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택 IMO 사무총장 
7월 콤파스의 화제는 온통 유엔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당선자 임기택 씨에 관한 얘기였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품격을 높인 쾌거라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침체된 우리 해운계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낭보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날 콤파스에서 이 일을 위해 애쓴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이윤재 회장이 박수를 받았다. 이날만큼은 콤파스회원뿐 아니라 해운인 모두가 승자였다. 마치 내일처럼 모두들 기뻐했다. 사무총장 당선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들이 많았지만, 특히 행정부처인 해양수산부와 외교부의 후원 및 전방위 외교가 큰 힘을 발휘하였다. 이렇듯 범정부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임기택 당선자가 해운항만청과 해양수산부의 직원 출신이라는 것도 한몫 했다.

이는 당시 민병권 교통부장관의 지시에 의해 강창성 해운항만청장이 단행한 해양대학 출신의 사무관 특채와 연관되는데, 해운은 특수분야이기에 이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민 장관에게 진언하여 성사시킨 한국해사문제연구소 박현규 이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때 특채된 사람 중에 임기택 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후 그는 해운항만청과 해양수산부에서 해운정책과장, 해사안전정책관, 해양안전심판원장 등을 역임하며 해운행정을 다루었고, IMO 파견관과 주영대사관 참사관이 되어 IMO 업무를 익히는 한편, 세계해사대학WMU에서 공부하여 외국의 관련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과 경력이 초반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역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완벽하게 준비된 사무총장 후보라고 박 대통령이 극찬한 임기택 당선자는 전문지식, 행정능력에다가 성실성과 친화력까지 갖추어 국제기구 수장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쪼록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듯 준비된 사무총장 뿐 아니라 성공한 IMO 사무총장으로 후대에 기억되길 바란다.

콤파스 강사로 해사변론인협회 허용범 이사장이 나와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분석’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그동안 너무 힘들어 세월호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되었으나 마무리 짓는다는 뜻에서 시행하였다. 허 이사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 출신으로 ‘선체운동(Ship Maneuvering Simulation)’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대형선(VLCC)의 항해사와 선장을 거쳐 해양수산연수원에서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으로 16년간 800여건의 해난사고에 대한 원인분석을 하였다. 초대형사건인 VLCC 시프린스호 좌초사건, 골든로즈호 충돌사건, 허베이스피릿호 충돌사고 및 오염사고 등, 우리나라 대형 해난사고 중에 그가 다루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현재 한국도선사협회 기술고문과 한국도선안전교육연구센터장으로 도선사고 예방교육 및 도선사협회의 선박조종시뮬레이터 개발 및 총괄하고 있는데, 여객선 세월호 검경합동수사본부 민간자문단장직도 맡아 해양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을 집단 트라우마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들을 포함한 많은 승객들이 삽시간에 참변을 당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온 국민들이 시청하였으니 황당함과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에 대한 민관합동의 진상조사와 분석이 이루어졌는데, 사고의 규모와 국민적 충격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향후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해기적인 조사와 과학적인 분석은 필요하다. 사고가 난지 벌써 1년 3개월이 지났고, 그동안 세월호 사고에 대한 많은 발표도 있었으나 해운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인 설명은 미흡하여 해사전문가인 허 이사장을 초청하였다. 사안이 민감하고 상고심도 남아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이미 발표되었기에 이날 발표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지면상 제약도 있어 사고의 개요, 항적 검토와 원인분석만을 다루고 복원성과 운항상태 분석, 선박조종 및 침수 침몰 시뮬레이션, 인적요인 검토와 결론 부분은 소결을 게재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1. 사고의 개요
세월호의 명세와 운항상태를 살펴보면, 세월호는 총톤수 6,825톤이고 길이 폭 깊이가 각각 136미터 22미터 14미터이며, 출력 9,000PS의 주기관 2기를 설치한 대형 여객선으로 인천항과 제주항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해 왔다. 1994년 4월 1일 일본 하야시가네조선소에서 총톤수 5,997톤으로 건조되었으나 1개월 후 6,586톤으로 증톤하였다. 그후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 22일 우리나라로 도입한 후 B갑판의 선미부분을 철거하고 A갑판의 선미부에 객실을 신설하였고, 선수부 우현측 중량 약 40톤의 차량 진입문car ramp을 철거하는 등의 수리와 증축공사를 하였다. 이와 같은 증축공사로 인해 총톤수가 239톤, 탑승인원은 116명 각각 늘어났다. 이렇듯 중량의 수직분포가 상승됨에 따라 선체의 무게중심이 약 51센티미터 상승하였고, 그로 인해 복원성이 약화되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증축 전보다 적재가능 화물을 1,450톤 줄이고 대신에 평형수를 1,333톤 늘릴 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총 1,077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의 여러 진술들을 종합해 보면, 세월호 소유자 청해진해운은 운항채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평소 1,077톤보다 많은 양의 화물을 적재하고 운항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운항형태로 인하여 세월호의 복원성에 문제가 발생하였고, 선장은 항해사와 조타수들에게 평소 세월호의 복원성이 극히 불량하므로 전속항해중 5도 이상의 조타를 하지 말도록 지시하여 항해사와 조타수 등 모든 항해당직자들은 이를 숙지하고 있었다.
 

2. 사고경위
세월호는 2014년 4월 15일 18시30분 인천항 연안여객선터미널을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당시에 시계가 악화되어 출항이 지연되다가 같은 날 21시경 시계가 호전되어 예정 보다 2시간 반 뒤에야 제주항을 출항할 수 있었다. 제주항에 이르는 이 선박의 항로는 맹골수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대체적으로 큰 굴곡이 없는 남진항로로서 208도-215도-206도-190도-187도 등 비교적 소각도 변침만을 하여 비록 전속항해 중일지라도 5도 내외의 소각도 조타만으로도 변침을 하면서 항해가 가능했다. 한편, 이 사고 당시의 당직 조타수는 인천항 출항 후 선장의 선교지휘 아래 항내통항 중 선장의 조타명령을 받도록 조타를 담당한 적이 있었으나 선수 방향이 약 10도 이상 돌아가면서 선박이 항로를 이탈할 정도로 조타에 미숙하여 선장으로부터 엄중한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만일 사고 전날 인천출항이 시계악화로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조류가 강한 맹골수도를 평소처럼 항해에 숙련된 1등항해사의 당직 중에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인천항에서의 안개로 항해일정이 늦어져 맹골수도 통항 경험이 전혀 없는 3등 항해사가 조타술이 미숙한 조타수와 함께 맹골수도를 통과하게 되었다.  

세월호는 4월 16일 8시32분경 맹골수도 북측 입구에 도달해 진침로 133도와 속력 약 19.4노트로 좁은 수로에 진입하였다. 이후 세월호는 맹골수도 남쪽 입구의 병풍도 변침점을 목표로 전속 항주하였으며, 3등항해사는 평소 세월호의 복원성이 불량하므로 대각도 조타할 경우 선체가 경사하여 복원되기 어려우니 변침시에는 조타각을 5도 이내의 소각도로 사용하라는 선장의 지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3등항해사는 병풍도 변침점에서 제주항을 향하여 우현측으로 일시에 변침하기보다 미리 소각도씩 나누어 변침하기 위하여 8시45분경에 135도로, 8시46분경에는 140도로 각각 우현 5도 변침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조타수는 타각 5도 정도를 사용하여 자신의 재량으로 이상 없이 변침하였다. 위와 같이 2회의 소각도 변침 약 2분 후인 8시48분38초경 병풍도 변침점에 이르러 3등항해사는 앞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조타수에게 일임하여 145도로 우현변침할 것을 명령하였다.

당직 조타수가 처음에는 전처럼 약 우현 5도의 타각으로 우현 변침을 시도하였으나 선회가 잘되지 않자 최소 15도 이상으로 추정되는 큰 각도로 조타하였고, 이로 인해 선수방향이 우현으로 선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수는 예정침로 145도를 넘어 150도까지 지났고 급기야 우현 최대타각인 35도까지 사용한 것과 동일하게 예상보다 큰 각속도로 선회하였다. 이러한 빠른 우선회와 복원성 부족으로 인해 세월호 선체는 크게 좌현으로 기울었고, 이와 동시에 경사진 갑판상에 부실하게 고박된 상태로 실려 있던 화물들이 좌현쪽으로 쏠리면서 선체는 8시49분40초경 좌현측으로 약 30도 대각도로 급경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선교 조타실에 있던 기관장은 선체가 좌현 급경사한 후, 조타실에서 원격조종장치로 양측 주기관을 정지시키고자 하였으나 경황이 없어 좌현측은 완전히 정지시키지 못했지만 곧 이를 발견하여 이마저 모두 정지시켰다. 이 당시 선장은 선체가 급경사된 후 조타실 후부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 선교로 왔다. 이후 세월호 선체는 서서히 우선회를 계속하면서 감속되어 8시52분경 전진을 멈추고 선수를 진방위 245도의 병풍도 쪽으로 향한 채 약 2노트의 속력으로 진방위 약 004도 방향으로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세월호는 좌현으로 대각도 경사되면서 도선사 출입문과 선미 램프가 설치된 D갑판의 좌현측 갑판선이 수면 아래로 잠긴 후 9시35분경 약 53도, 9시54분경 약 64도 등으로 좌현경사가 계속 심화되었다. 선장은 선체의 대각도 좌현경사가 발생한 직후 조타실에 나타나 승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선실 내에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만 하였을 뿐 퇴선준비 명령 또는 퇴선명령을 발하는 것과 같은 인명구조를 위한 비상조치를 전혀 하지 않고 승객들을 선내에 넘겨놓은 채, 조타실에 모인 항해사 등 선원들과 함께 해경의 구조정을 타고 먼저 퇴선하였다. 이 사고로 인해 2014년 7월 30일 현재 사망 294명, 실종 10명이 발생하였고, 선체는 수심 약 40미터의 맹골수도 해저에 침몰하였다.
 

3. 항적의 검토와 원인분석
세월호 사고는 제주항을 향하는 맹골수도 통과가 끝나는 병풍도 북동쪽 해상의 변침점에서 발생하였고, 사고 초기에 발표된 해양수산부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항적도에 따르면, 세월호의 항적이 필요 이상으로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급격히 대각도 우선회하는 상태를 보였다. 이러한 사고장소와 항적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사고과정을 연쇄적 단계의 인과관계에 의해 발생되는 형태를 가설하였고, 이 인과관계를 단계별로 입증하는 방식으로 사고원인을 아래와 같이 분석하였다. 첫째 변침점에서의 대각도 선회, 둘째 초기횡경사 발생, 셋째 침수 및 화물이동에 의한 횡경사 심화, 넷째 전복후 부력상실로 인한 침몰이다. 즉 여객선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전속으로 통항 중에 수도 남단 부근의 병풍도 북동쪽 해상에서 제주항을 향해 우변침하다가 대각도 우선회와 좌현 급경사를 일으켰다. 이러한 사실은 AIS 신호정보의 선체운동 정보, 이에 의한 항적, 해상운송시 운전자료의 조종성능, 승무원 7명(선장, 항해사 3명, 조타수 2명, 기관장)의 진술 등의 자료에 선체운동이론을 적용하여 종합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원인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AIS 신호정보에 의한 사고시의 선체운동 분석결과를 보면, 2~9번 위치까지 선회각속도가 서서히 증가하다가 10~13번 위치에서 갑자기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이상 현상이 발견된다. 10번 위치에서 선회각속도가 8번의 2에서 15로 급상승하고 12번에선 -11로 급상하 하는 것을 볼 때 사고시각이 10번 위치인 08시 49분40초인 것을 알 수 있고, 이때부터 약 8초 동안 선회속도가 우현, 좌현, 우현측의 순서로 급변하였다. 그리고 선체가 전복된 후의 선체 외판에 손상이 없는 것이 확인되었고, 당시 충돌위험이 있는 주변통항선이 없고 항행에 충분한 수심이 확보된 점 등으로 볼 때 충돌이나 좌초 등에 의한 충격으로 순간적인 급선회가 발생할 수는 없으므로, 10번 위치에서 갑자기 초고속 우선회가 발생한 원인은 외부충격이 아니라 내부요인 즉 좌우추진기의 추력 불균형 또는 선수방위를 표시하는 자이로컴파스의 이상현상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동안 논란이 일던 사고당일의 AIS신호의 일부 소실 문제는, 기지국에서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으로 동시에 최대 2,000여척의 선박에서 보낸 AIS 신호를 수신하여 각 선박별 고유 저장장소slot에 저장함으로써 수신장치에 통신 과부하가 발생하여 어떤 신호는 슬롯 할당 오류 같은 비정상 수신이 발생하거나 아예 수신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AIS 자체의 시스템상 오류일 뿐 이 사고의 원인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등 모든 선원들의 진술은 이 사고가 대각도 우현 조타에 기인된 것이라는데 일치하여, 당직 조타수의 조타미숙으로 인한 대각도 조타에 의한 최초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복된 선체의 사진을 검토한 결과, 키는 최종적으로 중립상태(0도)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최초 사고발생(급선회 및 선체경사)후 누군가 인위적으로 키를 중립위치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는 것인데, 3등항해사는 “사고후 조타수가 조타륜을 감싸 안고 있어 그때 0도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술한 점과, 기관장이 “사고후 조타수가 큰 덩치로 조타륜을 감싸 안고 있었다”는 등의 발언으로 보아 대각도 경사후 당직 조타수가 0도로 복귀시켰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사고후 키를 인위적으로 중립으로 되돌려 놓았을지라도 이 또한 세월호가 대각도 조타로 우선회 중 복원성이 불량한 선체가 원심력에 의해 좌현 급경사를 일으켰고, 선체경사가 화물이동으로 이어져 경사가 가중되어 침수 침몰되었다는 사고발생 경위와 원인분석 결과는 바뀔 수가 없기에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당직 조타수가 전속항해 중 복원성이 극히 불량한 세월호를 조타미숙으로 대각도 조타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선체 급경사가 화물이동을 초래하자, 이것이 다시 선체의 초기경사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둘째, 이러한 결론은 복원성 불량에 대한 검토와 시뮬레이션에 의한 검증과정에서 입증되었다. 
 

4. 복원성 및 운항상태 분석
결론적으로 세월호는 선체개조 후 악화된 GM값(-0.09m→-0.559m)을 보전하기 위하여 많은 평형수의 적재 및 적은 화물의 적재상태로 선박복원성 검사를 통과한 다음, 출항 당시에는 해양수산부가 정한 여객선의 복원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허가조건으로 명시한 화물적재량 및 평형수 적재조건 등을 위반하여 화물을 과다적재하고 평형수를 과소적재함으로써 복원성 기준에  미달된 상태로 항해를 하였다. 즉, 청해진해운은 감항능력이 없는 선박을 운항해온 것이다. 그와 같이 복원성이 불량한 상태에서 항해하던 중 사고발생 지점에서 조타미숙 등으로 선체가 급격히 선회하면서 과도한 횡경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횡경사가 화물고박 불량에 의해 갑판에 적재한 컨테이너 등의 횡이동을 초래하여 횡경사를 더욱 심화시켰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세월호는 선체개조 및 출항 당시 화물적재 불량으로 인해 복원성이 부족하였고, 선체가 횡경사가 되었을 때 이 횡경사로부터 선체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복원력도 부족하여 침수와 전복 및 침몰에 이르는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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