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2다119443 판결-

 
 
Ⅰ. 사안의 개요
(1) 대한민국 법인인 B회사는 2006. 12. 28. 파나마 법률에 따라 설립된 K사로부터 탱커선인 키마호(M/T KIMA)를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가, 2007. 1. 10. 파나마 법률에 따라 P사를 설립한 다음, 2007. 2.경 P에게 위 선박에 대한 매수인의 지위를 양도하였고, P는 2007. 3. 1. 위 선박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하였다.

(2) P와 B는 2007. 3. 2. P가 위 선박을 B에게 선체용선하여 주되, B가 약정한 용선료를 완납하면 그 소유권을 취득하는 내용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Bare Boat Charter Hire Purchase)을 체결하였다. B와 G회사(대한민국 법인이다)는 같은 날 B가 일정 기간 G에게 위 선박을 용선하여 주되, G는 각 항해별로 실제 항해 거리와 화물의 중량에 따라 계산된 용선료를 B에게 지급하는 내용의 연속항해용선계약
(Consecutive Voyage Charter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연속항해용선계약과 같은 날 체결되어 그 일부로 첨부되어 있는 부속서 에이(Appendix A) ‘탱커항해용선계약(TANKER VOYAGE CHARTER PARTY)’ 제30조는 “이 사건 연속항해용선계약의 해석 및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는 런던에서 용선계약 당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이 사건 연속항해용선계약 제1조는 부속서 에이가 이 계약에 삽입되어 그 일부를 이룬다고 규정하고 있다.

(3) 원고 W(대한민국 은행이다), P, B는, W의 홍콩지점을 통하여 2007. 3. 2. “B가 G에 대한 용선료채권 등 연속항해용선계약에 따라 가지는 일체의 권리를 P에게 양도하고, P는 이를 다시 금융기관들을 대표하는 W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고, 이에 관하여 그들의 서명이 담긴 약정서를 작성하였다. 한편 이 사건 양도약정서 제14.01조는 이 사건 양도약정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하고 있다.
(4) B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있던 피고들(대한민국 법인 또는 국민이다)은 2010. 4.경 B의 G에 대한 용선료채권 등에 관하여 가압류결정을 받았고, 위 각 가압류결정은 G에게 송달되었다.

(5) G는 2010. 7. 8. “B의 자신에 대한 용선료채권 중 1,646,980,756원에 대하여, 위 채권이 P, W에게 차례로 양도되었다는 통지가 송달되었으나 그 양도의 효력을 판단하기 어렵고, 각 가압류결정이 송달되었으므로 진정한 채권자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민법 제487조 후단 및 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 제291조에 근거하여 인천지방법원 공탁관에게 위 금원을 혼합공탁하였다. 이에 W는 피고들을 상대로 위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당사자의 주장
원고 W는 이 사건에는 외국적 요소가 있으므로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연속항해용선계약상 당사자는 내국법인인 B, G이고, 양도약정으로 B로부터 용선료채권 등을 양수한 자는 P, W인데, W 역시 내국법인일 뿐만 아니라 P는 B가 오로지 위 선박의 취득을 위하여 세운 명목회사(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므로, 각 당사자들 사이의 법률관계에는 외국적 요소가 없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할 것이 아니라 곧바로 대한민국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Ⅲ. 법원의 판단
제1심,1) 항소심,2) 상고심3)은 모두, 이 사건에는 외국적 요소가 있으므로 곧바로 대한민국 법을 적용하기보다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이 사건 연속항해용선계약의 당사자는 그 준거법을 영국 런던에서 적용되는 법인 영국법으로 선택하였으므로, 이 사건 용선료채권의 성립이나 소멸 등에 관한 준거법은 영국법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Ⅳ. 외국적 요소와 국제사법의 적용
 1. 국제사법 제1조

국제사법 제1조는 “이 법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원칙과 준거법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견해의 대립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의 의미에 관하여는, ① 대한민국에서 외국인과 대한민국 국민과의 법률관계, 외국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의 법률관계, 법률관계와 관련된 목적물이 외국에 소재하는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법률행위나 불법행위에 의한 문제 등이 기본적 모습이라는 견해(광의설),4) ② 단순히 외국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외국적 성격이 상당한 정도에 이르러 그 관계에 막연히 국내법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국제사법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할 경우에 한하여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라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협의설)5)가 대립하고 있다.

판례6)는, 외국적 요소가 있는지 여부는 거래당사자의 국적뿐만 아니라 주소, 물건 소재지, 행위지, 사실발생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그 결과 곧바로 내국법을 적용하기보다는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적용하여 준거법을 정하여야 한다는 협의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대상사안의 검토
(1) 이 사건 양도약정의 당사자에는 대한민국 법인인 W, B 외에도 파나마 법인 P가 포함되어 있고, W의 경우에도 국내지점이 아니라 홍콩지점이 직접 관련되어 있는 점, ② 이 사건 양도약정의 대상이 된 용선료채권 등은 연속항해용선계약을 원인으로 발생하였는데, 위 계약은 국제화물운송을 목적으로 하는 선박의 용선에 관한 것으로서 이를 원인으로 하여서는 용선료채권 이외에도 체선료채권, 임금채권, 각종 손해배상채권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이들 채권의 발생지는 외국일 수 있는 점, ③ 당사자들이 연속항해용선계약 및 양도약정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하기로 합의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에는 외국적 요소가 있으므로, 곧바로 대한민국 법을 적용하기보다 국제사법을 적용하여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2) 한편, P가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을 위하여 파나마에 설립된 회사이지만, 편의치적제도는 선박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적 관례로서 인정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중소해운기업이 선박확보를 위해 이용하고 있는 제도로 그 자체가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부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7) 편의치적을 위하여 설립된 법인의 법인격이 부인되어 실제의 선박소유자인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도 곧바로 양도약정의 당사자를 P가 아닌 B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P를 외국법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Ⅴ. 연속항해용선계약에 따른 용선료채권의 준거법
1. 당사자자치에 의한 계약의 준거법
가.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본문은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당사자자치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주관적 준거법은 당해 계약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는 법에 한정되지 않으며 중립적인 법의 선택도 가능하다.8) 또한 국제사법 제34조 제1항은 “채권의 양도인과 양수인의 법률관계는 당사자 간의 준거법에 의한다. 다만 채권의 양도가능성, 채무자 및 제3자에 대한 채권양도의 효력은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저촉법적 지정
(1)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선택은 ‘저촉법적 지정’을 말하는 것이고, ‘실질법적 지정’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국내법률관계에서 당사자가 선택한 외국법이 그 선택 시점부터 적용 시점까지 사이에 개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위 법 조항에 정한 그대로 국내 강행법규의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하는 이상 당사자의 법 선택이 저촉법적 지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와 다를 바 없으므로 양자는 차이가 없다.

(2) 그러나 선택된 외국법이 적용 시점에 이르러 개정된 경우에는 실질법적 지정설에 의하면 선택 당시에 적용되던 개정 전의 법에 따라야 하는 반면, 저촉법적 지정설에 의하면 개정 후의 법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긴다.9)
(3) 또한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때에는 제26조에 따라 결정되는 객관적 준거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그 준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당사자들이 계약에 편입한 외국법이 당해 계약의 내용이 된다.10)
 

다. 대상사안의 검토
이 사건 연속항해용선계약의 본문에 준거법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 인정사실(부속서 A 제30조, 양도약정서 제14.01조)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연속항해용선계약 자체도 부속서 A에서 합의한 바와 같은 준거법에 의하여 규율되도록 할 의사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연속항해용선계약의 당사자는 그 준거법을 영국 런던에서 적용되는 법인 영국법으로 선택하였으므로, 이 사건 용선료채권의 성립이나 소멸 등에 관한 준거법은 영국법이고, W와 피고들 사이의 채권양도를 둘러싼 우열관계 역시 영국법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2. 국제사법 제8조의 적용 여부
가. 피고들의 주장요지

국제사법 제8조 제1항이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준거법이 해당 법률관계와 근소한 관련이 있을 뿐이고, 그 법률관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른 국가의 법이 명백히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다른 국가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5조 제4항이 “모든 요소가 오로지 한 국가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그 외의 다른 국가의 법을 선택한 경우에 관련된 국가의 강행규정은 그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등 국제사법은 최밀관련국법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관련 당사자 모두의 공통적인 속인법이 대한민국 법이고 채권의 소재지, 양도지, 통지지, 승낙지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국법은 이 사건 채권양도 또는 이 사건 용선료채권과 근소한 관련이 있을 뿐이고,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국가의 법은 대한민국 법이므로 국제사법 제34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는 대한민국 법이 준거법이 되어야 한다.
 

나. 국제사법 제8조 제2항의 취지
(1) 국제사법 제8조 제1항을 함부로 적용할 경우 국제사법에서의 법적 안정성이 현저히 저해되므로, 이 조항은 국제사법에 의하여 지정된 준거법이 해당 법률관계와 근소한 관련이 있을 뿐이고 그 법률관계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른 국가의 법이 존재하며 그것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함이 상당하고, 단지 어느 법이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있는 정도로는 위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11)
(2) 국제사법 제8조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은 당사자가 합의에 의하여 준거법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제사법상 당사자의 준거법 선택이 허용되는 경우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서까지 예외조항을 인정할 것은 아니므로 그 경우에는 예외조항이 적용되지 않음을 명시하였다.12) 따라서 당사자 사이에 주관적 준거법으로 영국법을 지정한 이 사건에서는, 예외조항인 국제사법 제8조 제1항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되므로, 피고들의 주장은 부당하다.
 

3. 채권양도의 준거법
국제사법 제34조 제1항이 채권양도의 제3자에 대한 효력의 준거법을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으로 규정한 이유는 채권양도의 효력을 둘러싸고 제3자의 이익뿐만 아니라 양도인, 양수인, 채무자 등 이해관계인 사이의 이해 균형의 고려와 함께 채권양도로 인한 법률관계는 그로 인하여 양도되는 채권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고려 때문이다.13)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당사자 사이에 용선료채권 양도약정에 관한 주관적 준거법으로 영국법을 명시적으로 지정한 이 사건에서는, 국제사법 제8조 제2항에 의하여 제8조 제1항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Ⅵ.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국제사법 시행 이후, 국내법인이 외국법인에서 선체용선한 선박을 다시 국내회사에 용선하는 연속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한 다음, 용선료 채권을 순차 양도하는 양도약정을 체결한 사안에서, 외국적 요소가 있으므로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하여야 하고, 연속항해용선계약 등의 당사자가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선택하였으므로 용선료채권의 성립이나 소멸 등에 관한 준거법은 영국법이라는 점을 최초로 판시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