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1931년 힘든 삶·고통 이겨내자며 만들어진 가곡
현제명 작사·작곡…일제강점기 ‘친일 노래’ 비판도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밤은 지나가고 환한 새벽 온다 종을 크게 올려라
멀리 보이나니 푸른 들이로다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복원한 전통 돛단배 '봉황호'             사진: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복원한 전통 돛단배 '봉황호'             사진:문화재청

지난 달 설날이 지나면서 원숭이의 해가 본격 밝았다. 오는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등 많은 변화와 새로운 일들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럴 때 부르거나 들으면 좋은 노래가 있다. 바로 ‘희망의 나라로’다. 제목처럼 뭔가 희망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희망의 나라로’는 음악인 현제명이 작사·작곡한 가곡이다. 테너 엄정행(전 경희대 교수), 이인범 등 성악가들과 합창단에서 자주 불린다.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 라장조로 쾌활하다. 원래 빠르기는 Allegretto(조금 빠르게)이지만 희망찬 느낌이 나도록 씩씩하고 힘차게 부르면 분위기가 산다.
 

‘가요계 황제’ 남인수 애창곡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31년. 그해 발간된 ‘현제명 작곡집’ 제2집에 담긴 뒤 오늘날까지 애창되는 현제명의 대표작이다. 현제명은 해방 전후에 우리나라 음악계 대부이자 큰 별이었다. 1926년 미국으로 음악유학을 떠난 선각자였고 문학과 음악적 재능을 두루 갖췄던 작사·작곡·성악가였다. ‘희망의 나라로’에서 보듯 그의 음악에선 비관보다는 낙관, 어둠보다는 밝음이 물씬 느껴진다.
구한말에 히트한 대중가수 채규엽(蔡奎燁, 일본식 이름: 長谷川一郞 하세가와 이치로)의 ‘희망가’와 함께 ‘희망의 나라로’ 인기는 대단했다. 우리 민족의 힘겨운 삶과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노래였다. 대통령 취임식 때 등 의미 있는 행사와 신년회, 출범식, 창립행사와 같은 새 출발의 다짐자리에서 자주 불린다. 2012년 9월 현제명의 고향 대구에선 그를 기리는 의미로 노래제목을 행사의 메인프로그램으로 한 음악회가 열려 눈길을 모았다.

이 노래는 경남 진주출신 대중가수 남인수(1921~1962년)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강약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며 뛰어난 발성을 하는 가수로 무대에서 앙코르를 받으면 맨 먼저 ‘희망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그는 살아있을 때 입버릇처럼 “내가 성악공부를 했더라면…”하는 말을 자주 했다. ‘가요계 황제’로 불렸던 그는 젊은 시절 성악가를 꿈꿨으나 시대상황과 현실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국민가곡으로 꼽히는 ‘희망의 나라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잖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점을 들어 대동아공영으로 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친일노래란 얘기다. ‘희망의 나라로’ 가사에 나오는 배를 저어 찾아가는 희망의 나라는 ‘광복된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염원하는 희망곡이란 지적이 있다.

2010년 9월 17일 저녁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친일&항일 시민음악회’ 때도 이 같은 말들이 나왔다. 1931년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 요청으로 현제명이 작곡했다는 것이다. 그날 행사는 한국광복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광복군의 독립정신을 잇고 일제잔재가 남아있는 우리 음악의 현실을 고발하는 자리였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22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고 평화재향군인회가 주관한 음악회로 ‘희망의 나라로’가 ‘선구자’와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한 대표적 친일노래였다는 사실이 소개됐다.

노래를 만든 현제명(호=현석 : 玄石) 선생은 1902년 대구서 태어났다. 교육자이자 테너가수이기도 한 그는 기독교학교인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성악과 피아노에 관심을 갖고 음악공부를 열심히 했다. 1923년 졸업, 전주신흥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뒤 1925년 미국 시카고 무디성경학교(Moody Bible School)에 들어가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건 음악학교(Gunn Music School)로 옮겨 1년간 공부한 뒤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했고 경성음악학교도 세웠다.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 한국음악가협회 초대 이사장, 예술원 종신회원 등을 지냈다. 가극 ‘춘향전’, ‘왕자호동’과 가곡 ‘산들바람’, ‘고향 생각’, ‘나물 캐는 처녀’ 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오페라 ‘춘향전’을 작곡, 1950년 5월 무대에 올림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1960년 10월 16일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제명 일대기 ‘희망의 나라로’ 출판
현제명의 일대기를 담은 책 ‘희망의 나라로’도 나왔다. 김중순씨(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험한 바다 물결 건너 노를 저은 현제명’이란 부제가 붙었다. 현제명은 국악이 미천한 옛 음악으로 여겨질 때 신념을 갖고 국악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일생을 마쳤다. 이 전기는 현제명의 어두웠던 부분까지도 숨기지 않으면서 그의 복잡했던 속내를 최대한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일기를 보는 듯 복원해낸 글은 인간 현제명을 그대로 보여주며 진솔한 감동을 안겨준다.

한편 ‘희망의 나라로’ 노래제목과 비슷한 일본영화 ‘희망의 나라’도 나와 눈길을 끈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소개된 이 영화는 소노 시온 감독이 동일본대지진의 충격을 보고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갑작스러운 대지진과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 이야기다. 원자력발전소, 정부, 자신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나츠야기 이사오, 오오타니 나오코, 무라카미 준, 카구라자카 메구미 등이 출연한 영화는 대재앙으로 모든 게 사라진 뒤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개척하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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