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서 해방 맞아 배 타고 돌아오는 동포 모습 담아

취입가수는 신세영…이인권이 6·25전쟁 중 재취입 히트
1947년 발표된 가요로 조국광복 기쁨, 감격 노래한 희망가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부모형제 찾아서
몇 번을 울었든가 타국살이에
몇 번을 불렀든가 고향노래를
칠성별아 빛나라 달빛도 흘러라
귀국선 고동소리 건설은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백의동포 찾아서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 해방을
얼마나 싸웠던가 우리 독립을
흰 구름아 날아라 바람아 불어라
귀국선 파도 위에 새 날은 크다
 

해방 후 부산항으로 입항하고 있는 귀국선
해방 후 부산항으로 입항하고 있는 귀국선

임시공휴일이었던 지난 8월 14일 부산 앞바다엔 ‘해방귀국선’이 떠 눈길을 모았다. 1300t급 해군수송선인 ‘해방귀국선’엔 허름한 옷차림에 봇짐을 진 귀국동포 250여명이 타고 있었다. 부두엔 태극기를 든 환영인파들이 배가 닿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5시 ‘해방귀국선’은 귀국동포들의 ‘해방의 노래’ ‘아리랑’ 합창과 함께 자갈치시장 부두에 닻을 내렸다.

부산시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부산 남항, 자갈치시장 부두, 광복로 일대에서 ‘감격의 그날, 1945년 해방귀국선 재현 환영행사’를 연 것이다. 일제에 끌려간 조선인들이 광복직후 해방의 기쁨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감격적 순간을 3000여 시민들이 참여해 70년 만에 되살려 매스컴을 탔다. 부둣가에선 부부, 홀어머니와 아들, 형제, 자매, 연인의 만남 등 눈물겨웠던 상봉장면을 펼쳐 해방의 감격을 되살렸다. 광복 때 귀국선에 탔다가 의문의 폭침사고를 당한 우키시마浮島호 희생자들 추모제도 곁들여졌다. 영도대교 아래선 위안부 피해할머니를 위로하고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해원상생 대동 한마당’도 열렸다.
 

부산에서 열린 해방귀국선 환영 재현행사 모습
부산에서 열린 해방귀국선 환영 재현행사 모습

지난 8월 14일 부산항에서 ‘해방귀국선 재현 환영행사’
올 광복절은 어느 해와 달리 의미 있는 국경일로 갖가지 행사와 이벤트들이 전국에서 열렸다. 광복절 때면 떠오르는 추억의 노래가 있다. 바로 ‘귀국선歸國船’이란 전통가요다. 
‘귀국선’은 손로원 작사, 이재호(본명 이삼동) 작곡, 이인권 노래로 1949년 발표됐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이 곡은 전형적인 트로트로 밝은 느낌을 주는 희망가이기도 하다. 일본, 중국, 대만 또는 먼 남쪽 나라에서 돌아오는 우리 동포들의 감격과 기대가 멜로디에 녹아있다. 교통편이 여의찮았던 그 시절 몇 달이고 기다려 배를 타고 돌아온 동포들의 힘들었던 삶의 애환과 해방조국에 대한 다짐도 묻어난다. 징용, 징병 등으로 죽음 직전의 힘든 생활을 해오던 동포들이 그렇게도 그렸던 부모형제와 조국을 찾아 잘 살아보겠다는 꿈과 바람도 노랫말의 행간에 스며있다.  

노랫말은 당시 35살의 젊은 작사자 손로원이 부산항에서 해방을 맞아 일제강점기 때 먼 나라에 나가살았던 동포들이 타고 오는 배를 보고 만들었다. 4분의 2박자, 내림나장조인 이 노래는 트로트리듬에 형식이 무시된 28마디의 곡이다. 가사는 모두 3절까지로 돼있다. 노래를 들으면 찡하면서도 뭔가 느껴지는 뭉클함을 발견할 수 있다. 3절까지 부르다 보면 가슴 깊이 우러나는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싹튼다. 노래제목의 귀국선은 나라 잃고 외국에서 노동자, 밀항자, 일용직, 장사꾼으로 떠돌다 타고 온 배를 말한다.
‘귀국선’을 맨 처음 취입한 가수는 신세영(본명 정정수)이다. 당초 이인권이 부르기로 돼 있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다. 1947년 9월 선보인 음반은 재미를 보지 못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광복의 축하분위기를 타고 열린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파고들었다.

그 뒤 중국 상해에서 돌아온 이인권(1919~1973년)이 6·25전쟁 때인 1951~1952년 대구(오리엔트레코드)에서 다시 취입, 흥행에 성공해 히트했다. 그 전까지 흔히 있었던 일본식 가요(엔가)와는 아주 다른 선율로 개성이 뚜렷한 ‘광복가요’의 인상을 준 게 돋보인다. ‘귀국선’은 이미자, 나훈아, 설운도, 김용임, 김연자 등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불렀을 만큼 유명해졌다.
 

귀국선을 취입한 가수 이인권
귀국선을 취입한 가수 이인권
손로원, ‘귀국선’ 노랫말 쓰면서 본격 작사활동
손로원은 ‘귀국선’ 노랫말을 만들면서 작사가로 본격 나서 도미의 ‘휘바람 불며’, 박재홍의 ‘물방아 도는 내력’, 허민의 ‘백마강’, 백야성의 ‘잘 있거라 부산항’, 금사향의 ‘홍콩아가씨’·‘님 계신 전선’,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등 6·25전쟁 전후로 주옥같은 곡들의 가사를 썼다.
이재호는 1938년부터 작곡 일을 해오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손로원이 지은 노랫말을 바탕으로 ‘귀국선’ 곡을 만들었다. 진주출신인 그는 일본고등음악학교 본과(바이올린) 2학년을 수료하고 폐결핵이 악화돼 고향에서 휴양 중 태평레코드사에 관계하는 친구소개로 가요작곡을 하게 됐다. 1945년 광복 후 진주에서 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했고 1949년 이후 대구와 부산에서 ‘귀국선’, ‘아네모네 탄식’을 발표했다. 6·25전쟁 중엔 KBS부산방송국 전속 악단장으로 취임했다. 1956년 지병이 재발, 마산요양원에서 휴양하면서 ‘산장의 여인’을 작곡해 권혜경에게, ‘울어라 기타줄’을 영화녹음기사였던 손인호에게 취입시켜 히트했다. 가곡으로 작곡했던 ‘고향에 찾아와도’를 내놨고 인기가수 남인수에게 ‘무정열차’, ‘산유화’ 등을 취입곡으로 줬다. 4·19혁명 직후 지병이 악화돼 미발표곡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재호가 작곡가로 데뷔하던 때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했던 이인권은 ‘귀국선’을 불러 인기가수가 돼 샛별로 떴다. 무명가수였던 그는 ‘귀국선’으로 단숨에 알아주는 가수가 된 것이다. 우리들 삶은 호사다마라 했던가. 잘 나갔던 이인권은 6·25전쟁 중 가수였던 아내를 잃었다. 부부가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군 위문공연을 갔다가 아내가 포탄에 맞아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이인권은 이를 계기로 노래는 뒤로 하고 작곡에 더 힘썼다. 현인의 ‘꿈이어 다시 한 번’, 송민도의 ‘카츄샤의 노래’, 최무룡의 ‘외나무다리’, 이미자의 ‘들국화’,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나훈아의 ‘후회’ 등 많은 곡을 만들었다.

‘귀국선’ 노래가 히트하면서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다. 1963년 상영된 ‘귀국선’은 이병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문정숙, 양미희, 김진규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멜로물로 일제강점기 때 여성들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줄거리는 한 여인은 남편을 만나러 일본으로 몰래 들어가고, 또 한명의 여인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밀입국해 천신만고 끝에 각각 남편과 어머니를 만난다. 그러나 해후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밀입국자란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곧바로 귀국하는 송환선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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