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 취소 등 직접 피해는 없지만...
선박금융시장 경색, 발주 감소 가능성에 ‘촉각’

 

 
 
그리스 사태 여파에 대해 국내 조선업계는 일단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스 선주들이 해외 은행을 이용하고 있고, 편의치적 등을 통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유럽은행들이 그리스 선박금융 포트폴리오를 축소·매각하는 등 유럽 선박금융 시장 축소가 나타나고, 장기적으로 유럽전체의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리 조선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경제산업계의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그리스 선주들이 최대 고객사로 있는 조선업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우리 조선업계의 전체 수주 물량 가운데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정도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며, 한국-그리스 수출물량의 86%가 선박이 차지하는 등 조선업계에 미칠 파장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또한 최근 3년간 전세계에서 나타난 상선 발주 현황을 보면, 발주된 상선 중 10%가 그리스 선주 몫으로 단일 국가로는 최대 물량에 해당한다. 전세계 선박 중 그리스 보유선박 비중은 17%에 달하며, EU지역 해운운송능력의 47%를 그리스가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인해 일각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리스 시장과 연결돼 있는 국내 조선업체들이 이번 그리스 사태로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까지 수주가뭄에 허덕이던 우리 조선업체들이 올 상반기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 등으로 모처럼 계약을 따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 사태가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국내 조선업계 수주물량 중 그리스 비중 20%
“직접영향 크지 않다” 그리스 사태 이후에도 선박 발주 이어져...
그러나 조선업계와 연구자들은 그리스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리스 선주들이 대부분 선박 파이낸싱을 자국 은행이 아닌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국가의 선박금융 전문기관을 통해 조달하고 있고, 현금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만일의 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 선사들이 파나마 등 해외에 편의치적을 하고 있어 생각만큼 그리스 경제위기로 인한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대다수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우려하고 있는 그리스 선주 발주분 취소나 선박수주 축소 등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실제로 그리스 경제 위기에 빨간불이 들어왔던 올 초부터 지금까지도 그리스 선주들은 선박 발주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그리스 찬드리스社로부터 17만 3,400cbm급 천연가스추진 선박 1척을 수주했다. 동 수주는 지난해 체결된 계약의 옵션분 발표로 찬드리스社는 회사 최초의 천연가스 추진 LNG선 건조를 대우조선에 맡겼고, 7개월여만에 추가 옵션 조항 발효를 결정했다. 특히 동 선박은 천연가스를 주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차세대 LNG선으로, ME-GI 엔진이 탑재되는 등 선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대우조선측의 설명이다. 또한 다른 그리스 선주인 트레이드앤트랜스포트(Trade & Transport)社는 중국 조선소에 제품운반선 10척을 신조 발주한 것으로 전해지는 등 그리스 선주의 신조발주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지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사태로 유럽의 금융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발생함을 가정하지 않는 이상, 조선소의 기존 수주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對그리스 최대 선박금융 제공은행 RBS “그리스 선박금융사업 매각 계획”
영국 Lloyds 은행도 지난해 선박금융사업 일부 매각... 유럽은행 선박금융 축소 이어져
이처럼 그리스 사태가 조선업에 미칠 직접적인 악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와 연구자의 중론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분명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리스 사태가 유럽 경제에 미칠 파장이다. 그리스 디폴트를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이 은행 규제를 강화하면, 자금조달에 압박을 느낀 유럽 선사들이 신규 발주를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 수주분의 60%는 덴마크, 프랑스, 노르웨이 등 서유럽 선주들이며, 세계 선박금융 시장의 전통적 강자들이 유럽 은행들이기 때문에 그리스 사태의 파장이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경우 우리 해운·조선업계의 미칠 영향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직접적인 영향이 제한적이라고는 하지만 악재는 분명 악재”라면서, “초대형컨선과 에코십 발주 등으로 선주들이 발주량이 점차 회복되가는 시점에서 그리스발 유럽 경제위기는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전세계 선박금융을 이끌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선박금융 축소는 현실화되고 있다. 7월 11일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Royal Bank of Scotland)는 50억달러에 해당하는 해운산업 론 포트폴리오를 비핵심사업으로 분류하고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RBS는 수십년 넘게 그리스 선주의 최대 선박금융처로 활약해 왔으나 이번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그리스와의 거래를 차츰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한 RBS 측근은 “RBS는 점차 그리스에서의 활동을 줄여나갈 것이며, 해운사업은 늦어도 올해 12월까지는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외신을 통해 밝혔다.


한편 영국의 Lloyds Banking Group도 지난해 4월 보유중인 선박금융 포트폴리오에서 5억달러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럽은행의 선박금융 사업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유럽은행 관계자는 “수십년 넘게 최고의 고객이었던 선박금융 시장의 리더(그리스)가 더이상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선박금융산업 전체적으로 우울한 상황”이라고 외신을 통해 밝혔다.


문제는 그리스 디폴트 영향이 유로존이나 미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은 우리나라와 그리스가 연결된 바가 크지 않기 때문에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그리스 디폴트 영향이 유럽은 물론 국제금융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조선업계의 최대 고객인 유럽 선주들과 은행들이 중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 해운조선업계의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여구원은 “그리스 사태로 회복 신호를 보이던 유럽경제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어, 대 유럽 수출이 줄어든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아시아-유럽간 물량 감소는 컨테이너 선사들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져 해운업황의 침체는 물론 나아가 조선업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금융사 그리스 익스포저 총 12억불 모두 ‘선박금융’,

그리스 현지진출 국내 조선사 정상영업 불가, 기자재업계도 ‘노심초사’
한편 그리스 사태에 노출된 우리나라 금융사의 자금은 총 12억달러로 대출액 전체가 모두 수출입은행의 선박금융 대출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3월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그리스 외화 익스포저Exposure 잔액은 11억 8,000만달러(1조 3,284억원)로 전체 익스포저의 1.3% 규모이다. 익스포저는 외화대출금과 유가증권, 지급보증을 합친 금액으로 거래대상의 신용도 하락이나 디폴트 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 위험에 노출된 금액을 의미한다. 다만 대출금이 모두 선박금융 대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분석이다. 그리스 해운사가 원리금 상환을 제대로 못하면 수은이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금융 경색에 더해 그리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조선업계 지사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그리스내 금융통제가 시작되면서 해외 송금이 금지되는 등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힘든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우리나라 조선업체 7개사가 그리스에 지사를 두고 있다. 현재 해외송금 제한과 인출 제한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임차료와 직원급여 등은 은행송금을 통해 납부하고 있으나 현금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을 받고 있다. 이에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힘든 상황이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사무실 유지 등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국내 조선기자재업계도 그리스 사태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선업계 불황이 지속되며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최근 상선 발주 확대로 조금씩 활력을 찾아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또 다시 악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피부로 와닿는 것은 없으나 상선 발주감소 예측이 나오는 만큼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