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해양금융중심지’구호에 그쳐선 안된다

지난해 8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개장을 계기로 부산지역이 동북아 해양ㆍ파생특화 금융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주요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의 해양금융부서를 통합한 해양금융종합센터가 지난해 11월 부산에 설립되었고, 캠코선박운용도 부산에서 중고선 리파이낸싱 업무에 착수했다.

해운보증기금의 대안으로 설립된 한국해양보증보험도 지난 4월에 BIFC에 입주하여 영업전산망을 구축한데 이어 8월 26일 창립식을 갖고 출범했다. 특히 한국해양보증보험은 민간출자의 구심점 역할을 맡은 해운업계에서 최근 1차 출자를 마무리했으며, 곧 1호 선박 후순위 보증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부산에 해운거래소가 설립되면 이들 해양금융기관들과 함께 선박금융 클러스터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해양금융종합센터 시너지효과 극대화 시급”
하지만 우리 해운업계에서는 부산지역이 과연 동북아 해양·파생특화 금융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모든 해양금융 기관들이 BIFC에 집결했지만, 시너지효과를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상, 해양종합금융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사항인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대신한 것으로 해운을 비롯한 해양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출범한지 8개월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여론이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산업은행을 비롯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외견상으로는 센터로 일원화됐지만, 업무는 종전 그대로이고 제각기 독자적인 선박금융업무를 수행한다면 굳이 부산에 집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더구나 해양금융기관들의 부산 이전으로 해운기업 임직원들의 출장비와 시간이 많이 소요됨으로써 가뜩이나 장기해운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금융기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운, 조선 등 국내 해양산업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 중소ㆍ중견선사를 육성하기 위한 공동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운업계 위한 경쟁력있는 보증상품 개발 필요”
그동안 우리 해운업계는 해운산업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더 나아가 세계 3대 해운강국 도약을 위해 정부와 국회, 청와대 등에 해운보증기금의 설립을 강력히 건의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 등을 이유로 한국해양보증보험을 설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딘 한국해양보증보험은 초창기에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수익성을 추구하는 영업을 펼칠 것으로 보여 당장은 해운업계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해운기업들의 신용도에 따라 한국해양보증보험의 보증요율이 결정되겠지만, 현행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요율 보다 높을 게 분명하다. 한국해양보증보험도 민간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해운업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된 만큼 하루속히 국내 해운업계 지원을 위한 정책상품을 개발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보증상품을 선보였으면 한다. 그래야만 향후 민간부문의 해운업계 추가 출자가 원만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정책금융기관 조선·외국선사 편중지원 개선돼야”
그리고 우리 해운업계가 우려하는 문제는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조선산업 편중 지원이다. 수출입은행의 지난 2014년말 기준 총여신은 106조원인데 이 중 선박부문의 익스포저는 20조원으로 전체 여신의 19%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해운업계의 익스포저는 2조원 수준으로 10%에 불과하다. 결국 18조원이 외국선사에 지원됐다는 얘기다.

세계최대 정기선사인 머스크라인이 수출입은행의 정책금융 지원으로 건조한 1만 8,000TEU급 극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취항시킴으로써 정기선시장의 치킨게임이 촉발되었고, 이것이 곧 시황악화로 이어져 우리 원양선사들의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수출입은행에서 선보인 1조원 규모의 에코십펀드도 해운산업 지원이라는 정책홍보만 무성했지, 실속이 없다. 대량화주와 장기수송계약이 체결된 벌크선에 한해 지원되는 등 선박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선박은 시중은행들도 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데, 수출입은행이 시중은행이나 선박투자회사의 일감을 앗아간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혹시 수출입은행이 조선산업은 수출산업이고 해운산업은 서비스산업으로 보고 조선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해운산업도 해상운송서비스를 수출하는 엄연한 수출산업이다. 편견을 두지 말자는 얘기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 역할 무엇보다 중요”
부산지역이 명실상부한 동북아 해양·파생특화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그리고 부산시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당국은 외국선사에 대한 정책금융기관들의 지원이 국내 해운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분석하여 만에 하나라도 국내 조선산업을 위해 해운산업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관리ㆍ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국내 조선소에 대한 제작금융 공급 등 천문학적인 정책금융 지원이 저가수주로 이어져 외국선사들의 경쟁력만 키우고, 조선소의 부실을 초래하지 않았는지 따져 봐야 할 일이다. 부산시도 해양금융관련 정책금융기관들을 BIFC에 유치한 만큼, 해양금융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양금융종합센터와 국내 해운, 조선 등 해양산업에 대한 정책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독일 함부르크시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산위기에 처한 자국선사 하파그로이드에 대해 지급보증을 통해 7억5,000만유로의 유동성을 지원하여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함부르크시의 이같은 지원은 함부르크항만을 위한 것으로 한 나라의 대표항만을 두고 있는 지자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운·조선 상생발전의 선순환 확립 필요”
그동안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해운국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등 해운산업을 지원한 측면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위기극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 해운업계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조선소와 외국선사를 지원한 결과가 한국상선대의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단호히 끊어야 한다.

해양전문가들은 실과 바늘의 관계인 해운과 조선을 연계하지 않은 지원방안은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없어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해운과 조선은 선행과 후행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사이클이 같으며, 불황의 요인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금융기관이 국내 해운산업을 지원하면 신조선 발주를 위해 국내 조선소로 흡수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운·조선·금융 상생발전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단호한 정책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운이 살고 조선도 살고 금융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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