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하기도 정리하기도 애매

 
 
 ‘신성장동력’이라 여겨졌던 풍력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형 조선사들 중심으로 확대됐던 풍력사업이 조선사들의 경영악화와 맞물려 ‘정리사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풍력사업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채 매년 손실만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막대한 잠재력을 보유한 해상풍력사업을 단칼에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우리 조선사들의 고민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풍력시장 진출은 2008년 말 이후 전개됐던 상선시장 불황과 맞물려있다. 08년까지 유례없는 상선발주의 호황을 누렸던 국내 조선사들은 08년말 글로벌 경영위기 이후, 급격히 축소됐던 상선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사업다각화에 박차를 가했다. 해양플랜트와 풍력발전은 우리 조선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던 대표적인 사업이다.
 

당시만 해도 풍력발전 시장은 조선사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우선 선박건조 기술과 풍력발전의 기술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충분한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과 함께 유례가 없었던 고유가 시대에 신재생에너지인 풍력시장이 수년안에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풍력설비의 핵심장치인 블레이드 기술은 선박의 프로펠러 기술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마치 대형 선풍기를 연상시키는 블레이드는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풍력발전의 핵심기술로 선박의 추진체인 프로펠러와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 특히 이미 글로벌 리더들이 선점한 육상풍력에 비해 절대 강자가 없었던 해상풍력은 더 큰 장점이 있었다. 육상풍력에 비해 풍력자원이 우수하고 대단지화에 유리해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상선불황으로 조선사들이 해양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린 점도 풍력사업 확대의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08년말 상선불황이 풍력사업 진출 계기
선박 프로펠러 기술과 유사, ‘시너지’ 기대 속 공격적 진출
2009년부터 국내 조선사들의 풍력사업 진출이 시작됐다. STX중공업은 2009년 7월 네덜란드 하라코산유럽(Harakosan Europe B.V)을 약 240억원에 인수해 STX윈드파워를 설립, 풍력시장의 포문을 열었고 같은해 10월 루마니아 아트라 에코(Atra Eco)로 부터 2MW(메가와트)급 풍력설비 6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10월 자체 기술로 개발한 풍력발전기 생산을 시작했으며, 전북 군산 군장국가산업단지 내 13만 2,000㎡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기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현대重은 2013년까지 동 단지에서의 연간 생산규모를 800MW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동사는 2010년 독일 풍력회사인 야케(Jahnel-Kestermann Getriebewerke GmbH)를 부채 1,030억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1유로에 인수했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영국 엔지니어링 업체와 공동으로 2.5MW급 풍력발전 설비를 개발했고 풍력발전기 조립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15년까지 풍력발전설비 매출 3조원 달성을 목표로 야심차게 풍력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동사는 2012년 영국 스코틀렌드에 7MW급 해상풍력발전기 시제품을 설치하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 8월 미국 드윈드DeWind를 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풍력사업에 진출했다. 동사는 드윈드를 인수하자마자 7,000만달러를 투자해 풍력발전기 신모델 개발을 추진했으며, 북미지역에 생산 공장도 설립해 20기의 풍력단지를 조성하고 대형풍력단지 조성도 계획했었다.


그러나 우리 조선업계가 본격적으로 풍력발전사업에 뛰어든 지 5년이 지난 현재의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올해 7월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120GW의 누적 설비를 설치하는 등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독일, 덴마크, 미국 등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 풍력 설비는 약 700MW로 추산돼 중국에 비해 풍력 확대속도가 확실히 더디다. 조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풍력발전기만 해도 해외 브랜드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국내 조선사 중 가장 많은 풍력발전을 공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해외 설비의 1/3 수준으로 해외 시장에서는 그 격차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풍력설비 설치량과 풍력터빈 생산량은 모두 세계 10위권 밖으로 경쟁국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저유가, 화석연료 규제 미미 풍력발전 저성장
우리 정부 육성정책 엇박자... 中 공격적 투자로 육상풍력 선도
그렇다면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았던 풍력사업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풍력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 조선사들이 풍력사업에 뛰어들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글로벌 유가는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체 에너지 개발 수요가 컸다. UN 등 국제기구는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가스연료, 태양광 등과 함꼐 풍력사업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에너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가스연료의 가격 하락에 이어 유가마저 낮게 형성되면서 풍력사업의 수요도 그만큼 낮아졌다. 탄소세 등 국제사회의 화석연료 관련 규제조치도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중국은 풍력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저가공세를 시작했다. 세계 풍력시장이 매년 약 10%씩 성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성장세는 중국이 이끌고 있다.
 

반면 풍력발전을 포함한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발전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더디다. 2013년 기준 세계 에너지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EU의 경우 평균 10%를 차지하고 있으나 우리는 3.2%로 빈약한 수준이다.
 

정부의 정책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무 이행을 선도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녹색성장의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정부는 정작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조력발전사업의 천혜의 입지로 꼽히는 가로림만에 조력발전소 설치가 불허되는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를 정부가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력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부담도 발전사업자가 100% 져야 하는 수익구조로 해상풍력발전 사업자들은 사업을 연이어 보류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전력은 공급과잉을 면치 못하고 있어 전력가격은 바닥수준인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미약한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발전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重 풍력R&D센터 매각, 현대重 풍력자회사 ‘야케’ 자본잠식상태, 대우조선 누적적자 900억원대
결국 국내 풍력발전사업을 주도했던 조선사들은 야심차게 동 사업에 뛰어든지 5-6년만에 사업을 철수하거나 축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重은 2009년 신설했던 풍력사업부를 6년만에 팀 규모로 축소했고, 독일에 있는 풍력전문 R&D 센터도 작년 9월 매각했다.
 

현대重과 대우조선해양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특히 양사는 해외 풍력업체를 인수하며 풍력사업의 꿈을 키웠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인수했던 야케는 2011년 411억원, 2012년 351억원의 적자를 냈고 현재는 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 야케 인수와 함께 신설했던 그린에너지사업본부의 규모도 반토막이 났다.
 

대우조선해양도 드윈드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드윈드는 미국에서 풍력발전 설비를 건조하고, 독일 드윈드유럽에서는 R&D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2011년 520억원, 2012년 167억원, 2013년 90억원, 2014년 8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적자만 900억원에 달한다.

 

관건은 ‘해상풍력’... 부유식 해상풍력설비 상용화 단계
“손해있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조선사의 풍력사업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중국 등 선도국가의 진입장벽이 높은 육상풍력 사업이 한계에 다다름에 따라 해상풍력 사업이 점차 확대되고 있고, 신재생에너지로서의 풍력발전의 가능성도 여전히 유효하다. 야심차게 투자했던 사업인 만큼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 풍력사업을 시장이 침체된 국면에서 헐값에 넘기기엔 풍력사업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조선사들도 ‘사업매각’보다는 ‘사업합리화’로 풍력사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특히 최근 상용화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부유식 해상풍력설비’는 우리 조선사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부유식 해상설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쉽게 포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영국이 해상풍력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 정부의 풍력발전산업 지원과 육성방안에 따라 제2의 조선해양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풍력사업 축소·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한 조선사 연구진은 “풍력사업을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확실히 아까운 사업”이라며, 적은 규모라도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기대만큼 풍력에너지의 성장세가 따라오지 못했으나, 풍력발전은 여전히 확대되고 있으며 그 중 해상풍력 시장은 우리 조선사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초기 사업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분명히 있다”면서도, “현재 수요가 낮은 설비·건조 사업은 축소하더라도 R&D 사업은 소규모라도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풍력사업에 대해 우리 조선사들의 입장은 한마디로 “골치가 아프다”로 요약된다. 해양플랜트 손실로 인한 경영악화 상황에서 해마다 손실을 내는 풍력사업을 갖고 있기에도 부담스럽지만, 발전가능성이 여전히 큰 사업을 당장 철수하기에도 아깝기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던 우리 조선사들의 풍력산업이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인지’ 혹은 ‘순풍을 타고’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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